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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저녁 집회 

큰 비를 전하는 자 (왕상 18:41-46) 


17장에 처음 등장하는 엘리야

아합왕 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숭배하는 바알과 앗세라의 숭배자들이 가득하던 때. 

성전에도, 나라에도, 곳곳에 바알과 앗세라의 기복신앙, 쾌락 신앙, 세속 신앙이 가득하던 때

풍요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인생의 즐거움이 예배를 대신하던 때

엘리야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이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 이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것.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이런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고. 이것은 참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분노하며 아합왕에게 나왔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제 내 말이 있으면",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내 말이 떨어지면 

"너희의 복이 끝날 것이다. 이제 복에 겨워 오만방자하게 예배하는 자,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하는 너희들이 복이 끊어질 것이다"고 우렁차게 말한다.  

이것은 자신의 믿음으로 선포한 것이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니다. 자신의 믿음이다. 믿음이라기 보다는 신념이다. 

신념은 때로 강한 용기로 나타나지만 능력이 없다. 보장이 없다. 

그 말을 하자 여호와의 말씀이 비로서 임한다. 

순서가 바뀌었다.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서 전하는데, 엘리야는 선포하고 나서야 말씀이 임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

"숨어라. 내가 널 먹이겠다." (왕상 17:3-4절) 


무엇인가? 이젠 내가 널 훈련시키겠다. 양육하겠다. 널 진짜 선지자로 만들겠다. 

마치 열성가득한 모세처럼, 호기 충만한 모세가 애굽 군사 하나를 죽이고 광야로 도망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듯이 감히 아합왕 앞에 나가 충만히 선포하던 엘리야를 하나님은 숨기시고 훈련시키셨다. 


마치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움직이고 머물면 머물게 하고

만나가 내리면 먹고 물이 나오면 마시고, 메추라기가 떨어지면 배불리 먹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은 그릿시냇가가 마를 때까지 엘리야에게 

고독의 훈련, 만나 (말씀의 훈련) 을 시키셨다. 

이 훈련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을까? 

나는 정말 무력하다. 나는 정말 할 수 있는게 없다. 세상은, 신앙은 신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이 없는 믿음은 단지 신념이다. 

무능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릿 시냇가가 마르니까 바알과 앗세라의 수괴, 이세벨 여왕의 고향, 그 중심 사르밧으로 엘리야를 보낸다. 

뜻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동역자 사르밧 과부를 만나게 한다. 

거기서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는 우선수위의 훈련을 한다. 


하나님의 것을 먼저, 내것은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서 언제나 내 믿음, 내 생각, 내 환경, 내 감정을 우선했던 실패를 되돌아보고 이젠 실패하지 않도록 훈련시키신다.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늘 실패하는 훈련, 이기적인 사람이 절대로 할 수 없는 훈련

기복적인 신앙인이 매일 같이 위선 속에서 자기를 속이는 그런 훈련. 

먼저하고 나중에 하는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의 것을 먼저 하니까 결국 하나님이 채우시고 보장하신다는 것을 경험케 하신다. 

풍요로울 때에 그 훈련을 시키시지 않으셨다. 

마지막 먹고 죽으려 할 만큼 기근이 극심할 때

없어도 정말 없을 때에 하나님의 것 먼저 할래? 결국 네것 하다가 죽을래하는 훈련을 시키셨다. 


그리고 나서 죽은 아들을 위한 기도를 통해 기도의 능력을 알게 하신다. 

죽은 한 영혼을 살리는 기도

기도는 결국 한 사람을 향한 애끓음에서부터 시작된다. 간절한 기도는 사랑에서부터 나온다. 다급함에서부터 나온다. 

한 영혼을 위한 기도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 간절함에서부터 기도가 시작된다. 

바알과 앗세라를 향한 영적인 전투에 앞서, 이스라엘 온 민족의 영적인 죽음을 살리는 기도에 앞서, 연약함 가운데 죽은 한 영혼을 향한 기도를 시키신다. 


그리고 다시 아합왕에게 보낸다. 

18잘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이제 순서가 바로 잡혔다

순서가 바로 잡히기 까지 "많은 날이 지났다"고 말씀이 증거한다. 

하나님은 순서가 바로 잡히기 까지 우리를 훈련시킨다. 

