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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예배 설교 

요한복음 3장 16-17절 사랑하사 


성경은 신구약이 합쳐서 66권입니다. 거기에는 인류의 역사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의 때로부터 계시록의 예수의 재림의 때까지 우리 인류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3장 16절은 성경 66권의 모든 내용 중, 그리고 인류의 역사의 모든 일등 중에서 가장 핵심이라고, 가장 중요하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는 부분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유대인 바리새인 관원인 니고데모와의 대화중에 했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 하나님의 본심이 그대로 표현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 손수 지으신, 창조하신 보시기 좋았던 완전한 세상. 

평화와 풍요와 사랑과 열매가 풍성했던 세상. 

그런데 지금은 어떤 세상? 

죄로 부패하고, 서로 죽이고, 하나님과 인간이, 인간 서로 서로가, 인간과 자연이, 인간과 만물이 서로 원수된 세상. 희망을 잃어버린 세상....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패하고 어둔 세상을 끝까지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유일무이한 자신을 내어 주신 것, 그 분이 성육신 하여 이 땅에 함께 거한 것.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저를 믿는 자마다"는 제한과 무한이 함께 있는 구절- 그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가... 이방인이나 유대인 구별없이, 어느 누구나... 

   그러나 동시에 오직 그를 믿을 때에만... 그를 영접할 때에만... 그를 통해서 구원하시겠다는 유일한 조건. 


3장 1절은 니고데모라는 사람을 설명합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는데 유대인의 관원이라.”

즉 다시말해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고 유대인의 관원이라는 말입니다. 유대인의 관원이었다는 말은 공의회 산헤드린의 회원이었다고 하는 말입니다. 

산헤드린회원이 되려면 성경에 능통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하며,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도덕적 결점이 없어야 하고 또한 재력가이어야만 한다는 까다로운 자격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두 조건을 통해 니고데모는 학자였으며, 귀족이었으며 권세가 대단한 사람이었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인 동시에 부자였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니고데모가 지금 예수님을, 그것도 밤 늦은 시간에 찾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피해 은밀히 주님을 찾아와서 조심히 주님꼐 말합니다. 

현대의 학자들은 이 표현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 그런데 율법학자요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었지만 결국 영적인 흑암 속에서 살아온 니고데모가 그 빛을 보고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왜 니고데모는 예수를 찾아왔던 것일까요? 왜 그 많은 명성과 존경과 권위와 부를 획득한 니고데모는 만약 찾아온 것이 밝혀진다면 자신의 명예가 땅에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예수님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을까요.. 밤에 그를 잠 못 들고 예수님을 찾아오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키는 자라 할지라도, 그 자신이 아무리 성경에 능통하고 가르치는 자라 하더라도 그가 도달할 수 없고 그가 할 수 없는 것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인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가진 학식으로도, 돈으로도, 명예로도 할 수 없는 한계에 빠져있는 단지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깨달은 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가난한 자였습니다. 자기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였어도 채울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그를 괴롭게 만들었던, 그리고 그 모자란 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마음이 가난한 자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모자란 것을 채우기 위해 술을 먹고, 오락을 하고, 춤을 추고 바람을 피고, 도박을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것으로도 자신의 허전함을 채울 수가 없어서 혹시 이 분이라면 자신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자신의 신분을 무릅쓰고 예수님께로 찾아온 참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만이 믿음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무릅쓰고 하나님께로서 나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적인 자기 위치 때문에,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눈이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을 미루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자신의 우상 때문에, 너무 부자여서, 혹은 너무 가난해서, 질병 때문에, 인생의 실패 때문에, 어떤 이는 믿는 사람들의 추태 때문에 예수님께 나오지 못하지만 실로 자신의 심령의 가난한 자들은 이런 것들을 무릅쓰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켜도 평안이 없던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천국을 주십니다. 니고데모는 하늘나라를 소망해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혹시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선지자나 예언자나 혹은 메시야가 아닐까, 자기 민족을 로마의 압제에서 탈출 시켜 줄 분이 아닐까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심령으로 예수님께 다가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법을 알려주십니다. 


