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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글락의 다윗 (삼상 27-30장) 


다윗은 성경에서 구약에 소개된 인물 가운데 가장 자세하고 길게 소개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 여정을 살펴보면 기나 긴 여정속에서 어떤 하나님의 뚜렷한 기적의 흔적도 없이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는 가장 인간적인 삶을 산 인물이요, 또 우리와 똑같은 실수와 잘못도 반복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 여정 가운데 27장부터 시작되는 시글락에서의 삶은 어쩌면 그의 인생 가운데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시기요, 신앙의 눈으로 보나, 도덕적인, 인간적인 면으로 보나 정말 납득이 잘 가지 않는 시기입니다. 

홍해를 건너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 사흘 만에 물이 없어서 모세와 그들을 이끌어낸 하나님을 원망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끊임없이 범죄하는 장면을 보면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우리 인생을 살펴 보면 인생은 설명하기 힘든,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입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하고 인간의 뇌를 이해하려는 과학이 발달해도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세상이요, 또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무엘상 21장에서 사울을 피해 도망하던 다윗이 골리앗의 땅 가드의 왕 아기스에게로 피신했다가 당한 수모를 기억합니다. 

사울을 피해 아얘 이스라엘 땅을 떠났던 다윗은 자신의 민족의 원수이자 자신이 죽였던 골리앗의 땅 가드 땅으로 망명을 시도하다가 신하들의 강한 반대의 소리를 듣고 수염에 침을 흘리며 미친척하고 도망쳤던 사건 (삼상 21장 13절)을 기억합니다. 

그 뒤로 그는 아둘람 굴을 거쳐 십광야, 마온 광야, 엔게디 광야, 바란 광야등 여러 광야를 떠돌아 다니며 사울의 위협으로부터 도망치면서 한 무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다윗의 삶을 살펴보았습니다. 

아둘람 굴 속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그의 광야 생활의 실상을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합니다. 

도망 중에도 다윗은 자기에게 피신해오는 400여명의 환란 당한 모든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 들과 함께 거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들은 어려운 중에서도 남의 가축이나 재산에 손을 대지 않고 오히려 선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이들 뿐만이 아닙니다. 

(삼상 22:1)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한 나라의 장관이었던 그가 도피하자 그의 가족들 까지도 사울의 보복이 두려워 그의 곁으로 모여듭니다. 

그의 아버지와 형제 하면 다윗가 그리 좋은 사이가 아닙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왔을 때에 아버지는 다윗을 소개하지도 않았고, 골리앗을 상대하러 전쟁터에 갔을 때에 그의 형들은 그에게 화를 내며 그를 멸시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형제들이 어려움을 피해 다윗에게로 몰려왔고,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당한 자들이 다 다윗에게로 몰려옵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을 가리키는 히브리(Hebrew)라는 의미가 원래 인종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중동지방의 소외된 계층, 떠돌이, 추방당한 자, 환란 당한 자, 어중이 떠중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 얼마나 큰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들 무리는 바로 교회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교회는 성도의 집합체이다. 그런데 그 성도들은 이른 바 사회적인 어중이 떠중이이다. 

광야로서의 교회의 이미지는 우리가 보통 때라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제하고 예배하는 곳이다. 


[막 2:15-17]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이 있어서 예수를 좇음이러라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성전의 모든 나무 - 조각목, 솔로몬의 시대, 백향목으로 지은 성전에도 지성소의 언약궤는 반드시 조각목 - 비뚤어지고, 가시가 많은 사막의 흔한 나무...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그리고 다윗의 무리도, 심지어 예수님 때도 함께 한 무리는 히브리 민족, 즉 사회적인 어중이 떠중이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거룩한 무리로 여기시고 바꾸시고,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곳이 교회이고 신앙생활이다. 


그렇게 어렵지만 모여서 함께 고난을 참아가며 광야생활을 하던 다윗의 무리가 다시 도피처로 삼은 땅이 또다시 골리앗의 땅, 블레셋의 가드 땅 아기스에게로 피하는 것입니다. 

21장의 수모를 생각한다면 도저히 갈 수 없는 땅에 다윗은 무리를 이끌고 가서 다시 아기스 왕 앞에 엎드립니다. 

그리고 그 아기스왕에게 청하여 허락 받은 땅이 바로 사글락입니다. 

땅만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아기스를 위해 일했다. 아기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블레셋의 적들을 물리치고 곧 이스라엘을 향한 전쟁에도 참여를 명받는다. (28장)  

일년 사 개월을 완전히 아기스의 신하가 되어 블레셋을 위해 살아간다. 

다행히 블렛셋의 신하들이 다윗을 극렬하게 반대하여 이스라엘과의 전쟁은 피하게 하신다. 


왜 어려움 중에서도 정말 소외된 사람들과 광야생활을 꾸려갔던 다윗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바로 현실의 어려움 때문이다. 

그는 대의고, 명분이고 따질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당장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그에게 의지하는 무리들을 구하기 위해 그는 앞 뒤 살펴볼 겨를 없이 눈에 보이는 가장 안전한 곳, 사울이 두려워하고 쫓아오지 못할 지역, 블레셋 골리앗의 땅, 사글락으로 피한 것이다. 


때때로 목회를 하면서, 혹은 목회하기 전에 어머니가 목회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신앙생활 한다는 사람들이 때로 술집을 열기도 하고, 장사하면서 주일을 어기기도 하고, 세금을 떼어 먹기도 하고, 좋은 조건의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안믿는 집안 인줄 뻔히 알면서 배우자를 선택하고, 자녀를 결혼시키는 일들... 

