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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원치 않는 것을 따름 (요 21:18-19) 


지난 주 설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모세- 그 이름의 의미, 물에서부터 건저낸 자. 그의 인생의 대 사건- 홍해를 건넘과 출애굽

구원받은 자의 삶. - 포기의 삶(애굽의 왕자로서의 삶. 애굽의 영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광된 삶. 

다 포기한 줄 알았는데 그 안에 숨겨져 있던 하나님께 대한 원망, 불신, 의심의 삶. 자기 의의 삶, 자기 열심의 삶

좋은 뜻을 가졌지만 그 방법은 자기 방법, 자기 열심. 

네 신을 벗어라. 불타는 떨기나무... 마르고 가시많은 나무- 모세의 모습. 앙상한 가지, 가시 투성이, 소진된 삶. 

이제 내가 너를 쓰리라. 나를 의지하라. 나의 방법대로 살아라... 네 권리를 나에게 맡기라. 

 

"네 신을 벗어라"의 신약적인 표현.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 베드로를 부르시는 장면, 진정한 사명을 주시는 장면. 

오늘 나눌 말씀입니다. 

무엇이라 말씀하시냐면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주목되는 말씀은 19절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서 의문을 자아내게 합니다. 


하나는 이 말씀은 주님이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나를 따르라 하면 따르겠는데 이제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시려고 하는데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늘로 따라 올라가라는 말인지, 아니면 내가 가서도 나의 삶을 본받으라고 하시는 말씀인지 분명치가 않습니다. 

또 하나는 베드로에게 하늘나라로 따라 오라는 소리가 아닌 이상 이 땅에서 주님의 길을 따르라는 말씀으로 이해한다면 이전에 따르던 모습과 어떻게 다르게 따르라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이 말씀은 주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제자 삼으실 때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 4:18-20)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하루 하루 가족을 위해, 자신을 위해 고단한 어부의 사는 삶을 사는 베드로에게 예수꼐서는 이제 물고기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라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 뒤로 3년 동안 베드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주를 따랐습니다. 

그는 제자 중의 제자.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렇게 3년동안 예수님을 죽으나 사나 따라 다녔는데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또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럼 그 동안 따른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21장 18장 19절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또 우리가 보아야 할 구절은 요한복음 13장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요 13:36-38)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주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치시면서 이제 잠시 너희와 함께 있을 테지만 조금 지나면 너희를 떠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떠난다는 소리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지금은 네가 따라올 수 없지만 나중에는 따라 올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말씀입니까? 

네가 나를 따라온다고 하지만 아직은 온전히 따라 오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날 위해 죽는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 목숨을 위해서 날 배반할 것이다. 

-> 이 때까지의 베드로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누구보다 열심히 주를 따르고, 앞장섰지만 그 열심은 누구의 열심입니까? 자기의 열심입니다. 

무엇을 위한 열심입니까? 자기의 의를 위한 열심입니다. 창찬받고, 인정받고, 높아지기 위한 열심입니다. 

그는 자기가 인정받고 높아지는 한에서 열심을 냈지만 정작 자기를 인정할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자기 한계 안에서의 신앙입니다. 자기 배를 위한 신앙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신앙을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닌 신앙"이라 말씀합니다. 

"스스로 띠 띠다"는 말은 "스스로 옷입다"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로 옷입고, 그리스도가 주인된 삶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옷입고 포장하고 드러내기 위한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베드로 입장에서는 얼마나 억울한 말이겠습니까? 

왜? 그는 십자가 상에서의 주님을 제외하곤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주님이 하라는 대로 살았습니다.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에게 "네가 스스로 옷입고 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실 것이라는 말에 항변하고 거절했던 베드로가 이 말에는 감히 항변하지 못합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 자기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님의 뜻에 어긋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물 위로 걸어 주님께 가고자 했던 열심이 주변을 바라보다 빠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고백했던 베드로가 십자가 지시는 주님을 만류하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하시면서 책망받는 자가 됩니다. 

주님을 붖잡으려는 마고의 귀를 베려다가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하면서 힘으로 해결하려는 베드로의 태도를 꾸짖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는 말이 하루 밤 사이에 돌변합니다. 


  •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요 21:18)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반대로 늙어서는 어떻습니까? 

남이 옷 입히고 남이 인도하는 데로 간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가리키는 남은 누구입니까? 