여러분이 어떤 이유로 이 자리에 나와서 주님의 말씀을 듣건, 여러분의 마음이 가난해서, 주님이 필요해서 여러 위험을 무릎쓰고 이 자리에서 주님께 여러분의 마음을 아뢴다면 주님께서는 다름아닌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2)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절) 


“당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입니까?” 하고 묻는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는 거듭나야 간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동문서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선문답하는 것 같기도 하는 것 같지만 니고데모를 꾀뚫어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니고데모에게 하늘나라의 비밀을 숨김없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네게 심령이 가난해서 그렇게 허전하고 괴롭고 한데 그것은 네가 하늘나라의 신분을 얻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네 마음의 가난함을 위해서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거듭나야 한다.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금의 네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네가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으로서 율법을 지키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던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거듭해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다.” “거듭나는 것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단지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되묻습니다. 니고데모가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군다나 그만한 지위에 있고, 남을 가르치는 전문적인 위치에 있고 성경의 교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해야 하는데 한 말씀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안타까이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책망까지 하십니다. 왜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까?


왜 그는 아직까지도 육적인 믿음, 땅의 믿음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영적으로 그는 아직도 목마르고, 배고픈 심령이 가난한 자이지만 그것의 원인을 영적인 데에서 찾지를 못합니다. 그는 지식적으로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 깨달음을 원했고, 또한 육적인 구원을, 평안을 원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든 유대인들 역시 그러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쫓아 다녔습니다. 그분이라면 내 병든 몸을 치유하시겠지, 내 허전한 마음의 위로가 되시겠지, 내 가난을 몰아내어 주시겠지. 우리 민족을 구출해 주시겠지... 예수님이 부활하시기까지 이러한 믿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분을 가까이서 따랐던 열 두 제자들 역시 그러한 믿음 가운데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시대를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 역시 그러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적인 부족함을 극복하고자 예수님께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모습으로라도 가난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 가는 길이 되어 주십니다. 


니고데모는 신실하고 겸손한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나지 못한 신자였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신자들은 아무리 경건하고 신실해도 땅의 믿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모든 축복을 세상의 복과 연결 시켜서 생각하고 평가합니다. 구약 시대때의 구원의 방법은 율법을 통해서였습니다. 인간이 그 말씀을 잘 지키면 복이 임하고 지키지 못하면 저주가 임하는 것이 구약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는 부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래 산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모두 당대의 부자였습니다. 욥도 당대의 부자였고 다윗도 솔로몬도 부자였습니다. 말씀을 잘 지킨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세상의 복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900살 이상 산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일찍 죽는 사람 신앙 좋은 사람에게는 잘 안나옵니다.  

그러나 신약성서에는 부자가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부자되었더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했더니 오래 살았더라라는 내용도 없습니다. 사람이 말씀을 잘 지켜서 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받고 성령이 임하더니 결국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더라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의 역할은 줄어듭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비로서 흡족한 열매들을 맺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의 가장 큰 축복은 순교로서 임합니다. 땅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들, 자신의 욕심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혹은 신자들을 죽이기까지 했던 사람들, 못배우고, 가난하고, 처량했던 사람들이 예수님 만나고 성령받아서 자신의 인생을 불살라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위대한 역사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복은 성령의 복은 땅의 복이 아니라 하늘의 복을 주제로 삼습니다. 구약의 복은 이땅에서 충성하고 고난받아 이땅에서 복받는 것이었다면 신약의 복은 이땅에서충성하고 고난받아 영원한 하늘나라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신약의 복과 구약의 복이 확 떨어져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일 낮 예배 때 배우고 있는 팔복에서 보듯이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면 구약시대때와 똑같이 땅의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의 결과로, 궁극적인 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팔복의 마지막 여덟 번째 복은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고 팔복을 끝맺고 있습니다. 복의 복, 복의 결과는 이땅에서 복음 때문에 핍박받더라도 하늘의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아직도 땅의 복을 사모하는 신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목사들도 땅의 복을 얘기해야만 신자들이 오기 때문에 땅의 복을 말하는 목자들로 넘쳐납니다. 아니 그들 자신이 땅의 복을 사모하면서 교회를 통해서도 큰 성전, 화려한 성전으로서 자신의 업적을 이루려 합니다. 니고데모도 땅의 복을 사모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더니 그는 하늘의 복을 사모하는 신자로서 바뀌어 갑니다. 바람이 불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듯이 그의 인생도 예측하지 못하고 제한 없는 성령의 역사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인생을 땅의 한계, 육의 한계를 벗어난 인생을 삽니다. 바람과 같이 자유하고 시원한 삶을 살아갑니다. 


