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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벤에셀의 하나님 (삼상 7:12절)

 

에벤에셀이라는 이름은 "도움의 돌"이라는 뜻을 가지며 사무엘상에서 4장과 7장에 등장합니다. 두 장 다 이 지역에서 블레셋 군과 대치하고 있는데 4장과 7장의 상황은 굉장히 대비가 됩니다.

 

4장에서 이스라엘은 이 에벤에셀에서 블레셋군에게 대패해서 4천여명의 군사가 죽게 됩니다.

전쟁에서 패배하게 되자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회의를 열어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왜 패배를 하느냐?"하면서 내놓은 방안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가져와서 전쟁을 치루면 이기리라 하면서 엘리가 있던 실로의 성전에 두고 있는 법궤를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짊어지고 와서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궤를 가지고 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이 진동할 정도로 환호하게 되고 블레셋 군인들은 이스라엘의 신이 전쟁터에 도착했다고 하면서 두려워 떨게 됩니다. 블레셋 군사들 조차 하나님의 이름만 들어도 떨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다시 블레셋 군사들이 추스려서 이스라엘을 공격하자 홉니와 비느하스를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 3만명이 죽게되고 하나님의 궤마저 블레셋 군사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도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서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큰 재앙이 닥친 것입니다.

 

1. 이가봇

사무엘상 4장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스라엘 백성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줍니다.

브레셋과의 전쟁에서 대패, 홉니와 비느하스의 죽음, 법궤를 빼았기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가 죽은 이야기, 그 충격으로 갑자기 애를 낳다가 죽은 엘리의 며느리, 그가 아들을 낳으면서 외친 말 ‘이가봇’,

이것이 그대로 아이의 이름이 되는데 그 이름의 의미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라는 의미입니다. 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는가?

 

[삼상 4:22] 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

 

하나님의 법궤를 빼았겼다는 것은 말씀을 잃어버렸다는 것이고 말씀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40년 기간을 집약하는 두 말 -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3:1)->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

[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말씀이 희귀하여 눈이 가리워지니까 아들들이 성전에서 잘못을 해도 꾸짖지를 못합니다. 장로들이 전쟁의 승리를 위해 부적처럼 법궤를 가져가려 해도 말리질 못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지도 못하고, 몸만 살찌워서 결국 성경에서 가장 참혹한 죽음으로 묘사된 항상 성전 입구에서 누가 들어가고 나오나 지켜보던 예배자가 아닌 관망자, 감시자로서 앉아 있던 그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는 처참한 사사가 됩니다.

 

이가봇은 내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상태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품을 떠나자 그에게 일어났던 일이 무엇입니까? 곧 허랑방탕하고, 재산을 탕진하다가 결국 돼지 쥐엄열매를 먹고, 그 조차 먹지 못해 구걸하는 신세...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자 물고기 뱃속에 갇혀 살려달라고 외치는 상태...

다름아닌 이가봇의 영적 상태입니다.

 

2. 법궤

당신의 전쟁 - 신들의 전쟁, 이긴 나라가 패배한 나라의 신을 정복하는 것입니다. 승전국인 블레셋군사들은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자기들의 신인 다곤 신전에 두었는데 이튿날 깨어보니 다곤 신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려저 얼굴을 땅에 떨어지고 머리와 두 손목이 잘려 나가 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그 지역에 독한 종기가 퍼져서 다른 지역, 가드로 옮기니까 그 다른 지역마저 환난이 더하여 독한 종기가 나게 됩니다. 옮기는 곳마다 환난이 오게 되는데 그렇게 일곱달을 여기 저기 옮겨 다니다가 결국 블레셋 군사들은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패배했어도 하나님의 법궤가 결국 블레셋을 이기게 됩니다. 때로는 교회가,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고, 패배하고, 넘어져도, 여러분 복음은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합니다.

결국 믿는 자의 죄와 허물이 패배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자체로서 승리하고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로 보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이단이 점령하지 못한다. 아무리 신천지가, 타작마당이, 기독교 흉내를 내어 본들 그들의 정체는 드러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없다.

 

이스라엘로 보내진 법궤는 먼저 벧세메스로 보내집니다. 그곳은 레위지파의 영토요 주로 제사장들이 거주하던 땅인데 그곳으로 보내진 법궤를 들여다보다가 70여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죽게 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제사장이고 레위인들이어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둡고 말씀대로 그것을 보관하지 않으니까 그들이 레위인이라 할지라도,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거할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법궤.

홉니와 비느하스-다곤 신전-벧세메스 (하나님의 말씀이 거할 곳을 찾아 떠돌아 다닌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할 곳을 찾아 떠돌아 다닌다)

(베다니를 찾은 예수 그리스도)- 예루살렘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할 곳을 찾지 못하시고 인근 베다니에 가셔서 주무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같지 아니한가?

도저히 함께 거할 수 없는 그런 곳을 떠나 거처를 찾아 헤메는 법궤.

 

3. 아비나답

[삼상 7: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산에 사는", "거룩하게 구별하여"이라는 말이 눈이 멈추어 집니다.

제사장이라는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거룩하고 구별된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산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장소, 구별된 장소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담당한 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해 구별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기 위해 자기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 그는 제사장도 아니었고, 그의 집은 신전이나 산당도 아니었음에도 그는 그의 집에 법궤를 두고 20년 동안 구별된 삶을 살아갑니다.

