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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 5:7-9


(아 5:7)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1장에서 술람미 여인이 신랑의 거처를 묻자 사람들은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이라"고 말했다. 

주님을 따르는 또다른 신앙인들의 길을 따라 (양떼들의 발자취) 올바른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3장에서 또다시 신랑을 찾아 헤멜 때 신부는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을 만나서 묻기"(3:3)를 주저하지 않는다. 

성안의 파수꾼, 즉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따라가 신앙의 길을 묻는 것이다. 

주님의 부재의 순간에 신앙의 동료들이나 주의 말씀을 가리키는 자들은 우리의 길을 찾도록 인도한다.

그런데 때로 그들마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말이 내 영혼을 상하게 하고 오히려 나의 죄를 드러냄으로 더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고난을 위로하러 왔지만 오히려 욥의 마음을 쳐서 상하게 했고, 다윗은 사울의 옷 자락을 가져 감으로서 그의 죄를 드러내게 하였다. (옷자락은 죄를 가리우는 것이다. 창 3장의 아담, 창 9장의 노아, 창 37장, 39장의 요셉의 사건을 기억하라)  

"성을 지키는 자들에 의하여 상처 입은" 자신의 모습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고통을 줄 수가 있다. 그런데 때로 주님은 그러한 고통을 맞이하게 하신다. 나를 덮고 있는 자기 의를 벗기기 위함이다. 나 중심적인 신앙을 벗기기 위함이다. 


(아 5:8)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내 영혼에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을 때에, 영혼의 밤이 찾아 왔을 때에, 술람미 여인이 행한 일은 그가 주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사랑함으로 더욱 아픔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예루살렘 여인들을 찾아가서 부탁하는 장면은 언뜻 이해가지 않는 장면이다. 

그들은 신랑의 주위를 맴돌고 있지만 정작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었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 이었으며, 자신을 힘들게 한 자들이 아닌가? 

보통 내가 아플 때에, 고난 당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숨긴다. 더군다나 나를 힘들게 한 자 앞에서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을 주의 부재의 순간, 자신의 허물을 가장 잘 아는 자에게조차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위해 도울 것을 부탁한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도움을 처한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에 그들에게 자신을 숨김으로 자신의 허물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아프고 고난 받는 것은 오직 주를 사랑함임을, 자신은 아픔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 분만을 바라고 있음을 고백하고 선포한다. 


(아 5:9)여자들 가운데에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


술람미 여인의 고백을 들은 예루살렘 여인들은 그겋게 많은 재앙 가운데에서 어떻게 그렇게 강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의아해 한다. "도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그토록 사랑하는가?"하고 질문하는 것이다. 


도대체 그가 누구기에 그토록 그를 사랑하는가? 

누군가에게 도대체 그가 누구이기에 주님을 그토록 사랑하는가?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토록 주님을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그저 "내가 누구이길래 나같은 것을 사랑하시나요?"하며 그 분의 사랑에 감격한 적은 있어도 한 번도 그 분이 누구이길래 내가 그 분을 그토록 사랑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 본적은 없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도전을 준 적도 없다. 

내가 그 분의 살과 피를 마실 뿐만 아니라 그 분 또한 내 삶의 살과 피를 원하신다는 것, 

그 분만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도 그 분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오직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나이지만 그 은혜를 받은 나 역시 은혜 가운데 부어주시는 사랑 안에서 

진실한, 온전한, 순전한 사랑을 그 분께 드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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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