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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33편 1-3

(시 133: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선하고 아름다운고! 

한절 한절 흘겨넘기지 말고 잘 생각하면서 우리는 연합과 동거의 선함에 대해 묵상해 볼 수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라고 해서 남자들끼리 연합하여 동거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여기서 형제라는 말은 형제 자매를 모두 합한 말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라기 보다는 동포, 가족의 공동체 개념이 큽니다. 

성경에, 더군다나 구약의 시대에 형제 자매라는 표현은 쓰질 않았습니다. 

그냥 형제라는 표현에 다 담겨 있는 말이지요. 


그렇다 해도 형제 자매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정말 선하고 아름답습니까? 

가끔 형제자매를 만나 지난 회포를 풀며 사는 것은 즐거움일 수 있지만 동거한다는 것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잠깐 만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쭉 함께 사는 것이지요. 


요즘은 부모가 자녀와 함께 사는 것도 힘겨워하는 세상입니다. 

처음엔 자녀들이 부모 모시며 사는 것을 원치 않는 듯 하더니 요즘은 부모들도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로 만나 살아도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 가는 시대입니다. 

하물며 형제 자매 혹은 동족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 

선하고 아름답기는 커녕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혼자 살면 살았지 죽기보다 힘든 것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흘겨 넘기지 말고 나 자신의 삶을 적용해서 말씀을 읽으면 이 첫구절 부터가 어려운 구절입니다. 

우리의 본성, 더군다나 2014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아름다고 선하다고 하는 말은 너무 어려운 소리입니다. 


133편의 제목을 보면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지었습니다. 

다윗의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는 것에는 이스라엘 역사상 세 가지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처음에 다윗이 이 시를 지을 때에는 어떤 마음에서 이 시를 썼는가하면 광야에서 성막을 중심으로 함께 예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하나님께서 절기마다 적어도 일년에 세차례씩 지정된 장소에서 예배드리길 원했지만 더 이상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 않고 산당 중심으로 흩어진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다윗 때에 완전한 통일왕국을 이루고 이제 시온성, 곧 다윗 성전에 하나님의 법궤를 들여와 온 이스라엘 민족이 모여 비로소 연합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광야 생활 이후로 이제 흩어졌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로 모여 예배드릴 때마다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며 하나로 연합되어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쁨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이 시편이 모아져서 문서로 기록되었던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성전을 새롭게 지으면서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그들의 실패를 회개하고 하나님에 대한 민족적인 신앙을 잘 전수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 서로 분열하고 우상숭배하여 흩어지고 식민지를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성전 중심으로 모여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우면서 드렸던 찬양이 바로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3. 이후 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는 지금까지 일년에 많게는 세차례, 혹은 한 차례 각기 자기일에 충실하다가 유월절이라든지 이스라엘의 절기(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예루살렘 순례를 하며 드렸던 찬양이 바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잃어버렸던 연합을 다시 찾게 된 기쁨, 흩어졌던 이산 가족들이 다시 상봉하고 하는 것처럼 기쁨과 감격으로 드렸던 노래가 바로 시편 133편이라는 것이지요.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처럼 연합하기 힘든 민족도 없습니다. 

 야곱의 12지파에서 시작된 민족이지만 애굽에서 400년동안 종살이 하면서 그들의 혈통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출애굽할 때에 그들은 허다한 잡족과 함께 같이 나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면서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과 어울려 결혼도 하고 섞여 살았습니다. 

 다윗 왕국 이후에는 또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며 사마리아 땅에는 완전히 이방 민족들로 채워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으로 쫓겨나기 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함께 연합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도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연합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연합하고 동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합하여 동거함이라는 말은 "live together in unity"입니다. 

 서로 연합하여 같이 사는 것입니다. 연합이 없는 동거는 오히려 불행합니다. 

 형제들이 서로 연합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서로 떼어 놓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롯을 떼어 놓고 이삭을 이스마엘에게서 떼어 놓고 야곱을 에서에게서 뗴어 놓고 요셉을 형들에게서 떼어 놓기도 합니다. 연합하지 못하고 동거하는 것은 오히려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듯이 서로 범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2-3절은 연합하고 동거하기 위한 신앙적인 근거들을 제시합니다. 

 2절은 기름에 관한 내용이고 3절은 이슬에 관한 내용입니다. 

(시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보배로운 기름은 곧 제사장에게 내린 구별됨의 표시였습니다. 