처음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에는 남의 눈을 피해서 올 정도로 연약했던 믿음이 자라서 후에는 예수님을 잡아 가두려고 하던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옹호하며 “어떻게 그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그의 한 일을 알아보지도 않고 판단할 수 있는가 라고 예수님을 변호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요 7 : 50)에 나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33kg 정도 가지고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바르고 모시천으로 시체를 바르고 무덤에 모시는 장면이 (요 19 : 39)에 나옵니다. 


ex) 어렸을 적. 피부병으로 인해 학교도 잘 가지 못하고... 그저 책 읽고 거울 보면서...혼자 놀던 아이 

초등학교 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란 책을 통해서 나도 친구를 만들자... 해서 대화하기 시작한 것이 예수님. 교회는 다녔지만...깊은 신앙이 없던 때... 그냥 혼자 있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 분과  대화하게 됨. 

내가 처음 만난 예수그리스도- 내가 가장 외로울 떄 내 친구가 되어 주셨던 분. 


빵과 포도주의 마르셀리노 

어느 스페인 산촌의 수도원에 신생아가 버려진다. 할 수 없이 육아 경험이 없는 12명의 수사들이 애를 기른다. 개구쟁이 마르셀리노...다섯 살이 되자 이 귀여운 악동도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어머니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락방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상을 보게 된다. 순수한 영혼의 마리셀리노는 컴컴한 방에서 못 박혀 계신 예수님께서 배고파하는 줄 알고 안쓰러워, 수도원 주방에서 몰래 훔친 빵과 포도주를 매번 예수님께 갖다 드린다. 

이에 감동하셨는지, 예수님께선 십자가에서 내려와 마르셀리노와 얘기하며, 빵과 포도주를 맛있게 드시곤 했다. 한편 수도원의 주방수사께서 빵과 포도주가 없어지는 걸 눈치 채고 다락방으로 미행해 가보니, 

예수님께서 “아가야, 네 소원을 말해 보렴, 뭐든 들어줄게...”, 한 참을 있다가 마르셀리노는 “엄마가 보고 싶어요.”, 라고 말하니, 예수님께서 아기를 품에 안고 재운다. 이런 기적을 지켜 본, 

수사님들이 감격하여 무릎을 꿇는다. 잠시 후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르셀리노는 하늘에 계신 엄마를 보기 위해 영원한 잠에 빠져들고... 


니고데모가 처음 이해했던 하나님

법을 잘 지켜서 순종해야만 조금 다가갈 수 있는 하나님. 

그러나 아무리 말씀을 읽고 잘 지켜도 좀처럼 마음에 만족을 얻지 못했던 갈급함을 해결할 수 없었던 하나님...

그런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

그런데 육적인, 혹은 율법적인 마음에 젖어 있던 니고데모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그런 소리도 율법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내가 회개해야지... 

제일 답답할 때가 어떨 때인가? 본심을 몰라 줄때... 진정성을 몰라 줄 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내가 무엇을 해서 주님께 자격을 얻으려 하지 말고 그 분이 날 사랑해서 날 구원하셨다는 것을 그냥 믿어라.... 

그러면 내가 그 분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그 분이 날 사랑하신다는 사실... 

그것이 마음 속에 가득차면, 그 분의 마음이 내 마음에 느껴지기만 하면.... 난 저절로 그 분의 마음에 동참하게 되는 것. 

내 인생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분은 한 번도 나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사랑으로 날 이끌어 오셨고 또한 그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 분의 사랑을 나누어 주셨다. 


여러분! 마음이 가난할 때가 있지요? 누구도 이해해 주지 못하고 해결해 주지 못할 때가 있지요? 

그 때 다른 곳에 가서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조용히 골방에 들어가던가 예배당 의자에 앉아서... 

주님, 날 사랑하세요? 내가 마음이 아파요. 내가 마음이 가난해요. 허전하고 외롭고 무너져요. 

내 생명이 잃어져버린 것만 같아요.

그러면 나에게 그러하셨듯이 여러분에게도 꼭 다가가실 겁니다. 

하나님께서 너를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자마다 아파하거나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풍성한 삶, 사랑을 맛볼 수 있도록 내가 영생을 줄 것이다. 

그래서 그 절망과 허전함으로부터 일어나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그 분의 사랑을 주심으로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분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실 것이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플 때에도 허전할 때에도 니고데모 처럼 그 분께 나아가 하늘나라의 맛을 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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