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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율법 (디모데전서 1:5-11절)


디모데 전서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쓴 글. 


에베소 교회: 요한 계시록 소아시아 7교회 중 첫번째 교회 

                    아시아의 수도라 불릴 정도로 상업의 중심지, 번영한 도시 

                    아데미 신전이 중앙에 위치.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라. 변론하지 말라. 


바른 교훈의 목적: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 

결국은 사랑. 참 사랑.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 그 사랑은 무엇을 통해 나오는가? 

정결한 마음, 선한 양심, 거짓이 없는 믿음. 악한 마음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한 마디로 사랑인데 그 사랑을 위한 길이 정결한 마음 (회개), 선한 양심 (성화, 성결) 이고 거짓이 없는 믿음 (거룩한 삶으로 이르는 믿음, 신앙이 바탕이 된 삶, 삶으로 이어지는 신앙) 

예수님의, 그리고 바울의 모든 교훈은 결국 정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을 통해 참 사랑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말씀의 핵심은 사랑.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 사도 바울, 디모데, 그리고 이어서 사도 요한이 이어 목회

                                  사랑의 사도.                     


"네 첫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4절) 


기가 막히지 않는가? 그렇게 강조하던 사랑에 대해 책망받았다. 


왜 사랑을 잃어버리는가? 헛된 말에 빠지기 때문이다. 

헛된 말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 믿기 전에 의지하던 세상의 믿음과 풍조이다. 


(행 14:15)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디모데가 살고 있던 루스드라에서 일어났던 일. 

바울의 기적을 보고 제우스로, 헤르메스로 섬기던 사람들. 자기들이 만들어 낸 신에게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 

헛된 믿음. 헛된, 열매가 없는, 무의미한, 공허한 그러한 말과 신앙 때문에 사랑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하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헛된 말에 빠지는가?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지식과, 자신의 바름과 자신의 뛰어남을 드러내기 위해서 결국 자기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자기 자랑을 앞세운 자들이 율법을 가지고 자기 자랑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많이 앎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그리고 가르친다. 

가르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가 가르치는 것은 자신이나 상대방에게 불행한 일이다. 


율법은 왜 우리에게 주었나? 

율법의 목적, 율법의 정의는 무엇인가? 

(롬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율법은 죄를 깨달으라고 주신 것이다. 즉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의에 다다를 수 없다. 율법은 회개에 이르는 통로이다. 

구약시대의 율법- 죄를 깨달아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매일 같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야 했다. 율법은 제사를 드리기 위한 깨달음, 고백의 통로였다. 


그런데 흔히들 율법교사, 율법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 거룩함을 추구하게 되었다. 스스로 의로워지리라는 착각을하게 되었다. 그래서 율법을 통해서 자신은 더 우월해지고 상대방은 더욱 더 정죄하게 된 것이다.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해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을 위한 것이다? 


그럼 옳은 사람은 율법이 필요 없는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결국 옳은 사람이 이 세상에 없기에 율법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결국 9절부터 10절까지의 모든 불법적인 일, 부정한 일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든 죄인을 가리킨다. 


율법은 선한 것이기에 율법에 의해서 맺어지는 것은 선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대 율법을 통해서 악한 변론이나 다툼과 비판과 판단이 맺어진다면 그것은 율법을 법 있게 쓰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는 나쁜 습관은 타인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서는 지적하고 책망하고 드러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은 감추고 싶어 하면서도 타인의 실수에 대해서는 드러내고 공격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이런 나쁜 습관 때문에 선한 율법을 법 있게 쓰지를 못하고 내 자신이 율법의 선생이 되어 지적하고 파헤치면서 헛된 변론과 다툼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말씀을 도구 삼아 타인을 지적하고 다스리려고만 할 뿐, 정작 내 자신이 말씀에 의해 책망 받고 다스림 받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내 자신이 말씀의 다스림을 받으며 산다면, 항상 말씀에 의해 자신의 실체를 보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남을 비판하고 지적하고 판단하고 책망할 자격이 나에게 없음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처럼 다스림 받는 것이 없기에 항상 타인의 것만 파헤치는 데 열심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말씀의 간섭을 받고 있는 흔적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분명하고 뚜렷한 증거는 자기 자신을 보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실수와 잘못만을 보던 눈이 자신의 실수와 잘못함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해 타인을 책망하던 책망이 자신을 향하게 되는 것, 이것이 말씀의 간섭을 받고 있는 분명한 증거인 것이다. 


교회 와서 은혜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픈자, 병든 자, 죄인이라 외치는 자들이 와서 은혜 받는다. 

또 괜찮은 줄 알고 살았는데 말씀 듣다가 자신이 괜찮은 것이 아닌 줄 아는 사람이 와서 은혜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은혜 받기 가장 힘든가? 

그래도 남들보다 낫다. 남들보다 열심히 살았다. 남들보다 선하게 살았다고 생각이 굳어진 사람이 도무지 복음의 은혜가 심령에 들어가지 못한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내가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거짓이요 잘못 보는 것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보는 것이다. 


율법은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 

그런데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면 은혜 없인 못산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날 죄에서 꺼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나님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디모데에게 부탁하신 영광의 복되신 영광의 복음(11절)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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