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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영생을 위해 오늘을 죽는 삶 (사도행전 20장 24절)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my only aim is to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od news of God's grace.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도 바울이 제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복귀하기 전에, 이방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열심히 사역을 하였던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초청하여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 나눈 장면과 그의 당부가 그려져 있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열성적인 유대교인으로서 가장 앞장 서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내어 처형하고자 했던 열심당원이었지만, 그가 예수를 만나고 나서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열심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러한 그의 신앙적인 이력 때문에 그는 죽을 때까지 유대교인들과 그리스도인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사도요, 그리스도인이요, 교회의 공공의 적과도 같은 위험에 빠지곤 했습니다. 유대교에선 배반자라는 죄목을 붙여 40여명이나 되는 열심당원들이 그를 잡아 죽이고자 하는 모임이 조직되기도 하였고, 반대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선 그가 진짜 회심한 것이 맞는가? 회심하였다 하더라도 그가 어떻게 사도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끊임없는 의심과 깎아내림을 당하여야 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가 지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죽을 것이다. 암살단이나 적대적인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그를 만류하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행 20:22-23]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무슨 소리입니까?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내 임의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매여 간다. 사실 그가 2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도 원래 채비를 다 갖추어서 1차전도여행으로 세운 교회들을 다시 방문하여 그 교회를 견고히 세우기 위해 떠나고자 했지만 성령께서 그의 목적지를 바꾸어 유럽땅 마게도냐로 바꾸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그 성령께서 이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 명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다음구절을 보면 무슨 내용이 나옵니까?

오직 성령이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고 하신다.

 

성령이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시는데 그 길은 평탄하고 환영받는 길이 아니라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고 미리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사도행전 21장에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루는 장면이 나옵니다.

 

[행 21: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곳곳에 흩어져서 바울을 붙잡고자 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까지 따라와서 그를 붙잡게 한 것)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행 21: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행 21:30-31]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행 21: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얌전히 끌려 나간 것이 아니라 들것에 실려 나갈 정도로 지금 폭행을 당하고 죽을 위험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이런 일 당할 것을 알고 그리로 들어가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그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을 밝힌 구절이 우리가 읽은 24절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However, I consider my life worth nothing to me; my only aim is to finish the race and complete the task the Lord Jesus has given me-the task of testifying to the good news of God's grace.

 

난 내 목숨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은 예수께서 나에게 주신 일을 완수하고 내 삶의 경주를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 임무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목숨보다 소중한 것 - 주가 주신 일을 완수하는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것 - 다 이루었다. - 값을 치루었다. 저들의 죄를 사했다.

사도바울의 사명 -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

 

우리가 읽은 21장 후반절- 죽을 위기에 폭행을 당하고 들것에 실려 들려나가는 바울

 

[행 21: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 앞에서 22장 23(유대인들 앞에서-> 공회 앞에서-> 로마로 가서 가이사 앞에서...) 선포

 

꼭 미친 사람처럼 육신은 지금 다 죽어 가는데 기운 날 때마다 나가서 전파...

 

자기가 말한 대로... 왜 그래야만 하는가?

하나님께서 저렇게 지독하게 복음을 증거하기를 원하시는가? 너무하지 않은가?

 

비전 -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삶을 보는 것

소명 - 부르심을 아는 것

바울은 분명한 부르심의 사건이 있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가는 중 다메섹 길 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건 - 사도행전 9장

 

예수를 만났지만 예수가 어떤 목적을 위해 바울을 불렀는지 깨닫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나니아에게 가서 안수를 받게 하는데 그 때 아나니아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

 

[행 9:15-16]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니니아가 바울에게 이것을 전했는지는 모르지만 바울은 갈라디아서 말씀을 보면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고 아라비아로 가서 3년을 지내면서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시간을 거쳐 그의 사명과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고난 받아야 할 것을 깨닫고 보게 되는 시간...

