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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적, 게으름 (잠언 26장 14절) 


(잠 26:14)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가장 빨리 배우는 말 중 하나가 "빨리 빨리"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국은 분주한 사회입니다. 

걸어다녀도 빨리 빨리 걸어다니고, 운전을 해도 신호등 켜지기가 무섭게 후다닥 치고 나갑니다. 

서두름과 경쟁이 어릴적 부터 몸에 배여 있습니다. 


느긋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못 견뎌 합니다. 늘 분주하게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갑니다. 

바쁘지 않으면 무언가 불안해 하고 남들 보다 뒷쳐진 것 같은 감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

특히 스마트폰이 들어오고 나서는 길가를 다니면서도 잠시라도 시간이 나면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바삐 무언가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고 늘 분주하게 쫓기듯 살아가지만 늘어나고 있는 현상이 무언지 아십니까? 

유행에 뒤쳐질 새라 항상 바삐 움직이는데 정작 목표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을 만나면서 대화하다보면 학교에서 늘 경쟁하며 시험에 영어에, 몇가지 자격증을 준비하지만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기 적성, 진짜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그저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기 위해 바삐 뛰어다니기는 하지만 무엇을 위해 그리 열심히 달리는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의 스피드에 맞추랴, 신앙생활 한다고 예배 드리랴, 성경공부 숙제하랴, 이젠 또 필사한다고 까지 한다고 하니 이것 저것 신경 해야 할 것이 무진장 많습니다 .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랑 통화하거나 이야기 하다보면 나이 든 분들이나 젊은 분들이나 늘 시간이 없고 분주하다고 말씀들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분주한 가운데 평안함을 느끼십니까? 혹시 너무 쫓기는 삶을 살고 계시진 않습니까? 


주의 함께 공부하는 목사님들로 부터 많이 듣는 소리가 있습니다 .

"공부만 해도 힘들고, 목회만 해도 벅찬데 목사님은 공부와 목회를 같이 하니 참 대단하십니다." 

그런 소릴 자꾸 듣다 보니까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늘 마음이 쫓기듯 삽니다.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고 공부하고 있으면 설교 준비 할 생각이 머리 속을 채우고 설교 준비 할랴면 논문 쓸 생각이 뒤죽박죽 될 때도 있습니다 .

아이들 숙제 봐줄라치면 시간이 아까운 것 같고 아이들 엄마 한테 맡기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아이들에게 너무 무심한 아빤가 후회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뒤축이며 일주일 내내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아둥 바둥 살다가 피곤에 겨워 찌푸둥하게 누워있다가 화장실에 놓여진 책을 하나 읽었습니다. 오랫 동안 화장실에 놓아두고 잘 읽지 않던 책이었습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쓴 <게으름>이라는 책입니다. 책 뒷표지에 예화가 하나 실려 있었는데 그 예화가 제 머리를 때렸습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게으르기로 소문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 날도 역시 모두 밭으로 일하러 가고 그 농부만이 집에 남아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게슴츠레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니 어느 간 큰 도둑이 대낮에 담을 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도둑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농부는 마음속으로만 "어, 도둑이네.... 저놈 담장을 넘어 마당에 들어오기만 해봐라" 중얼거리며 다시 스스르 잠 속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이내, 다시 "쿵" 소리가 들렸습니다. 농부가 힘겹게 눈을 떠보니 도둑이 담에서 뛰어내려 마당을 살금살금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농부는 무겁게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이었습니다. "집안에 들어 오기만 해봐라...." 

농부가 깊이 잠든 줄로 안 도둑은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와 농부의 옆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농부는 잠에 취한 채 중얼거렸습니다. "저놈이 안방으로 들어가네..., 뭘 가지고 나오기만 해봐라...." 

얼마 후, 도둑은 안방에서 값이 나갈 만한 물건들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대문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게으른 집주인은 대문을 열고 나가는 도둑의 뒷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잠꼬대처럼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이놈, 다시 오기만 해 봐라" 

게으른 농부의 이야기를 읽으며 '정말 게으르다'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음 속에 "승구야, 이게 바로 네 모습 아니냐?"하는 소리가 느껴졌습니다. 

처음엔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데....하면서도 그 생각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주 동안 게으름이란 단어를 묵상하며 우리이 신앙생활, 성령의 가장 강력한 적이 게으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신앙의 게으름이란 것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나님이 뜻을 이루고 열매 맺는 삶을 살수 있을까 함께 나누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삶

타종교와 기독교,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타 종교, 특히 샤머니즘과 같은 우리 의식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종교의 역할은 기복입니다. 복을 기원하는 것입니다. 

치성을 해서 나에게 복을 보장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의 목적은 단순히 복을 기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분을 닮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여 주님을 항상 필요로 하고 따르는 것이 가장 큰 복이요 하늘나라를 소유하는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 너에게 복을 주겠다하지 않고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은 복 자체, 즉 하나님이 자녀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품을 가진 자가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단지 복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복 자체이신 하나님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은 쫓는 자가 아니라 복 자체, 복의 근원으로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닮은 자들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가? 

그것이 바로 주를 믿음으로 성화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이것이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불교나 유교 같은 데에서도 참선이나 학업을 통한 수행을 요구합니다. 자신을 경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자신을 성화 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부패성과 죄성이 우리를 지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육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전제를 우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우리의 부패된 성품으로부터 거룩하고 순결하게 우리를 성화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 스스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우리 안에 역사하심으로 우리는 그 분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의 정욕이나 소욕이 아닌 성령의 뜻을 따라 행하는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목적, 방법은 오직 성령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인정하고 영접하는 순간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자 애쓰며 또한 그 분이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 말씀 읽는 이유, 또한 예배 드리는 이유도 우리 안에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기도자체, 말씀 읽는 자체, 예배 드리는 자체도 주님을 닮고 성령께 순종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지 그것 자체가 우리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말씀읽고 예배드려도 예수님 닮지 않고 성령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성화의 과정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표적인 악이 바로 게으름입니다. 

