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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작은 야고보 

본문 :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막 15:40)

 

 성경에는 ‘야고보’라고 하는 이름의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셋 있다.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이다. 그는 요한의 형제로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님의 3대 수제자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이다. 

  둘째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있다. 그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예수를 믿지 않다가 예수님 부활 후에 믿어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가 되었고 신약성경 야고보서를 기록하기도 했다. 

  셋째, 오늘 우리가 살펴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다. 그는 예수님의 아홉 번째 제자입니다(마10:2-4). 야고보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 중 두 사람이나 되기에 이 두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 각각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로 불렀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소개 그대로 알패오였고 어머니는 예수님을 따르던 여러 여인들 중 하나인 마리아였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무덤을 지킨 여인으로 그녀를 그리는 것을 보면 그녀는 예수의 영광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현장을 지킨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이었다. 

    

  그런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에게는 또 다른 별명이 있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로 제자들 사이에서 불리웠다. 그가 작은 야고보로 불리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학설들이 있지만 대개 세배대의 야고보와 비교해서 설명을 한다.  

  첫째는 그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보다 나이가 적었을 것이다. 

  둘째는 키가 작았을 것이다. 

  셋째는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가 예수의 수제자로 첫번째 순교자가 된 것에 비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거의 활동이 드러나지 않은 영향력이 작았을 것이다라는 이유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1. 작은 자로 불린다는 것은 알게 모르게 부정적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 컴플렉스가 될 수 있다. 

"늘 작은 형으로 불리던 시절, 동생에게 화를 낸 기억" 

 

 왜 그가 작은 야고보로서 불리웠는지 모르지만 위키페디아 사전에서 보면 그는 작은 야고보로 불리면서 제자들 가운데서 작은자, 소외된 자, 연약한 자, 연소한 자의 대표자로서 언급이 된다. 그는 주님을 충실하게 섬기는 이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본이 되었다.   

성경은 그에 대해서 이름 밖에는 어떻한 말도, 행동도 언급을 하지 않지만 우리는 다른 성경의 정보를 통하여, 또한 역사가들의 말을 통하여 그의 삶을 추적해 볼 수 있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마10:3, 막3:18, 눅6;15, 행1:13)에서 그는 12제자 중 9번째로 기록되어 있다. 

(마 10:3)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막 3:18)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눅 6:15)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셀롯이라는 시몬과

(행 1:13)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또한 초대교회의 문서들을 보면 다대오와 시몬과 함께 열성적인 열심당원 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간에 다루었지만 열심당원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항거하는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이다. 

로마에게 항거하며 로마에게 충성하는 자들을 암살하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꿈꾸는 것이 열심당원이다. 


이와 더불어 또 한가지의 당황스런 구절이 성경에 등장한다. 


(막 2:14)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는 마태의 이름이다. 그런데 레위 마태의 아버지가 누구였는가? 바로 알패오라는 것이다.  

그럼 야고보와 마태는 형제지간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어디에도 야고보와 마태가 형제였다고 기록된 곳이 없다. 


어머니 마리아를 이야기 할 때에도 야고보와 또 다른 동생 요세(혹은 요셉)은 기록하지만 마태 레위는 기록을 하고 있지 않다. 왜 그랬을까? 초대 교회의 문서를 보아도 이 둘의 관계를 명확히 설명한 문서가 없다. 

 

그래서 학자들은 마태와 야고보는 그저 아버지의 이름이 같을 뿐이라고 주장도 한다. 형제라면 열 두 제자를 소개 할 때에 야고보만 알패오의 아들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마태의 직업이 세리였기 때문에 유대 정통 가정이었던 야고보의 가정에서 마태를 인정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추측을 한다. 내논 자식이라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항상 작은 야고보 앞에 마태의 이름이 불려진다고 주장한다.  


만약 마태와 야고보가 형제지간이라면 이는 마태와 시몬이 함께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 보다 훨씬 더 기가 막힌 일이다. 

한 집안에 민족의 배반자로 불리는 세리와 극단적인 민족주의자가 함께 있는 것이고 그 둘이 또한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이다. 


야고보 입장에서 보면 제자들 사이에서도 참 나서기가 힘들 상황이다. 민족을 이야기하자니 형이 걸리고 형 편을 들자니 시몬이나 유다같은 동료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 중 가장 조용하게, 침묵을 즐기며 예수님을 따랐다고 주장되어 진다.  


유세비우스, 혹은 요세푸스라고 불리는 유명한 초대교회의 역사가는 야고보에 대해서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한때 훌륭한 애국자였다. 그러나 그는 후일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금욕적인 자기 수양에 누구보다도 힘썼던 제자였다. 열 두 제자 중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한 제자가 이 작은 야고보였다.” 

제자들이 서로 떠들고 나서고 할 때에도 야고보는 구석에서 항상 기도해서 그의 무릎이 굽어졌기 때문에 그는 낙타 무릎이라고 불려졌다." 


큰 야고보가 요한과 함께 예수의 옆을 지키면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혀달라고 청원할 때 작은 야고보는 슬며시 그 자리를 나와 무릎을 꿇고 겸손히 기도했다. 


요세푸스의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더욱 야고보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가장 예수를 닮은 제자가 바로 작은 야고보였다."

야고보는 설치기 보다는 조용했고 말하기 보다는 기도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가장 열심히 주를 따르는 제자였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는 작은 것을 택했으며 스스로 작아지는 자였고 작은 야고보로서 세상의 작고 연약하고 소외된 자들의 대표자가 되었다. 기독교 제일의 역사가는 그 야고보가 예수님을 가장 닮은 제자라고 칭송했다. 


역사에 의하면 야고보는 예수의 승천 후에 시리아에 가서 전도를 하여 시리아 교회를 세우게 된다. 나중에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전도를 하다가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쳤는데도 야고보의 목숨이 쉽게 끊어지지 않자 그들은 톱을 가지고 작은 야고보를 켰다. 후일의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야고보를 묘사할 때 그의 인생을 상징하기 위해서 톱그림을 그려 톱에 켜서 죽임을 당했던 사람이라고 묘사를 한다. 그는 처음에 예루살렘에 묻혔다가 나중에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집니다. 그러다가 A>D. 572년에 로마로 그의 유해가 옮겨집니다. 로마에 이 사람이 묻혀 있던 그 교회를 처음에는 성 빌립과 성 야고보의 교회라고 이름을 붙였다가 나중에 교회 이름을 “거룩한 사도의 교회”(The Church of the Holy Aplstle)라고 바꾸었다. 


야고보는 "지극히 작은 자"의 표상이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작은 자가 되기에 힘쓴다면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전하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극히 작은 자가 되기 위해 그는 무릎이 닳도록 기도했다. 

기도는 우리의 의지를 드러내는 간구가 아니라 우리의 의지를 꺾는 연단이다. 주를 드러내기 위해 나를 죽여나가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그는 작고 조용히 눈에 띄지 않는 제자였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제자였으며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제자, 잊혀지지 않는 제자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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