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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빌립보서 3:12-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 서론 


우리의 삶은 항상 무엇인가를 붙잡고 삽니다. 무엇을 붙잡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의 성숙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은 인기와 명예를 붙잡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과 재물을 붙잡고 삽니다. 어떤 사람은 취미와 습관에 붙잡혀 삽니다. 어떤 사람은 술과 담배와 같은 것에 붙잡혀 삽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붙잡고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강아지 목에 줄을 매는 이유는 내 맘대로 끌고 가기 위함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줄도 무언가에 매여 있으면 누군가에 의해서, 아니면 세상의 어떤 힘에 의해서 끌려가게 됩니다. 

 

김홍신 씨가 쓴 <인생사용 설명서>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시장>이라는 밀리언셀러 작가이며, 8년 연속 의정활동 1위 평가를 받은 국회의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37년 6개월 동안 담배를 피웠습니다. 폐암의 위험이 있거나 간접적인 살인행위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 번쯤 끊어볼까 생각도 했습니다. 원고를 쓸 때는 하루에 보통 서너 갑의 담배를 피웠습니다. 얼마나 담배를 좋아했던지 ‘죽는 날에도 

담배를 입에 물고 죽겠다’는 수필까지 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좋아하던 담배를 끊었습니다. 스승께서 던지신 한 마디 말씀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쥐는 쥐약인 줄 알면 먹지 않는데, 사람은 쥐약인 줄 알면서도 먹는다.” “아주 뜨거운 물 잔은 얼른 내려놓으면 되는데, 붙잡고 어쩔줄 모르니 델 수밖에 없다.” 

 

그는 마음에 결단을 합니다. “세상을 끌고 가도 시원찮은데, 담배한테 끌려 다니다니” 그는 37년 6개월간 쥐고 있던 뜨거운 물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백해무익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담배에게 끌려 다니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처음 6개월 동안은 금단현상으로 어려웠지만 의미 있고, 보람된 일, 사랑하는 일에는 끌려 다닐 수 있지만 백해무익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담배에는 절대로 끌려 다니지 말자고 결심했습니다. 마지막까지 피우던 담뱃갑과 일회용 라이터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몇 년 동안 놓아두었습니다. 담배가 눈에 보여도 피우지 않아야 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가 담배를 끊었다는 말을 듣고 지인들이 ‘참 독한 사람’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김홍신 씨는 말합니다. “독극물을 삼키는 사람이 독한 사람이지 어찌 버린 사람이 독한가?” 

 

대학때, 술 못먹는 사람들, 특히 여자들을 위해 개발한 술- 레몬 소리, 채리소주,,,-> 달콤한 맛에 취하는 줄도 모르고 마시게 됨. -> 죄의 모습이 이렇게 다가온다. 


우리가 잘못된 것에 붙잡히면 그것으로부터 헤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닫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나쁜 습관이나 버릇에 매여 있지는 않습니까? 내 인생을 좀먹고, 내 신앙을 떨어뜨리는 것이라면 속히 그 뜨거운 물 잔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미물인 쥐도 독약인 줄 알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들이 계속 독약을 품에 안고 끌려 다닌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으로 나를 붙잡고 있는 모든 나쁜 습관과 버릇으로부터 자유해 지시기를 축복합니다.


