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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당을 폐하라! (대하 32:7-23) 


요즘 새벽예배 시간에 열왕기하를 묵상하면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왕들에 대해서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바라보는 이유는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에도 반복되고 이어지는 모델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역사를 봄으로써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으려 하는 것이고 좋은 것을 닮고자 하는 것이지요. 

혹자는 왜 우리가 우리나라 역사도 알기 어려운데 남의 나라 이스라엘의 역사까지 알아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스라엘의 역사는 곧 우리 모든 신앙인이 역사이고 신앙인의 여정을 다룬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우리 신앙인들의 참과 거짓, 따라야 될 모델과 따르지 말아야 될 모델들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은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집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10지파가 속한 큰 나라였고 기원전 722년 아수르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19명의 왕이 치리하게 됩니다. 

남왕국 이스라엘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속한 작은 나라였지만 다윗과 솔로몬의 정통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였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나라였고 기원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때까지 20명의 왕이 치리하게 됩니다. 

남왕국이 약 150여년을 오래 지속하지만 왕들의 숫자는 거의 비슷하지요. 


이들이 나누어지게 된 원인, 패망하게 된 원인은 성경은 오로지 하나의 이유를 제시합니다. 바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한 죄로 인한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10지파로 시작되어 이스라엘 전체 땅의 중부지역인 사마리아와 북쪽 땅을 모두 차지할 만큼 강력하게 시작되었지만 초대 왕이었던 여로보암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예배드리러 가면 결국 다시 남왕국으로 마음이 돌아설까봐 벧엘과 단 두 곳에 성전을 지어 그곳에서 예배하게 합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한 것처럼 황금 송아지를 세워놓고 그것을 자기를 구원하신 여호와라고 부르게 하고 레위 자손이 아닌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세워 제사장으로 삼고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자기가 마음대로 절기를 정해서 예배하러 모이게 한 것이지요.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이들이 믿은 것은 결국 자기 마음대로 세워놓은 예배당과 자기들이 세워놓은 제사장, 자기 마음대로 정한 절기에 따라 예배를 드림으로 철저히 자기마음대로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아합왕 때에 이세벨 여왕으로 말미암아 그 거짓 성전마저도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차지하게 되는 완전히 우상 숭배하는 나라로 전락해 버립니다. 

19명의 왕들이 나왔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이 벧엘과 단에서 예배드리면서 예외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악한 왕이라 성경은 기록합니다. 


이에비해 남왕국 유다는 2지파의 작은 나라였지만 예루살렘 성전 중심으로 다윗의 정통성을 이어갑니다. 20명의 역대 왕들 중 그래도 7-8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선한 왕이었다고 성경의 저자들은 평가합니다. 

그런데 그들 선한 왕들도 반드시 지적받은 한가지의 잘못이 있었습니다. 

바로 산당을 제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사왕, 여호사밧왕, 나중엔 요아스왕, 아마샤, 웃시야, 요담왕 같은 사람들이 대개 선한 왕으로 평가되었지만 그들을 소개함에 있어서 공통된 표현이 "그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지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였다"는 표현입니다. 


도대체 산당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산당은 the high place, 즉 높은 곳이라는 말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당시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신을 모시면서 제사하던 장소입니다. 

(민 33:52) 그 땅의 원주민을 너희 앞에서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깨뜨리며 산당을 다 헐고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이 산당을 다 헐지 못하고 결국 그들이 우상숭배하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생활 중심은 성막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아 흩어지자 그들은 각기 처소에서, 즉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제사드리던 곳에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면서 산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로 바뀌기도 합니다. 

사울도 다윗도 다 산당에서 하나님께 예배했고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린 곳도 기브온이라는 큰 산당에서입니다. 


(왕상 3:2)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왕상 3:3)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왕상 3:4)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예전에 장례식장이나 영결식장을 가면 죽은 사람에 따라서 어떤 방에서는 기독교식으로 예배를 드리고 어떤 방에서는 목탁 소리가 나고 어떤 방에서는 미사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떤 때는 찬불가와 찬송가가 겹쳐서 들릴때도 있고 말도 아닙니다. 

산당이 이와 같았습니다. 

산당에 가서, 자기가 믿는 종교로, 거기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막 뒤죽박죽 혼합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 예배하는 것과 우상 숭배하는 것이 동등한 위치와 자격을 부여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산당제사를 싫어하시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이 산당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가 신명기 12장에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신 12:2)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 (산당)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신 12:3)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신 12:4)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신 12:5)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11절, 14절에도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그 계실 곳-> 예루살렘 성전) 


그러니까 솔로몬이 그 성전을 지었을 때에 하나님이 그것을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더 이상 우상숭배에게 절했던 그 곳에서 예배를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위한 장소에서 그들과 교제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열왕기서나 역대서에 솔로몬이 성전 짓는 이야기와 그것을 기뻐하시는 내용이 길고 자세하게 나와있습니다. 

한구절만 특별히 보면 

왕상 9:3절)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그런데 그렇게 기뻐하고 사랑했던 솔로몬이 타락을 합니다. 

(왕상 11:1)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왕상 11:2)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상 11:3)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왕상 11:4)솔로몬의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왕상 11:5)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왕상 11:6)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따름 같이 따르지 아니하고

(왕상 11:7)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왕상 11:8)그가 또 그의 이방 여인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그들이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왕상 11:9)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왕상 11:10)이 일에 대하여 명령하사 다른 신을 따르지 말라 하셨으나 그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구별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온전히 하나님과 교제하며 에배하였는데 얼마가지 않아 이방여인들과 사귀어 결혼함으로 예루살렘에 다시 산당을 세우고 그들을 향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을 본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솔로몬 이후 아사왕, 여호사밧왕, 아마샤왕, 웃시야왕, 요담왕같은 간혹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선을 향한 왕들이 나왔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산당을 제거하진 못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토록 싫어하시는 산당을 제거하지 못했을까?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도록 한 명령이 현실적으로 좀 어렵웠기 때문. 산당 중심으로 각 지파별로 단합을 이루어왔기 때문. 

