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2019  이전 다음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사사기 18장 단 지파와 미가의 제사장


17장부터 사사시대의 타락한 시대상을 보여주는 몇가지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미가라는 한 가정을 통해서 부모 자식간의 물질로 인한 탐욕의 모습, 기복신앙과 우상이 혼합된 혼합신앙, 그리고 자기 집안의 제사장을 두고 자기를 섬기게 하는 성직의 타락상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미가집안의 타락이 어떻게 단 지파의 타락과 연결이 되는지, 그리고 그 신앙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 (삿 18: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창세기 12장 -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너는 복이 되리라. 이 때 하나님이 지시한 땅- 가나안

                  - 출애굽을 통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그런데 이 가나안의 의미는 육적, 물질적 의미의 땅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말씀이 전제될 때에 그 땅이 복의 땅이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그리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그 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가나안 땅의 원주민을 철저히 몰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왜 단 지파는 사시기 끝에 가서도 땅을 구하고 다니는가? 왜 17장에서 레위인 청년은 거주할 곳을 찾고자 헤메이고 다니는가? 

                  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왕되신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자의 특성. 영적, 육적 방황이다. 물질이 있어도, 겉보기는 부족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왕되지 못한 자는 방황한다.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쉴만한 처소를 얻지 못한다. 헤메인다. 열심히 살아도 평안이 없고, 분주해도 산만하기 그지없다. 


단지파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땅을 분배받은 지파다. 왜 가장 마지막에 땅을 분배받았는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의 왕들을 다 몰살하고서도 그 땅의 원주민들을 두려워하여 감히 분배 받으러 나오는 자들이 없었다. 

여호수아는 그들을 제촉하여 각자 그림을 그리고 오라고 까지 한다. 비전을 품고 하나님 주신 복을 취하라고 한다. 그런데도 가장 마지막까지 망설이다 결국 가장 마지막으로 땅을 분배받은 것이 단 지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지파는 자기들이 살기에 충분한 땅을 유업으로 받았다. 

[수 19:40-48]

일곱째로 단 자손의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기업의 지경은 소라와 에스다올과 이르세메스와 사알랍빈과 아얄론과 이들라와 엘론과 딤나와 에그론과 엘드게와 깁브돈과 바알랏과 여훗과 브네브락과 가드 림몬과 메얄곤과 락곤과 욥바 맞은편 경계까지라 그런데 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단 자손의 지파가 그 가족대로 얻은 기업은 이 성읍들과 그 촌락이었더라


 그런데 땅을 분배받고도 단 지파는 그 안에 있는 원주민을 내쫓지 않다가 큰 봉변을 당한다. 

[삿 1:34-35] 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 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하나님이 주신 땅을 쉽게 얻지 못하자 단 지파 사람들은 기업으로 받은 땅을 포기하고 지금 거주할 땅을 찾아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 - 약속으로, 씨앗으로 주십니다. 그런데 그 기업을 얻기 위해서는 끝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죄악을 몰아내야 합니다. 싸워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편한 길로 가려고, 넓은 길로 가려고 하나님 주신 기업을 포기하고 길을 헤메고 있는 것입니다. 


단 지파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임의대로 다른 땅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러다가 당도한 곳이 바로 미가의 집에까지 당도한 것입니다. 


  • (삿 18:3)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미가의 집에서 그들은 그 집의 제사장이 된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길을 헤메다가 만난 적이 있었나 봅니다. 한 참 방황 할 때에 같이 놀던 사이인데 지금 부유한 집에 와서 제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깜작 놀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 어떻게 이렇게 수지 맞았냐? 대박났냐 하면서 지금 호들갑을 떨면서 그에게 자초지종을 묻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미가가 이러이러하다가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다"(4절) 고 말하지요. 

그가 잘 풀린 것을 보고 그에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하라" (5절) 하니까 그 제사장이라고 하는 자가 뭐라 말합니까? "평안히 가라 너희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영문 번역을 보니까 하나님이 너희 길을 승인하셨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어느날 갑자기 잘 풀렸더니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내가 이렇게 잘됐어..와 그 하나님께 나도 좀 물어봐죠...너도 잘 될거야 하는 신앙적인 대화 같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전혀 신앙적이지 않은 대화입니다. 

