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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거룩과 사랑에의 초대 (마 4: 18-22)

 

[마 4:18-22]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비전-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나를 보고, 타인을 보는 것.

비전 - 무엇을 바라보며 살 것인가? -> 소명, 곧 사명과 연결

내가 살아 숨쉬는 동안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릭 워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가 된 책

그 목적이 바로 소명 (Calling) - 내가 이 것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 부른 자에 초점. 소명이 있는가?

사명 (duty, mission, responsibility) - 내 임무, 책임감 - 소명을 받은 자가 가지는 책임감.

 

지난 시간 설교의 본문 말씀 창세기 13장

 

[창 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창 13: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임해서 "눈을 들어 지금 서 있는 그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다니라" 하신다.

비전은 주님의 말씀으로 바라보고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바라본 세상을 두루 다니는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하나님은 조급함을 싫어하신다. 비전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은 조급함이다.

조급할 때 이스마엘이 태어났고 인내했더니 이삭이 태어난다. 조급했더니 사울은 잘못된 예배를 드리고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다.

방향이 잘못된 경우 속도가 빠르면 오히려 비극을 가속화 시킨다.

비전은 옳은 방향을 선택하고 걸어감과 동시에 잘못된 방향을 바라보지 않고 돌이키고 걸어가지 않는 것이다.

 

한 방향을 선택한다는 것은 동시에 그 외의 방향을 포기하는 것이다.

 

[단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은 뜻을 정했다고 한다. 무슨 뜻을 정한 것일까?

왕에게 쓰임받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비전을 본 것이다. 그가 정한 뜻은 거룩함이다.

그는 왕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사는 대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선택했다.

 

  • 그리스도인이 된 다는 것 - 내 결단, 내 선택 이전에 하나님의 다가옴. 하나님의 선택

모든 그리스도 인들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소명, 그리스도인이라면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얻었는가?

바로 거룩이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은 그 분을 믿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귀하게 쓰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다. 깨끗한 그릇이다.

깨끗한 그릇을 찾기 원하시는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

 

고난은 고통스러운 환경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인간관계를 포함한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힘든 환경이나 사람을 통해서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깎으신다.

고통스러운 환경을 통해 우리를 낮추시고, 고통스러운 관계를 통해 우리를 거룩케 하신다.

 

[신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기 때문에 고난을 겪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케 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

 

[히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예수님도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웠다.

하나님이 귀히 쓰신 인물들은 고난 중에서 위로 성장하기 전에 아래로 성장했다.

외적으로 성장하기 전에 내적으로 성장했다.

 

[딤후 2:20-21]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자신을 변화시키라. 환경을 변화시키기 전에 자신의 속마음을 변화시켜라.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켜라.

어떻게 생각을 변화시키는가?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생각을 변화시키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

 

[히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우리의 생각을 주장하시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다니엘처럼 분별력이 있다.

분별력은 무엇이 참된 것이고 무엇이 거짓됨을 아는 능력이다.

무엇에 자기 자신을 투자하고 무엇에 자기를 피할 줄을 아는 지혜이다.

거룩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절제할 줄 알고 자기가 피해야 할 사람과 때와 장소를 분별하고

자기가 교제 해야할 사람을 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가?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는가?

자신을 깨끗히 하라. 거룩함을 열망하라. 거룩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명이다.

 

거룩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신 소명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신 사명은 다름아닌 사랑이다.

 

비전은 새롭게 보는 능력이고 다르게 보는 능력이다. 그러한 비전의 시각은 사랑의 시선과 함께 간다. 비전과 사랑은 같은 눈을 가진다.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 속에 감추어진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는 능력이다.

누가 새롭게 볼 수 있고 잠재력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가?

누가 아이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장 잘 볼 수 있는가?

바로 부모이다. 왜?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비전을 본 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를 그 사람에 대해 비전을 품게 된다.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비전을 보았다.

 

[마 4:18-22]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고 깁는 것을 보셨다. 그 모습 속에서 사람낚는 어부, 예수의 제자의 모습을 보았다.

