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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살아나시다 (마태복음 28장 1~20절) 


에덴 동산에 거주하던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주하던 자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거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때부터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과 부분적, 제한적으로 교제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구약의 제사, 즉 예배를 통해서만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를 위해선 인간의 죄를 가리게 해 주는 속죄물, 희생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마다 흠없는 양이나 염소, 송아지나 비둘기, 혹은 곡식 등을 제물로 바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이런 것들을 드려도 인간의 죄를 다 가릴 수는 없었습니다. 

죄의 값이란 것이 이렇게 무섭고 무겁고 중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넘기고 군중들을 선동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죄가 없으니까 빌라도가 자기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죄를 찾지 못하니 난 그 피에 대해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합니다.  

그 피에 대한 값을 자신은 치를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뭐라고 하냐면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피에 대해 우리가 값을 치루겠다는 것입니다.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한 그 피에 대한 죄값이 무엇인지 압니까? 

40여년이 지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던 그 유월절,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였을 때에 성전에 대형 화재가 일어납니다. 

60만명에서 백만명에 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화재로 참사를 당했습니다. 

2천여년의 역사동안 피 값을 감당하겠노라 한 유대인들이 당한 학대와 참사는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죄의 값이란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라는 것, 부활이라는 것은 바로 이 죄를 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죄로 부터 완전히 해방되도록, 탕감해준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이요, 사탄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권세 사망 권세를 무너뜨리고 우리에게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다시오신 사건이 바로 부활인 것입니다. 더 이상 속죄물도, 희생제물도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에덴 동산에서와 마찬가지로 함께 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요, 십자가와 부활만이 살길이고 참길이고 바른 길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 복음서가 씌여진 것이고, 부활을 증거하다가 또 부활을 바라보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고 선교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부활보다 더 중요한 사건은 없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었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마태복음 27장 51절부터 보면 성소의 휘장이 둘로 갈라지고 지진이 일어나 바위가 터졌다고 증거합니다. 

무덤이 열려 죽은 자들이 거리를 활보했다고 증언합니다. 

예수의 죽음을 눈 앞에서 확인하고, 아니 죽였던 로마의 병사들과 백부장들이 그것을 보면서 심히 두려워하며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를 죽였던 그들이 죽음을 바라보며 증인이 됩니다. 십자가를 통해 회심하게 됩니다. 


예수가 부활 한 날 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28장 2절에 보니까 또 다시 큰 지진이 일어나 무덤을 막고 있던 큰 돌이 굴러 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무덤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두려움에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여러분, 무덤을 막고 있는 돌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무엇입니까?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사건 아닙니까? 

죽은 지 사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놓인 나사로 앞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요구한 것이 무엇입니까? 

"돌을 옮겨 놓으라!"는 말입니다. 


무덤은 무엇입니까? 죄악된 우리 모습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치루어야 하는 죄의 값, 바로 사망입니다. 

예수님이 그 곳에서 들어오셔서 우리를 바꾸어 놓으셔야 하는데 무덤 앞에 무엇이 있습니까? 큰 돌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요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내 아픈 속마음, 내가 여전히 품고 있는 변하지 않는 연약한 모습, 부정하고 싶은, 내가 홀로 만나고 싶지 않은, 하나님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내 굳는 마음, 타락한 마음, 몸에 배여 있는 죄악의 습관들....

  • 예수님은 내 마음 밖에 오셔서 이제 네 마음의 돌을 치워라하십니다. 하나님, 냄새가 나서 열 수가 없어요....썪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것이 정말로 주님과 대면하는 시간, 내 이름이 변하는 시간, 온전히 내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날 살리는 시간입니다. 


(요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내 마음의 돌을 치우고, 예수님께 내 연약함을 모두 내어 드리고 주님 내 마음의 굴로 들어오세요. 내가 죽어있는 공간, 죽이고 싶은 나의 모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살려 주세요... 그러면 사는 것입니다. 부활이 임하고 생명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 자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드라마들이 다루고 있는 트렌드 중에 하나가 바로 다중인격장애 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한 사람 안에 다른 인격, 혹은 여러 인격들이 들어 있어서 자기 자신이 자신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런 다중 인격이 나타나는 원인은 다름아닌 과거의 어떤 사건의 충격으로 자기의 인격이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에 다른 인격들이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괜찮은데 어떤 충격이 다시 임하면 전혀 다른 인격이 나옵니다. 

 평소 온유하던 사람이 갑자기 욱하고 소리를 지르며 폭력적이 되기도 합니다. 

 강직하던 사람이 충격을 당하면 값자기 어린애와 같아지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우리 안에도 드러나지 아니한 여러 인격들이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나 자신도 인정하기 싫고 드러내기 싫어하는 그런 모습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돌을 치우라는 말은 그런 어두운 내 모습, 가리고 숨겼던 내 어두운 모습을 열라는 소리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빛이, 성령이, 그리스도의 생명과 부활이 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 때에...제자들은 그 무덤에 가지 않습니다. 누구도 예수의 시체 곁으로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기대했던 전능하신 예수가 죽자 무력한, 무능력한 예수에게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여인들만이 예수가 계신 동굴로 새벽부터 일어나 갑니다. 

