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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성육신, 모든 벽을 허물고 이 땅에 오신 예수 (눅 2:8-14) 

 

[눅 2:8-14]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 시간여행, 현재와 과거의 연결 - 그것을 연결하는 통로- (타임머신, 블랙홀, 상상 속의 어떤 문...)
    •  상상하지만 어느 과학도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다. 이론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런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 여행 정도가 아니다. 
    • 영원하시고 거룩하신, 그리고 창조주 VS 육신을 입고, 피조물이면서...동시에 죄로 가득 찬...
    •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모든 장애물 중에서 만날 수 없도록 만드는 가장 큰 장애물의 정체를 바로 "죄"라고 말합니다. 

 

[사 59:2]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그런데 그 멀고도 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 죄와 거룩함 사이의 간격을 예수의 나심, 성탄이 매꾼 것입니다. 모든 담을 허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회복시키고자, 오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 아마도 한국 개신교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신학자를 한 명만 뽑으라면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그는 성탄의 의미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너무 높은 곳에 계시고 인간은 너무 낮은 곳에 있고,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하고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과 사귈 수가 없어서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오셔서 인간을 위로하시고 구원하시고 고치시고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두셨을 때에는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 교제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나고, 죄가 인간을 지배하게 되자 인간은 점점 더 밑으로 추락합니다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집니다. 

 

  • 하나님의 다가옴의 방법들...
  • 홍수를 내리시기고 하고,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을 시키기도 하고, 율법을 주어 정결하게도 하고,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를 두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하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의 길은 점점 더 밑으로, 어둠으로, 절망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합니다. 어쩌다 하나님의 흔적을 본 인간,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화로다, 이제 죽게 되었다'고 절망할 정도로, 모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치 못하게 하소서. 우리가 두려워 죽을 것 같습니다." 말할 정도로 인간은 감히 하나님께 접근조차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멀고도 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 죄와 거룩함 사이의 간격을 예수의 나심, 성탄이 매꾼 것입니다. 모든 담을 허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회복시키고자, 오직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성탄, 예수의 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서 어디까지 낮아지셨나 그 사랑의 깊이를 볼 수 있습니다. 

탄생: [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죽었을 때: [요 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 "싸여있다" 수동태 문장. 

누군가가 그를 천으로,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포대기로 그 몸을 쌌다는 것입니다. 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연약해서 강보로 쌓고 구유에 뉘인 아기...

 

그것도 어디에 누워 있습니까? 구유...사람이 누워 있는 곳이 아니라 말이나 나귀가 쉬도록 내어 놓은 구유에 예수님께서 포대기에 쌓여 누워 있는 것입니다. 

 

  • 유대인 - 메시야를 기다리는 민족, 말라기 이후 그 메시야에 대한 고대함은 절정을 이룸... 

누구에게 가장 먼저 보이실까? 그 소식을 전할까? 그리고 전하게 할까? 

누구에게 알려야 가장 빨리, 멀리 이 기쁜 소식이 퍼질까? 제사장? 바리새인? 헤롯? 

-> 이름 없는 양들을 돌보는 목자들, 그리고 동방박사 (이방 땅의 무리들...) 

왜 하필 이들이었을까? 

 

  • 부활의 소식을 전한 자들...베드로? 요한? 아니면 빌라도와 같은 정치가? No, 증인으로 채택할 수 조차 없었던 여인들...
  • 가장 값지고 고귀한 복음을 베들레헴 말구유에 탄생하신 예수는 바로 그 곳에 있음직한 사람들에게 온 세상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목자들이 양들을 치고 있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주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그것도 선지자도, 제사장도 아닌 지극히 초라한 목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죽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런데 그 천사가 "무서워하지 말라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쁜 소식을 전할 터인데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나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입니다. 장장 400여년 동안 선지자조차 만날 수 없었던 이스라엘 땅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렇게 고대하던 메시야, 하나님께서 왕림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우면서도 벅찬 일입니까? 그 음성을 듣고 지시하신 곳으로 큰 기대...왕은 어떤 모습일까? 메시야는 어떤 모습으로 왕림하셨을까? 하면서 경외감을 가지고 가는데....

그들이 본 것은 

포대기에 쌓인 채로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였습니다. 

메시야는 이런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 마태복음 2장 동방박사 이야기..

별을 보고 이스라엘 땅에 왕이 나셨음을 알고 먼 이방 땅에서부터 왕의 나심을 보러 오는 자들...

그런데 그들이 베들레헴으로 곧장 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냐면 헤롯왕이 있는 궁으로 먼저 들어갑니다. 

별을 바라보며 이 땅까지 왔는데...그들은 왜 곧장 예수님이 계신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헤롯궁으로 들어갔을까요? 

메시야는 당연히 왕궁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왕이, 메시야가 왕궁이 아닌 곳에서, 그것도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닌 마굿간 구유에 강보에 쌓여 누워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를 만나시러, 가장 낮게, 가장 천한 모습으로, 연약한 아기의 모습, 강보에 쌓여 구유에 누어있는 모습으로 동방박사에게, 그리고 목자들에게 첫 대면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머리 둘 곳 조차 없이 때로 금식하며 때로 문등이들과, 사마리아 여인과, 새리와, 간음한 여인과, 어부들과 어울리시며 십자가의 길을 지고 좁은 길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거져 주신 은총이지만 그것을 위한 그의 삶은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눈 높이 교육....

