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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향한 세가지 명령 (여호수아 1장 10-18절) 


지난 시간에 우리는 모세가 죽고 영적, 육적 혼란기를 맞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먼저 여호수아를 부르신 하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70여명의 가족으로 시작한 야곱의 가족들은 애굽에서의 400여년간의 시간동안 그 숫자가 민족을 이룰 정도로 급증했고 출애굽할 때 따라나온 허다한 잡족까지 합하면 200만명의 숫자입니다. 

그들이 집도 없고, 땅도 없이 광야에서 40여년간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이기도 했지만 인간적으로만 모면 모세라는 뛰어난 영적인 리더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40일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얼마나 큰 방황과 죄악을 저질렀는가를 살펴보면 그의 리더십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가 죽은 것입니다. 그것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바로 앞둔 그 곳에서 죽었습니다. 

모세가 있어도 감히 갈 수 없었던 땅을 지금 모세 없이, 건너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호수아를 일으켜 그에게 영적인 부흥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가 모세의 후계자가 된 것은 지난 시간에 살펴 본 것 처럼 우연한 일이 아니라 모세와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마치 다윗을 왕으로 훈련시킨 것처럼 차곡차곡 훈련 시킨 결과였습니다. 


여호수아를 불러 그에게 "일어나" "건너"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수 1:2)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실 때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말이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주저않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죽었지만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셨습니다. 

모세의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요, 바로 여호수아의 하나님인 것입니다. 


이제 그를 통해 너의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약속하십니다. 네 신을 벗으라 하시면서 하나님의 길로 인도하신 모세의 경우처럼 이제 내가 너를 인도하는 대로 여호수아의 믿음과 경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토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 번이나 걸쳐서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환경과 감정에 요동하지 말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야로 떠나지 않도록 하라 하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 두려움을 몰아내는 것은 물질이 아니고 사람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함을 체험할 적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평강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를 일으키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한영혼을 일으키사 그 영혼을 통해 공동체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작은 불꽃 하나에서부터 불길이 번지게 하십니다. 

한 영혼을 통해 가정을 일으키시고, 한 영혼을 통해 교회를 일으키시고, 한 영혼을 통해 민족을 일으키십니다.


백성에게 명령하신 세가지 말씀은 무엇입니까? 

1. 양식을 준비하라 (11절) 

2. 요단 동편에 거하게 되는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에게 "가서 그들을 도우라" (14절) 

3. 순종하라, (17-18절) 


1. 양식을 준비하라 

그 동안의 양식 - 만나, 매일 같이 내리는 하늘의 양식 

                          준비할 필요도 없었고, 준비해서도 안되었습니다. 매일 그 날의 양식만을 먹어야 했습니다. (매일의 경건)  

                          그런데 사흘 동안 요단을 건널 때에는 이 준비된 양식이 없으면 건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말씀- 일상을 뛰어넘는 특별한 말씀) 

                          마치 홍해를 건너기 전 무교병을 먹도록 하여 유월절을 준비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만나를 대신하여 3일 동안 견딜 수 있는 양식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큰 일을 시작하시기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양식을 준비하라" "네 의복을 깨끗케 하라" "거룩하라"등의 특별한 말씀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3일간의 양식은 무엇일까? 나에게 준비시키는 양식은 무엇일까? 요단을 건너기 위해 준비해야할 양식은 무엇인가? 양식은 매일같이 동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특별한 일을 위해 예비하신 특별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에게 주신 것이지만 특별히 나에게 주신 말씀이 곧 레마, 나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때에 준비된 말씀이 있습니다. 깨어있는 자, 들을 귀 있는 자가 들을 수 있는 그 말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3일을 견딜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2. 가서 그들을 도우라 

르우벤, 갓 지파, 므낫세 반지파의 이야기는 여호수아서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않고 요단 동편의 땅에 정착한 민족이었습니다. 

민수기 32장에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옵니다. 

(민 3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민 32:5) 또 이르되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소유로 주시고 우리에게 요단 강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많은 가축 떼를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똑같이 광야 생활 가운데 이었지만 그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가나안 땅은 농경문화가 발달하여 농사 짓는 땅이요, 자기들은 가축을 가꾸어야 하기 때문에 요단 동편의 땅이 좋기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 대신 이곳에 남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보다 자기가 지금 가진 것, 자기 환경에 가장 잘 맞는 것을 선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어찌보면 합리적이고 그들 보기에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이끌고 있는 모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각자 자기 보기에 좋은 곳에 남고자 하면 결국 남는 것은 힘없는 자, 다른 계획과 소망이 없는 자들만 남는 것입니다. 


모세가 불같이 화를 냅니다. 

(민 32:6) 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에게 이르되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민 32:7)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낙심하게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 하느냐


모세는 그들이 이전에 행했던 그들이 합리적인 생각, 자기 중심적이 생각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다 준지를 상기시킵니다. (8절~14절) 

40인의 정탐꾼을 보내었을 때에 그들은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했을까? 

그 근본적인 원인이 가축이 너무 많아 그 땅 자체를 원하지 않은 것을 밝혀냅니다. 그들은 가축을 키울 땅을 구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 자체를 반대한 것입니다. 


분노하는 모세에게 이들은 약속합니다. 

[민 32:16-민 32:19]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의 원주민이 있으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을 그 견고한 성읍에 거주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서 가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받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쪽 곧 동쪽에서 기업을 받았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쪽에서는 기업을 받지 아니하겠나이다


그러니까 여호수아는 이들이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2장에 보면 이들은 이 약속을 끝까지 지켜서 여호수아와 다른 족속들의 칭송을 받으며 당당하게 자기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결국 가나안 땅 밖에서 머물면서 그들의 왕국을 이루고자 했던 그들은 결국 그들의 분리된 예배처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다가 우상숭배를 통해 앗시리아에게 정복당합니다. 

왜 이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인도하시는 가나안 땅에 가려고 하지 않고 요단 동편에 머무르려 합니까? 

가축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광야의 삶 속에서 남들보다 가축이 많은 고로 가나안의 목적지를 잃어버리고 광야에서 영원히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땅에서의 축복을 따르다가 영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단 동편을 선택한 세 족속에게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 네 형제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도록 너희들이 먼저 가서 도우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이 땅의 복을 사모하는 자들과 영원한 복을 사모하는 이들이 섞여 있습니다. 

리더자는 이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땅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순종하라. (16-18절) 

무엇을 말하던지 들을 것이요, 어디를 가라 하던지 가겠나이다. 

백성들은 여호수아에게 순종을 서약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그들의 말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순종에는 교만함과 어리석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절)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의 영어 번역은 "Just as we fully obeyed Moses, so we obey you" 입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순종하기를 fully하게, 온전히, 완전히, 넘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불평하고 원망했으며 모세를 죽이고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순종한 것 만큼만 당신에게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그것도 전제가 있습니다. "Only may the Lord your God be with you as he was with Moses" 

오직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할 때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그들을 애굽에서 부터 인도하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 아닌 당신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그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할 때에만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광야에서 살았지만 여전히 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순종 서약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서약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하신 말씀과 이들의 입술을 통해 들리는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는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든 결국 여호수아에게 요구하는 것은 강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승리요 이스라엘의 승리요, 바로 우리의 승리인 것입니다. 



질문) 

1. 난 하나님의 말씀하신 가나안을 소망하는가? 아니면 나와 내 가정, 내 가축들을 위한 땅을 더 원하지 않는가? 

2. 난 공동체를 위해 먼저 가서 싸우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3. 순종했는가? 순종하는가? 순종 할 것인가? 내 순종의 정도는 어디까지일까?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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