우리는 서둘고 급해도 하나님은 절대로 서둘지 않으신다. 

차곡 차곡,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신다.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가?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첫 번째 큰 비는 노아 때 왔었다.

그 큰 비는 죄악을 다 씻어 내렸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다 씻기 위해서는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 비는 심판의 비가 아니다. 반대로 이 비는 은혜의 비다. 모든 기근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하늘로 쏟아지는 비다. 

우리의 냉랭한 신앙이 물러가고 눈물이, 은혜가, 평화가 찾아오는 비다. 

그야말로 큰 비다. 


그런데 큰 비의 약속을 받은 엘리야가 바로 큰 비를 위한 기도를 드리지 않는다. 

아합왕에게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를 싸그리 모아 갈멜산에 모이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백성에게 질문한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언제까지 하나님께 예배한다 하면서 여전히 바알을, 돈을, 쾌락을, 정욕을 쫓을 것인가 묻는다. 

백성들이 한 마디 말도 답변하지 못한다


여호수아 때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가 오직 여호와를 따르겠습니다 말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들도 해깔린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축복인지...


바알과 앗세라 선지자들이 갈멜산에서 모여 기도하기 시작한다. 

제단 주위에서 뛰어 놀고, 큰 소리로 울부 짖다가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한다. 

미친 듯이 떠든다. 미친 것이다. 


거라사 지방의 군대귀신 들린자가 미친 듯이 떠돌아 다니며 소란을 피우고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모습이다. 

미친 예배다. 

그것은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한 미친 짓이다. 예배는 내가 미쳐서 날 뛰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서 춤추는 것이다. 

내 감정에 들떠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좋아서 감격하는 것이다. 

성령은 내 가슴을 찢고, 목이 쉬도록 소리지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예배는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예배이다. 

내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는 훈련이 담겨 있는 예배고, 순종이 담겨 있는 예배다. 

"당신은 정말로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는 고백이 담겨 있는 예배다.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수축한다. 

자기 감정의 예배, 축복만을 부르짖는 정욕의 예배, 쾌락을 위한 예배를 무너뜨리고 말씀의 예배,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다시 드린다. 


31절: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32절: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36절: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것을 행하는 것을....


성령 충만은 순종이다. 그 분의 뜻대로 따르고 살아가는 것이다. 

엘리야는 제단과 번제물에 물을 가득 붙고서 기도한다. 

한 죽은 아이를 살렸던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의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의 회복을 위해서 

이스라엘의 회개를 위해서 부르짖는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왜 비를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제단에 불을 내리시는가? 

회개가 없이는 은혜가 없기 때문이다. 

회개없는 은혜는 오히려 타락이고 교만이고, 죄악을 낳기 때문이다. 


아합은 우리 안의 죄이다.  

바알과 앗세라는 우리 안의 돈을 사랑하는 탐심이고, 음란함과 쾌락이고, 화려함과 외모를 최고로 하는 우리 안의 이세벨이다. 


이것을 몰아내시지 않고선 비를 내릴 수가 없다. 

은혜를 맛볼 수가 없다. 큰 비는 우리 안의 하나님의 성전, 우리 안의 바알과 앗세라, 우리 안의 아합가 이세벨을 죽이지 않고서는 내리질 않는다. 


큰 비를 맞아야 하지 않는가? 

복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복이 되어 돌아가냐 하지 않는가? 


그러면 다시금 갈멜산에 올라가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여야 한다. 

번제물에, 제단에 성령의 물을 뿌리고 그 성령이 내 죄를 불태우도록 해야 한다. 


내 감정에 들떠서 날 뛰는 것이 아니라 내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주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신 것과 당신은 나를 되돌이키시는 분임을 알게 하옵소서."  


단지 내가 원하는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늘의 복,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복, 하나님 나라의 심령이 열리기 위해서 내 안의 바알과 앗세라. 내 안의 아합과 이세벨을 몰아내야 한다. 


불로 태워야 한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완전히 태워야 한다. 

내 안의 불평, 내 안의 판단, 내 안의 정죄, 내 안의 교만, 내 안의 탐욕, 내 안의 변명, 내 안의 핑계, 

내 안의 게으름, 내 안의 모든 죄를 태워야 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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