물론 나 중심적인 삶에서 이제 신앙이 성숙되면 타인 중심적인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용서하는 삶을 살게 되고, 베푸는 삶을 살게 되고, 보살피는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  

그러나 이 때으이 남은 결국 주님이 승천하시면 오실 성령님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내 열심, 내 행위대로 주님을 따랐지만 이제 성령이 오시면 성령으로 옷입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데로 이끌려 간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도 성령이 오시기 전, 제자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데로 해석하고 싶은데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몇번씩이나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시는데도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니까 전혀 생각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헤롯왕까지도 삼일 후 부활하신 다는 말을 기억하는데 제자들은 생각조차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원하는 데로 신앙생활 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너 성령이 오시면 비로소 주님이 말씀하신 바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기억하며 그 말씀에 인도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비로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인류의 구원을 맡기셨는데 그러면서 그들이 승리하도록 허락한 두가지는 단 두가지 입니다. 

1. 서로사랑해라. 한 마음으로 화합하라. 

2. 그리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그 외에 내가 위대한 지도자를 보내주겠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단지 교회 안에 머물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 성령이 임하자 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자기 재산을 헌납하여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유물 상통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사람들이 일어나면 교회에 모이고 거기서 밥먹고 예배하고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모이는데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흩으사 믿는 자들이 하나 둘 씩 흩어져 전 세계에 퍼지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흩어지는 곳마다 또 다시 교회가 세워지고 또 다른 제자들이 생겨나고 믿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모이는 부흥이 아니라 흩어지는 부흥으로 펼쳐졌습니다. 


자기 의, 자기 행위, 자기 열심으로 신앙생활 하는 자는 결국 자기 한계 안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무한 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결국은 자기가 제한한 세계 안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난 여기까지만 믿어야지. 자기가 기도의 시간, 예배의 참여 다 제한하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의지하는 자는 자신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인도하는 가운데 자기 인생을 내어놓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시면서 하시는 것 

이름을 바꾼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사래를 사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사울을 바울로

베드로를 시몬으로 바꾸신다. 

무슨 소리인가? 

이젠 네 이름으로 살지 말고 내가 인도하는 삶으로 살아라. 

내가 준 사명 안에서 살아라. 


기도는 무엇인가? 

내 욕망의 표출로서 요구하고 청구하는 것이 기도가 아니라 

그 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내 마음을 여는 것이다. 

두 팔을 벌려 성령이 내게 옷입히고 그 분이 지시하는 곳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 기도다. 

내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땀 방울이 핏방울이 되기 까지 싸우면서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실컸 부르짖고 울었다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께 부르짖듯이 그 분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 분의 뜻을 구하기 위해서 말씀을 보고 성경을 쓰고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이 들렸으면 흔들리지 않고 그 말씀 안에 거하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단, 내가 깨달은 말씀이 정말로 성령께서 주신 말씀인지 성경과 교회의 전통 안에서 그것을 점검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신학이 필요하고 교회가 필요하고 믿음의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다. 

성령은 질서 안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근본적인 신앙을 돌아보아야 한다. 

난 예수를 사랑하는가? 

난 예수를 신뢰하는가? 

그 분이 무슨 말씀을 해도 난 그 분의 뜻에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어린아이의 믿음- 자기의 옷을 입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장년의 믿음 - 그리스도로 옷입고 원치 않는 길이라 할지라도 


십자가는 맡겨진 길을 가는 것

청지기는 맡은 것을 감당하는 것. 

십자가는 자원하는 것이 아니다. 

맡긴 것을 감당하는 것이다. 

십자가 지기를 자원하라? 

사람많은 큰 교회도 늘 봉사자가 부족하다고 한탄...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인정받고 싶은 일, 자기가 호고 싶은 일... 

그런데 십자가는 원치 않는 길을 가는 것이다. 그 길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네 팔을 벌리리니...(이제 내 한계에서 벗어나 비로서 주님께 내 맘을 여는 것이다" 

누구든지 내 음성 듣고 문을 열면...내가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살 것이라는 말씀의 완성이다. 


반대로 어린아이의 믿음은 팔장을 끼는 것이다. 

두 팔을 잠그고 오직 "나, 나, 나"만 생각하고 나만 나타내고 밖으로의 음성에 문을 닫는 것이다. 


주님은 그러한 베드로에게 "이제 정말 나를 따르겠니?"하고 말씀하신다. 

모세에게 네 신을 벗으라 했던 주님은 오늘 "정말 나를 따르겠니?"하고 물으신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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