 

'흔들리는 갈대'라는 의미의 시몬에게서 '반석'이라는 베드로를 보시고 결국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르락내리락 하던 베드로는 요동치 않는 믿음의 소유자 반석이 되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다윗은 아버지 이새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다윗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다.

양들을 칠 때에 양들을 돌보는 다윗을 통해 연약한 영혼을 보살 필 줄 아는 목자의 마음을 보았고

자연 속에서 누구도 보지 않을 때에 수금을 타며 찬양하는 예배하는 다윗을 보았다.

 

[삼상 16:1]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 하시는지라

 

[삼상 16:11] 또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이르되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아버지는 양을 지키는 다윗을 하찮케 보았지만 하나님은 양을 지키는 다윗에게서 왕의 모습을 보았다.

 

양들을 돌보며 수금타며 찬양하던 다윗이 사울의 부름을 받는다. 부르심은 소명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수금을 타기 위해 부른 다윗에게 사울이 맡긴 것은 단지 수금을 타는 것이 아니라 "무기 드는 일"을 맡긴다.

사명을 주는 것이다.

 

[삼상 16:21]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러 그 앞에 모셔 서매 사울이 그를 크게 사랑하여 자기의 무기를 드는 자로 삼고

 

물고기 낚던 베드로에게 사람낚는 어부가 되라 하신 예수님처럼 사울은 수금 타러 부른 다윗에게 수금타는 일이 아닌 무기드는 임무를 맡긴다.

 

부르신 자에게 주는 뜻밖의 사명은 때론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때론 생각지 못한 일을 맡기신다.

수금타는 자에게 수금을 타게 하시지 않고 물고기 낚는 자에게 물고기를 낚으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기드는 일을 맡은 다윗은 얼마 되지 않아 골리앗을 상대하여 그를 제압하게 된다.

수금타는 일과 무기드는 일이 절묘하게 연결되는 부분이다.

다윗의 일생을 통해, 아니 그를 넘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과 전쟁하는 일은 놀랍게도 동떨어진 일이 아닌 하나의 일이 된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전쟁의 맨 앞에 찬양대를 앞세우고 전쟁에 나선다.

 

[고전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사명은 내가 원해서, 내가 잘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부르신 이가 맡긴 일을 감당하는 것이고, 그 일에 충성할 적에 비로서 맡긴자의 뜻이 드러나게 된다.

사명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순종이요 충성이다.

 

예수께서 그물 던지는 베드로를 보시고 그를 부르시는데 베드로는 그 그물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는다.

예수께서 자기 아버지의 배에서 그물 깁는 요한을 보시고 그를 부르는데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좇는다.

 

하나님은 내 실력을 보시고 나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의 삶 속에서 뜻밖의 것을 찾아 그것을 사용하신다.

그렇기에 교회 안에서 주어지는 뜻 밖의 일, 내가 전혀 원치 않고, 해 보지 못한 일들을 통해 하나님은 절묘하게 나를 다듬어 가신다.

 

사랑은 상대방의 현재 모습 그대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모습 안에 있는 가능성을 보면서 이미 그렇게 변한 듯이 대하는 능력이다.

괴테는 "한 개인을 대할 때 그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는 사람 대하듯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그러한 비전과 사랑을 가지고 대하셨다.

 

비전을 본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면 비전을 보게 된다.

 

믿는 자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소명은 거룩에의 초대다.

비전을 얻기를 원하는가? 뜻을 정하여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하라.

자기 마음을 정결케 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거룩한 자에게 주시는 것이 사랑할 수 있는 비전을 주시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참 형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안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하고 그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양치기 소년 다윗을 발견하여 수금타는 다윗으로 하여금 그것으로 전쟁을 승리하게 하셨고

예수님은 물고기 잡는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세상을 낚게 하셨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뜻밖의 사명을 주셔서 우리를 세워가시고 가다듬어 가시고 온전하게 하신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알게 하고 남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신다.

 

거룩을 열망하고 비전을 꿈꿔라. 비전은 다름아닌 사랑하는 것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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