바로 그들의 삶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정죄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다윗도 그랬다. 

다윗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기근을 만나니까 당연스레 애굽으로 피했고, 야곱은 아얘 그리고 이주했다. 룻은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땅에 거주한다. 요셉과 마리아도 헤롯의 폭정을 피해 애굽으로 가서 예수님을 키웠다. 그것이 삶의 realty다. 

현실에는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그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인다고 다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떤가를 살펴야 된다. 그래서 그런 현실의 어려움들이 닥쳤을 때에 또 다시 애굽으로 피할 것인가? 블레셋의 뒤로 숨어야 할 것인가?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7장의 선택의 결과는 30장에서 펼쳐진다. 

이스라엘을 향한 전쟁에 참여하라는 아기스의 명령에 다윗은 충성을 맹세하여 뒤를 따르지만 신하들의 만류로 돌이켜서 다시 시글락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시글락으로 돌아오자 아말렉 족속들이 그 마을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군사들의 아내와 자녀들을 모조리 잡아갔다. 


시글락의 선택은 재앙으로 다가온 것이다. 

다윗에게 피했던 다윗의 사람들은 기력이 다 할 때까지 울다가 그 분노를 급기야 다윗에게 향하게 된다. 


(삼상 30:6) 백성이 각기 자녀들을 위하여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사람들이 다윗에게 달려들어 돌려치려 하자 다윗이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꾀를 쫓던 다윗이 비로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다. 

제사장을 부르고, 하나님의 판단을 묻는 에봇을 가져다가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아기스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다윗이 이제 비로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삼상 30: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600명의 군대가 브솔시냇가까지 이른다. 이중 이백명은 더이상 육신이 탈진하여 따라오지 못하고 거기에 머물게 된다. 

400명을 필두로 따락가긴 하는데 기력이 탈진한 이들이 아말렉을 따라잡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결정적인 순간은 바로 이 때 일어난다. 아말렉을 쫓는 중에 한 병사가 길에서 탈진해서 쓰러져 있던 애굽 소년 하나를 데리고 온다. 


지금 자기 동료 200명이 피곤하여 뒤에 남겨두고 쫓아가는 형편이요, 기력을 다해 아말렉을 쫓아야 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사흘을 굶고 쓰러져 있는 한 소년을 데리고 온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가던 길을 멈추고 쓰러진 소년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빵과 물을 주고 남은 음식을 먹이고 그를 살린다. 

상황 때문에 블레셋으로 망명했던 다윗이 이제 하나님을 바라보니까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아둘람 굴속에서 400명의 사람들을 떠 안았던 그 모습 그대로 굶주려 있는 한 영혼을 살리는 데에 길을 멈추어 선 것이다. 


그 소년이 누구인가? 바로 그들이 쫓고 있던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다. 어떤 성경에서는 바로 아말렉 왕의 종이라고도 해석을 한다. 

결국 한 사람을 살리었더니 그 한 사람을 통해 아말렉의 본거지를 찾게 된다. 


다윗은 한 사람의 아내와 자녀도 일어버리지 않고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아말렉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전리품마저도 얻게 된다. 


(삼상 30:20) 또 양떼와 소떼를 다 탈취하였더니 무리가 그 가축 앞에 몰고 가며 가로되 이는 다윗의 전리품이라 하였더라


이야기의 끝은 여기가 아니다. 그 절정은 이 다음에 있다. 되돌아 오다가 아까 200명을 남기고 왔던 브솔시내에 당도한다. 탈진해서 중도 탈락했던 사람들이 다윗의 무리를 보고 놀라서 아내와 자녀들을 보고 기뻐한다. 

그런데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기분나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가족들은 돌려주되 우리가 얻은 전리품은 하나도 나눠주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악한 자와 불량자"라고 표시했다. 


왜 그럴까? 

다윗은 그들 사이의 갈등에 참여해서 솔로몬의 판결을 한다. 


[삼상 30:23-25] 다윗이 이르되 나의 형제들아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치러 온 그 군대를 우리 손에 넘기셨은즉 그가 우리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이같이 못하리라 이 일에 누가 너희에게 듣겠느냐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동일할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하고 그 날부터 다윗이 이것으로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를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다윗의 입술을 통해 울려퍼지고 그것이 이스라엘의 법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한 큰 문제...고난 앞에서 예수를 부인했던 성도들을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 

마가복음:... 배반자의 복음 - 마가- 예수의 붙잡힘 앞에서 홑이불을 버려두고 도망간 자. 

                  바울과의 선교여행에서 중도에 도망간 자..... 

                  베드로의 수제자로서 베드로 전후서를 남긴 자. -----우리 모두가 예수의 배반자였다.

                  

자기들이 누구인가? 내세울 만한 것이 전혀 없던 어중이 떠중이... 

아무 공로 없이 비참한 삶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과 섭리의 삶으로 인도된 사람들....바로 사글락 사람들.. 

그들에게 암한 구원- 값없이 얻은 승리. 

이것이 은혜이고 은혜는 또한 값없이 나누어야 하는 것임을 보여 준 것이다. 


[시 133:1-3]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대상 12:1)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로 말미암아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도운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으니


가장 어렵고 실패했을 때에 함꼐 했던 시글락의 사람들이 나중 또한 다윗 왕국의 중심축...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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