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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강해 1

 

빌립보서 1:1-11절  

1. 빌립보 

빌립보 지역은 로마의 군사적 전초 기지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중 하나(아시아와 유럽의 중간 지점- 에베소, 골로새, 빌립보-> 현재 터어키, 그리스 접견 지역)였으며,전략상 마케도냐 지방의 제일로 꼽히는 성읍이었다. 또한 빌립보에는 헬라인,로마인,아시아인,등 여러 민족이 모여 살았으며,각종 철학,종교,미신등이 성행하였다. 이도시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 였으나 그들의 생활,언어 관습은 오히려 헬라적 이었다. 빌립보에 거주하는 유대인은 소수였으므로 회당도 없었다. 또 종교와 생활습관의 차이 때문에 그곳 사람들이 유대인을 대하는 감정은 좋지 않았다.

 

 2. 빌립보 교회 

 * 빌립보교회는 A.D50년경 바울의 2차 전도여행중에 세워졌다.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이 서신은 바울이 로마 투옥 동안에 그곳에서 기록했다. 그때는 바울이 빌립보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지 10년 이상이 지난 때이다. 

 * 누가는 사도가 그곳을 처음 방문할 때의 형편을 묘사한다(행 16장). 사도는 AD 50년경에 소아시아의 북서 해안에 있는 드로아에 체재하는 동안, 

    -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행 16:8, 9)고 간청하는 환상을 보았다. 바울과 그의 동료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는 그 부름에 즉시 응답하여, 네압볼리를 경유하여 유럽에서 복음이 전파된 첫 번째 장소인 빌립보로 갔다(참조 행 16:11, 12 주석). 거기서 선교사들은 성문 밖 강변에서 예배드리는 소수의 사람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였다(참조 행 16:13, 14). 

     - 거기 있던 사람들 중에 두드러진 인물은 “두아디라의 자주 장사”인 루디아였다. 루디아와 그의 가족들은 사도들의 기별을 즐겨 받아들이고 회심하여 침례를 받았다. 

     - 그 후에 바울과 실라가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귀신 들린 여종을 만났는데, 그 여종은 그들을 일컬어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거듭거듭 소리질렀다. 바울이 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자, 그의 옛 주인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사도들에게 대항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 그러나 한밤중에 지진이 일어났고, 이어서 간수와 그의 가족이 회심하는 일이 뒤따랐다. 이리하여 두아디라의 자주 장사와 그의 가족, 로마 사람으로 생각되는 간수(참조 행 16:23 주석)와 그의 가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발기 위원으로 하여 빌립보 교회가 조직되었다. 

      

 3. 저술 목적 

 바울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글로서 그의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서(에바브로디도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보내준 헌금과 기도에 감사). 교회가 필요로 하는 영적 지침을 제공하기 위해서(유두고와 순두고와 같은 지도자들을 통한 교회 분열), 외부적인 핍박에 대해서 빌립보 교인들의 생각과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기 위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몇가지를 이야기 한다면,디모데가 머지 않아 방문할 것을 통보하고, 가능하다면 가까운 장래에 그들을 방문하려는 사도 바울 자신의 의도등도 있었음을 볼수 있다.

본문

1. 예수 그리스도와 기쁨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 예수 그리스도(90번 이상) 기쁨 

다시 말해 - 기쁨의 근원은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금 어디서 쓰느냐? 감옥에서... 그리고 사도 바울은 그 감옥에서 죽게 되는데 지금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을 통해서 기쁨에 넘쳐서 쓰고 있는 것 

빌립보서와 감옥- 첫 시작이 감옥에서 풀려나와 감옥 속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데 10여년 후에 감옥 속에서 다시 한 번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기쁨을 나누어 줌. 


어떻게 감옥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심장,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바꾸면 행복해지고 기뻐할 수 있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환경은 내가 원하는 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원망과 불평 속에서 살아갑니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 생각을 합니다. 이 환경만 좀 변하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성공하는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브 코비 박사의 글 중에 한 예화가 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로 자수함이 가고 있는데, 잠수함 앞에 불빛이 나타났습니다. 잠수함에서 신호를 보냅니다. "비켜라. 너희들이 20도만 비키면 우리가 지나가겠다" 응답이 왔습니다. "너희들이 20도만 비켜라" 잠수함에서 다시 신호를 보냅니다. "우리는 잠수함이다. 너희가 비키지 않으면 너희들은 박살난다." 그러자 다시 상대편에서 신호가 왔다. "여기는 등대다!" 세상은 등대입니다. 

물론 환경이 좋아지고 사람들이 부유해지면서 할 수 있으면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심지어 좋은 교회를 찾아서 떠나고 바꾸고 변화를 시도합니다. 물론 집안의 가구만 바꾸어도 기분이 상쾌할 수도 있고, 새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외부적 환경을 바꾸는 이유는 내 마음을 바꾸어 보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환경을 통해 바뀌는 마음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새 것을 사면 금방 낡은 것이 되고, 식상해 지고, 또 다른 것을 찾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내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늘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내가 바뀌면 그렇게 실증나던 환경도 사람도 괜찮아 집니다. 사랑하게 됩니다. 


