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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아 산에서 


1. 아브라함 - 믿음의 조상 

언약을 맺고 그에게 아들 이삭을 주심... 

아브라함이 믿음의 사람이 된 가장 절정의 사건은 바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한 사건... 

모리아산 .. 삼일 길이나 걸이는 제법 멀리 있는 산... 그 자리에서 헌신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처소에서 3일 길을 떠나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순종하는 것을 요구하심...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의지적으로 결단하는가를 시험하심... 

-> 믿음 없는 자의 신앙생활-> 감정대로 하는 신앙생활. -> 결국은 자기감정이 판단의 잣대. 감정이 동하지 않으면 은혜 없는 예배. 

-> 은혜로 이삭을 받았다. 은혜로 받았다는 것은 내 의가 하나도 없이 하나님이 주셨다. 그렇다면 다시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그것을 내 것이라고 말하면서 거절할 이유가 되는가? 

우리의 신앙: 은혜로 받았다고 하면서 내 것인양 허세를 부린다. 다시 달라고 하시면 내것이니까 안된다고 하고, 이미 준 것을 왜 다시 가져가느냐고 한탄. 모든 만물, 자식도 포함... 인간에게 맡기신 것, 위임하신 것, 내 몸마져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 내 것, 내 소유는 없다. 단지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은 나에게 맡기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게 잘 관리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시 달라하면 내 것이라 안 된다고 한다. 감정이 상한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님이 옳지만 내 감정은 안 된다고 한다. 그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브라함은 모리아산 위에서 자신의 상한 감정을 포기하고 순종을 택했다. 그래서 신앙의 승리, 믿음의 승리를 얻은 것이다. 이제야 아브라함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쓰임 받을 수 있는 도구가 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 위에서 자신을 완전히 비웠고 그 결과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2. 다윗 

다윗의 범죄

하나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백성들의 수를 계수한 것... 


역대상 21장 :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의지함...

-> 백성의 계수는 오직 전쟁 때에, 하나님이 명하실 때에만 행함. 

다윗의 계수- 자신이 가진 것이 얼마나 되나를 계수. 하나님께 의지하기 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의지하게 됨. 다시 말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가지고 자신의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의지하게 됨. 

-> 하나님은 다윗과 그 나라에 온역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순간에 7만 명이 죽음을 맞이함.. 


실수도 하지만 돌이킬 수 있는 믿음...

(대상 21:18)여호와의 사자가 갓을 명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대상 21:22)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붙이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붙이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대상 21:23)오르난이 다윗에게 고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의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대상 21:24)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고

(대상 21:26)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 교만해져서 죄를 지었으나 죄로부터 회개하고 다시금 믿음을 고백한 장소가 바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다. 이곳에서 그는 상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번제는 완전히 제물을 불태워서 드리는 완전한 헌신(->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 의 의미이고 화목제는 죄의 용서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됨을 추구하는 제사이다. 


(대하 3:1)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그런데 그렇게 다시금 회개하고 헌신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알고 보니까 바로 모리아산 위였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 그 곳 모리아산에 하나님의 성전을 짓도록 하신 것이다. 

다윗이 교만하여져서 죄를 짓고 심판을 받았으나 그 죄를 용서받은 곳은 바로 모리아산 위에서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악과 죄성을 너무나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교제를 회복시켜 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타락과 회복을 경험한 다윗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다시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다. 모리아산 위에서 다윗은 진정으로 인간을 이해하게 되었고 또한 동시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셨다. 


3. 예수 그리스도 

최초의 성전이 솔로몬에 의해 모리아산 위에 건축되었다. 그 곳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예배의 장소가 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고 헤롯성전이 다시 지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을 찾아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러 찾아왔다. 


[요 2:15-16]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요 2:16)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 와서 죄용서 받고 은혜를 체험하며 깊이 하나님을 예배하던 예배의 장소가 예수의 때에 나라가 어렵고 사람들이 궁핍하게 되자 은혜의 장소를 돈 바꾸는 사람들이 넘치는 장소로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집이 장사하는 집이 되어 버렸다. 


그렇면서 예수께서는 그 성전의 의미, 예배의 참 의미를 다시금 확인시키십니다. 

