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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을 이기는 신앙 (대하 33:1-3절) 


이스라엘이 솔로몬왕 이후에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되어 각각 19명씩의 왕조가 이어지게 되는데 그 왕들 중에서 그 왕들 중에서 책망받지 않고 오직  칭찬만 받은 왕. 악행이나 실수가 기록되지 않고 업적만 기록된 왕. -> 요시아 단 한 사람. 


다윗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인구조사를 행해서 책망받았던 왕. 

솔로몬은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1000명의 아내를 두며 남북분열과 우상숭배의 빌미를 제공한 왕. 

히스기야는 목숨은 연장받고 바벨론 사신에게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 안의 모든 기밀을 보여주며 나중에 바벨론 포로의 빌미를 제공한 자. 

몇명의 선한 왕. -> 산당을 제하지 않았다..그 대가로 반드시 어떤 사건을 일으켜 오점을 남기게 된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한 명도 선한 왕이 없었다. 그 시작 여로보암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대신해서 벧엘과 단에 그들만의 성전을 세웠는데 그 성전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세운 것이 황금송아지였다. 하나님인 줄 알고 믿었는데 결국 황금을 섬긴 것이다. 지금도 말로는 하나님 믿는다고 하는데 결국 돈을 의지하게 하는 신앙, 또 그것을 가르치거나 조장하는 신앙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을 소개할 때마다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더라"는 말이 반복이 된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황금송아지를 믿고 우상을 믿고 말씀을 읽고 순종하며 살았던 것이 아니라 그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던 것이다. 그 정점에 아합왕- 아세라의 선지자였던 아내 이세벨의 여왕으로 그는 국교를 아얘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신앙으로 바꾸어 성전의 제사장과 기구들을 다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기구와 제사장으로 바꾸어 버렸다. 


남왕국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하면 떠오르는 인물- 므낫세 

역대하 33장 -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섬기며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여호와이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서 지니가게 하며 점치며 시슬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9절-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그런데 이 므낫세도 나중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면 하나님이 받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신다. 

(대하 33:12)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대하 33:13)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그래서 말년엔 우상을 다 멸하고 백성들에게 명령해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하면서 비로서 하나님께만 예배하는 신앙을 가지며 죽게 된다. 


그런데 므낫세가 회개한 이야기는 열왕기하에 소개되지 않는다. 왕으로서 그를 평가할 때에 그는 아합과 같이 이스라엘의 신앙 자체를 타락시키게 한 장본인으로 그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므낫세보다 더 악한 왕이 있었다. 

그의 아들 아몬이다. 아버지가 이젠 여호와만 섬기라하며 유언을 하고 죽었건만 다시 우상을 세워 그것에게 제사하며 섬기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다가 회개하지 않고 죽은 것이다. 


남왕국 이스라엘 역대왕들 중에서 가장 큰 악행을 저지른 므낫세. 

그리고 그의 좋은점은 다 빼고 악한 것만 본받은 왕 아몬...


요시아의 출생은 유다의 가장 악했던 두 왕의 영향력 아래에서 출발하게 된다. 


그리고 대하 33:21절에 보면 요시아의 아버지 아몬이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가 22세다. 그리고 2년동안 실컷 악행을 행하다가 부하의 반역으로 살해당한다. 그리고 요시아가 왕위에 즉위하는데 그의 나이가 8살 때이다. 

아버지가 죽은 나이가 24살인데 그 때에 8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으니 따져보면 16살 때 요시아를 낳은 것이다. 


아무리 옛날이라고 해도 남자 나이에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그 당시에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가 방탕한 생활 중에 낳은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선한 왕의 이름 앞에는 그 모친이 누구였더라는 소개가 나오면서 그 어머니의 신앙의 영향력을 보여 주는데 이 므낫세에게는 어머니의 이름도 소개하지 않는다. 누군지가 중요하지 않을 뿐더러 신앙적인 영향력도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좋은 부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부인할 수 없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유산이 신앙임을 믿음의 사람들은 강조한다. 

나도 살아오면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얼마나 다행스럽고 축복으로 생각하는지 모른다. 

일반적인 세상에서도 자녀교육에 있어서 환경의 영향, 특별의 가정과 부모의 역할을 가장 절대적인 것으로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성경을 보면 가정과 부모가 꼭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믿음이 조상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드는 자였다. 

노아는 그 시대의 의로운 자여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두 번째의 인류의 조상이 되었지만 그의 아들중 함과 가나안은 구원받은 축복도 잊고 바로 범죄한다.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의 부모로 부터 태어났고 그 역시 기도의 사람이었지만 그의 자녀는 불행히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았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요 그의 삶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델이 되었지만 불행히 그의 아들 솔로몬은 복에 겨워 타락한 자의 상징이 되고 왕국 분열의 단초가 되었다. 


무엇보다 요시아왕은 흠없는 왕이었지만 그의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어떤 좋은 것도 물려 받지 못한 자였다. 