어른이 된다는 것... 아버지 보다 어머니의 모습... 

 

우리에겐 누구나가 수준이 비슷한 혹은, 나보다 수준있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합니다. 

동생들은 자기 또래들 보다는 항상 형들 누나들과 어울리는 것이 훨씬 더 재미나 보이고 고상해 보입니다. 

어릴 때는 어른들 이야기하는데에 끼기 위해서 얼마나 애쎴는지 모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런 세상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어른이 된 기분,,.,

 

  • 그런데 신앙 생활 하면서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은, 좁은 길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수준을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 내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맞추는 것. 그런데 그렇게 나를 부인하고 상대방에게 수준을 맞추다 보면 결국 모든 사람들 안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높고 고상한 영적인 세상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인 세상에 임해 있는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 

 

선교... 한국교회의 선교, 전도방법

예수 믿으니까 이렇게 잘 살게 되었어... 이렇게 부자 되었어.... 이래서 전도된 사람 거의 없다. 부러우면 믿겠지... 부러워서 믿는 사람없다. 세상에는 성공하는 책들로 가득하다. 예수믿고 성공해라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막 15:29-30]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 성전을 헐고 - 어떤 성전을 헐었습니까? 장사하는 성전입니다. 신앙을 도구로 결국 자기 뱃속 채우는 교회를 허신 것입니다. 신앙을 핑계로 자기 뱃속만 채우려고 하는 맘몬주의, 물질주의, 축복 지상주의 교회를 허신 것이지요. 
  • 그것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자들- 지나가는 자라는 것은 참 신자가 아니지요. 쇼핑하는 신앙인, 교회와 성경을 둘러보면서 자기에게 유익한 것이 없나 둘러보는 사람, 예수님과 동행하고 함께 거하는 자가 아니라 지나가는 신앙인들은 그런 예수를 보며 머리를 흔들며 모욕한다는 것입니다. 사흘은 내가 죽고 새로 사는 기간아닙니까? 세상의 나는 죽고 영의 나, 신앙 안에서 부활하는 나.... 결국 지나가는 사람들은 사흘의 기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온전히 죽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 그들의 요구사항은 무엇입니까? 예수보고 자기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오르셨는데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 지지 말라고 합니다. 십자가 지는 것이 어찌 구원이냐? 아픔을 주고 고통을 주는 신앙이 무슨 구원이냐를 외칩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자에게 신앙의 구경꾼들은 거기에 무슨 구원이 있느냐? 나에게 복을 주어라. 복을 보여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복을 보여 주면 과연 믿을까요? 병자를 고치고 오병이어를 보여 주어도, 복에만 집중하는 자들은 결코 채워짐이 없습니다. 

 

(막 15:3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막 15:32)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 대제사장, 서기관들- 거짓 선지자들이지요. - 희롱한다. 놀린다. 에이, 복도 못 맏았으면서 무슨 구원을 논하는냐? 이 사람들은 구원을 무엇으로 봅니까? 십자가의 반대로 봅니다. 구원은 십자가에서 내려와 편안함을 누리는 것, 고통을 멈추는 것. 
  • 그래서 그들에게 구원이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올라가서 십자가를 통해서 얻는 것입니다. 아니 십자가가 곧 구원입니다. 
  • 충격적인 것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는 대목입니다. 어떻게 함께 십자가에 달린 자들이 예수를 욕합니까? 그런데 그들은 왜 십자가에 달렸습니까? 자기 죄 때문에 달렸습니다. 자기 죄값 치루는 것이지요. 
  • 자기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자들은 신앙 생활 하면서 고통 받는 자를 자기 들과 똑같이 보지 않겠습니까? 너나 내나 똑같지 않냐? 고상하게 신앙생활 한다고 하더니 그 꼬락서니가 뭐냐,... 
  •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를 바라보면서 나를 기억해 주세요.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대가를 치루지만 당신은 죄없이 십자가를 치루네요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임하지 않습니까? 

 

초대교회- 이스라엘 사람들이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유대인들은 로마의 식민지, 로마는 가장 힘있고 부유하고 잘 배운 자들.... 그런데 그 로마가 유대인들에 의해 복음화 되었다. 무엇으로? 오직 십자가의 복음, 순교의 복음,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통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로 기뻐하며 견디는 그들을 보면서....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하늘의 영광이 되는 것이고 

이 땅에서는 평화를 이루는 평강이 되는 것이다. 

 

예수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가장 낮은 모습, 겸손한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신다. 

그러면 그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 역시 콧대 높게 사람들을 내려 볼 것이 아니라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를 맞추어서 이 땅에서의 평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영광이다. 

 

성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장벽을 뚫고 다가오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그 성탄을 통해 예수님은 높아져야 살 만 하다고, 복달라고 외치는 자들에게, 너희는 이미 복의 존재로 창조되었음을 알려주며, 우리에게 성공이 없어도, 힘이 없어도, 돈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임을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세상을 창조하신 그 이름을 가지고 어떤 세상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두려움 없이 살아가라고, 성탄의 은혜를 부어주신다. 그러한 성탄의 은혜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오늘을 준비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Posted by 소리별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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