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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증인 (누가복음 2장 8-10절) 


매주 월요일 마다 성결교 목사님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하는데 몇 주 전에는 저희 GTU의 교수님 한 분을 모시고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목사님들이 모여서 세미나를 한다고 하니까 준비를 많이 하셔서 프리젠테이션도 준비하시고 또 간단히 정리해놓은 것도 나누어주셨습니다. 

좋은 말씀을 전하시는 중에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었는데, 무언가 새로운 주장을 이야기 하거나 그 근거를 대려고 할 때 자기 생각을 그대로 이야기 하지 않고 유명한 학자들이나 그들의 책을 반드시 인용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 같으면 그저 그 주장을 이야기하는데 중점을 둘 텐데 교수다 보니까 이 주장은 어떤 저명한 학자가 말을 한 것이다. 어떤 유명한 책에 기록된 것이다하는 것을 굉장히 중시했습니다. 

제가 논문이나 페이퍼를 쓰려고 할 때도 이 누군가 믿을 수 있을 만한 학자나 책을 얼마나 잘, 인용하고 엮어서 내 논리를 이어가느냐가 내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 할 때가 많습니다. 믿을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주장인가가 그 믿을 수 있는 인용에서 부터 나오기 때문이죠. 새롭거나 파격적인 이론이나 학설을 이야기 할 수록 이 믿을 수 있는 근거를 대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다! 

역사상 이 사건 보다 더 파격적이고 새로운 사건이 있을까? 왜 이 사건이 파격적이고 중요한 사건입니까? 

오늘 본문 10절에 말씀하신 대로 이 소식, 이 뉴스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누구에게만 중요한 사건,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좋은 소식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11절의 말씀은 이 좋은 소식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옵니다 

(눅 2: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오늘, 바로 지금, 다윗의 동네, 그들이 살고 있는 바로 그 땅에, 너희를 위하여, 바로 나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 구원자, 바로 지금, 바로 이 땅에 나를 위해 메시야가 오셨다. 구원자가 오셨다. 

그 때가 언제 입니까? 

로마가 그들을 다스리고 있던 그 암울한 때에

그 로마의 법을 지키기 위해서,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전국 각지에서 불편함을 무릎쓰고 자기의 고향으로 돌아갔던 그 힘든 시기에, 다윗이 태어났던 영화로운 땅이었지만 지금은 이미 남에게 그 모든 영화를 빼았기고, 자기 잠잘 곳도 찾기 힘든 그 어렵고 피곤한 땅에... 바로 그 날, 그들에게 기쁜 소식, 그들을 구원할 소식, 그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소식이 임한 것입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예수의 오심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직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이 예수의 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주로 율법이 중심이 되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음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나심을 뒷받침 하기 위해 유대인의 족보를 이야기 하고, 동방박사와 헤롯 대왕의 입을 빌려 예수의 나심을 간접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보다는 남편 요셉의 꿈을 이야기하며 좀더 남성중심으로, 율법과 족보를 통해, 또 지식과 권력의 사람들을 통해 예수의 나심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에 소개되지 않은 여러 이야기들을 말합니다.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않았던 제사장 사가랴의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굳게 닫히고 반면 가브리엘의 소식을 듣고 이를 굳게 믿고 찬양했던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엘리사벳으로 부터 칭찬받은 이야기, 그리고 시므온이라는 메시야를 기다리던 한 사람, 안나라는 과부 선지자의 이야기...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목자들의 이야기...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바와 같이 이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의사입니다. 또한 이 글은 데오빌로 각하라는 당시의 권력자에게 복음을 알리기 위해 기록했던 어쩌면 보고서적인 기록입니다. 

누가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사실을 중시했습니다. 의사로서 과학자와 같은 눈으로 있는 그대로, 꾸미지 않고 기록하여 보고했던 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다른 복음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그런 증거들...

마리아의 꿈이라던지, 시므온이나 안나 같은 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 중심에 나와 있는 가장 중요한 소식.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오늘 이 땅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전한 목자들...