 

예수를 만나고 그의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목적이 바뀌었다. 비전은 갖는다는 것은 게으른 자가 열심히 된다는 정도가 아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이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지만 대개의 신앙의 위인들 - 사명을 주셨을 때 즉각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

모세, 예레미야, 이사야, 기드온..... 자신의 익숙한 삶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바울은 거절하지 않는다. 뒤돌아서지 않는다.

왜 그는 가치 있는 것에 자기 삶을 바칠 줄 아는 열심이 있는 자였기 때문.

열등감과 자기 비하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남들을 바라보며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 비전이 주어져도 행동하지 못한다.

오직 가치 있는 것에 자기 전체를 부을 수 있는 자- 비전이 주어지면, 목적지가 주어지고 방향이 주어지면 거치름이 없다.

 

[빌 3:7-14]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 구절이 유명한 구절인데 정말 어려운 구절 중의 하나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 이 도대체 무언가?

영어 성경도 관계대명사 절로 해석이 난해하다.

 

예수님께서 나를 잡으셨는데 나도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예수님께서 붙잡으신 그것을 나도 붙잡고 싶은데 그것은 예수님께 잡힌 바 된 나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여러 주석들도 다 제각각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공동번역 성경]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현대어 성경] 그리스도께서 내게 바라는 사람이 될 그날을 향해서 계속 노력할 뿐!

[한글 흠정역]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이루시고자 하신 그것을 붙잡으려고

 

그것은 곧 나의 가능성! 나의 창조의 목적, 내 삶의 비전

예수가 붙잡은 것은 현재의 나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이루실 바로 그 모습을 붙잡은 것이고 바울 역시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모습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것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예수가 붙잡은 그 모습, 바울의 비전은 단지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의 바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 것이 제일인 줄 알고 좋은 학벌, 좋은 가문, 좋은 스승에 심취해있던 바울이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의 중요성을 알아 그것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하다가

바나바와 갈라서고 마가를 꾸짖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일의 목적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격과 성품의 연약함을 깨달아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고, 결국 데모데와 누가와 마가같은 사람들을 불러 동행하고자 하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무엇이라 말하는가?

 

[행 20:28-32]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 삼가라: Keep watch over yourself. -자기 및 양떼를 위해..
  • 여러분을 감독과 교회의 보살피는 자가 되게 하셨다.
  • 그와 반대의 사람 -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는 이리. 자기를 따르게 하기 이해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

 

24절 다시

주 예수께 받은 사명 - "디아코니아"

디아코니아- 식탁에서 시중드는 것 - 봉사, 심부름꾼...

디컨 (Deacon)이 이 단어에서 출발 -교회에서는 "집사"

 

사명은 무엇인가? 예수께 받은 임무- 심부름꾼. 내가 예수의 심부름꾼이라는 의식이 좋게는 청지기의식, 직분으로는 집사직분.

그런데 예수께 받은 그 사명의 정체는 무엇인가?

예수가 나를 보고 붙잡은 내 가능성!

내 참모습. 나를 창조하신 이가 나를 바라보시면서 붙잡은 바로 그 모습.

그 모습을 붙잡고자 실수하고 실패해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는 바울.

 

궁금하지 않으세요?

예수께서 당신을 바라보며 붙잡고자 하는 모습은 무엇인지?

그 모습을 깨달으며 당신도 그 모습을 붙잡고자 경주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난 너무 궁금하다. 그리고 나, 내 자녀, 우리 로고스 교회를 바라보면서 예수가 붙잡는 그 것을 깨달아가는 재미보다 더 큰 재미가 있을까?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지 않을까?

 

한 십년 가까이 초등학생 장래희망 - 공무원...

대학생이라면 그래 그럴수도 있지.... 그런데 초등학생 때부터 안정된 직장

그거 아니면 건물주, 먹고 놀아도 사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런 삶이 정말 재미있을까?

 

비전을 위해 열심을 낼 수 있는 자는 영생을 위해 오늘을 죽을 수 있는 자이다.

부흥은 다름아닌 내가 무엇을 위해 죽을까? 내 삶은 무엇하다 살까가 고민이 아닌 난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비전이고 부흥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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