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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안의 두 사람 (사무엘상 21장 1-9절)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의도가 단지 우발적이 아니고 계획적, 조직적, 적극적인 것이 확인되자 다윗은 이 때부터 장차 10년 동안이나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무엘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고, 왕의 궁전과 왕의 곁에서 왕을 직접 보며 훈련을 받은 다윗의 다음의 훈련 코스는 광야와 같이 일정한 처소가 없이 정처없이 방황하며 고통을 통해 믿음을 성장시키는 이른바 고난학교, 광야 학교, 기근학교였습니다. 


  •  아브라함: 창세기 12장의 부르심 - 선택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 그 땅은 곧 가나안, 팔레스타인 지방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당한 일 - 기근

 

 예수님도 마찬가지 - 공생애에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행하신 일은 세례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세례 받으신 예수님께서 그 다음 당하신 것 - 광야에서의 40일 금식과 시험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사건 - 세례 

 세례 받은 백성의 그 다음 코스 - 광야 

 

기근, 고난, 광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경험한 것 - 애굽으로 피신 - 사라를 아내가 아닌 누이라고 거짓을 말함 - 거짓을 행한 바로가 위험에 처하여 사라를 돌려주게 되는 사건 


예수님께서 광야를 이기신 말씀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 - 만나와 성막, 율법 - 말씀으로 관계를 맺으시는 하나님 


[시 1:1-2]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있는 사람이 하지 말아야 할 것 - 꾀를 쫓지 말고, 죄인의 길에 서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 

복있는 사람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 

->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 말씀과 함께 동행하는 삶

요한복음 1장 - 말씀은 곧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결국 말씀과 동행하는 삶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고 내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다" 


왜 열심히 믿는데 기근이 올까?

왜 점점 더 어려워질까? 

왜 일이 잘 안풀릴까? 

-> 왜? 세상의 가치관. 힘, 꾀, 교만, 탐심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버리고 오직 말씀으로 살아가는 훈련 


우리는 삶의 기근이 오면 본능적으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별 수단을 다 강구하게 된다. 꾀를 쓰고 빽을 쓰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쓴다. 

아브라함은 기근이 오자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고,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도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향한다. 

성도들도 삶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면 익숙한 세상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하게 된다. 심지어 점을 보고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도 본다.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가 정말 여호와를 의지하는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는지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런데 그 믿음은 신념이 아니라 오직 말씀으로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말씀이 없는 믿음은 헛된 신념이요, 우상숭배이다. 


  • 다윗은 이제 군대 장관에서 도망자가 되었다. 

사울 개인이 아니라 사울이 온 나라의 군대를 동원해서 다윗을 쫓는다. 

왕궁에 있었을 때는 사울이 내 본심을 알아준다면, 내가 딴 맘 갖지 않고 충성을 다한다면 회복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젠 오직 죽음을 피해 달아나는 삶 밖엔 없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다윗은 어디로 피하는가? 놉 땅의 아히멜렉 - 제사장들이 무리로 거주하는 놉 땅으로 피한다. 


그런데 아히멜렉이 자신을 반기는 것이 아니라 "떨며 그를 영접하였다"고 말한다. 

왜 제사장은 떨었을까? 사울과의 일을 알지 못하는 아히멜렉에게 한 나라의 군대 장관이 성전을 찾은 것은 죄를 지었거나, 정결하지 못한 일을 저질러서 정결의식을 필요로 하거나 문등병에 걸리거나 하는 안좋은 일 때문이다. 

성전으로 피하고자 했던 다윗이 아히멜렉이 왜 홀로 여길 왔느냐는 질문에 자신도 모르게 거짓을 말한다. 

다윗은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자다. 

그는 기름부음 받은 자였지만 어려움이 닥치자 "세상의 꾀"에 의지한다. 


자신은 사울의 비밀 업무를 수행하러 왔다고 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동행자에게 떡을 좀 달라고 청한다. 

아히멜렉은 다윗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제사장만이 성소에서 먹어야 할 거룩한 떡, 진설병을 주어 먹게 한다. 

다윗은 거짓으로 떡을 구한 것이고 이에 엘리 제사장의 후손이었던 아헤멜렉도 성전의 율례를 어기고 진설병을 제사장이 아닌 다윗과 다윗의 소년들에게 주어 먹게 한 것이다. 


그리고 골리앗을 죽일 때에도 사울의 검이나 세상의 칼에 의지하지 않고 승리했던 다윗이 스스로 위기에 몰리자 그것도 성전에서 제사장에게 무기를 구하게 된다. 

성전에는 골리앗의 칼만이 오직 믿음의 전리품으로 보관되어 있었다. 

그가 무기를 구하여 받은 것이 바로 골리앗이 쓰던 칼이 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다윗의 상황을 보여주는 듯 하다. 


굶주린 배를 채우고, 골리앗의 칼을 얻더 도피한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바로 가드왕 아기스에게 이다. 가드는 바로 골리앗의 출생지이다. 

기근을 피해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 바로에 의지하듯이 다윗도 성전을 떠나 적진의 중심, 가드 땅으로 갔다고 신하들의 말을 듣고 미친척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수염에 침을 흘리며 도망하게 된다. 


