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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하는 교회와 성도 (출애굽기 17장 8-16절) 


신약성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면 구약에 있어서 그와 비견되는 중요한 사건은 바로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출애굽기 사건이요,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의 광야에서의 사건들일 것입니다. 

출애굽기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출애굽한 백성들, 즉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백성이 된 구원받은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통해서  또한, 그곳에서의 연단과 시련을 통해 어떻게 신앙이 성숙되어지고 가나안에 합당한, 즉 열매맺는 교회와 성도가 되는지를 꺠달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읽다보면 드라마틱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나오지만 금방 또 넘어지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특별히 출애굽기 10장에서부터 20장까지의 내용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역사와 그럼에도 넘어지고 낙망하는 백성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열가지 재앙을 통해 드디어 14장에 가면 홍해를 건너는 위대한 사건이 나옵니다. 15장에 가면 모세와 미리암, 이스라엘 온 백성이 하나님이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15장의 끝에 가면 마라의 쓴 물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 사흘만에 물이 떨어지자 금방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인간이 그렇게 연약합니다. 

누가 더 악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연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흘길에 물이 없었다는 것은 육신의 한계가 왔다는 것입니다. 

당장 육신의 한계가 오면 하나님의 은혜는 사라집니다. 원망이 나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며 물에 던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출 15:26)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가? 

우리가 연약할 적에 우리는 불평을 택하느냐, 하나님께 부르짖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느냐? 환경을 바라보고 불평하고 절망할 것인가를 보신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똑같이 힘듭니다. 

우리 모두 연약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할 때에 불평하고 넘어지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가 다 힘들어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 분께서 살 길을 주십니다. 

치료하는 여호와가 우리의 연약함을 치료하십니다. 

마라가 변하여 엘림이라는 큰 나무가 되게 하십니다. 


16장에 들어가면 또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원망합니다. 배가 고팠기 때문입니다. 

물이 해결되니까 이젠 양식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물만 먹으면 살 것 같았는데 이젠 물이 해결되니까 양식을 달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욕심이 그렇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이젠 걱정이 없고 여한이 없다고 하다가도 한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것에 욕심을 부립니다. 


백성은 또 원망하고 모세는 또 기도합니다. 

어쩌면 출애굽기의 반복되는 주제어같기도 합니다. 

"똑같은 어려움이 생겼을 때에 백성은 기도하고 모세는 부르짖었더라."

여러분, 여러분은 문제가 생겼을 때에 원망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부르짖는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만나를 내리십니다. 

문제를 바꾸어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여러분, 문제를 통해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능력을 경험하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읽은 17장에는 두 사건이 나옵니다. 앞부분은 르비딤에서의 물 사건이고 뒤에 나온 사건이 유명한 아말렉과의 전투입니다. 


르비딤은 쉼터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쉼터에 물이 없습니다. 물이 없다는 말은 은혜가 말랐다는 소리입니다. 

쉼터에 물이 마르니까 다툼이 일어납니다. 

쉼터는 가정이고 또한 교회입니다. 사람이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둔 곳이 가정이고 영혼이 쉴수 있도록 안식하도록 마련해 둔 곳이 교회입니다. 

안식일은 우리 영혼이 쉼을 얻는 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르비딤에 다달았는데 보니까 물이 없습니다. 

순종은 했는데 영혼에 기쁨이 없습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감격이 없고 기쁨이 없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은혜가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은혜가 떨어지니까 다투기 시작합니다. 

다투는 이유는 은혜에 목이 마르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영혼이 목마를 때에 부르짖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운 사람은 영혼이 목마를 때에 원망으로, 다툼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이 목마르다고 느낄 적에 다투지 말고 부르짖으시길 바랍니다. 

부르짖으면 은혜를 주십니다. 목마름을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기가 막힙니다. 

5절에 보니까 "백성 앞을 지나서 장로들을 데리고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는 것입니다. 

지금 백성들은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는데 피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장로들과 함께 그들 앞을 지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동역자들과 함께 두려움에 맞서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반석을 치라! 

반석은 곧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지 않는 은혜의 공급처입니다. 

이것이 르비딤에서의 물 사건입니다. 쉼터에 은혜가 떨어졌을 때에 반석을 쳐서, 그리스도께로 나와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에게 은혜를 공급하신 후에 하신 일은 아말렉과 싸우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탈출한 백성입니다. 

