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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신앙의 안전거리 (눅 22:54-57)

[눅 22:54-눅 22:57] 예수를 잡아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들어갈새 베드로가 멀찍이 따라가니라

사람들이 뜰 가운데 불을 피우고 함께 앉았는지라 베드로도 그 가운데 앉았더니

한 여종이 베드로의 불빛을 향하여 앉은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느니라 하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이 여자여 내가 그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왜 가장 앞장서던 베드로가 이제 멀찍이 따르는 제자가 되었을까?

가장 열심내던 제자가 이젠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되었을까?

예수의 십자가를 공언한 후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백했던 베드로가 예수가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단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예수께 항변했다? "rebuke"라고 번역된 이 구절은 예수를 도리어 꾸짖었다. 혼내었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신다고 하니까 안된다고 하면서 예수를 꾸짖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꾸몄던 계획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던 베드로가 사탄의 계략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예수를 꾸짖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마 16:23)

 

그리고 이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

정말, 예수가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에서 병사들에 의해 집히시어 심문을 받게 되자 가장 가까웠던 제자에서 이젠 멀찍이 따르는 제자가 된 것입니다.

 

자, 예수님이 잡혀 갔다. 자기 눈앞에서 함께 죽고자 했던 예수가 끌려갔다. 너무도 힘이 없고, 너무도 무력하게 예수가 세상에 끌려갔다.

예수님은 자기가 말씀한 대로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데 자기 생각에 갇혀 예수를 따르던 베드로는 멀어져간 주님을 보며 앞장 서던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됩니다.

 

가장 앞장 서던 자가 이젠 멀찍이 예수를 따르는 자가 됩니다. 메시지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Peter followed him at a safe distance

<베드로가 안정거리를 두고 예수를 따라갔더라>

앞장 서던 베드로가 적당히 신자가 됩니다. 안정장치를 두고 한 발은 예수를 따르고 다른 발은 이제 도망하여 세상으로부터도 욕먹지 않고, 고난 받지 않고, 언제나 도망갈 방도를 마련해 두고 예수를 쫓은 것입니다.

그래도 뒤돌아서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 본 바가 있고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죠.

 

이 장면을 요한복음에서는 더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요 18:15-요 18:18]

(요 18: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요 18: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요 18: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요 18: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요한은 뜰 안까지 가서 예수를 보는데 베드로는 처음에 문밖에 서서 들어오지 않습니다. 요한이 블러서 그를 데리고 오는데도 가까이 오지 않고 멀찍이 예수를 바라보다가 이제 아랫사람들과 함께 둘러 서서 불을 쬡니다.

이것은 무슨 장면입니까?

자기의 믿음으로 거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아랫사람들의 여론이 어떠한지, 언제나 예수의 가장 가까이서 따르던 베드로가 이제 멀찍이 서서 사람들의 여론을 살피고, 문밖에서, 바깥뜰에서, 사람들 옆에서 예수와 점점 멀어지며 안전거리를 유지하다가 "너도 예수편이지" 하니까 부인하고 저주하며 예수를 죽이려는 무리에 가담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세번씩 부인하는 것! 이것이 멀찍이 따르는 베드로의 결말입니다.

 

여러분의 안전장치는 무엇입니까?

Return Policy: 한국에서는 반품하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하고 절차가 복잡한데 여기와서 제일 놀라고 좋은 것이 영수증만 있으면 몇개월 지나도 반품....

결혼도, 삶도....결혼 안하고 동거하는 문화... 왜? 피할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조롱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변질되고 교회가 타락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여러분도 사람들의 여론을 들으면서 안전장치를 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믿긴 믿되 적당히 믿자. 거리를 두자. 안전장치를 두자.....그렇게 점점 베드로처럼 멀찍이서 예수를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은 가까이 하는 자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열면 그 안에 들어와 함께 거하십니다.

 

은혜는 이미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고 이미 예수께서 기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눅 22:31-눅 22:32]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세번씩이나 예수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현장에서도 도망쳤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를 세번씩이나 물으시면서 그 안의 상처와 부끄러움을 치유하시고 다시금 그에게 사명을 주시고 양들을 맡기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수십번 수천번 주님을 배반하고 여전히 안전장치를 하면서 주님을 멀리하는데 주님은 그런 나를 위해 기도하셨고, 그런 나에게 네가 날 사랑하냐 하시면서 식었던 사랑을 일깨워 주시고, 손을 잡아 일으키시면서 주님의 친구로, 자녀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하시는 로고스 성도님들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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