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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1-10절 (두 가지 시선)

 

제 구시 - 오후 세시: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는 시간

11시 예배 - 아침과 점심의 중간 - 가장 중요한 시간.

 

성전에 올라갈 새 - 일상을 멈추고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는 것

예수가 성전 척결을 하면서 하신 말씀 - 이 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다른 목적으로 성전에 온 사람. -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해서... 날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 지금 나이 40살

지금도 당시도 사회의 가장 주축, 중심의 시간

그런데 나면서부터 육체의 병으로 인해 그런 중심을 잃어버리고 그저 구걸하기 위해서 성전에 오는 사람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만 있는 자.

-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자. 성전 안의 예배를 경험해보지 못한 자.

마가 다락방 안의 사람들과 다락방 밖의 사람들.

 

은혜의 안에 있는 사람 - 오직 주만, 오직 성령만

은혜의 밖에 있는 사람 - 당황하고, 놀라고, 조롱하고---오직 사람만 보이는 사람.

 

은혜의 소리는 듣고, 그 사람들은 보지만 정작 그 은혜는 누려보지 못한 자.

 

교회 문 앞을 기웃거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성전 안, 신앙 안, 믿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성전과 세상의 경계선 상에서 서있는 신앙이어서는 안됩니다. 신앙 비슷한 것이어서도 안됩니다. 이왕 신앙생활 한다면 성전 깊이 들어와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3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본다. - 그리고 구걸한다.

4절 -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 두 시선이 마주치는 사건

그는 받기를 원한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받기를 원하는 자의 대상은 돈이다.

주기를 원하는 자의 대상은 그리스도다. 은혜다.

 

받기를 원하는 자와 주기를 원하는 자가 만나면 곧 교제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받는 대상이 다르고 주는 대상이 다르면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받아야 사는 존재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과 우리가 받고자 하는 것이 다를 때 거기엔 진정한 만남이 있을 수 없다.

 

베드로가 그 불일치를 깨뜨리는 선언을 한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 네가 얻고자 하는 것 내게는 없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내게 무엇을 찾는가?

우리는 무엇을 주고자 하는가?

우리에게 없는 것은 은과 금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 그러나 우리에게 있는 것 예수 그리스도

가장 귀한 것. 누구에게? 그 은혜를 아는 자에게....

 

이것이 합쳐질 때에 성령이 임한다. 아무리 받고 싶은 사람과 주고 싶은 사람이 만나도 그 대상이 바르지 못하면 항상 부딪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 대상이 그리스도로 합쳐질 때에 은혜가 임한다. 역사가 임한다.

그 예수는 바로 그 사람이 가장 필요한 것,가장 근원적인 것- 멈추어진 인생이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주었던 것 - 은과 금

물론 고맙고 선하고 감사한 것이지만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시간이 지나면 계속 사라지는 것. 가져도 가져도 만족이 없는 것.

따뜻한 마음도 중요하지만 예수가 전해지지 않는다면 딱 거기까지다.

 

돈도 주고 예수도 주면 안되는가? 아니다. 돈을 주면 예수를 찾지 않는다. 예수를 바라지 않고 돈을 찾는다.

 

선교학 강의 - 한국 선교에 대한 세계의 비판 - 그들은 복음이 아니라 돈을 전한다. 예수의 십자가가 아니라 자기들의 이름을 붙인 교회만을 짓는다. 그들은 십자가의 선교가 아니라 십자군의 선교만을 할 뿐이다.

 

내게 있는 것 - 여러분에게 예수가 있는가?

여러분 안에 예수가 있는가?

그것에 확신이 없기 때문에 예수 대신에 돈을 남겨주고자 하지 않는가?

교회가 예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는 집 대신에, 카페, 체육과, 콘서트홀.... 이런 것들에 신경쓰지 않는가?

 

내 부모.... 나에게 남겨주실 동산, 부동산은 하나 없지만 내게 주신 가장 귀한 것. - 예수

형제가 모두 예수를 물려 받았다.

얼마나 감사한가....

 

기적 - 뛰어 서서 걸으며....

그것 보다 더 큰 기적 - 성전으로 들어갔다. 한번도 들어간 적 없는 성전 안의 세계, 은혜 안의 세계, 깊은 물의 세계, 지성소의 세계를 경험했다. 이것을 경험 한 적 없는 자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이것을 경험한 자, 그리로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하고 싶지 않은가? 뛰어 서서 걷는 것 보다 가장 큰 기적

-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인생의 무게가 떠나갔다. 노래 할 수 없는 자가 노래한다. 하나님을 향해 찬양한다.

 

노래는 내가 좋아서, 나를 위해서, 나를 향해서 부르는 것

찬양은 그가 좋아서, 그를 위해서, 그를 향해서 부르는 것.

어떤 환경에서도 변치않는 그를 위한 노래... 찬양.

 

남에게 돈을 구걸하던 그, 관심과 도움만을 구하던 그가 비로소 진정으로 예배하며 찬양했다.

 

앉은뱅이 - 홀로 설 수 없는 자. 홀로 걸을 수 없는 자.

그가 예수를 통해 걷고 뛰고, 그리고 찬양한다. 성전 안에 들어가 예배한다.

 

떄로 우리는 영적 앉은뱅이가 된다.

주님은 여전히 오늘의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데 우리는 구원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 무엇일까 관심을 가질 수는 없을까?

우리가 처한 환경을 통해, 우리가 짊어진 감정과 관계와 짐과 고난과 광야를 통해

그가 주시고자 하는 것, 그가 주시는 평안, 그가 주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 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우리에게도 앉은 자리에서 뛰어, 서서, 걷는 역사, 성전 안의 깊은 곳을 체험하는 은혜, 노래가 아닌 진정한 찬양이 넘치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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