4절) "내가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사도바울의 환경은 지금 기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음에도 없는 글을 억지로 쓰는 것도 아닙니다. 감옥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기뻐하는 것은 바뀌지 않는 환경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새롭게 되니 그 속에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서 언제 풀려날지, 언제 사형을 당할지 모르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습니다. 남들을 돌보고, 남들을 위로하고, 남들을 사랑할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라고 고백하며 감옥밖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의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가슴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감옥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무엇을 해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2. 사랑과 중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잘해주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사랑할만하니까 사랑합니다.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생각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적인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조건을 붙이지 아니하고 사랑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임에도 사랑합니다. 나에게 잘해주지 않아도 사랑합니다. 나를 힘들게 하여도 사랑합니다. 나의 원수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하는 사랑입니다. 

지금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여러가지 교회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바울을 조롱하고 따라서 교회와 복음이 실패했다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줍니다. 

또한 유두고와 순두게와 같은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분열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문제 투성이인 교회지만 그가 기뻐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문제를 일으킬 지언정 여전히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그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일으켜도 사도 바울의 마음에 그들이 항상 있는 이유는 그들이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될 것"(7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 이 확신은 신념과는 다릅니다. 신념을 그냥 무작정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작심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도함으로 확정을 받는 것입니다. 내 생각은 그와 달라도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을 계속적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서, 기도 안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말씀, 소망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중보와 함께, 기도와 함께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기도 없는 사랑은 우리 마음대로지만 기도와 함께 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빌 1:9-1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EX) 화가가 되기를 꿈꾸는 두 소년이 있었습니다.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던 두 소년은 대학에 진할 형편이 못되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이런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둘 다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으니 우선 자기가 도시에 나가 취직을 해 돈을 벌어 그 돈을 대줄 테니 친구더러 먼저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공부를 먼저 마친 친구가 나중에 수입이 생기면 그 돈으로 자기가 공부를 시작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습니다. 둘 다 원하는 미술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친구도 이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한 친구는 도회지로 나가서 식당 일을 하고, 다른 한 친구는 그 친구가 조달해 주는 돈으로 미술대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 친구는 워낙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뛰어나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게 된 이 친구는 그 동안 식당에서 일하며 자기에게 학비를 대준 고마운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식당으로 들어가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를 돕기 위해 식당에서 일하던 친구가 잠깐 짬을 내어 식당 한쪽 구석에서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이렇게 중보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친구 녀석이 미술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인도해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제가 식당에서 여러 해 동안 일을 하다보니 손이 굳어져서 앞으로 그림을 그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는 꼭 위대한 화가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식당 한쪽 구석에서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 중보하고 있는 친구를 바라보는 순간, 이 화가 친구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눈물이 가슴에서부터 하염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놀라운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친구의 저 손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의 그 두 손은 위대한 힘 자체였습니다. 비록 고된 식당 일로 거칠어진 손이었지만, 그 손에는 정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들고 온 화선지를 꺼내 친구의 기도하는 두 손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에 혼이 들어갔습니다. 그림에 친구에 대한 사랑이 들어갔습니다. 바로 이 그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버트 듈러의 <기도하는 두 손>입니다. 

 

식당에서 일하던 친구의 기도가 바로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중보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친구 알버트를 위해, 그의 미술 공부를 위해 자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고 중보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손이 크거나 작거나, 곱거나 거칠거나, 가꾸었거나 가꾸지 않았거나, 매니큐어를 칠했거나 칠하지 않았거나, 중요한 것은 두 손 모아 중보하는 손이라면 그 손은 아름다운 손인 줄로 믿습니다. 바로 기도하는 손이 위대한 손일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보다도, 우리 자신의 삶의 자세입니다. 마음가짐입니다. 영국의 영적 거성 투루나이젠이 젊은 시절에 오랫동안 기도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자신이 세계를 변화시킬 것 같지 않았다. 그의 나이 40이 되었을 때 그는 기도를 바꿨다. “하나님, 나를 변화시켜 주십시오.”라고. 그러자 그 기도는 바로 응답되었다. 그의 언어가 바뀌고,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그러자 주변이 변했고, 그는 점점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조금씩 세계를 변화시키는 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투루나이젠은 제자들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진작 기도를 바꾸었어야 했다. 내가 바뀐 이후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인물로 성장해 가기 시작했다.”  내가 바뀌어야 내 가족이 바뀌고, 나의 단체가 바뀌고, 내 나라와 세계가 바뀐다. 그러나 사람이 어디 그런가? 다 남이 변하기를 바란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대통령을 갈아야, 국회의원을 갈아야 이 나라가 발전할 거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그렇던가? 내가 변해야 한다. 내가 변해야 이 나라가 바로 선다. 개혁(改革)이란 가죽을 바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개혁은 살아 있는 사람의 피부를 바꾼다는 의미다. 그러니 진정한 개혁은 스스로의 더러워진 피부를 닦아내면 생각보다 훨씬 쉬워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셨다. 이는 하나님이 개명만 해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열국의 아비가 되려면 먼저 아브람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심장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가슴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심장가지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심장가지고 자녀를 교육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면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뻐할 수 있고, 원수같은 사람도 사랑할 수 있고, 그를 위해 중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감옥 속에서도 즐거워하고 기뻐한 바울과 같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친구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했던 알버트 듈러의 친구 같은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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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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