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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2:6-25 여호와 앞에서 담론하자 


사무엘상 12장은 이른바 사무엘의 고별설교라고 이름붙여 있는 장입니다. 사사나 제사장에 의해 통치되던 신정정치에서 이젠 정치적으로 왕정국가가 되면서 이제 사무엘은 백성을 앞장서서 이끌던 리더자에서 뒤에서 섬기는 중보자의 위치로 가게 됩니다. 

앞선 11장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조롱하며 압제했던 암몬 사람을 물리치고 드디어 사울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 앞에서 왕으로 추대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사울이 왕이 되는 과정도 복잡합니다. 

먼저 백성들이 왕을 세워 달라 하고 요구하게 되고 아버지의 암나귀를 찾아 헤메는 사울을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로 인도합니다. 

사무엘은 먼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사울에게도 세가지 예언을 하며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택하셨음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미스바에 온 이스라엘을 모아 각 지파에 천명씩을 뽑아 앞으로 나오게 하고 제비를 뽑아 베냐민 지파 마드리의 가문에서 기스의 아들 사울이 뽑혀 공개적으로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세우심을 선포합니다 .

그런데도 10장 27절을 보면 어떤 불량배는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면서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11장에 보면 사울이 그들을 조롱하는 암몬의 군사들을 완전히 무찌르자 드디어 모든 사람이 기뻐하며 백성들도 그를 왕으로 삼고 하나님 앞에 화목제를 드리면서 기뻐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은 이미 사울을 왕으로 택하셨는데 그것을 백성들에게 인정시키는 과정이 복잡하게 그려졌습니다. 계속해서 불신하는 것이지요. 

불량배, 불신하는 자라고 표현된 이 단어가 재미있는데 이 단어는 "벨리야알"이라는 말로 문제아, 불량배...이라는 의미로 쓰여집니다. 

자기들이 왕을 요구해 놓고 하나님이 왕을 주시자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이지요. 


이제 모든 백성이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자 이제 그들 앞에서 공적인 임무를 마치면서 이스라엘을 이끌던 사무엘이 마지막으로 공적인 선포를 하는 것이 바로 12장의 내용입니다. 


  • 먼저 1절부터 5절까지는 그가 어렸을 때부터 백성들을 이끌면서 사심없이 청렴하게 일해 왔음을 사람들 앞에 말합니다. 

그가 만일 부정을 저질렀거나 사람들이 보기에 악한 것을 행하였거든 증언하면 갚겠노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당신은 깨끗이 잘 자신들을 인도했다고 말을 하지요. 

그러니까 자신이 거짓없이 청렴하게 일해왔던 것을 하나님 앞에서와 새로 뽑힌 왕 앞에서 공개적으로 증언하게 합니다. "계속 증언, 증거"라는 법률적인 단어들이 등장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6절부터 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하신 모든 공의로운 일들, 정의로운 일들을 하나님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하고 말합니다. 

마치 재판정에서 재판을 하듯이 자신의 결백을 이야기 하고 이젠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다는 것입니다. 

"담론하다"라는 말 자체가 히브리 말로는 "새파트"라는 말로 재판하다. 판결하다. 영어로 번역된 성경을 보니까 "증거를 가지고 대면하다"라는 말입니다. 


  • 5절까지 자기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증거를 내밀라고 하던 사무엘이 이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어떻게 행하셨는가를 "증거"를 제출하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출애굽 시대부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조목 조목 이야기 합니다. 

8절에 "야곱이 애굽에 들어간 후" 야곱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조상입니다. 믿음의 조상하면 아브라함이지만 실질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제도적인, 국가 정체성의 조상은 야곱이지요. 


그 때에 너희들이 부르짖었을 때에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응답하셨다. 그런데 너희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잊어버렸다는 것은 기억을 잃어버린 것도 되지만 인정하지 않았다의 의미도 있습니다. 

너희가 부르짖어서 응답했는데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 후에 하솔의 군대장관 시스라의 손과 블레셋 삶들과 모압왕의 손에 넘어가서 백성들이 또 회개하고 부르짖게 되지요. (10절) 그래서 한 번만 더 구해주면 이젠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11절에 여룹바알, 우리가 금요일날 나누는 기드온이지요. 베단은 삼손의 별명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블레셋과 싸운 자 이지요. 또 입다와 사무엘을 통해 블레셋과 암몬을 치십니다. 


