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82020  이전 다음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아둘람 굴과 엔게디 광야 (사무엘상 24장 1-7절) 


사울 : 기름부음을 받고 바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예언을 하고, 제비뽑기를 통해 왕으로 즉위

다윗 : 기름부음을 받고 잠시 사울의 곁에서 시중들고, 골리앗을 무찌름으로 군대의 장관에까지 오르지만 이후 10년 이상의 기나긴 도피 생활, 도망자 생활, 광야 생활. 


I am Something-> I am Nothing -> I am a Person of God 


지난 시간에 나누었다시피 이 광야 생활, I am Nothing의 삶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가장 고되고 힘든 연단의 시간이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에 이 시기는 내 교만이 깨어지고, 나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가장 유익한 시기입니다. 

아브라함의 기근-모세의 광야생활-예수님의 광야 생활 

-> 시험과 유혹의 장소 

  • 세상의 지혜(꾀)로 살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인가? 
  • 애굽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 가나안(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 

-> 결국 광야는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살아가는 법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아히멜렉의 성전에서 나와 다윗이 향한 곳은 가드. 마치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가듯이 다윗도 성전을 나와 가드땅으로 피합니다. 가드 땅은 자신이 물리쳤던 골리앗의 땅입니다. 

그 땅에서 다윗은 미친사람 행색을 하며 도망나와 본격적인 도피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두 장소를 지나게 되는데 하나는 아둘람 굴이요, 또 하나는 오늘 본문에서 소개된 엔게디 광야의 굴 입니다. 


굴: 사막 지대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외적인 위험으로 부터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 


아둘람 - 격리된 장소, 피난처 

이곳에서 경험된 은혜: 


1. 다윗은 아둘람에서 피상적인 하나님, 막연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됩니다. 마치 욥이 고난을 통해서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하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 아둘람은 다윗이 자원해서 들어간 동굴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들어간 어둠의 터널이었지만, 절망의 터널이었지만 그는 이 곳을 나올 때 밝은 빛을 경험하고 나옵니다. 
  •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노래 


1) 시 57편

(시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 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시 57:8-시 57:9]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 (시편 142편) 

(시 142:1)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시 142:2)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시 142:3)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시 142:4) 오른쪽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시 142:5)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시 142:6)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시 142:7)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


2. 평생의 동역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 오늘 추방자요 도망자인 다윗의 곁에 찾아온 자들은 누구입니까? 

(삼상 22:2)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 지금 자기 혼자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인데 자기와 처지가 비슷한, 아니 세상에 힘든 사람이란 힘든 사람이 다 모여서 그에게 모여듭니다. 우리는 힘이 들고 기분이 안좋으면 좀 밝은 곳, 좋은 사람을 만나서 기분전환이라고 하고 싶지요. 내 기분도 안좋은데 더 안좋은 사람 만나면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지금 다윗이 이방땅에서 미친척 하면서 쫓겨나서 가까스로 이곳에 피신했는데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환난당한 모든 자들이 이 곳에 모여든 것입니다. 
  • 그들은 장차 어떤 사람들이 됩니까? 
  • 삼하 23장에는 다윗이 자신에게 가장 귀한 나라의 장수들, 기둥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들이 누구인가? 바로 이 아둘람 굴 속에서부터 만나 동거동락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아굴람굴에서부터 같이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 다윗의 왕국의 기초가 되고 장수가 되고 기둥이 되어서 나라를 다스리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자신에게 부담만을 안기어주었던 사람들이 후에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생명을 다해 충성하는 그런 왕국의 기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두번째 장소 - 엔게디 

염소새끼의 샘, 어린 염소새끼를 먹이는 물, 은혜, 피난처의 공간. 아둘람이 단순한 피난처였다면 이곳 엔게디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라는 공간, 생명을 경험하는 공간 

외적으로는 지금 사울이 3000여명의 정예 군사와 함께 다윗을 쫓고 있는 상황이지만 

(삼상 23: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삼상 23:26)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어떤 위험이 있어도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안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생명을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은혜 안에 들어오니까 다윗은 사울을 볼 수 있는데 사울은 다윗을 보지 못합니다. 

세상에 나가면 당장 죽을 것 같은 목숨이지만 은혜 안에 들어오니까 어떤 위협도 침범칠 못합니다. 

오히려 어둠 속에 방황하는 그들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1) (삼상 24: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상상만 해도 너무 웃기면서도 추한 장면. 

광해의 한 장면 - 왕이 변을 보는데 궁녀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보고있다가 변을 보면 "전하 경하드리옵니다" 

하면서 그 변을 어의에게 가져다 주고 그것으로 왕의 건강을 체크 


그런데 지금 굴 속에서는 어떤 신하도 사울 곁에서 시중들 수 없고 그가 옷을 벗어 던지고 다윗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는지도 모르고 옷을 벗어 던지고 뒤를 보는 상황.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 - 내가 벌거벗겨지는 공간. 

