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2020  이전 다음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시편 133편 (연합과 동거, 영생으로의 초대) 


(시 133: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감사와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계속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은 117편(2절) 다음으로 134편과 더불어 가장 짧은 시편인 133편의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나눕니다. 


시편은 말 그대로 찬양이요 시이기 때문에 음미하면 할수록 그 의미를 새기기에 좋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아름다운 구절로 시작하지만 흘려 넘기시지 말고 그 말의 의미를 새기면 결코 흘려버릴 수 없는 명제입니다. 

Queer 문학- 에서 이 구절을 나타내면서 다윗이 동성연애를 옹호했고 요나단과의 관계를 보면 실재 동성연애자라고 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하는데 여기서 형제라는 말은 형제 자매를 모두 합한 말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라기 보다는 동포, 가족의 공동체 개념이 큽니다. 

성경에, 더군다나 구약의 시대에 자매라는 표현은 쓰질 않았습니다. 그냥 형제라는 표현에 다 담겨 있는 말이지요. 영문성경으로도 형제라는 말을 "God's people", 즉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형제 자매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정말 선하고 아름답습니까? 


가끔 형제자매를 만나 지난 회포를 풀며 사는 것은 즐거움일 수 있지만 동거한다는 것은, 함께 거하는 것, 즉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잠깐 만나서 사는 것이 아니라 쭉 함께 사는 것이지요. 

[요 8:31-32]

(요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신앙 안에서 거한다는 것은 동행한다, 일회적이 아니라 죽 함께 거니는 것을 말합니다. 


  • <문제제기> 하나님의 사람들, 믿는 자들이 함께, 죽 동행하는 것, 함께 사는 것, 정말 선하고 아름답습니까? 


요즘은 부모가 자녀와 함께 사는 것도 힘겨워하는 세상입니다. 

처음엔 자녀들이 부모 모시며 사는 것을 원치 않는 듯 하더니 요즘은 부모들도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로 만나 살아도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 가는 시대입니다. 

하물며 가족도 아닌 믿는 자들이, 혹은 혹은 동족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 

선하고 아름답기는 커녕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혼자 살면 살았지 죽기보다 힘든 것이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흘겨 넘기지 말고 "이 말씀대로 살아야겠다" 생각하면서 나 자신의 삶을 적용해서 말씀을 읽으면 이 첫구절 부터가 어려운 구절입니다. 

우리의 본성, 더군다나 2018년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이 아름다고 선하다고 하는 말은 너무 어려운 소리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그 당시는 지금과 달랐나? 


133편의 제목을 보면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지었습니다. 

특별히 150편의 시편 중에서 120-134편은 따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이 <성전에 올라가는 시>라는 것에는 이스라엘 역사상 세 가지 정도의 배경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처음에 다윗이 이 시를 지을 때에는 어떤 마음에서 이 시를 썼는가하면 광야에서 성막을 중심으로 함께 예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하나님께서 절기마다 적어도 일년에 세차례씩 지정된 장소에서 예배드리길 원했지만 더 이상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이지 않고 산당 중심으로 흩어진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다윗 때에 완전한 통일왕국을 이루고 이제 시온성, 곧 다윗 성전에 하나님의 법궤를 들여와 온 이스라엘 민족이 모여 비로소 연합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광야 생활 이후로 이제 흩어졌던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로 모여 예배드릴 때마다 이 찬양을 함께 부르며 하나로 연합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쁨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이 시편이 모아져서 문서로 기록되었던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성전을 새롭게 지으면서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그들의 실패를 회개하고 하나님에 대한 민족적인 신앙을 잘 전수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 서로 분열하고 우상숭배하여 흩어지고 식민지를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성전 중심으로 모여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우면서 드렸던 찬양이 바로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3. 이후 이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는 지금까지 일년에 많게는 세차례, 혹은 한 차례 각기 자기일에 충실하다가 유월절이라든지 이스라엘의 절기(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예루살렘 순례를 하며 드렸던 찬양이 바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왜 올라가냐고 하면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지역이 주변 지역 중에서 가장 고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봉헌 된 이후에는 그 고지대에서도 열다섯 개의 층계를 올라 성전에 들어가야만 했기에.. (예전 제 모교인 서울 신학대학을 오르는 길...) 


그러니까 잃어버렸던 연합을 다시 찾게 된 기쁨, 흩어졌던 이산 가족들이 다시 상봉하고 하는 것처럼 기쁨과 감격으로 드렸던 노래가 바로 시편 133편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흩어졌던 민족이 다시금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느꼈던 감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들의 면면을 보면 이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 처럼 연합하기 힘든 민족도 없습니다. 

 이스라엘민족은 야곱의 12자녀에서 시작된 민족이지만, 그 열두명은 자그만치 네 명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각기 배 다른 형제들입니다. 요셉의 모습을 보면 알듯, 그 형제들간의 관계도 복잡하고 친하지 않은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애굽에서 400년동안 종살이 하면서 그들의 혈통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더군다나 출애굽할 때에 그들은 허다한 잡족과 함께 같이 나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해 살면서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과 어울려 결혼도 하고 섞여 살았습니다. 