누구하나 믿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역사상 가장 믿기 힘든 일을 증거할 증인들로서 별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열거하며 그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믿기 힘든 사건을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증언하게 하셨다! 

unbelievable news를 unreliable한 사람에게 맡기셨다! 

우리는 이런 일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제자들도 아니고, 무언가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전혀 신뢰받지 못하는 그런 여인을 통해 부활의 소식을 알렸던 이야기...

요한복음 4장에 전혀 신뢰받지 못했던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내가 메시야를 보았다"며 마을을 뒤흔들었던 이야기....

예수의 삶을 당시 가장 소외되고 믿을 수 없었던 갈릴리의 어부들을 통해 증언케 하신 열두 제자들을 통해 전파된 이야기...

어쩌면 신약성경의 모든 일들은 이렇게 가장 믿기 힘든 일들을 신뢰받지 못한 자들을 통해 전하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이들 두고 많은 안티 기독교 사람들은 보아라. 저들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하면서 기독교는 믿을 수 없는 종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실한 자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진리이다. 만일 성경이 왜곡된 문서라면 그런 시시한 자들의 증언 대신에 많은 신뢰할 만한 여러 증거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누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증언한 책이기에 꾸미지 않은 것의 증거이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자, 목자들의 이야기로 돌아가 봅시다. 

목자들 하니까 어감이 좋아보이지만 이 단어를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이름으로 바꾸면 어감이 확 달라집니다. 

목자를 뭐라 부릅니까? 양치기...양치기 소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야기가 있죠.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하고 하도 거짓말을 하니까 정말 늑대가 나타났는데도 사람들이 전혀 믿지 못하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

어쩌면 목자들의 이야기는 그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 만큼이나 신빙성을 떨어뜨릴 수 있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목자는 양을 칠 때에 여러명이 같이 다니지 않습니다. 그저 목자 한 명과 양을 이끄는 것을 돕는 개 한마리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도 양 하나를 잃어버리면 아흔 아홉 마리를 내버려 두고 찾아 나선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의 나심은 한 명의 입술을 통해 전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명의 목자들... 신뢰할 수는 없지만 이런 자들의 여러 입술을 통해 증거된 내용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런 하나님의 방법을 가리켜 전도의 미련한 것이라 표현합니다. 


(고전 1:21)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물론 저는 목사로서 좀더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증언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내 삶으로 신뢰감을 주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합니다. 거짓 입술이 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씁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저는 양치기 입니다. 

그저 믿을 수 없는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믿을 수 없는 양치기라도 그것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이면 그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하도록 열두 제자에게, 막달라 마리아에게,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리고 목자들에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기쁜 소식을 맡긴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그저 나에게 일어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자랑하고, 목사를 자랑하고, 성도들을 자랑하고, 무엇보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나같은 자에게 맡기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이야기, 온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그 놀라운 이야기,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러한 자들의 증언이 바로 성경이고, 그러한 자들의 활동이 기독교의 역사이고, 그러한 자들의 사는 이야기가 바로 간증입니다. 


Happy Holidays

Thanks Giving 이후부터 Christmass까지의 기간- 가장 소비가 많은 시기. 

TV마다 Market 마다 Holiday라는 문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 

사람들의 마음엔 이 날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돌아보지 않은 채 단순히 홀리데이. 노는 날, 휴식하는 날, 쇼핑하는 날로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Thanks Giving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를 드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Christmass는 그리스도께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태양을 숭배하던  세상의 가장 큰 우상 숭배일을 이젠 예수를 예배하는 날로 바꾼 것. 그것이 크리스마스, 예수께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쇼핑하고 놀고 휴식하고 다 좋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 날들의 핵심은 감사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날 들에 교회가 더 조용하고, 단촐하게 보내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주인의 자리를 빼앗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증인이라는 이름을 낯설어 합니다. 

믿는 자들을 가리켜 증인이라 부르면 이상해 합니다. 여호와증인들 때문에 증인이라는 말 조차를 거리끼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와 주의 사자들은 예수의 탄생의 증인으로 목자들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임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광고하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증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가장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소식을 저희들의 입술에 맡기셨습니다. 

주님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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