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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 그리스도인의 행복 (벧전 4:7-11)

 

베드로전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유일하게 기록한 서신서입니다.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시기는 학자들마다 여러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는 AD 63년의 로마 대 화제 이후에 네로황제에 의해 그 화제의 원인으로 기독교인들이 지목되면서 시작된 대핍박과 환란의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보는는 것입니다.

 

이 때는 이미 기독교 공동체가 이방의 여러 나라에 퍼져 있었지만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때문에 극심한 핍박을 견뎌야 했던 시기입니다. 대화제의 범인으로 기독교인이 지목되었듯이 사회에 안좋은 일이 생기면 "교회 다니는 사람 때문"이야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퍼지던 시기라는 것입니다.

 

[벧전 1:1-2]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전서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고난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기독교인의 자세, 혹은 신앙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의 믿음이 승리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벧전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 우리는 무언가 고난을 받으면 죄의 댓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초대교인들 -> 우리는 피뿌림을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다. 고난을 갑옷으로 삼아라. 고난 받는 자는 죄에서부터 멀어진 자다. 보통의 상식과 반대되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난의 유익이 무엇입니까?

[벧전 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 정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게 된다는 것.

무언가 성공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정욕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잘 안 와닿을 수 있지만 우리가 승승장구 할 때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지만 얼마다 마음이 들뜨고 경건치 못한 것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찾게 되고,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자,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환란의 날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고 기도하는 것. 필요한 것일 것입니다. 기도 없이는 이런 환란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그런 위급한 때에 정신 차리고 기도하는 것. 성도가 가진 힘이자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런데 그 뒤의 구절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이런 긴박하고 절박한 상황과는 맞지 않는 뜻밖의 권면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 Above all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아니 지금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사랑하라 말씀합니다. 그것도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고까지 강조합니다.

 

그 다음 구절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고(9절)

서로 봉사하라(10절)고까지 합니다.

 

이렇게 힘든 때에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 일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봉사하면서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가 아니라 "하는 것 같이 하라"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요?

정말 힘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그런데도 힘들게 봉사하면서도 자기를 내세우거나 힘든 내색하지 말고 하나님이 힘주셔서 하는 것 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권면한다면 여러분, 아멘 하고 감사하면서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힘들어도 힘든 척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죽는 환경에서도 사랑하고 봉사하라니 우리 연약한 인간이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항상 하나님이 힘주셔서 하는 것처럼 하라니 이런 위선이 어디있습니까?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힘든 계명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아니 상대방이 좋으면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사랑할 것이고, 그저 그런 사람을 억지로 사랑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런데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더니 급기야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내 몸과 뜻과 힘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사랑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사랑마져도 교회 안에서는 부담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봉사해서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 마치 연약한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든 무엇이든 빼앗아 가서 만족하는 탐욕스러운 왕의 모습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봉사하라고 하는가?

 

구원하셨으니 마땅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구하지도 않은 구원을 그것도 내가 태어나기도 까마득히 전에 십자가를 지셨다고 하면서, 잘 믿어지지도 않는 십자가를 말하면서 그러니까 너희는 고난 받으면서도 아무 소리 말고 감사하고 봉사하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모습이 그렇게 선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영광받으시는 것이라고 하니 봉사하면 주님이 영광받으시고 봉사 안하면 하나님은 영광 받지 않으시니 하나님은 봉사에 굶주린 분이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그 자체로서 완전한 분이고 부족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 분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요 우주의 주재시요 수많은 천사들이 수종든다라고 말씀합니다. 그 분은 우리의 봉사가 없으면 불편하고 부족한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의 계명은, 그리고 그 중에서 오늘 이야기하고 있는 봉사라는 것은, 봉사하는 삶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까?

하나님이 가진 사랑을 함께 누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가진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섬김이고 봉사입니다.

 

(막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요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왕으로 사시지 않으시고 종으로 사셨습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것을 종들을 위한 종으로 오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 이 땅에서 사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잃어버린 영혼들에게도 종의 역할을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삶, 하나님이 감정,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요, 섬김이요, 봉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

사람을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를 만드신 목적이 그 사랑의 삶, 돌봄의 삶, 봉사의 삶을 나누어 주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짐이 아니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자 사랑의 모습이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면 돌보고, 섬기고, 나누어야 하는데 사랑이 정욕이 되고 탐욕이 되니까 주기보다 받기만 원하고, 결국은 돈을, 우상을, 게임을, 사람보다, 가족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보는 것보다 행복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봉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고, 예배하고, 섬겨야지만 만족하시고 살아가시는 무의탁 노인같은 분이 아닙니다 .