(시 133:3)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헐몬의 이슬이라는 것은 가나안 땅 저 북쪽에 가장 높은 산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에 재료로 사용했던 백향목이 나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꼭대기는 만년설이고, 여기서 녹은 물들이 요단강을 이루며 흘러내립니다. 곧 헐몬에서 시작된 생명의 젖줄에서 이슬이 생기고 이 이슬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의 생명체들이 살아갑니다.


이 기름과 이슬은 모두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은혜 입니다. 

분열되어 있는 우리의 본성이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가? 오직 성령을 받은자, 성령의 역사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름은 또한 상처를 치료해줍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우리를 구별시켜서 거룩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아픈 사람의 상처를 낫게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또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병자들을 치료케 할 때에, 교회의 장로들이 아픈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상처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연합된 교회는 성도들의 상처를 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기름은 향기를 냅니다.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고 함께 동거하며 나갈 때에 곧 세상에 향을 발한다는 것입니다. 


연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 포기 입니다." 덩어리는 섞어지기 힙듭니다. 

그러나 가루는 무엇을 넣어도 잘 섞입니다. 

이스라엘 예배의 방법중에 이 가루로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나를 온전히 부수고, 깨어져서 가루처럼 섞여지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왜 분열될 수 밖에 없었는가? 

그들의 소유가 많아 분쟁하였다라고 말한다. 

지금도 소유가 많은 형제들은 동거할 수 없다. 소유로 인해 분열한다. 

내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섞여지지 않는다. 나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만이 섞여지는 것이다. 


동거를 위해선 또한 인내하고 용납해야 한다. 

나와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나에게 맞춰 하는 것은 곧 연합할 수 없게 만드는 생각이다. 

동거는 받아들일 때에 가능한 것이고 받아들이기 위해선 인내해야 한다.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유엔에 우리가 남과 북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가슴아픈 일입니다.하고 연설했다고 합니다. 세계에 있어서 이젠 우리나라 만이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말입니다 .


유일한 분단국가 대한민국- 참 가슴아픈일입니다. 

그런데 남과 북의 분열만 분열이 아닙니다. 

서울과 지방의 분열, 좌우의 극심한 이념 대결, 세대간의 충돌, 빈부의 대결....

이보다 더 혼란스런 분열이 없습니다.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교육도 이 분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초반에 이스라엘이 얼마나 연합하기 힘든 나라인지 설명했지요. 그들이 연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였습니다. 


미국이 왜 강대국입니까? 

서로 다른 민족들, 서로 다른 정치를 하는 주들이 모여서 연합할 수 있기에 세계를 이끈 강대국이 된 것입니다. 

이 연합을 가능하게 한 것도 역시 정치보다는 신앙입니다. 

여기서도 민주당 공화당은 우리나라 못지 않게 서로 물고 뜯고 싸우지만 그래도 누가 대통령이 되던 성경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서약하며 진자는 동료로서 그를 돕는 것입니다. 


가자 부러운 문화...

토론 문화, 공과 사를 구분하는 문화... 

격렬하게 토론하지만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합의한다. 결과를 낸다. 승복하던지 타협한다. 


그런데 우린 타협이 안된다. 

100분토론 하면 좋게 끝나는 적이 없다. 끝나고 악수하는 것도 보기 힘들다. 

이긴자가 한없이 누르려고 하고 패자는 도우려 하지 않는다. 


네가 뭘 알어, 넌 틀렸어...하는 태도에서는 연합과 동거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끊임없이 51대 49의 나라로 분열되어 나가는 것이다. 


형제자매, 공동체로 함께 산다는 것은 죽기보다 힘든 일이다. 그런데 왜 성경은 아름답다 했는가? 그것은 공동체를 그리고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하는 자들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치 습지가 땅의 공해와 더러운 먼지를 흡수해 정화시켜주듯이,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공동체가 아름답다고 한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원수를 사랑하도록 부른 것이 제자이다. 그리고 그 제자들이 모인 곳이 곧 교회이다. 

내게 편한 사람, 내게 잘해 주는 사람과 함께 누가 못 지내겠는가? 말씀을 이루는 것은 우리 안에 원수를 품을 때 가능하다.

연합과 동거의 마지막 열매는 무엇인가? 

(시 133:3)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다름아닌 영생이다.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다. 

연합하여 동거를 이룬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천국이다. 

그것의 이 땅에서의 모델이 바로 교회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연합하고 동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신령한 기름부으심의 복을 이슬처럼 골고루 내려 주신다. 영생의 복을 성도들에게 명령하셨다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한 피받아 한 몸된 우리 성도들이 거룩한 교회로 연합하고 동거하여 거룩한 축복영생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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