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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이땅에 임한 천국 (마 5:1-10절)     


신명기 28장 1-14절 - 구약에서 제시한 대표적인 하나님의 복에 대한 약속 

  • 요약하면: 땅의 복, 자녀의 복, 물질의 복, 번영의 복
  • 그 복의 시작은 아브라함을 부름에서 시작/ 아브라함: 우상을 섬기던 자, 하나님을 모르던 자.

   -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너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리라. 복이 되게 하리라.  

   -  떠나서, 나의 땅으로 가라. 너를 하나님이 예비한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복을 얻게 하고 그 복의 기원으로 삼겠다. 

  • 구약의 역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기의 우상에서부터 떠나서 모든 복의 근원이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우상을 왜 믿느냐? 땅의 복을 달라고… 그런데 그 땅의 복도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알게 하는 것.  그래서 끊임없이 복의 근원, 복의 통로가 누구냐? 애굽이냐, 가나안이냐? 바알이냐 하나님이냐의 싸움. 


문제제기) 그런데 이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신약의 시대, 신약 성경에서 복받은 인물은 누구인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에는 구약에서 명시한 복이 하나도 나와있지 않다. 이 곳 말씀에서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어느 인물도 그러한 복, 땅을 얻고, 자식을 많이 낳고, 물질 축복을 많이 받았다는 사람을 잘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예수님도, 제자들도, 바울도, 디모데도 이런 구약의 복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고, 복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제시한 이른바 팔복, 여덟가지의 가장 최고의 복에 대한 기사이다. 

부자 되려고 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라서, 가난한 자가 복되다고 하신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오래 살 생각 말고, 주를 위해 언제든지 생명 바칠 각오 하라! 왜 그럴까?

세상에서 환난, 핍박당해도 그것이 복이니까 기뻐하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구약의 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다를까? 

구약과 신약이 제시하는 복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 그 기준, 근거가 무엇인가? 


복을 보는 기준이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한 마디로 답하면 → 하나님의 나라 때문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팔레스틴에 지상천국을 이루고 온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세상적 왕국은 꿈꾸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개념이 없었다.

다시 말해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다. 그런데 에녹의 기사라든가 엘리야의 기사를 보면 분명 "하늘나라"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나라를 자기들과 연관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가르치신 것은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가까이 왔느니라! 였다. 그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복음서에 ‘하나님의 나라’가 110회 이상 반복되어 나온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얻은 것 - 영생, 천국

'영원'이라는 시간을 누릴 천국이 주어진 우리에게 이땅에서 잠시 장수하고, 배부르게 살고, 땅의 소산이 많고, 그러한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래서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수훈은 무엇인가? 천국의 복음.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예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씀인 팔복-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8가지 통로, 복. 하늘 나라의 통로


우리가 하나님 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있을 때에 얻는 복: 땅의 복과 하늘의 복

  • 여호수아, 갈렙의 딸 악사가 웃니엘과 혼인하며 윗샘과 아랫샘을 얻은 것의 의미
  • 에덴 동산: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생육하고 다스리고 정복하라. 땅의 주인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그런데 그 권능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있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복. 

그런데 사탄의 꾀임에 너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의 품으로부터 벗어나면,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에서 떠나가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 그 결과 땅의 모든 복을 잃어버리고 땅도 저주를 받고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내고 힘껏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들게 되었다. 만물을 다스리는 정복자에서 만물의 지배를 받고 만물의 도움을 받아야 만 사는 자로 전락해 버림. 그 다음부터 우리의 관심사는 오직 땅의 복. 그런데 하나님께서 회복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회복

신명기 28장의 말씀-> 네가 내 말을 잘 지켜 행하면-> 다시 선악과 안의 관계 안으로 들어오면….주시는 축복. 다시 회복시키리라. 1-14절이 축복의 말씀이면 20-68절까지는 지키지 않았을 때에 나타나는 저주의 말씀. 

그런데 사람들은 14절까지의 말씀은 잘 기억하여 기도하지만 그 뒤의 말씀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읽는 것 조차 싫어한다.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 있는 자라면 오히려 그 분이 무엇을 싫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 뒤에 말씀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교회가 그렇게 해 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관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땅의 복이 팽팽히….