그녀들에게 있는 한 가지 걱정은 무엇입니까? 누가 무덤을 가로 막은 돌을 치워줄까? 예수를 보고 싶은데 돌이 가로 막혀 있어서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66절에 보니까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탄의 세력들이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켰다고 증언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그 돌을 치우려고도 하지 않고 그 곳에 오려고도 하지 않는데 여인들은 어떻게 돌을 치울까 염려하면서도 아무런 대책이나 도움이 없이 그냥 예수 앞에 나옵니다. 무조건적으로 예수 앞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에 오니까 어떻습니까? 이미 돌이 치워져 있습니다. 

예수와 우리 앞에 놓였던 돌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조건, 무작정 나오니까 어느 덧 돌이 굴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됩니다. 

자기 능력으로는 돌을 치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능으로 우리 모습 그대로 주님앞에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 다 아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오면 주님께서 그 돌을 치워주십니다. 

주님 앞에 가로막혀 있는 돌문을 주님께서 제거해 주십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그렇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중요한 사건인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있어서 철처하게 침묵하고 외면당합니다. 

부활을 목격한 병사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누구를 찾아가느냐 당연히 로마의 병사들이기 때문에 빌라도를 찾아가 보고를 해야 하는데 이 일을 누구에게 보고하느냐 대제사장에게 보고를 합니다. 

빌라도에게 보고를 하면 자신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지키지 못한 죄값을 치루어야 하므로 종교대제사장에 가서 도와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데제사장들은 또 어떻게 반응합니까? 

장로들과 함께 의논하였다는 것은 공식적인 말로는 산헤드린 의회를 열어 논의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결의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자는 동안에 와서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고 거짓 보고 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총독에게 형을 살지 않도록 우리가 막아주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거짓보고하기 위해서 또 대제사장들이 12과 15절에 두 번씩이나 걸쳐서 돈을 많이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감추기 위해서 대 제사장이라고 하는 자들이 돈을 주어 병사들이 거짓보고하게 하고 그들이 형을 살지 않도록 총독에게 뒷일을 막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부 활 사건에 대해서 사탄의 무리들은 난리가 나서 소동이 났는데 반대로 제자들은 누구도 부활에 대해서 알지도, 찾지도 않습니다 .


이 사건을 다룬 마가복음 16장 후반부를 보면 

11절)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13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14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라고 하면서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28장 17절에 보면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라고 증거합니다. 

눈 앞에 예수를 보면서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정도 되면 이들이 정말 예수님을 믿으려고 신앙생활 하는 것인지 안믿으려고 작정하고 신앙생활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세상은 지진이 나고 백부장은 회심하고, 제사장들은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 뇌물을 주며 별짓 다하는데 제자들이라고 하는 자들은 오히려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안의 돌이 막혀 있어 그렇습니다. 

내 안의 죄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내가 믿고 싶은 것만을 믿고, 참 진리에 눈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3년동안이나 예수를 따라다녔지만 성령을 받기 전 그들의 관심은 항상 "나"였다

천국에 올라가 내가 받을 상급, 내가 얻게 될 지위. 

예수가 죽자 그들은 생각은 이제 예수 없이 내가 어떻게 살지, 뭘하고 살지... 성령을 받기 전 그들의 관심사는 항상 "나" 

그런데 그 나라는 존재는 죄로 인해 가리고 감추고 숨겨진 수많은 아픔을 지닌, 많은 돌로 막혀 있는 무덤을 지닌 나입니다. 


그런데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관심사는 항상 "그 분" "주님"

사도바울..마리아... 살아있을 때에.. 어쩌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서럽게 억울하게 살았지만 누구보다 주님을 생각했던 자들.... 


우리는 기도할 때 

항상 주님이 그 자리에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주님이 부르실 때 내가 항상 그 자리에 있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나는 매 주일, 매일 새벽예배... 

매일 같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여러분이 없으면 찾게 된다. 

무슨 일일까? 아픈가? 속상한 일이 있는가? 시험에 들진 않았을까? 

내가 이 자리를 지켜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난 여러분들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고 항상 바란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하시고 파격적인 임무를 주신 이유;

오직 그녀 만이 언제나 주님 곁에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먼저 그녀에게 보이셨다.  

그러면서도 주님은 나머지 열한명의 제자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아가시고 

똑같이 잡수시고....때로는 꾸짖으시고...그리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관심은 이 제자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신다. 

(마 28:18-20)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전히 부족한 제자들을 찾고 또 찾아서 그들에게 보이시고 가르치시고 증거하시면서 그들을 사람으로, 예수의 증인으로 부르신다. 

 

부활을 믿으십니까? 

부활 신앙 안에 사십니까? 

임마누엘 하나님과 동행하십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는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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