광야는 바로 그런 곳입니다. 가장 연약한 자가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교육으로, 체면으로, 권력으로, 힘으로 가려왔던 자신의 은밀한 치부들이 다 공개될 수 있는 공간. 


생존을 위한 광야- 서로 잡아먹고 죽이기도 하고, 성범죄와 모든 인간의 본능이 꿈틀대는 공간. 


광야는 애굽의 궁에서 왕자로서 자랐던 모세가 일개 목동이 되어 삶의 지루함과 자기의 자존감이 완전히 상실되는 가운데 자기가 입고 기대어 왔던 모든 것이 전혀 쓸모가 없어지는 그런 공간. 

그런 공간에서 어떤 사람들은 비로서 가식 없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런 야생의 장소에서 오히려 자신의 본능대로 추한 짐승처럼 변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울이 엔게디 광야에서 신하들을 떠나 홀로 뒤를 보는 장면은 왕이라는 껍데기에 가려왔던 한 인간의 가장 연약하고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2) 다윗이 당한 유혹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본문에서 다윗은 아주 특별한 유혹을 받습니다. 자신들의 앞에서 완전히 무장해제 되어서 뒤를 보는 사울을 지켜보면서 다윗의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다 하면서 그를 죽이라고 다윗을 치근합니다. 

생각하면 얼마나 통쾌한 장면입니까? 

지금 당하는 고난을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말에 있어서 치명적인 함정은 무엇입니까? 

"네 생각에 옳은대로" -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네 마음대로..." 


골리앗을 무찔렀던 다윗에게 지금 자신 앞에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무장해제 되어있는 사울은 그야말로 죽어마땅한 어떤 왕의 권위도, 인간으로서의 조그마한 존엄성도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모습 그대로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의 다윗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삼상 24:15)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결코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어서 치리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부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추한 모습을 보이는 사울의 모습 속에 비교할 수 없고, 입에 담기에도 힘든 가장 거룩한 단어 "당신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입니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추한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경외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롬 5:7-8]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좋은 사람, 훌륭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사람들은 그리 존경하거나 예우를 갖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물며 죄인, 추한 자를 두고 그를 우러러 보는 것은 하나님의 주신 마음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시선 - 그리스도의 완전한 분량. 하나님의 완전한 자녀 -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모습 

우리에게 보여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먼지 한톨 보다도 짧은 시간의 모습. 믿는 자들은 모두 온전한 모습으로 영원을 살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그 짧은 순간의 않좋은 모습을 보고 실망하고 판단하고 미워하고 무시하고 경멸하고....


다윗은 지금 자신 앞에서 엉덩이를 까놓고 변을 보는 사울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를 보게 됩니다. 


(삼상 24:13)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다윗은 악한 방법을 통하여 선을 이루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한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때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된다고 말하지만 악은 악인에게서 나는 것입니다. 선인에게서 악한 행동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다윗을 보면서 사울은 울며 말합니다.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어찌보면 사울의 마지막 성령의 임재가 이 때 이루어 집니다. 

성령의 예언들이 사울의 입술을 통해서 펼쳐 집니다. 


비록 사울은 이후에도 또 다시 다윗을 치려고 달려듭니다. 그러다가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자결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신 것입니다. 


24장의 마지막 구절은 엔게디 광야의 굴 속에서의 두 사람의 갈림길을 보여 줍니다. 

(삼상 24:22)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사울은 기름부은 자였지만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을 잃어버리고 결국 자기만의 처소, 자기길,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윗은 기름부은 자로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재판관이 되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사울의 손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하며 요새로 돌아갑니다. 

요새는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견고한 성입니다. 그의 신앙과 삶과 환경을 더욱 강하게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을 엔게디 광야로 인도한 것은 삶의 위기, 고난, 위험이었습니다. 다윗은 그저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광야로, 굴로 피합니다. 

그리고 그 굴 속에서 다윗은 그가 그토록 갈구 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맛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일은 드뭅니다. 

보통 하나님을 향한 출발은 다윗 처럼 피부에 와 닿는 삶의 문제들을 통해서입니다. 

엉망이 되어 버린 삶, 말 안듣는 자녀, 까다로운 배우자, 해결되지 않는 여러가지 삶의 문제들...

언제나 우리는 우리 삶의 엔게디 광야에서 바둥거리면서 출발합니다. 

그렇지만 그 삶의 굴 속에서, 점점 더 자신의 추악함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어느덧 하나님의 광야에서 시험과 유혹을 통과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울과 다윗은 둘 가 광야에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사울은 오로지 다윗을 잡아 죽일 생각만 하다가 자신의 모든 치부를 드러내는 왕이 됩니다. 왕같지 않은 왕, 가장 부끄러운 인간이 됩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곳 광야에서 하나님께 달려가서 피하고 그 굴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경이로움에 눈을 뜨며 그 말씀을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 찬양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갑니다. 


광야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위험한 곳이요, 우리의 모든 가면이 벗겨지는 곳이요, 때로는 우리의 치부가 드러나는 곳이요, 어떤 이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