게으름은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표적인 악입니다.

여러분, 게으름이 죄다. 악이다라고 생각하십니까?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 


열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은 청지기 - 각각 열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 ->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 - 한 달란트 그대로- 악하고 게으른 종아. 


하나님의 말씀 - 우리로 하여금 선한 열매를 맺도록 한다. 

그런데 그 뜻에 불순종하고 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 - 게으름은 곧 악이고 죄다. 


기드온- 300명으로 줄여라 

항아리에 휏불을 넣고 공력

여리고성- 그저 돌아라 침묵하라 .,  순종함이 없다면 어찌 이런 일을을 행하겠는가? 

하나님은 순종함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능력인데 순종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게으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게으름이라고 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정말 움직이기 싫어하고 누워있는 배짱이같은 자를 연상할 때도 있습니다. 잠언의 게으름에 대한 많은 구절도 이런 육신적인 게으른 자들의 특성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좀더 자자, 좀 더 눕자 하는....


그런데 우리가 잘 인정하기 힘든 또 다른 형태의 게으름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분주한데 정작 알맹이가 빠져 있는 목적을 잃어버린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하나님께 깊이 헌신된 사람들의 삶의 특징은 "단순한 삶"입니다. 단순한 삶을 살지 않고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충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의 삶이 단순해지지 못하는 것은 여러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고 싶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하니까 하는 일들, 그저 남들 따라 행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은 잠언 본문은 말합니다. 

(잠 26:14)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돌쩌기가 무엇입니까? 문을 여닫는 장치 입니다. 문을 여닫을 때에 문을 고정시키면서 동시에 회전하도록 받쳐주는 장치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사람은 움직이긴 움직이는데 밤낮 침대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입니다. 

침대를 중심으로 도는 삶은 열매 없이, 그저 잠자기 위해서, 달리 말하면 죽음을 향해 분주히 움직이는 삶입니다 .

매일 바쁘게 살지만 그저 정해진 자신이 일과 속에서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쉽개 없이 문이 닫히고 열리고 하지만 중해진 틀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하고 변화없이 반복적으로 움직일 따름입니다 


분주하다고 다 부지런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루어가며 난 그 안에서 얼마나 열매를 맺으며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누리지 못한다면 단지 문이 돌쩌귀를 따라 바쁘게 도는 것 같은 영적인 게으른 자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드리는 데에 변화가 없고 감동이 없고, 단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이라면 우리는 일상을 멈추고라도 의미를 되살려야 합니다.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없는 예배, 자신이 영혼에 참된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한 고통과 갈망이 없으면 이미 우리는 영적인 게으름에 빠져 드는 것이란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일상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매일 똑같은 반복인 듯 하지만 모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자 하는 목표가 없는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세상에 이리 저리 끌려다니는 동물처럼 영혼은 피곤하고 육체는 지치게 됩니다. 정해진 의무를 감당하기도 너무 벅찹니다. 의무적인 일들도 점점 형식만 남은 껍데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런 일상을 고단하게 되풀이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고사시킵니다. 


내 영혼의 간구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영적인 게으름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동행하리라는 분명한 목표와 하나님이 뜻을 이루려는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있어야 합니다. 


부지런함과 깊은 영성은 동전의 앞 뒤 면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충실한 삶을 살았을 때는 결과에 상관없이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육체의 피곤함을 이기게 하는 영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게으름에 빠져 있다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해야할 의무에 생각하기보다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무언가 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런 삶이 지속되면 결국 게으름을 통해 무기력하고 실패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는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말씀과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뜻을 묻고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

가까이 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실천합니다. 

그 말씀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이 모든 일을 주관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벗어나게 하고 아무 생각없이 살게 하고, 겉은 분주하지만 정작 갈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게 하는 것, 그것이 영적인 게으름입니다. 

그런 게으름에 빠지면 삶이 늘 쫓깁니다. 

분주한데 안식이 없고, 삶은 피곤한데 즐거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주함은 평안과 기쁨이 동반됩니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그런 유익을 누릴 수 없습니다 .


전 일주일 내내 주님과 관계된 일을 합니다. 신학을 공부하며 논문을 쓰고 일주일이면 적어도 일곱편의 설교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님과 관계된 일을 해도 그 안에 목적이 흐릿해지고 주님과의 개인적인 친밀함과 교제가 사라지면 온종일 그 일을 해도 내 영혼이 게으름에 빠지기도 합니다. 

일 주일 내내 설교를 준비하고 기도를 해도 이 목적에 합당하지 않게 의무감으로, 형식적으로 반복적인 삶을 살 때에 늘 피곤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비로서 영적인 게으름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게으름이라는 도적이 들어왔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항상 미리 알려주시고 미리 경고하십니다. 

게으름에 빠진 사람은 도둑이 넘어오는 것을 보면서도 일어날 생각을 못합니다 

방에 들어가도 두고 보기만 합니다.

내 영혼의 안식을 빼앗고 기쁨을 빼앗아 달아나는데도 다음을 기약합니다. 

어리석은 게으른 농부같은 삶을 살아선 안됩니다. 

깨어서 게으름을 내어 좇아야 합니다 .

부지런한 자가 충성된 자고 충성된 자가 착한 자라 일컫음을 받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그리스도의 청지기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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