나는 우리 로고스교회가 이런 아비나답의 집 같은 구별된 장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난 우리 로고스교회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자신을 거룩히 구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4. 미스바로 모이라.

이 2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사모했다"고 전합니다.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법궤가 사라지면 이스라엘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를 체험하고 슬퍼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후회에 가까운 것이고 자기 연민입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사라지면 재앙이고, 곁에 두자니 불편하고 두렵고....

 

이러한 때에 사무엘이 등장하여 이른바 미스바 부흥회를 개최합니다.

이때의 미스바라는 장소를 따서 많은 집회의 이름이 미스바 집회, 미스바 회개 운동 등으로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미스바는 "망대" 즉 파수꾼이 망보는 곳이라는 뜻의 지명입니다.

영적인 의미로는 깨어라, 깨어있으라는 말입니다.

슬퍼하지만 말고, 두려워하지만 말고 하나님 앞에 깨어서 자신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무엘은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후에 이스라엘 민족에게 마지막으로 전햇던 세겜 언약에서의 말씀입니다.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 결국 우상 섬기고 이방신 섬기고, 세상에 기대어 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

그런데 사사 시대를 지나면서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삶이 지속되면 알게 모르게 하나님 아닌 가까운 것, 빠른 것, 쉬운 것을 의지하게 됩니다. 밖에 나가면 때가 쌓이듯 세상에 살면서 깨어있고 회개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우상을 의지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상은 끊임없이 믿는 자를 넘어뜨리고 유혹하고, 하나님이 아닌 돈을, 물질을, 권력을, 힘을, 세상을 의지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물을 여호와께 붓는 것은 '자신들의 죄과를 하나님 앞에 쏟아 놓는 실제적 회개'를 의미합니다. 마치 물을 부어 쏟듯이 자신의 마음 전부를 다 내어놓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방법으로 금식을 했다는 것은 주의해서 살펴야 합니다.

죄의 성격은 욕구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죄의 통로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본능적이고 직접적인 것이 먹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가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식욕을 다스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드릴 것도 빼앗아 먹었습니다. 엘리는 너무 먹어 몸이 비대하였다고 증거합니다. 그들은 먹은 것에 지배당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먹지 않고 욕구를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진정과 겸손으로 회개한다는 구체적인 표시로 '금식'(fast)란 방법이 채택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전심으로 회개하며 금식하며 하나님을 찾을 때에 블레셋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사단의 역사도 함께 일어납니다. 기도하려고 하면 먼저 방해하는 것이 사단입니다. 그들은 교활해서 우리가 결심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 하면 일을 만들고, 몸을 치고 마음을 쳐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깨어있는 자는 그러한 일이 나타났을 때에 사단의 정체를 발견합니다. 사단에게 무릎꿇지 않습니다.

깨어있지 못하니까 결심해도 일생기면 포기하고 낙담하고 맨날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블레셋이 쳐들어 왔다는 것을 듣고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무엘에게 "우리를 위하여 쉬지 말고 부르짖어달라" 요구합니다.

그들은 군사를 모으지 않았습니다. 두려웠지만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니까 기도를 통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사무엘은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온전한 번제"란 말에 주의하십시오.

블레셋 사람들도 볍궤 앞에서 속건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제사는 드렸지만 자기 마음대로 독종과 금쥐를 만들어 예물로 드렸습니다.

신앙은 마음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 거듭 말씀드리지만 신앙생활은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먼저되야 하지만 형식도 있어야 하고 방법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번제입니다.

 

기도하며 번제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군사 하나 모으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우레를 내려 그들을 어지럽게 하여 흩어지고 스스로 무너지게 하삽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기게 합니다. 스스로 무너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승리의 장소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셨다"라는 의미의 에벤에셀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결 론

똑같은 에벤에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데 4장과 7장이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의는 해도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전쟁에 패하자 우리가 왜 졌을까? 하면서 궁리하여 법궤를 가져오게 하지만 정작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부적처럼 사용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고, 여전히 범죄하며 단지 형식만 남은 경건, 부적과도 같은 신앙생활만을 합니다.

 

그런데 7장은 다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곁에 없을 때에 자기들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법궤는 산위에 엘리아살이 지키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우상을 제거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회개와 기도,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진정한 신앙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이자 능력입니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시요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려고 해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우리는 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을 떠난 존재가 됩니다.

똑같은 에벤에셀 이지만 이가봇의 에벤에셀은 패배의 땅이요 절망의 땅이요 저주의 땅이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청종하는 것이요,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떠돌다가 아비나답의 집에 정착했습니다. 거기서부터 이스라엘의 회복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머무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면 미스바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회개가 일어나고 회개를 통해 우리 영혼이 깨어납니다. 죄로부터 벗어납니다.

절망에서 소망이 쏫아납니다.

실패의 장소가 바로 그 장소에서 승리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올 한해를 보내면서 우리에게 에벤에셀의 은혜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 장소에서 승리의 함성이 울리길 기도합니다.

미스바의 회개의 외침이 성도들마다 일어나기를 갈망합니니다.

아비나답과 같은 말씀을 지키는 자, 그 말씀과 같이 거하는 자들이 생겨나기를 소망합니다.

 

에벤에셀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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