그 분은 불쌍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사랑이 없어도, 헌신이 없어도 스스로 충만하시고 만족하시며 행복하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 예배하도록, 헌신하도록, 봉사하도록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이 그것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통해서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사랑을 알고 이 세상에 하나님 자녀답게, 하나님 닮은 삶을 살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가장 기본적인 삶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삶

기도의 삶이고 사랑의 삶이고, 그것은 결국 섬김, 봉사의 삶입니다.

 

  •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Each of you should use whatever gift you have received to serve others, as faithful stewards of God's grace in its various forms.

-> 여러분 각각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을 남을 위하여 사용하십시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여러가지 형태의 은사를 통해서 남을 섬기도록 여러분을 은혜의 청지기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봉사하라는 말은 "내가 하나님께로 남을 섬기기 위해 받은 은사를 사용하라"는 말의 번역인데 그 의미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를 사용하는 것은 마땅히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지만 봉사하라고만 하면 마치 안해도 될 것을 해야하는 extra 짐으로 여겨지지요.

 

하나님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아니마 알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신 것이 가정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아이들 양육하고, 학비 내고...가정 지출의 가장 큰 부분...

그런데 그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는 부모, 상식적인 부모라면 그럴 수 없다.

 

내 사랑하는 가족이고 자녀이기에 마땅히 그 일을 한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위해 고생하면서 그것을 행복이라 말한다.

실재로는 그것 때문에 고생하는데 우리는 그러한 고생을 행복이라고 표현한다.

왜?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고생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봉사는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가족, 성도들을 위해 고생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 성도를 사랑하며 수고 하는 것이 봉사이다.

 

 

왜? 나를 위해 살고 나 자신 만을 위해 사는 것보다 그 가족, 식구들을 위해, 사는 것이 삶의 맛을 주고 의미를 주고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조금 확장하면 저같은 목사는 교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고생하는 것이 사는 맛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님은 내가 너희들에게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선물을, 은사를, 달란트를 주셨다고 말씀하신다.

 

George Beverly Shea 의 간증

1909년 캐나다 에서 감리교 목사의 여덟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경제 한파로 학업을 포기한 후 보험회사에서 세일즈 맨으로 일하던 중 NBC 라디오 프로에 나가 “가라 모세”를 불러 하루 아침에 일약 스타가 되었다. 방송출연 제의가 쏟아지고 돈과 인기가 굴러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에게 두려움이 몰려 들었다. 갑작스레 부와 인기가 찾아오니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인가 하는 두려움과 언제 떠나갈 줄 모르는 그런 박수소리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대중들을 위한 찬양에 회의가 일었다.

 

어느날 그는 자기 옷 주머니 속에 넣어둔 어머니의 손편지를 잃게 된다. 평소에 어머니가 좋아하던 싯구가 그이 마음을 때렸다. "주 예수 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 어떤 것도 그것과 바꿀 수 없다"...

잠시나마 엄청나게 짓눌렸던 쉬아에게 짧은 글이 믿음과 확신으로 그의 마음에 다가왔다. “그래, 예수님만이 나의 행복이야!”라고 소리쳤다.

그는 즉시 그 아름다운 가사에 곡조를 붙이기 시작했다. 바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시가 음악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쉬아는 자신이 쓴 찬송 곡조를 부르며 다짐했다. “긴 시간 동안 주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주님만이 행복임을 고백했다. 그것은 어머니가 바라던 삶이었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헌신이었다.

 

며칠 후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을 때 쉬아는 확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주님만을 위해 사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방송국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일생을 통해 쉬아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결정이었다.

 

1절은 ‘세상의 부귀’보다 ‘예수님’을, 2절은 ‘세상의 명예’보다 ‘예수님’을 그리고 3절은 ‘세상의 행복’보다 ‘예수님’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찬송은 ‘세상 부귀’(1절)로 간단히 번역됐지만 영어가사는 이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세상의 금과 은, 큰 재물, 많은 집들과 땅보다 예수님을 기뻐하겠다고 고백한다.

1983년 74세 된 백발의 쉬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전도대회’에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설교 후에 굵은 베이스 음성으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를 불렀다. 수많은 회중의 끝없는 박수에 쉬아는 다시금 고백했다.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뜨거운 박수 갈채도 예수님과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워져 가는 교회

여러분의 신앙에서 무엇을 세우기를 원하십니까?

그리스도를 닮기 원한다면 그 분을 따라 섬기는 삶에, 봉사의 삶에 동참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교회는 봉사하는 교회입니다. 은혜가 없는 교회는 섬김을 받기만 원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좋은 교회인 이유 - 주방봉사든지 이런 저런 봉사하면서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힘들어서 봉사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있어도 탓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다.

지금도 아름답지만 그러한 봉사에 자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진정한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원한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 나와 우리 로고스 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George Beverly Shea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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