산당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고는 산당제거를 자꾸 등한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안 나타나지만, 뭔가 산당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끌만한 ‘기사와 표적 또는 신비현상’이 나타났으리라고 추측해 봅니다.

여호와 제사든지, 이방 제사든지 막론하고.. 뭔가 신비체험이 있었다고 봅니다. 때로 점을 보고, 때로는 접신도 해가면서 결국 문제 중심으로 문제 해결 중심으로 가다보니까 이런 저런 방법을 추구했던 것이겠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다고 애를 쓰는 그러한 왕들에게서조차 

이 산당이 제거가 잘 안 되는 겁니다. 

반대로 사탄은 어떻습니까? 때때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으로 돌아가 은혜를 맛보아도 이 산당 만큼은 지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입니다. 영적인 승패가 이 산당에 달려 있기 때문이지요. 산당만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고 혼합시킬 수 있고, 저들의 신앙을 더럽힐 수 있기때문에 사탄의 세력들은 이 산당을 지키려고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산당을 없앤 왕이 두 명이 있는데 바로 우리가 읽은 히스기야 왕과 이후에 집권한 요시야 왕입니다. 

(왕하 18:3)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왕하 18:4)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 18:5)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왕하 18:6)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히스기야가 집권한 시기- 앗수르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그 지역 일대를 재패하던 시기

그런데 일개 남왕국 유다에서 그들의 신앙의 본거지인 산당을 제거하고 우상을 깨뜨린 것. 


앗수르가 가만히 있을리 없지요. 그들의 모든 군대를 동원해서 유다로 쳐들어왔습니다. 

앗수르와의 전쟁은 곧 산당을 제거한 것 때문에 일어나는 영적 전쟁이요. 하나님의 전쟁이지요. 

사탄은 세상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지금 히스기야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려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먼저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대하 32:7)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대하 32:8)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그러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가만있을리 없지요 

(대하 32:11)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를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대하 32:12)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이것이 어찌 여호와의 산당이냐?)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대하 32:13)나와 내 조상들이 이방 모든 백성들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모든 나라의 신들이 능히 그들의 땅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

(대하 32:14)내 조상들이 진멸한 모든 나라의 그 모든 신들 중에 누가 능히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대하 32:15)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그를 믿지도 말라 어떤 백성이나 어떤 나라의 신도 능히 자기의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조상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 하였더라


아주 히스기야도 하나님도 인격적으로 조롱하고 무시하며 그들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협하고 설득한 것입니다. 

너희가 무슨 힘이 있느냐? 그렇게 하나님 의지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냐? 


얼마나 그 조롱의 농도가 심했는지 열왕기상과 이사야 말씀을 읽어보면 우리가 당신들의 말을 알아들으니까 유대말로 하지 말고 당신들의 말로 하소서. 백성들이 듣겠습니다...."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러자 그들이 내가 히스기야만 들으려고 하는지 아느냐? 이스라엘 모든 민족이 이 소리를 들어야 한다하면서 더 크게 히브리말로 이야기 하지요. 


그것을 듣는 히스기야의 심정이 어떻했겠습니까? 

여기에 무너지느냐? 

아니면 끝까지 믿음을 지키느냐?

처음엔 이 위협과 살기에 져서 굴복당합니다. 

(왕하 18:14)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왕하 18:15)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왕하 18:16)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그런데 사탄의 세력은 약점 잡힌 사람을 놓아주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조롱하고 목을 점점 더 죄어 옵니다. 결국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듭니다. 


(왕하 19:1)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왕하 19:3)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이 오늘은 환난과 징벌과 모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을 때가 되었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이사야가 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바방하였으니 당신의 하나님이 그 들으신 말 때문에 꾸짖으실겁니다. 당신은 남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소서. 


(왕하 19:29)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왕하 19:30)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왕하 19:31)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주변국들을 파죽지세로 정복하며 기세를 올린 앗수르 왕 산헤립 앞에서 힘없는 유다와 히스기야 왕은 도저히 나라를 지킬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극적으로 교만한 산헤립을 제거하시고 유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처럼 1%의 가능성이 100%의 현실이 되는 구원의 역사와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는 역사가 지금도 하나님 안에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살다 보면 히스기야 왕과 같은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무서운 대적이 위협해서 낙심과 두려움과 절망의 기운이 엄습할 때입니다. 그때 실망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불평하고 원망하지도 마십시오. 그때도 신실하게 신실하신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대적을 직접 상대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 삶도 조정하시지만 내 상대의 삶도 조정하십니다. 삶의 기복은 있어도 성도는 최종적으로 반드시 승리의 자리에 올려 놓아질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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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annah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5.20 03:40

    요즘 열왕기상하 & 역대기상하 읽는 중에 "도대체 왜 역대왕들은 (히스기야, 요시아 외에) 선당을 제거하지 못했을까?" 궁금해서 googling 했는데 이렇게 명확히 설명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2. Hannah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5.20 03:40

    요즘 열왕기상하 & 역대기상하 읽는 중에 "도대체 왜 역대왕들은 (히스기야, 요시아 외에) 선당을 제거하지 못했을까?" 궁금해서 googling 했는데 이렇게 명확히 설명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