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2020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다니엘서 2장 14-24절 삶을 해석하라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가 극히 제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전문적인 용어를 빌리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20에서 20000헤르츠의 범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음으로 따지면 너무 낮은 음도 너무 높은 음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이고 너무 작은 소리도, 반대로 너무 큰 소리도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영역 마저도 개인마다 다를 뿐 아니라 나이가 들면 2만에서부터 만 정도까지 절반정도로 떨어지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소리를 듣기 위해 보청기를 끼기도 하는 것이지요. 

개는 4만 이상, 고양이는 그보다 더 높은 6만이상의 소리, 그리고 박쥐는 자그만치 120000정도의 초음파를 돌고래는 150000이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진이 나거나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 인간은 듣지 못하지만 땅의 진동하는 소리를 동물들이 듣고 먼저 반응을 하기도 합니다. 실재로 지구가 자전하면서 내는 소리는 너무 커서 인간이 들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게 된다면 아마 단 한 시간도 잠잘 수 없겠지요. 

하나님이 얼마나 신기하게 천지를 창조했냐면 각 생명체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를 각각 다르게 창조하셔서 각 생물체마다 들을 수 있는 범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언어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도 서로 듣는 것이 다르게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바닷길이 따로 있고 비행기길이 따로 있듯이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도 각각 다르게 정해놓으셨다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신앙생활, 영성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생활입니다. 

내 몸의 소리, 내 마음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고 살던 우리가 영의 소리에 눈이 뜨이고 영을 통해 하나님과 교통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영의 세계에 눈 뜨게 되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소리, 성령의 소리를 듣고 교통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서도, 기도를 통해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때에, 하나님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그 분의 소리를 들려 주십니다. 

CS루이스는 우리 인생의 고통의 순간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확성기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하나님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으니까 고통을 통해 하나님께 귀기울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여러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하나님의 소리, 그것이 우리가 나눌 입니다. 

프로이트 이후로 꿈은 개인이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고대로부터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나 혹 이방인들까지도 꿈은 신이 말씀하시는 통로, 신의 메시지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신의 뜻을 발견하는,신과 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일로 생각되어져 왔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 

바벨론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를 정복한 당시 최강의 국가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무언가 불길했던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2장 1절에 보니까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왕인데도 불구하고 꿈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신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무언가 하면 그 꿈의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바벨론이 왕이었지만 그는 꿈을 통해 불안을 떨치지 못했고 그 불안은 곧 분노로 이어집니다 


그는 바벨론과 그가 다스리는 모든 나라의 술객들과 무당, 박수, 술사등 모든 지혜자들을 불러 놓고 자기 꿈이 무엇인지, 그 해석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알아 해석하는 자는 상을 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그들을 죽이겠다고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왕이 명령을 받은 술객들의 반응이 무엇입니까? 

10절) 세상에는 왕이 그 일을 보일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11절) 왕께서 물으신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서 그것을 보일 자가 없습니다. 


술객의 입술을 통해서 중요한 진술을 하게 합니다 .

이세상의 것으로는 안됩니다 .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만이 아실 것입니다. 


왕의 꿈이 이 세상이 것이 아님을, 그것을 알 분은 오직 육체가 아닌 신, 즉, 자신들이 믿는 신은 이 세상의 신임을, 영의 신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꿈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특별히 우리가 읽은 이 다니엘서에서 꿈은 하나님이 계시의 수단으로 주어졌습니다 .

그런데 현대에 있어서도 꿈이 하나님이 계시의 수단이 될 수 있는가? 

한편에서는 성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완성된 계시가 주어졌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계시를 주시지 않는다는 것이고 

한편에서는 여전히 꿈과 예언등을 통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뜻, 그 분의 소리를 듣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논쟁의 핵심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계시의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소리인 성경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 이방인이었던 느부갓네살 왕에게 하나님께서는 꿈으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1. 느부갓네살 

그런데 그 말씀을 받긴 받았는데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마치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분명 뿌려지긴 했는데 그 씨앗이 무언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단지 그것이 좀 불길한 것처럼 자신에게 좀 부담을 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말씀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하나님은 어떤 통로를 통해서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혹은 사건을 통해, 혹은 오늘 느부갓네살 왕처럼 꿈을 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으로만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그 말씀, 하나님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

마음 속에 담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가기 바쁩니다. 애써 무시합니다. 

