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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인고로 (누가복음 18장 18-23절) 


올 한 해 교계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문제, 지금도 되고 있는 문제는 명성교회 세습 사건입니다.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일이 교계에 뿐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계속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현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대형교회에서도 이른바 아들에게 담임목사직을 승계하는 세습의 일들이 많이 있었지만 명성교회의 일이 이렇게 크게 다루어 지는 이유는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 그리고 그 아들 김하나 목사 역시도 성도들뿐만 아니라 많은 신학생들이나 목회자들의 존경을 받았던 목사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김삼환 목사하면 떠오르는 그의 목회 철학은 이른바 머슴목회입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하나님의 머슴으로, 성도들의 머슴으로 자청했습니다. 대형교회의 목회자하면 떠올리는 권위주의적이고 카리스마넘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은사나 기적을 말하지도 않았고 그저 머슴처럼 섬기고 일하는 목회자의 모습을 표방했습니다. 

그는 교회가 부흥해도 40퍼센트 원칙을 유지하면서 교회 재정의 40퍼센트를 선교하고 구제하는 것을 유지했습니다. 국내외 1000여개의 어려운 교회를 섬기고, 수많은 선교사와 학교, 병원, 선교단체를 후원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교회를 후원하는 교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명성교회하면 떠올리는 특징은 한국의 새벽예배를 대표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 자신이 가난한 유년시절 시골교회의 새벽종을 울리는 것을 맡으면서 새벽예배에 다니기 시작해서 평생 새벽예배의 영성을 강조하는 목회자였습니다. 평소에도 역 5000여명의 성도들이 새벽예배에 참석하며 3월과 10월 두차례 열리는 특별새벽예배에는 새벽예배에만 5만명 가까운 성도들이 예배에 참석해서 새벽예배만 4부예배를 드리는 한국에서 가장 새벽예배를 많이 드리는 교회로 이름이 높습니다. 


또한 그 아들 김하나 목사도 유학생을 사이에서도 대형교회 목회자의 자녀를 전혀 티내지 않고 겸손하면서도 실력을 갖춘 평판이 좋은 목사였고 아버지와 아들 목사가 다 같이 자기들은 절대 세습을 안할 것이라고 여러번 공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 심지어 일반 사회단체나 뉴스까지 보도하면서 세습을 비판하고 성명서를 내고, 비난하는데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세습을 했습니다. 단지 욕심때문에, 탐심때문에라고 하기에는 납득하기 힘든 일을, 자기 스스로의 공언을 부정하면서까지 행한 것입니다. 


속사정을 들어보면 일면 수긍이 가는 면도 있습니다. 사회의 반대와는 달리 명성교회의 공동의회는 70퍼센트가 넘는 찬성으로 아들 김하나 목사의 세습을 찬성했습니다. 왜 사회가, 신학생들이,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반대하면서도 명성교회와 두 목사는 세습을 감행했는가? 


소속된 목회자만 100여명, 교회 관계된 교회  안밖의 기관들, 교회내의 카페나 주차, 식당, 서점, 선교기관, 교회 밖의 학교나 병원등과 같은 관련기관에서의 유급 직원들만 1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들의 안정을 위해서 세습을 절대적으로 찬성한 것입니다. 

그들도 사회에서, 외부에서 외치는 비판의 소리를 어찌 듣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교회 안에 딸려있는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다른 외부의 리더십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태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자기 교회의 안정을 위해 사회로부터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비난을 외면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용납되어 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가 받는 상처는 훨씬 더 깊은 것이고, 또한 그 교회는 더더욱  외부로부터 단절된,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깨끗하지 못한 집단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일이 나에게 나타난다면 난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의 선택에 따라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달려있다면 난 과연 그런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와서 지금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내용은 마태, 마가, 누가, 공관 복음서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청년이라고 했고, 누가복음에서는 어떤 관리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세 복음서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즉 그는 나이도 젊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이유는 영생을 얻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어찌보면 그는 무엇을 얻는데 익숙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는데 있어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꿓은 것을 보면 열정도 있고 성실함도 있는 사람입니다. 

