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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오순절 신앙 (신명기 16장 9-12절) 


신약 시대, 다시 말해 예수의 시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무엇보다도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절기요, 어찌 보면 유일한 축일은 이 부활절뿐입니다. 

성탄절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정하고 지내고 있지만 잘 알다시피 예수님이 태어난 날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고 또한 역사적인 기록도 없기 때문에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로마의 가장 큰 축제일을 우상숭배의 날로 삼지 말고 오히려 예수님을 기리는 축제일로 삼고자 하여 성탄절이 생겨난 것입니다. 

추수 감사절 역시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꿈꾸며 험한 항해 끝에 미국에 도착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렸던 것을 기념하여 예수 시대 훨씬 이후부터 지킨 것이니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는 부활절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 즉 토요일날 예배드리던 유대교의 전통에서 주일날을 예배드리는 날로 정한 이유 역시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초대교회부터 지키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날마다 예배를 드리고 성찬식을 하는 이유도 바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구약시대에서 그들의 구원의 모델로 삼는 사건은 출애굽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중심으로 유대인들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세가지 절기를 율법으로 정해 지켜오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수장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적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을 내려 애굽의 바로로부터 출애굽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 입니다. 

마지막 10번째 재앙, 장자의 재앙에서 오직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만 재앙이 넘어간다해서 유월절이라 부른 것입니다. 

유월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이른바 광야 생활로 접어 듭니다. 


40여년간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번째 소출을 드린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것이 바로 칠칠절, 혹은 초실절, 혹은 맥추절입니다. 다른 말로는 오순절이라고도 부릅니다. 


나머지 하나는 초막절인데 이것은 한해의 추수를 기념하여 드리는 지금의 추수감사절과 같은 의미의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이 세가지 절기가 되면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이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지금도 이 유대인들은 이 절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하셨으며 그들에게 땅을 주어 풍성하게 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를 철저히 지킵니다. 

이 절기를 철저히 지키는 것 자체가 자녀들에게 산 신앙교육을 시키는 것이고, 또한 구원의 역사를 재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부활절 지나고 왠 유대교의 절기 얘기를 하느냐? 오늘은 구약의 칠칠절 (맥추절, 초실절, 오순절)의 의미를 살펴보면서 부활을 경험한 우리에게 있어서 오순절의 의미를 좀 살펴 볼까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30년 동안의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을 얻었습니다. 우리나라 처럼 유엔이나 외부의 힘을 얻어 일본의 패망을 통해 어부지리로 독립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어 10가지 재앙을 통하여 애굽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준 가장 드라마틱한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사건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드라마틱한 구원을 경험하고 광야로 나왔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행복이란 말은 여전히 먼 것만 같습니다. 40여 년간의 광야 생활은 애굽에서 벗어났다는 행복보다는 하루 하루 견디기에도 힘든 고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물론 그 광야 생활 가운데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은헤를 맛보았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맛보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살았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삶이었고, 은혜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입술에서는 불평이 끊이질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애굽에 있을 때가 더 좋았다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지만 그들 자신은 무엇하나 할 수 없는 연약함 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왜 광야생활이 필요했습니까? 


애굽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의 생각과 삶과 습성은 여전히 애굽의 노예로서의 모습, 우상숭배자의 모습,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법적인 신분은 회복되었지만 실질적인 그들의 습성과 문화와 삶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을 통해 그들을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어찌 보면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늘 동행하고 예수의 사역과 기적과 모든 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각과 습성은 여전히 갈릴리 어부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도 그들은 십자가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도망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듣는데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도 그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설수 없는 연약한 모습입니다. 


영적으로 주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구속하시고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셨는데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그 승리를 누리는 자가 없습니다. 

출애굽을 했는데도 행복하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주님이 행하신 일도 수도 없이 듣고 믿고 예배를 드리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못하고 능력은 없고, 삶에 지쳐 허덕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구원받은 사람인가? 구원의 능력이 있는가? 구원은 먼 미래의 일인가 고민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칠칠절은 무엇입니까? 

드디어 40년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가 지파별로 땅을 분배받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둘 시기가 되어 보리와 밀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던 자기들을 구원하여 안식을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로서 그들은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였습니다. 이제 진짜 노예가 아닌 주인의 삶, 열매 맺는 삶.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을 통해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시지 않고 40일간이나 머물면서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허무함에 빠져 있는 그들에게 나는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약속하십니다. 


40일이 지나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눅 24:49)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부활하셨는데 주님이 부활하시건 멀건 여전히 힘없이, 능력없이 살고 있었던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 다락방에 모여 전혀 기도에 힘씁니다. 


구약의 오순절이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 비로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하게 하신 사건이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고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비로서 제자들에게까지 임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제자들은 비로서 육체적, 영적 연약함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며 두려움없이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구약의 오순절이 열매 맺을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비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열매맺을 수 있게 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라면 신약의 오순절은 신앙의 열매, 영적 열매를 맺을 수 없었던 영적 불구자였던 제자들이 비로서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과 연약함을 이기고 예수의 능력으로 무장되는 날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오순절을 통해서 나의 십자가와 부활이 되고, 그의 승리가 나의 승리로서 체험되는 날이 바로 오순절날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각 흩어져서 살아다고 유월절과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모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려야 했습니다. 

각각의 처소에서 예루살렘까지 오는 길은 지역에 따라 며칠 몇주가 걸리는 길고도 고된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지낸 그들이 다시 50일 지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어떤 자들은 유월절만 지키고 오순절, 맥추절은 지키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절기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하여 반드시 이 절기를 지켰습니다. 

열매 맺을 수 없던 자가 비로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서 풍성한 소출을 맺고 감사를 드리는 그 감격을 예배하지 않을 수 없었것 것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실 때 그것을 지켜보던 자들이 오백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끝까지 남아서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사람은 120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강림을 통해서 비로서 불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고, 성령의 사람이 되어 초대교회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주님이 이루시고 행하신 것이지만 그것을 나의 힘, 나의 삶의 열매로서 나타내기 위해서는 우리도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함께 모여 전혀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지내고 새벽예배 시간에 계속해서 부활 이후의 제자들과의 만남과 오순절 사건을 나누면서 전 주님의 부활의 완성은 바로 이 오순절 사건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여전히 힘들고, 지치고 문제 가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그 능력이 나의 삶을 주관하도록 성령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고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성령께서 계시며 또한 일하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두시고, 우리로 행하게 하신다. 우리 안에 거룩한 소원이 일어나게 하신다. 그런데 거룩한 소원은 사람이 억지로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마음속에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지 않으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이 거룩한 소원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한 소원을 주신다. '전도하고 싶다', '새벽기도에 가고 싶다', '어떤 성도를 심방하고 싶다', '성경공부에 참여하고 싶다', 등의 소원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소원이 성경 말씀과 반대되는 일이 아니라면, 성령께서 주신 줄 알고 그 소원대로 행하십시오. 순종할 때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우리의 모습이 거룩한 모습으로 성숙해집니다

 

여러분! 때때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소원을 주실 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 소원이 말씀에 맞지 않으면 다시 한번 기도해 보되, 말씀과 어긋남이 없을 때에는 주저 없이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순종할수록 우리의 성품은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거룩한 모습으로 성숙해질 것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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