(요 2:1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21)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하신 이 말씀은 무엇인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신다. 성전은 어떻게 세워졌나? 

아브라함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아들 이삭을 바치면서 믿음을 고백한 것...

다윗이 자신이 교만을 회개하고 온전히 헌신하며 아브라함의 마음으로 되돌아 간 곳, 그래서 죄 용서 받고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곳..

그 곳에서 예배드리라 하신 곳.... 

그런데 그러한 은혜의 처소가 환경이 어렵고 힘들다고 은혜를 돈으로 바꾸고 장사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자 예수는 그러한 처소의 상을 뒤엎으시고 다시 은혜의 처소로 가도록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신다.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려면 오직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여 아브라함이 했던 것 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도 바치며 온전히 번제로 바치는 그러한 자기 십자가가 있는 곳, 그 십자가를 통하여 이삭이 살아나고, 죄로 말미암아 심판받는 다윗이 용서되는 부활의 기쁨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신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모리아산 위에서 보여 준 신앙의 발자취를 예수 그리스도도 밟으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성전에서가 아니라, 모리아산 위에서 죽으셨다. 아브라함의 번제처럼, 다윗의 속죄제처럼, 이젠 그 분 자신이 대속죄로, 온전한 우리를 위한 번제로서 모리아산 위의 해골이라는 곳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 그 모리아산 위에서 그 분의 몸이 찢겨졌고 피가 쏟아졌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 약속하셨던 것- 복의 근원이 되리라. 그 복의 시작이 이삭. 이삭이 없으면 복의 후예를 낳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이루신 후에 다시 점검하시는 것-네가 원한 것은 하나님의 복이냐? 하나님 자신이신가? 

하나님이 가지신 어떤 것인가? 하나님 자신이신가?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하나님 주신 모든 것도 다시 드릴 수 있는가? 

모리아산을 향할 때에 나귀와 두 종을 데리고 감. 

그런데 삼일 길을 간 다음에 종들과 나귀를 버려두고 "여기서 기다리라" 

이삭만을 데리고 감. 

내가 하나님이 가지신 어떤 것- 즉 하나님의 일부분을 보고 하나님을 따르듯이 

내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도 내가 가진 내 것, 내 능력, 내 실력, 내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 할 수 있다. 내가 부릴 수 있고, 내가 통제할 수 있고....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부분을 가지고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내 전부를,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를 가지고 예배할 수 있는가이다.

그 부분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 있을 때에만 예배한다. 다른 방법, 다른 신이 그것을 주면 뒤도 안돌아 보고 배반하고 배신한다.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장사다. 딜하자는 것이다

하나님 주신 복을 헤아리면서 자신의 것으로 여기고 놓지 않고 교만하게, 그것만을 붙잡고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네 부분이 아닌, 네 전부를 

"네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말씀 준비하는데 눈에 확 띄게 다가온 말

왜? 이삭을 바치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안 죽을 줄 알고 바치는 것. 

하나님이 설마 죽이시겠어? 죽기 전까지만 순종... 이 스토리를 아는 우리... 이삭을 죽이는 척만 하면 구원하실 꺼야... 


그 마음이 아니라면 헛 말. 거짓말... 이삭을 달래기 위한 말... 

이삭을 데리고 가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 데리고 갈까? 순종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할까?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다. 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할 수 있는가? 

내 부분이 아닌 전부를 다 바칠 수 있는가? 정말 그럴수 있는가? 

없다. 베드로는 배반하리라는 주님의 지적에 화를 내면서까지 내가 죽더라도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부인한다. 

이 예배, 이 순종, 이 헌신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성령이 내 안에 온전히 거할 때에 가능하다. 

어떻게 성령이 임하는가? 

내가 할 수 있을 때까지 순종하면서 나아가면, 앞 뒤 안가리고 우선 순간 순간, 순종하면서 나아가면 그가 채우시고 이루시는 것이다. 

오병이어... 내 마음을 드릴 적에 축사하사 5천명을 먹이시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겨자씨같은 믿음으로 그 순간 내 최고의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난 할 수 없어서 그저 끝을 생각하지 않고,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 순종하면서 가면 결국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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