그의 환경은 최악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여덟살 때 왕이 되었다. 흔히 말하는 그의 자아라든지 사람됨이 형성되기 이전에 가장 최악의 환경에서 그는 왕이 되었다. 그를 통제할 수 있는 부모도, 가족도, 누구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엇으로 그의 삶과 신앙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신앙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상황과 환경을 이기는 신앙의 비밀은 무엇일까? 


34장 2절은 그의 삶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항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윗의 길,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함.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함부터 살펴보자. 성경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한다는 구절이 나오는 곳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유언하는 장면에서다. 


(수 1:7-8)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삶의 비결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에 있다. 

다윗의 길도 마찬가지다. 

그는 시편 1편에서 그의 삶의 길을 복있는 자의 길로 말한다. 

복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2)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가? 또 말씀인가라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부모의 영향, 가정의 안정, 더 나아가 국가의 안정보다 더 강하고 더 완전하고, 영향력이 강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딤후 3:16-17)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히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뜨거운 나라가 어디인가? 

가계의 수입중 교육비로 가장 많은 금액을 소비하는 나라는 다름아닌 한국이다. 

요즘 주위에서 이 한국의 교육열을 능가하는 나라가 중국과 인도이다. 

알다시피 중국과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요즘 중국의 기세가 높아서 미국을 추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떵떵거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 세나라의 부를 다 합쳐도 유대인들의 부를 앞서지 못한다. 

이들 세 나라의 노벨상 수상자를 다 합쳐서 20명이 채 안된다. 우리나라 1명, 중국이란 국가에서 받은 사람은 고작 2명, 중국계 미국인이 받은 것이 5명... 인도도 합쳐봐야 10명이 안된다. 


전세계에 퍼져 있는 유대인을 다 합치면 150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들의 절반 정도인 700만명이 미국에 산다. 

그래보았자 전체 미국 인구의 0.2%이다. 

지난해 까지 미국 동부의 아이비리그의 학생의 40%, 교수의 65%가 유대인이라는 조사가 나왔다.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30%이상이 유대인이다. 


무엇으로 그들의 교육을 설명하는가? 

유대인들의 가정교육, 학교교육, 회당교육...모든 것이 학계에서 연구되어지고 발표되었지만 결국 그들 자신도, 외부의 평가도 결국 어릴적부터 이루어져 오는 하나님의 말씀외에는 다른 대답이 없다. 절대 양보하지 않고, 항상 우선순위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가르치는 것이다. 


요시아의 삶의 비밀, 가장 악한 부모 밑에서 가장 악한 시대를 살았지만 그가 환경의 영향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바를 수 있었던 것, 이스라엘 마지막 부흥의 시대를 열었던 것....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교회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건 시작이지 그것이 나의 삶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내 삶에 형통을 주는 것, 어느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묵상은 단지 읽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을 씹어 소화 시키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 영혼 깊은 곳에 소화시키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머물면서 깊이 생각하고 그 말씀이 내 안에 이루어지도록 푹 잠기는 것이다. 


묵상은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보는 것이다. 묵상은 기도와 말씀이 하나되게 한다. 


요시아는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다. 다윗의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은 말씀을 묵상하다가 비로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체험하자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성전안에 이루어 지는 모든 죄악을 알았다. 

우상을 제거하고 비로서 하나님의 전을 성결하게 한다. 

말씀은 우리를 성결하게 한다. 죄악가운데 머물지 못하게 한다. 

죄의 상태를 못견디게 만든다. 

거룩할 수 밖에 없도록, 그래서 온전한 삶을 살게 한다. 온전한 삶은 건강한 삶이다. 건강한 삶이 즐거운 것이다. 


(요 8:31-32)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내 말에 거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과 삶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제자가 된다. 제자는 스승의 말을 따르는 자이다. 따르는 자만이 신앙이 주는 자유를 안다. 세상 어느 것에도 지배 받지 않는다. 집착되지 않는다. 중독되지 않는다. 무엇으로부터도 자유하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신앙생활은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된다. 부자유스럽게 여긴다. 

진리를 알때에만 자유해 지는데 진리는 말씀 안에 거할 때에 비로서 알 수 있다. 


요시아왕때 하나님의 말씀을 외친 자는 예레미야 선지자와 스바냐 선지자이다. 요시아왕이 죽자 유다의 멸망을 바라보며 슬퍼한 성경이 예레미야 애가서이다. 그만큼 요시아의 영향력은 이스라엘 전체에 있어서나 선지자에게도 희망이었고 기쁨이었다. 


스바냐서에 보면 "그가 너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하시로다"는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말씀을 사랑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다. 


어떻게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주일학교 학생부...아이일 때...어떻게 그들이 말씀을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2015년 저와 이형도 목사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하고 전념할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교회 출석이 다가 아니다. 헌신도 좋고 봉사도 좋지만 말씀 없는 봉사와 희생은 지칠 수 밖에 없고 결국 교만해지거나 탈진한다. 

말씀이 우선이다. 묵상이 우선이다. 

난 환경이 어려워서, 마음이 복잡해서 말씀이 안들어온다?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환경에 매여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붙잡힌 자가 환경을 이기는 것이다. 마음이 복잡할 때 내 마음을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이 말씀이다. 


2015년도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다가오는 성탄을 준비하면서 무엇보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가 되자!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