2. 본론 

1) 내가 붙잡힌 바 된 것은 무엇인가? 내 사명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는 가장 의미 있는 것에 붙잡힌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붙잡을 수 있는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2절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사도바울은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잡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붙잡을 수조차 없는 미련한 인생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보려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택해서 하나님의 복을 붙잡으려고 했고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서 그들의 신을 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붙잡힌 바 된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날 붙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붙잡으려던 사도바울이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는 살아계신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이 주님의 말씀 앞에 거꾸러집니다. 거룩하신 주님의 빛 앞에서 육신의 눈이 멀었지만 새롭게 영적으로 눈을 뜹니다. 이제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은혜는 무엇이냐? 과거에 자기가 보던 세상의 눈이 멀고 새롭게 은혜의 눈이 여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이 머는 것은 육신적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어리석고 무능한 것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전적으로 주님 앞에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똑똑한 척 살아가던 나를 버리고 예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인생의 슬로건이 바뀌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사람입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세상의 힘과 권력을 붙잡은 사람은 다 망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 붙잡힌 자들은 다 승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붙잡혀 있으면 안 됩니다. 예수는 우리를 가만히 붙잡고 있지 않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붙잡힌 자 된 자들을 깨닫게 하시고 움직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누구나 사명자가 됩니다. 사도바울도 주님의 손에 붙잡힌 순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사명을 깨닫습니다. 우리들이 전능하신 주님의 손에 붙잡히면 인생이 바뀝니다. 내 삶의 가치가 바뀝니다. 내 인생의 꿈과 목표가 달라집니다. 어떤 고난도 뚫고 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생깁니다.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고, 오히려 주도하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됩니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왜 능력없이 살아가는가? 예수께 붙잡히긴 했는데 무엇을 위해 붙잡힌 지에 대한 목표가 없습니다. 일제때, 6.25때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무너진 나라를 일으키는 것, 가난한 나라에서 축복받은 나라로, 사회로, 가정으로 나아가는 것.... 그 때는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축복 이후의 교회는 목표를 잃어버렸습니다. 신앙의 푯대를 잃어버리니까 큰 교회 만드는 것,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 예수님께 붙잡힌 바 된 목표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것을 얻고자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도바울은 삶의 목표가 분명했습니다. 그는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그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사도바울의 인생의 목표는 세상의 명예나 권세가 아닙니다. 바울은 자기가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깁니다. 예수님께 붙잡힌 후에 그의 인생은 오직 예수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그의 삶의 목표를 분명히 제시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바로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는 목숨을 걸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분명한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 목표가 빗나가면 아무리 수고하고, 많은 것을 소유해도 그것은 모래성과 같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세상의 힘을 갖게 되면 자기 이기심과 욕망을 위해 힘을 사용합니다. 세상을 섬기라고 주신 축복을 자신의 욕망을 위해 쓰게 됩니다. 결국 자신도 무너지고, 그가 속한 공동체 전체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ex) 어느 바닷가에 한 등대지기가 있었습니다. 고기를 잡으러간 배들이 등대의 불빛을 보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동네에 사는 나이 드신 할머니가 와서 기름을 좀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너무 딱해서 등대를 밝힐 기름을 좀 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할머니가 다시 찾아와 다급하게 기름을 좀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번에도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기름을 주었습니다. 계속해서 할머니는 기름을 요청했고, 등대지기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기름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비가 내리고, 성난 파도가 무섭게 몰려오는 밤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등대의 불을 환하게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기름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많은 배들이 항구에 돌아오지 못하는 조난당하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등대지기의 사명은 언제나 등대의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에 이끌려서 기름을 주다보니 정작 등대를 밝혀야 할 시기에 등대를 켜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목표와 사명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망각하면 안됩니다. 교회의 사명은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2)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는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이미 얻었다고, 온전히 이루었다”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에 있는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순교하기 한 5,6년 전쯤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시 바울의 나이는 60대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난 30여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소아시아를 누비며 많은 사람을 구원했습니다. 배가 파산을 당하고, 수없이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믿는 자의 수가 많아졌습니다. 

 

나이가 60이 넘었고, 그동안 사역의 열매로 보면 누가 보아도 훌륭한 사도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이쯤 되면 노년은 좀 여유 있게 즐기면서 사역을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간다고 선언합니다. 다시말하면 ‘나는 아직 불러주신 주님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뒤에 것은 모두 잊어버리고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달려간다’는 헬라어로 ‘dioko’인데 의미는 사냥개가 먹잇감을 보고 전심전력하여 달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인간문화재이신 박동진 옹이 있습니다. 그 분이 TV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까지 저는 매일 아침 하루 4시간 이상 소리 연습을 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몸이 아프거나 피곤하거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소리 연습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자가 너무나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아니 한국의 최고 명창으로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고생을 하십니까?” 그 질문을 받은 박동진 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소리를 연습 한다는 것은 내가 왜 살아 있는가에 대한 본질을 알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분은 자기가 살아있음을 소리를 연습하는 그 순간을 통해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고백을 들으면서 목사로서 참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저렇게 연노하신 나이에도 자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는 부름 받은 종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바울은 인생의 마지막 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바울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부르심의 소명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의의 면류관을 바라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최선의 경주를 다하는 자에게 상을 준비하시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푯대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자에게 승리의 월계관이 주어지듯, 우리 주님도 승리의 면류관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수많은 천사들을 동원하여 우리를 위해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3. 결론 

이제는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 인생을 녹슬게 하고, 무너뜨리는 나쁜 것들은 모두 잘라내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오직 예수님께 붙잡혀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잡힌 인생,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인생이 행복합니다. 나의 가치를 깨닫고 의미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사도바울처럼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푯대를 향해 계속 달려가서 승리의 면류관을 쓰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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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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