 다윗 왕국 이후에는 또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며 사마리아 땅에는 완전히 이방 민족들로 채워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방으로 쫓겨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러한 복잡한 혈통과 역사가 있는 민족이 함께 연합한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볼 때에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도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연합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연합하고 동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연합하여 동거함이라는 말은 "live together in unity"입니다. 

 서로 연합하여 같이 사는 것입니다. 연합이 없는 동거는 오히려 불행합니다. 

 형제들이 서로 연합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서로 떼어 놓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 롯을 떼어 놓고 이삭을 이스마엘에게서 떼어 놓고 야곱을 에서에게서 뗴어 놓고 요셉을 형들에게서 떼어 놓기도 합니다. 연합하지 못하고 동거하는 것은 오히려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듯이 서로 범죄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 2-3절은 연합하고 동거하기 위한 신앙적인 근거들을 제시합니다. 

 2절은 기름에 관한 내용이고 3절은 이슬에 관한 내용입니다. 또한 2절은 사람에 대한 내용이고 3절은 장소에 관한 내용입니다. 


(시 133:2)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보배로운 기름은 곧 제사장에게 내린 구별됨의 표시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 오를 때에 반드시 이 기름부음을 통해 자신을 거룩히 하고 성전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시 133:3)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헐몬의 이슬이라는 것은 가나안 땅 저 북쪽에 가장 높은 산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에 재료로 사용했던 백향목이 나는  가장 높은 산입니다. 꼭대기는 만년설이고, 여기서 녹은 물들이 요단강을 이루며 흘러내립니다. 곧 헐몬에서 시작된 생명의 젖줄에서 이슬이 생기고 이 이슬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의 생명체들이 살아갑니다.


이 기름과 이슬은 모두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은혜 입니다. 

분열되어 있는 우리의 본성이 어떻게 연합할 수 있는가? 오직 성령의 역사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기름은 또한 상처를 치료해줍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우리를 구별시켜서 거룩하게 하는 것이고 또한 아픈 사람의 상처를 낫게 합니다. 

  •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 또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병자들을 치료케 할 때에, 
  • 교회의 장로들이 아픈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상처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연합된 교회는 성도들의 상처를 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치료와 회복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기름은 향기를 냅니다.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고 함께 동거하며 나갈 때에 곧 세상에 향을 발한다는 것입니다. 

[요 13:34-35]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성도가 서로 사랑할 때에 예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연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기 포기 입니다." 덩어리는 섞어지기 힙듭니다. 

그러나 가루는 무엇을 넣어도 잘 섞입니다. 

이스라엘 예배의 방법중에 이 가루로 드리는 예배가 있습니다. 

나를 온전히 부수고, 깨어져서 가루처럼 섞여지라는 것입니다. 

성전의 재료는 조각목이 사용되었지만 이 조각목은 쪼개지고 가다듬어 금테를 입힌 다음에 성전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왜 분열될 수 밖에 없었는가? 

그들의 소유가 많아 분쟁하였다라고 말한다. 

지금도 소유가 많은 형제들은 동거할 수 없다. 소유로 인해 분열합니다.  

여호수아에 보면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 자기들의 가축이 많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자기 기득권을 자랑하고 자기를 나타내려 하면 연합하고 동거할 수 없습니다. 


동거를 위해선 또한 인내하고 용납해야 한다. 

나와 다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것을 견디기 위해 인내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나에게 맞춰 하는 것은 곧 연합할 수 없게 만드는 생각이다. 

동거는 받아들일 때에 가능한 것이고 받아들이기 위해선 인내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얼마나 연합하기 힘든 나라인지 설명했지요. 그들이 연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역사 안에서 였습니다. 


미국이 왜 강대국입니까? 

서로 다른 민족들, 서로 다른 정치를 하는 주들이 모여서 연합할 수 있기에 세계를 이끈 강대국이 된 것입니다. 

이 연합을 가능하게 한 것도 역시 정치보다는 신앙입니다. 


  • 형제자매, 공동체로 함께 산다는 것은 죽기보다 힘든 일이다. 그런데 왜 성경은 아름답다 했는가? 그것은 공동체를 그리고 나를 힘들고 아프게 하는 자들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치 습지가 땅의 공해와 더러운 먼지를 흡수해 정화시켜주듯이,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공동체가 아름답다고 한 것이다. 

연합과 동거의 마지막 열매는 무엇인가? 

(시 133:3)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다름아닌 영생이다.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다. 

연합하여 동거를 이룬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다. 천국이다. 

그것의 이 땅에서의 모델이 바로 교회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연합하고 동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신령한 기름부으심의 복을 이슬처럼 골고루 내려 주신다. 영생의 복을 성도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성도의 연합과 동거는 하나님의 주신 복이요 영생입니다. 


군중 속의 고독! 현대인을 가장 잘 표현 하는 말. 

주위에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외로울 때 만날 사람이 없다. 


예배, 흩어졌던 몸이 다시 만나는 시간. - 기다리는가! 습관적이진 않은가! 

여러분보다 내가 더 여러분을 기다린다고, 보고싶어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 매일 같이 이름을 불러, 얼굴을 그리며 기도하기 때문에... 

그런데 나보다 더 여러분을 보고 싶어하시는 분. 바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말할 수 없는 자비와 사랑으로, 긍휼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 중복하자. 그리고 사모함으로 교회에 나아오자.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다. 영생을 약속하셨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