그런데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그들을 침입하는 왕들을 보면서 왕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삼상 12:12) 너희가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너희를 치러 옴을 보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노라. 


그러니까 왕들이 쳐들어 오면 백성들이 부르짖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사람들 보내어 구원해 주시는데 이것이 반복이 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 왕을 우리도 가지면 우리가 침입당하지 않고 우리도 남들을 침입하면서 살텐데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왕을 구한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무엇이 있는 것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아무리 선한 것을 역사하셔도 왕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악한 왕들이 자신들을 계속 공격하자 오히려 그 악한 왕이 우리에게라도 있었으면 하고 보이는 악한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EX) 어떤 청년이 어린 나이에 자기는 결혼도 하지 않고 주의 길을 가리라고 마음 먹고 살아갑니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혼기가 오니까 자꾸 주위에서 결혼하라고 말들을 하기도 하고 젊고 건강해서 그런지 자꾸만 음란한 생각 때문에 하나님께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청년의 정욕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또 기도할 때마다 은혜를 주시기도 했는데 자꾸만 정욕의 생각이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 차라리 결혼을 하고 또 주의 일을 하자 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처음에는 또 주의 일에 열심을 내서 살아가려 하는데 이제 아이들도 키우고 가정도 이끌어 가려고 하니까 자꾸만 경제적인 것이 걸림이 됩니다. 

"그래서 또 끊임없이 내가 물질에 얽매이지 않게 해 주시고, 물질에 자유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합니다. 기도 할 때마다 어려운 형편에도 살 길을 주시고 또 살 믿음도 주십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경제적인 문제가 닥쳐오니까 "차라리 돈을 벌고 그 돈을 가지고 주의 일에 쓰자"해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직장을 얻었습니다 .


여행, 취미.....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잔뜩 하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 왕을 구하는 백성들의 마음의 완악함을 보고 사무엘은 너희들이 왕을 뽑아도 결국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왕도 너희도 다 하나님께서 멸망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너희가 구하는 것을 다 해 주어도 너희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불량배이다. trouble maker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무엇입니까? 

21절)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을 것이요 

너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이다. 

그러니 너희 자신을 위해서라도 오직 그를 경외하고 마음을 다하고 진실하게 그를 섬기라 하고 말씀합니다. 


불량배처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불순종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다는 것이고, 사무엘은 자신을 버리고 새왕을 달라는 백성들을 위해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르치겠다고 선언합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하는 선지자의 마음입니다. 


  •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공기, 바람, 빛,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감각으로 인지하지 못할 것이 많은데도 자기가 붙잡지 못하면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자기가 구한 왕을 믿으려 하지도 않고, 자기가 구한 기도의 응답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떨 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보면 정말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완악하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믿음이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 (히브 11) 이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감각이지요. 만져지는 것을 만지고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은 감각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요,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는 것이요, 들을 수 없는 것을 듣는 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인 할례를 왜 신체의 은밀한 부분에 했을까? 

지난 갈라디아서 수업에서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가지 이론들이 있습니다. 가장 은밀한 부분까지도 하나님과 함께 하라. 

타락하지 말고 성결한 삶을 살라...


그런데 할례를 신체의 가장 은밀한 부분, 남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곳에 한 것은 결국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 일의 관계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여 줄 수도 없고 보여 줄 필요도 없습니다. 

그 증거는 나만 아는 것입니다. 내가 잊고 숨기면 하나님 앞에 부정직하고 불경건한 자가 되는 것이요 내가 인정하고 드러내면 찬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젠 그 은밀한 육체의 할례 마져도 마음에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증거는 우리 마음판에 있습니다. 우리 마음으로 하나님을 생각하면 각자마다 보여 주신 증거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과 여호와를 구별하여 썼습니다. 

하나님은 보통명사로 객관적인 신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 내가 경험한 하나님, 내가 만나고 교제한 하나님이  여호와 입니다. 

로고스는 객관적인 성경의 말씀이라면 나에게 주신 말씀, 내가 경험한 말씀은 레마, 즉 내게 주신 계명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증거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여호와 이십니까? 레마의 말씀을 경험하십니까? 

그 증거는 밖에 있지 않고 여러분의 마음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이미 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담론하자. 

증거를 가지고 나아가자.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로 제자요 증인들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그 이름을 선정해서 너무 안타깝지만 믿음의 삶은 바로 여호와의 증인으로 증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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