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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다 (마가복음 7:31-37)


1. 두로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1절) 

두로 지방을 간 것 만도 이방인의 땅, 더럽혀진 땅을 간 것으로 유대인들의 선긋기, 자기 기준, 자기 방어의 장벽을 무너뜨린 사건인데 예수님은 두로 지방 뿐만 아니라 시돈,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였다고 전한다.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밝히지도 않고 그 땅을 밟고 지나왔다는 것이다. 소개는 되어 있지 않지만 시돈에서도 데가볼리 지방에서도 예수님은 택하신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죄악가운데서, 질병 가운데서 구원해내셨을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도, 그 이방인들도 구원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갈릴리 호수로 돌아왔다. 고향 땅, 그들이 익숙한 곳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2.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고향에 왔는데 사람들이 한 사람을 데리고 옵니다. 그는 귀를 먹고 그 때문에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은 닫혀져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말해도 듣지를 못하고 듣지 못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마치 자폐아처럼 자기 만의 세계에 갇혀서 세계와, 외부와 , 그리고 하나님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거하지만 자기 만의 신학, 자기 만의 신앙, 자기 만의 세계에 빠져 철저히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자기 의에 갇혀서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 의만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앗수르에 나라를 빼앗기고, 바벨론에 나라를 빼앗기고,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이젠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바리새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의 계속되는 신학의 주제는 하나님이 이방인들도 구원하시나? 

오직 유대인만 구원하신다. 

할례 받은 자만 구원하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하신다...


자기는 지금 1000년 가까이 이방인들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는 데도 불구하고 마음 속으로는 난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고 너희들은 심판받을 백성이다. 이 믿음이 놀랍도록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렛 출신의 예수가 갈릴리 지방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의 소문이 그치질 않고 더욱 퍼져 나가자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기도 하고 직접 찾아와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만, 율법을 지키는 자들만, 거룩한 자들만 상대할 줄 알았던 그가 죄인들과 어울리고, 장로들의 전통도 지키지 않고, 급기야 세리와 창기들, 더 나아가서 이방인들과도 어울리며 그들을 고쳐 주니까 많은 사람들은 떠나가거나 더 극단적인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이 닫혀진 이유는 그들이 붙들고자 하는 말씀만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갈릴리 땅, 또한 베들레헴에서 난다고 했는데,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온 천하의 구원자임을 이미 말씀하셨는데 그들은 잘못된 신념으로 말씀을 들을 귀를 닫아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에 의해서 이방인의 땅이라고 불리던 갈릴리 사람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닐면서 비로서 조금씩 눈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구나, 할례가 구원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구나. 이 나라 밖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오히려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 유대인들보다 예수를 더 신실하게 믿고자 하는 자들이 있구나... 마음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안목이 바뀝니다. 



그 사람들이 여전히 닫혀 있는, 귀가 닫혀서 입마져 닫아 버린 유대인을 데리고 옵니다. 

왜 그가 귀가 닫히고 입이 닫혔습니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열고 우리 마음이 열리기 원하시는데 사탄은 우리를 닫아 놓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합니다. 

집착하게 하고  전염되게 하고, 중독되게 하여 다른 것을 보지 못하게 듣지 못하게 합니다. 

악한 마귀들은 사람들을 묶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묶고, 마음을 묶습니다. 그래서 절망과 좌절로 사람과의 관계를 닫아 버리고 다른 무엇엔가 집착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자유하게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들의 삶을 하나님에게로, 이웃에게, 그리고 무한한 미래의 세계로 열게 만듭니다. 여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역사하는 교회는 항상 열려져 있습니다.


오늘 갈릴리 지역에서 만난 한 사람은 철저히 닫혀 있는 사람입니다. 귀가 닫혔다는 것은 남이 무엇을 말하는지 소통이 막혔다는 것이고 말을 못한다는 것은 자신 역시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두려운 것입니까? 

들어도 말못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러나 듣지 못하면서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시작이 듣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듣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귀가 닫혀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동시에 하나님과 대화도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그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삶을 삽니다. 

우리가 말을 못해서 기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니까 기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면 기도하지 말라고 해도 기도합니다. 그것만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을 못해서 전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아서, 혹은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전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사랑이 들려오면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철저히 닫혀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나 그의 말씀을 듣고 열린 사람이 되니까 시키지 않았는데 마을에 가서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귀먹고 말못하는 사람도 예수님을 만나 귀가 열리고 입술이 열리니까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나가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귀가 열려야 합니다. 

믿음을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말씀을 듣는데서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3.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33절) 

무리가 그 사람을 데리고 왔는데 예수님은 그를 무리에서 분리해서 따로 데리고 가십니다. 

무리도 중요합니다. 어떤 무리 속에 있느냐가 신앙의 좋은 시작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냐, 어떤 공동체에 있느냐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공동체에 있어도 신앙은 결국 나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무리가 날 구원해줄 수 없습니다. 내가 만나야 됩니다. 내 부모가 내 신앙에 유익을 줄 순 있어도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내가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은 한 셜교에서 "하나님께선 아들만 있지 손자가 없다"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 날 만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날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철저히 닫혀진 인생에 찾아오셔서 예수님은 그와 따로 시간을 갖습니다. 끊어졌던 교제를 회복하십니다. 


따로 떨어진 곳에서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4.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데시며... 

접촉하신다. 아가서 입맞춤- 하나님과의 연합. 

영이신 하나님이 육이신 인간을 만나는 것- 그것이 회심이고 중생입니다. 

그분이 날 만지십니다. 

혹자는 이것을 세례로 표현합니다. 

하늘의 물로 우리를 씻기시는 것입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5.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에바다 

열리라. 

하늘을 향하여,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탄식하시다. -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이 여기시며 

                 - 깊은 숨을 들어쉬시며, 제자들에게 깊은 숨을 쉬시며 성령을 받으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다. 


35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보십시오. ‘에바다’ 라고 주님께서 명령하자 귀가 열렸습니다. 드디어 이 사람이 듣기 시작했고, 말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인생이 그의 앞에 열려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놀라운 하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의 문을 닫고, 이웃을 향해 입을 닫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귀가 열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고, 그리고 우리의 혀가 풀려서 기도가 줄줄 나오고, 불신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도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아침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 앞에 서서 ‘에바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어져서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