느부갓네살의 모습은 영적인 소리, 하나님의 계시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영이 마비된 세상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느부갓네살 주위에 있었던 바벨론의 모든 술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술객들은 단지 무속신앙인이 아니었습니다. 지혜자로 불리우며 모든 세상의 권세를 누리던 권세자들아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지혜자들일지라도 육체 밖의, 세상 밖의 일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이 말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2. 요셉

꿈의 사람하면 또 생각나는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과 다니엘은 참 많이 닮았습니다. 요셉도 다니엘로 포로로서, 노예로서 이방땅에 잡혀갑니다. 잡혀간 땅에서 오히려 총리가 되어 그 나라의 지도자가 됩니다. 그 총리가 될 수 있도록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 바로 꿈입니다. 요셉은 성경에 등장하는 제일의 꿈꾸는 자였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꿈 하면 그가 어릴 적 꾸었던 것만을 기억합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의 곡식단에게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한다는 것입니다. 


처음 꿈에서 그는 자신의 꿈을 생생히 기억하기만 했지 해석하지 못합니다. 

말씀을 듣고 기억하기는 하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지 못합니다. 


두 번째 꿈은 감옥안에서 만납니다. 자기가 꿈을 꾼 것은 아니지만 감옥 속에 함께 있었던 술 맡은 자와 떡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게 됩니다. 

김옥 속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민감해져 갑니다. 

그 말씀을 기억 할 뿐만 아니라 이젠 그 뜻이 무엇인지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의미인지 말씀의 의미를 깊이 발견하게 됩니다. 

세번째의 꿈은 바로의 꿈을 통해 하나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는 꿈을 해석 할 뿐만 아니라 그 꿈을 통해 지금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그 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행동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꿈을 통해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세번의 꿈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요셉의 신앙이 자라감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기억하는 자에서, 그 의미를 발견하는 자로, 의미를 발견하는 데에서 이젠 행동하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요셉을 보게 됩니다. 

 

 3. 다니엘 

 요셉과 마찬가지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을 통해 꿈을 만납니다. 하나님의 소리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 꿈을 만나자 다니엘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시간을 구한 것입니다. 

 "다니엘이 들어가서 왕께 구하기를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 해석을 알려드리리이다." 

 왜 시간을 구했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꿈을 주신 이에게 묻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자신의 신앙의 동역자인 하나냐와 미사엘와 아사랴와 함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니까 느부갓네살의 꿈이 자신들에게 임하기 시작합니다. 느부랏네살에게 주어졌던 소리가 그들 자신의 소리가 된 것입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성경 안의 누군가에게 주어졌던 말씀을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주어진 진리를 나의 하나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권세를, 내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확히 느부갓네살이 무엇을 꿈 꾸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 4장에 보면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지까지 정확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나라의 왕은 세명씩이나 바뀌어도 다니엘은 3대의 왕을 거쳐가며 그 나라의 총리로서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리더가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꿈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무 꿈에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깊어지게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메시지가 됩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 한마디도, 그리고 오늘 주어졌던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소리는 인생의 모든 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느부갓네살 왕처럼 하나님의 소리를 기억조차 못합니다. 예배 시간에 무엇을 들었는지, 기도 중에 어떤 감동이 왔는지, 그저 숨쉬고 살아가는 데에 급급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영적인 삶에 눈을 뜨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되기 시작합니다. 

내 삶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하고 그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나아가 이젠 그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은 꿈이 있을 때에 의미가 있습니다. 꿈은 우리 삶에 의미를 줍니다. 

그런데 꿈만 꾸는 사람은 허황된 사람입니다. 꿈꾸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꿈 속에서 의미를 찾되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또한 믿음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무엇입니까? 

바라는 꿈을 이루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꿈을 보이게 이루는 삶이 믿음생활 신앙생활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최고의 꿈입니다.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삶을 해석하십시오. 

그러한 말씀으로 해석된 삶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 안에서 꿈을, 말씀을, 이루어가십시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