탕자의 비유: 아버지 나에게 유산 주세요. 내가 나가서 살래요. 난 아버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 재산이 필요해요. ->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자기 몫"이라고 말한 모든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의 품을 떠나자마자 생겨난 결과- 허랑방탕, 곧 가난, 궁핍, 비굴, 초라....

"아버지의 것"을 다 잃고 갈데도 없고 먹을 데도 없어서 그냥 종살이라도 하려고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어떤가? 맨발로 달려나와서 아들을 반기고 잔치를 배품-> 다 잃어도 관계가 회복되어서 좋은 거다. 


그러면 구약에는 하늘의 복에 대한 개념이 없는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

모세의 청원기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가나안 땅도 필요없다. 

구약의 구원의 한 사이클..

출애굽- 광야- 가나안... 

그러면 가나안에 들어가면 적어도 "행복"이라는 것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곳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잃어벌였을 때에 일어나는 비극의 내용이 바로 사사기서이다. 

사사기: 땅의 복을 가졌어도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에 나타난 결과 


신명기 28장: 네가 지키면, 지키지 않으면~  그 조건이 "내"가 지키면과 지키지 않으면이다. "내"가 기준이다.

하나님의 의도" 내 관계 안으로 들어와라" 

사람의 생각: 내가 지키면 복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지키는 자가 역설적으로 얻게 되는 죄- 교만, 탐심, 판단, 정죄, 비교...

지키면 지킬 수록 하나님의 정말 싫어하시는 죄들이 더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다. 


그런데 예수의 십자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겪게 되는 경험- 그 분이 날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내가 달려야 할 십자가에 그 분이 달리셨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깨달음은 내가 그 분을 찔렀다. 

그가 찔림으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십자가 앞에 나오면 나올수록 교만한 근거를 잃어버렸다.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 분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할 존재가 된다. 

그것이 팔복이다. 


어떤 자에게 주시는 말씀인가? 

  • 산으로 나아온 자: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위한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세상의 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과 나와 단 둘이 교제하도록 나를 비우는 것이다. 

세상의 것을 잔뜩 가지고서는 산으로 올라갈 수 없다. 빈 손, 빈 마음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임재와 대면하는 것이다. 

은혜를 위해서 세상의 일을 잠시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은혜 받는다. 

세상 것 다 하고, 세상것을 위해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은 세상 것으로 인해 반드시 넘어진다. 그러나 은혜 받기 위해 세상 것 잠시 내려 놓는 사람은 은혜도 받고 세상도 얻는다. 

성경은 5장 1절에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라고 증거하고 있다. 