어린아이와 여자들, 허다한 잡족들로 이루어진 백성들입니다. 

군사들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도 아말렉이라는 군사들과 싸우게 하십니다. 

도저히 싸울 수 없는 자들이 지금 전쟁을 치루는 것입니다. 

그것도 전쟁에 능한 자들과 싸우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와 첩 딤나에게서 나온 죄악의 자손입니다. 팥죽 한 그릇에 하나님이 장자권을 판 자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는 죄악의 족속입니다. 


먹을 것이 하나님이 은혜보다 더 중한 자요, 쾌락과 정욕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끊임없이 아말렉 족속과 전쟁하게 하십니다. 

아말렉을 모조리 없애라고 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정욕과 탐욕을 없애는 전쟁입니다. 

왜 기독교가 타락했는가? 

신앙생활, 경건생활을 통해 정욕을 없애는 훈련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욕을 내세우고 정욕을 채우는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타락하는 것입니다. 

가지려고만 하고, 빼앗으려고만 하고, 즐기려고만 하는 생활은 다름아닌 아말렉이 되는 과정입니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내려놓는 자가 되어야 하고, 십자가를 지고 낮은 곳을 향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맞는 길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육신이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성령을 통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사는 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부리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요 예배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내 이름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싸워야 할 것이 무엇이냐? 

바로 내 정욕과 탐욕, 내 쾌락, 내 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 사명을 이루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합니다.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나는 하나님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현장에서 싸운 것은 여호수아이지만 모세이 팔이 내려가면 밀리고 후퇴하다가 모세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할 때마다 진격하고 승리했습니다. 신앙인의 삶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서 여호수아처럼 열성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성공의 열쇠는 영적인 전투에서 승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는 정말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저의 목회의 가장 큰 사명은 여러분이 자신과의 싸움, 사탄과의 싸움에서 이기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평생 목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어머니가 목회하면서 물려주신 가장 큰 유산은 매일 같이 성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제 목회의 가장 큰 사명 역시 성도들의 이름을 빼어 놓지 않고 그들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니까 알아달라고 생색내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도의 능력을 인정하건 안하건 제가 받은 목회적 소명은 성도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기도가 성도들 각자의 가정에서 여러분들이 드리는 기도의 본보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로 부름 받은 저는 교회의 성도들을 향한 기도를 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의 영적인 가장으로 부름받은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산 꼭대기에 올라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그 기도를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산꼭대기는 어디 입니까? 

하나님과 대면하는 내 은밀한 공간, 기도의 처소입니다. 

여러분이 삶 속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족이, 자녀가, 남편이, 아내가 삶에서 온전한 열매를 맺히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가정의 모세가 되어서 잊지 말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에 승패가 달려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집니다.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불평하면 넘어지지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제가 교회와 성도를 위해 기도하듯, 가정의 목회자가 되어 기도를 쉬지 않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모세도 손을 들고 기도하니까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목사가 피곤해지면 성도들이 고생합니다 .

가정에서 기도의 사람이 피곤해지면 식구들이 고생합니다. 


그 때 모세의 손을 붙잡아 준 것이 아론과 훌이었습니다. 

아론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의 형이요,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실 때에 함께 가게 하신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


교회에도, 가정에도 이런 동역자가 있으면 피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아론은 동역자이고 형이라고 쳐도 훌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훌을 통해 그가 어떻게 모세를 잘 섬기고 또한 어떤 상을 받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훌은 영적 지도자의 중요성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모세의 기도가 쉬면 전쟁에 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그가 모세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었던 것은 전쟁의 성패가 여호수아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기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훌은 잘 섬길 줄 아는 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섬기는 일을 쉽게 생각합니다. 과소평가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나 마음이 있어도 섬기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잘 섬기기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섬기는 것도 하나의 예술입니다. 탁월한 섬김은 감동을 주고 섬김을 통해서 예수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훌은 모세를 섬기는 데에 탁월했습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마지막 만찬에서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내가 선생이 되어 너희를 섬겼으니 너희도 섬기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역대상 2장에 보니까 훌의 아버지는 다름아닌 갈렙이었습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자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아무도 가지 않은 땅 헤브론 땅을 가리켜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하며 믿음으로 땅을 얻은 자였습니다. 