세상의 꾀를 의지한 결과이다. 그것의 결과가 무엇인가? 아브라함을 도와주었던 바로가 큰 재앙을 만나듯이 꾀를 내어 거짓으로 성전의 떡을 취했던 다윗을 도와준 결과로 아히멜렉과 놉 땅의 선지자 85명이 사울의 명령으로 떼 죽음을 당하게 된다. 

이것이 전통적인 해석이다. 


현대의 해석은 다윗이 성전에서 얻은 떡과 칼의 의미에 집중한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그냥 먹을 것을 구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떡 다섯개를 구한다.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나 있는대로..." (3절) 

이에 아히멜렉은 그에게 거룩한 떡을 내어준다. 


그리고 또한 성전의 제사장에게 전혀 성전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무기를 구하고 그 무기의 댓가로 자신의 믿음의 전리품인 골리앗의 칼을 얻는다. 


성경에서 떡과 칼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비유들이다. 떡 다섯개는 예수님이 행하신 오병이어를 떠올리고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설명하면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절)고 말한다. 

예수님은 안식일날 이삭을 베는 제자들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의 예를 들어 그를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히멜렉과 다윗의 행위를 변호하신다. 


(막 2: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핍절되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물론 다윗이 거짓을 말한 것과 가드 땅으로 피하다가 미친척 한 것은 그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믿는 자의 꾀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를 황폐하게 한다. 

그러나 그가 성전에서 얻고자 한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리고 일으키는 떡으로, 악한 죄와 사단을 물리치는 칼로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 그런데 다윗이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 육적 힘을 공급받고 있을 때 또 한명의 사람이 함께 머물러 있었다. 그는 다윗과 아히멜렉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목격했다. 

7절에 보니까 그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라고 나온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 육신을 위해 영적인 축복을 포기한 사람의 후손들이다. 

그는 왜 성전에 머물러 있었을까? 

그도 자신의 죄를 씼던가, 예배하던가 무언가 종교적인 이유로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윗도 그를 의식하지 않고 그 앞에서 숨김없이 아히멜렉과 대화했을 것이다.

그런데 도엑은 예배라던지 하나님의 말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던 자였다. 그는 예배에는 참여하고 있었지만 그 목적은 자기 몸을 위하고 자기 목적을 위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와 같은 자에게 예배는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하나님으로부터 떡과 칼로 비유되는 말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위장하고 자기의 목적을 이루는 수단일 뿐이다. 


그는 성전에서 나가서 곧장 사울에게 달려나가 이 사실을 보고한다. 사울은 아히멜렉을 취조하고 신하들에게 그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한다. 

제사장을 죽이는 것-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그들이 아무리 사울의 신하라 할지라도 감히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은 왕보다 높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삼상 22:17-18)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이켜 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의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고발치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 왕이 도엑에게 이르되 너는 돌이켜 제사장들을 죽이라 하매 에돔 사람 도엑이 돌이켜 제사장들을 쳐서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자 팔십 오인을 죽였고


왕의 호위병들마자 행치 않던 일을 얼마전 까지 함께 예배하던 자 속에 속해있던 도엑은 전혀 망설임없이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필십 오인을 죽인다. 

그에게 성전은 오직 자기 성공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시편 52편은 이러한 도엑의 행위를 하나님께 고하는 다윗의 기도이다. 

(시 52:1) (다윗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더라 말하던 때에)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시 52:2)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시 52:3)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시 52:4)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 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

(시 52:5) 그런즉 하나님이 영영히 너를 멸하심이여 너를 취하여 네 장막에서 뽑아내며 생존하는 땅에서 네 뿌리를 빼시리로다(셀라)

(시 52:6)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저를 비웃어 말하기를

(시 52:7)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고 오직 그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제 악으로 스스로 든든케 하던 자라 하리로다

(시 52:8)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

(시 52:9) 주께서 이를 행하셨으므로 내가 영영히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이 선함으로 주의 성도 앞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의지하리이다


성전에서는 연약한 자가 말씀으로 힘을 얻고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성전은 연약한 자들이 말씀의 떡과 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회복과 치유, 능력과 힘이 주어지는 곳이다. 

그런데 성전은 또한 끔찍한 일도 일어난다. 자기를 위장하여 가리고, 자기 목적을 위하여 언제든지 하나님을 이용하고 성전을 무너뜨릴 계책이 범람하는 곳이 또한 교회다. 

똑같이 예배를 드려도 누군가는 회복과 치유를 맛보고 세상을 이길 믿음을 얻는가하면 누군가는 그 안의 사람들을 판단하고 비난하며 더욱 악한 자가 나올 수도 있다. 


무엇이 이를 구분짓는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는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바라보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는가? 다 뒤로 하고 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사랑하기 위해서 이곳에 나왔는가? 

성전을 나갈 때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다윗은 떡과 칼을 취하여 세상으로 나갔다. 

비록 세상으로 피신하다가 더 큰 곤경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다윗은 점점 더 말씀을 의지하는 자가 된다. 말씀과 동행하는 자가 된다. 


[시 34:8-시 34:22] 다윗이 미친척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

(시 34: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시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34:11)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시 34:12)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시 34:13)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시 34: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시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시 34:16) 여호와의 얼굴은 행악하는 자를 대하사 저희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시 34:17) 의인이 외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저희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시 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시 34:20)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시 34: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죄를 받으리로다

(시 34:22)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시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