  • 산으로 올라온 자들을 가리켜 예수님이 제자라고 불러 주신 것이다. 산으로 올라온 자들은 그 자체가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세상의 만사를 제쳐두고 지금 예수님께로 올라온 자이다.
  • 예수님께 간절히 나온 자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압니다. 자신의 죄인됨과 연약함과, 내 힘으로는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내 안의 사악한 죄성,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내 악한 감정, 내 행동, 내 생각, 말들… 그것이 주님과의 관계에 담을 쌓는다는 것을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말씀을 듣지 못함을 알고, 그것 때문에 내가 은혜 받지 못함을 압니다. 어떤 경우라도 내가 은혜 받지 못하고,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만물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한 것은 나의 죄, 나의 연약함, 나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하여 하나님께 나온 자들은 자신의 죄성,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애통하는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남의 아픔이나 상처 때문에 우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고 우는 사람입니다. 나의 허물과 욕망, 나의 더러움과 추함을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자 입니다. 그래서 이 애통은 회개의 애통이고 애통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위로를 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 애통함으로 자신을 비운 자들은 말씀으로 자신을 채워야 합니다. 온유는 말씀으로 자신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자기 욕망, 자기 목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서 신앙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 말씀으로 길들여진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곧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의 약속이 말씀으로 길들여지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 말씀으로 훈련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결과는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자기 의를 나타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남들보다 말씀을 더 많이 알고, 남들보다 특출나게 신앙생활 했고, 남들보다 더 말씀을 지켰다고 말씀의 순종을 자꾸만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의만 드러내다가 하나님께 내침을 당합니다. 신앙생활은 남과 비교하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바로 보고 말씀을 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갈망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정의가 자신의 삶에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 안에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이 자신의 육신을 통해서 나오기를 갈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를 갈망한 자는 배부를 것이라 말합니다. 날마다 새로운 말씀으로 채우신다는 이야기입니다. 말씀이 충만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말씀 충만은 곧 성령 충만입니다. 
  • 성령 충만한 사람은 결코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죄인의 상태에서, 부족함에서, 연약함에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왔는지 알기에 올바로 서지 못한 자들을 긍휼히 여깁니다. 긍휼은 받은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벌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오히려 따스한 손을 내미는 것이 긍휼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그냥 베푸는 것이 긍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시고... 긍휼은 용서가 넘치는 사회를 만듭니다. 
  • 화평케 하는 자의 복은 팔복 중 일곱 번째의 복,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을 담고 있는 복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이루고 얻을 수 있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는 일은 평화를 만드는 자, 평화의 사도가 되라는 것입니다. 화평케 하는 자가 온전한 자녀, 온전한 천국의 왕자,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화평케 하는 것은 나 자신을 희생함으로, 포기함으로, 오직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갈 때에 이룰 수가 있습니다. 분열은 왜 생기는가? 다툼이 왜 일어나는가? 내가 온전히 죽지 못해서 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결코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가정의 평화, 교회의 평화는 나를 희생함으로 얻는 유익이고 복입니다. 
  • 결국 결론으로 마지막 복으로 주신 말씀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하나님 뜻대로 사는데 왜 박해를 받나요? 하나님 뜻대로 살다가 박해를 받는데 그게 왜 복입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본문에서도 신약 성경 곳곳에서도 하나님 뜻대로 살면 너희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마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왜 박해를 받습니까? 1)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입니다. 뒤의 것을 돌아보지 않고 앞의 것을 사모하기 위해서입니다. (롯의 아내) 

어제 본 제자 옥한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난 너무 세상에서 사랑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서기 부끄럽다. 그 젊고 어렵게 목회하는 목사에게 진심으로 "네가 부럽다..." 

천국에서 높은 자가 되려느냐? 그러면 이 땅에서 더욱 낮아져라. 섬김을 받고 싶으냐? 그러면 이 땅에서 더욱 섬겨라.... (천국의 역설적인 표현) 

2)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나누어 주기 위해서 받는 고난입니다. (노아)

믿음을 위해 박해 받는 자가 얻는 소망 - 바로 부활의 소망... 


제자들이 순교할 수 있었던 이유... 박해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 

부활의 소망. 

예수의 부활- 천국이 이땅을 이겼다. 이 땅에 천국의 자리가 열렸다. 

죽은 자가 가는 곳- 하늘나라, 그런데 그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한 것이 부활이고 우리 성도에게 약속으로 주신 것이 부활이다.



그리스도인들이나 아닌 분들도 죽은 자들과 만날 “꿈”들을 꾼다. 죽을 때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더 건강해지고, 더 젊어진 모습으로, 알지못할 공간에서 재회를 꿈꾸는 것은 죽음을 기억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갖는 소망일 것이다. 

부활”은 그 꿈이 현실을 정복했음을 알리는 시발점이다. 우리가 꿈꾸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이미 이 땅에 임했음을, 그 때에는 우리가 사는 현실의 세계가 꿈같은 세계가 되고, 부활의 세계가 현실이 되는 그것이 부활의 소망이다. 

그 때가 오면 우리가 살던 지금의 삶을 꿈처럼 여길 때가 있을 것이다. 

다 같이 건강한 모습으로 거짓과 죄가 없고, 슬픔이 없고, 어둠이 없는 세상에서 잠시 잠깐 살았던 불확실하고 혼탁한 세계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살았던 지금을 잘 이겼다고, 잘 살았다고, 결국 믿음이 이겼다고 추억하는 그 때

부활은 꿈 같은 하늘나라가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을 정복하고 꿈의 세계가 현실로, 현실의 세계를 꿈같은 세계로 전복시키는

천국이 이 땅을 정복한, 그런 믿음의 세계의 시작이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