그 헤브론 땅에 다윗의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그는 여호수아보다 나이도 많고 자기의 분깃을 당당히 요구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는데도 철저하게 여호수아를 섬기고 받들고 궂은 일을 맡아 했습니다. 


섬기는 자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무시 당해도 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일합니다. 


셋째 훌은 지도자의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입니다. 

서서 기도하던 모세의 팔이 피곤해지자 아론과 훌은 두 가지 일을 하게 됩니다. 

 첫째, 모세를 위해 돌을 가져다가 그 위에 앉게 합니다. 

(출 17:12)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돌은 의자와 같은 것입니다. 돌은 도구입니다. 영적 지도자가 장기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바로 돌입니다. 


둘째 훌은 모세의 피곤한 손을 붙들어 올렸습니다.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    가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출 17:12 B)


모세의 손을 붙잡아 준 것은 모세가 계속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운 것입니다. 

아론과 훌은 너무나도 단순한 일을 합니다. 모세를 위해 돌을 갖다주는 일, 모세의 팔을 붙잡는 일은 너무 간단한 일입니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영웅적인 몸짓이라곤 전혀 없습니다. 어찌 보면 머슴이나 식모와 같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그렇게 머슴처럼, 식모처럼 섬김을 다할 때에 하나님을 그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훌이 받은 축복 - 상급 

1) 고귀한 신분.. 


[창 36:9]세일산에 거한 에돔 족속의 조상 에서의 대략이 이러하고

(창 36:10)그 자손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아내 아다의 아들은 엘리바스요 에서의 아내 바스맛의 아들은 르우엘이며

(창 36:11)엘리바스의 아들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보와 가담과 그나스

(창 36:12)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대상 1:36)엘리바스의 아들은 데만과 오말과 스비와 가담과 그나스와 딤나와 아말렉이요

(민 32:12) 다만 그나스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볼 것은 여호와를 온전히 순종하였음이니라 하시고


갈렙의 아들.. 

[대상 2:18-20]헤스론의 아들 갈렙이 그 아내 아수바와 여리옷에게서 아들을 낳았으니 그 낳은 아들은 예셀과 소밥과 아르돈이며 아수바가 죽은 후에 갈렙이 또 에브랏에게 장가 들었더니 에브랏이 그로 말미암아 훌을 낳았고 훌은 우리를 낳았고 우리는 브살렐을 낳았더라


훌-“존귀함”

-> 에서의 자손이 유다 지파에 소속이 됨, 에서의 자손이 하나는 아엘렉으로, 하나는 훌로... 


  • 중요한 일을 맡기심..

[출 24:13-14]모세가 그 종자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라 아론과 훌     이 너희와 함께 하리니 무릇 일이 있는 자는 그들에게로 나아갈지니라 하고

->하나님의 산에 올라 갈 때 모세는 아론과 훌에게 장로들을 맡김.. 지도자의 위치로 올라감.. 


교회와 성도는 어떻게 승리합니까? 

물론 매일 매일의 삶을 열심히, 성실히 살아야겠지만 그 성패가 기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이미 승리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가 함께 한 것입니다. 

아무리 규모가 크고 재정이 풍부해도 기도하지 않는 교회는 아말렉이 되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목회자가 앞장 서서 성실히 기도해야 합니다. 

난 사무엘이 기도한 것 처럼 내 평생에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도록 기도합니다. 여러분도 제가 기도를 쉬지 않도록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아론과 훌 같은 동역자, 섬기는 자가 세워진 교회가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아론은 가족이라 그렇다 쳐도 훌은 전적으로 섬기는 자였습니다. 

그는 섬김을 통해 가문이 바뀌고, 인생이 바뀐 자였습니다. 

아말렉과 똑같이 정욕의 자녀요, 죄악의 자녀였지만 그는 섬김을 통해 존귀한 자가 되었고 3대를 걸쳐서 가장 중요하게 쓰임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갈렙과 훌과 브살렐로 이어지는 가문은 출애굽기를 관통하는 세례 요한과도 같은 베드로를 돕는 사도요한과도 같은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가정, 이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