운좋아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성실이 몸에 베고 목표가 분명하여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좋은 태도를 지닌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성공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생은 내가 얻고자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엡 2:8)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그것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고 이제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외에는 우리 인생이 구원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많이 들었지만 또한 너무나도 자주 잊어버리는 말씀입니다. 


그가 예수를 가리켜 무엇이라 말합니까?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말은 무엇이냐면 내가 어떤 선한 일을 더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께 나온 이유는 예수로부터 천국가기 위한 어떤 방법, 특별한 행위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입니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절) 


이 구절만 놓고 놔서 어떤 사람이 묻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신데 예수님도 선한 분이 아닙니까? 

여기서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선한 일을 통해 구원받을 거라 생각하느냐? 네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하여도 하나님의 거룩함에 다가갈 수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거룩하라 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계명들을 청년에게 묻습니다. 

(눅 18: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청년이 의기양양해서 말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말한 이 계명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에 대한 계명은 다 빠지고 사람들 사이에서의 계명만 묻습니다. 

다시 말해 네가 미쳐 모르는 그 것- 넌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누구와 함께 사는가를 보십니다. 


청년이 주님을 찾은 이유는 선한 일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의 목적을 얻으면 예수님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내 부족함을 채우는 그저 부분일 뿐입니다. 

이게 우상숭배입니다. 

내 문제, 내 부족, 내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믿는 것- 그것이 채워지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 세상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신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따르라, 나와 함께 거하자는 것입니다. 

너 가진 것 뒤로 하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눅 18: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근심하여 떠나갔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기를 채울지는 알았어도 주님을 위해 자기를 버릴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말합니다. 

(눅 18: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라 

이것은 그냥 어렵다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부자는 천국가기가 불가능하다? 여러분 이게 납득이 됩니까? 

구약의 아브라함,이삭, 야곱, 요셉, 다윗....수많은 부자들... 

록펠러, 스텐리 템...사회 각층의 유능한 크리스찬들.... 그들은 천국못가는가?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네가 복이 될 것이라. 

하나님의 복은 말씀에 의지해서 떠나는 것이다. 


신앙은 말씀을 따라 내가 익숙한 것,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떠나는 것이다. 

애굽에서 의지하고 있는 나일강을 비롯한 열가지 신을 떠나는 것이 열가지 재앙이고 사마리아 여인이 의지했던 다섯 남편을 떠나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를 맛보는 것이다. 

떠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것,  모든 것을 버려두고 산에 오르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것....그런데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기 것을 붙잡는 사람... 자기 능력, 자기 의, 자기 물질, 자기 것을 붙잡는 사람....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를 채울지는 알았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 

하나님이 지시하신 가나안땅보다 자기 가축을 위해서 여기에 머물르기를 더 좋아하는 르우벤, 갓, 므낫세와 같은 사람....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가난하다는 것은 의지할 자기 것이 없는 사람, 주님의 말씀 앞에서 놓지 못할 것이 없는 사람들...그들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눅 18:29-눅 18:30]

(눅 18: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눅 18: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받아들이기 힘든 구절...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이삭을 받쳐야 하는가? 

주님을 위해서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려야 하는가? 

너무 한 것 아닌가? 

더군다나 30절의 말씀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말씀...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아내를 버리고 자녀를 버렸더니...여러배를 받았다는 것은 여러번 장가갈 수 있다는 소리인가? 


우리가 우리 가진 것에 집착하는 이유, 핑계, 명분...가족을 위해서, 자녀를 위해서...

물질에 집착하는 이유... 가족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가족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매달렸더니 가정이 건강해지는가? 그들이 만족하는가? 감사하는가? 

오히려 물질로 인해 싸우고 깨지고, 버리고, 죽이고 사는 것이 세상.... 

탐심의 이유로 가족을 들먹이지 말라. 그것은 자기 기만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순종하면 너의 집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보호할 것이다. 안전할 것이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실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을 행하면서 교회의 안정을 위해서, 성도들의 믿음을 위해서라고 변명하는 이들....

그것이 정말 교회를 지키고 성도들을 지키는 것일까?


말씀을 위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내가 의지하는 것을 다 주님 앞에 맡길 자세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내 딸린 것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버릴 것인가?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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