이 제사장은 지금 미가가 자기를 고용하여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자기의 고용주가 곧 미가임을 자백하는 말이죠. 

그리고 이 정탐꾼들이 하는 말도 우리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이 형통이라는 말이 Key Point입니다. 

성경에서 형통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요셉이 감옥에 갇혔음에도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함을 증거하며 그가 형통하였다고 전합니다. 즉 신앙적인 형통이라는 말은 상황이나 환경이 아무 문제 없이 잘 되는 그런 형통이 아니라 어떤 환경 중에서도, 오히려 고난 중에서도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을 형통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정탐꾼들이 말하는 형통은 그저 일 잘풀리고 세상적으로 대박나는, 운수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그 레위인 청년처럼 일 잘풀릴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만약 정말로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대화를 했다면 레위 청년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단번에 사람을 위한 거짓 제사장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 물어보라 했을 때에 그가 참 제사장이라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기도함도 없이 네 길을 여호와께서 승인하셨다는 말을 감히 내뱉고 있는 것입니다. 


  • (삿 18: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10절에도 모면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었더라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제사장의 말을 듣고 떠나 이른 땅은 라이스라는 곳이었습니다. 그 땅의 특징을 봅시다. "염려없고, 한가하고, 평안했다... 괴롭게 함이 없고, 부를 누리며.. 아무와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이것이 정말 복된 땅입니까? 어쩌면 지금의 사람들도 가장 꿈에 그리는 삶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 없이 염려없고, 한가하고, 평안한, 누구도 괴롭힘이 없고...그리고 별로 사람들과 상종함이 없는....그런 땅이 있을까? 혼자 살면 되지....그래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닐까요? 그런데 창세기에 보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땅을 얻기 위해서 단 족속이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삿 18:14)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이 있는 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그들이 전쟁하기에 앞서 행한 것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탈취하는 것. 왜? 그런 것들을 가져야 전쟁에 승리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마치 법궤를 가져야 승리해야 한다고 믿은 것 처럼... 

형식적인, 외식적인, 주술적인 신앙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전쟁을 치루라는 것인데 하나님은 하나도 없고 온갖 짬뽕되고 혼합된 우싱들을 다 가지고 전쟁에 임합니다. 


  • (삿 18:19-2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미가의 제사장의 행태- 더 좋은 조건을 위해서 단번에 미가를 배반. 

이런 일들이 교회 내에서도 목회자들 내에서도 얼마나 비일비재 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까?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운 모습 아닙니까? 


  • (삿 18: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미가 입장에서는 이게 하루아침에 뭔 날벼락입니까? 자기 집에서 손님을 잘 재우고 대접해 주었더니 그 손님들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집안의 모든 것을 다 탈취하고 자기 집의 제사장은 또 얼사꾸나 그들의 편에 섭니다. 

그래서 미가와 그 이웃들이 단 족속을 쫓아가서 따지니까 그들이 오히려 위협하면서 조용히 안하면 다 죽인다 협박까지 합니다. 

그러니까 미가의 반응이 더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그야말로 짐승의 세계 아닙니까? 약육강식, 적자 생존....

미가도 그러한 삶을 살았으니 할 말이 없는 것이죠...


  • (삿 18:27-28)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죽은 이유도 무엇-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그들이 행복한 이유가 그들의 사망의 원인...


  • 단 지파에 대한 야곱의 예언 

[창 49:16-17]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다윗 시대에는 아직 12지파 안에 있었으나, 그 후에는 그 이름이 완전히 사라져 계시록에서 요한이 환상에 본 천사가 인친 지파에서도 빠지게 됩니다. 초대교회때는 적그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출생했다고 믿어왔으며, 열두 지파 중에 가장 먼저 우상숭배로 타락한 족속이기도 합니다. 

 

'로고스 교회  > 사사기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사기 18장 단 지파와 미가의 제사장  (0) 2017.08.05
사사기 17장 미가의 신앙  (0) 2017.07.22
사사기 16장 삼손  (0) 2017.07.15
사사기 9장 (요담의 비유)  (0) 2017.07.15
사사기 8장    (0) 2017.07.15
사사기 7:9-18절 (기드온 2)  (0) 2017.05.13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