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92019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  
  •  
  •  

무엇을 바꾸시렵니까? (빌립보서 4장 4-7절) 


빌립보서 4장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는 바울의 결론적인 메시지 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세 가지 당부를 합니다. 

주 안에 서라.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 


세 당부의 공통적인 전제는 "주 안에" 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뿐만 아니라 그의 여러 서신서에서 끊임없이 "주 안에"있을 것을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 자체가 바로 주 안에 있을 때의 삶과 주 밖에 있을 때의 삶으로 나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 밖에 있을 때에는 육체를 자랑하던 자였습니다. 

자기의 태생과 자기의 학문과 자기의 열심을 자랑하던 자였습니다. 

그러한 예수 밖의 삶은 "예수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의 삶으로 귀착됩니다. 예수의 길과 반대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안에 있는 자의 모습을 "십자가와 부활"을 소망하는 삶으로 정의합니다. 

예수 밖의 있는 자를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는 다고 하면서 여전히 예수 밖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예수 밖의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여호수아 1장의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12지파가 다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을 얻은 것이 아니라 일찍 부터 요단강 동편의 땅을 받기를 소원했습니다. 

민수기 32장에 보니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않고 그 건너편 땅을 선택한 이유는 그들에게 가축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농사지어 먹고 사는 땅인데 그들에게는 가축이 많으니 유목하기에 좋은 광야 땅에 살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불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 생할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여정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은 광야요, 십자가요, 고난의 길입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강을 건너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고난을 넘는 것이고, 영적으로는 나를 부인하고 주님이 주신 길을 걷는 세례를 말합니다. 


그런데 세 지파는 이 땅의 것들이 너무 많아 요단을 건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지시하신 땅보다 자기들이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점점 멀어져 그들의 예배를 따로 만들고 결국 우상숭배의 길로 빠져 듭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 밖의 사람들이 되어 버립니다. 


바울은 주 밖의 사람들을 "그들의 신은 배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19절) 


주 안에 서라는 것은 길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요, 부활을 소망하는 길입니다. 

부활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걷는 길입니다. 

진실하게 예수 믿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걸으십니까? 

아니면 자기의 배를 채우는 길이라면 어떤 길이든 걸어가시겠습니까? 


주 안에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우리는 결코 한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형제끼리도, 부부 끼리도 살다보면 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물며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태생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입니까?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각각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말임을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믿는 공동체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주를 본받는 것에 하나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 주가 원하시는 일, 주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실까? 


신앙생활은 결국 주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내 선택과 사고의 기준은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어떤 것이 주님보시기에 기쁜 일일까?" 

이것이 기준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빌립보서 전체의 주제는 바로 이 기쁨 입니다. 이 기쁨은 어떤 기쁨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가져야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쁨은 항상 조건적입니다. 그런데 그런 조건적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금방 시들합니다. 

그것 가지면 좋을지 알았는데 금방 실증이 납니다. 

아이들의 장난감, 이런 것들이 커져서 여자들은 핸드백..남자들은 시계 자동차, 심지어 결혼 대상자까지.....

바꾸면, 가지면 기쁠 것 같은데 그 기쁨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조건적, 일시적인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롬 5:3-4]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환란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소리는 환란을 즐거워한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고난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환란 속에서도 기쁨을 일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환란은 성도들에게 인내라는 열매를, 인내를 통해, 연단을 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뜻을 보면 인내를 통해 단련된 인격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인내로 단련된 인격은 어떻습니까? 

바뀌는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참을 줄 알고 기다릴 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 분이 주시는 것은 결국 나에게 선이요,  좋은 것이요, 기쁨임을 알고 참고 기다립니다. 이런 기다림이 굳어져 성품이 되고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기다림에 실패합니다. 

말로는 너무 잘 아는데 그것이 자기 삶에 적용될 적에 늘 조급함 때문에 넘어집니다. 

자기들의 기도가 삶의 인품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파도 위를 걸었던 베드로의 믿음과도 같습니다. 

사방은 파도가 치고 태풍이 불어도 주님께 시선이 고정되면 걸을 수 있습니다. 

시선이 떼여서 주위를 보면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품 안에서 누리는 것. ....이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염려입니다. 염려가 생기면 어느덧 이 기쁨이 사라집니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살 수가 있습니까? 염려 없이 사시는 분 있으십니까? 

염려로부터 자유하십니까? 


우리가 읽은 본문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라"의 염려는 영어로는 "anxiety"로 번역했습니다.  "anxiety"의 뜻 중에는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을 염려하는 것', '미래의 짐을 대신 지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왜 염려가 오면 우리 안에 기쁨이 사라집니까? 

염려가 오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자리는 없어지고 내가 짊어져야 할 짐들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현실을 바라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떻게 현실의 문제를 무시하고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문제를 바라보면서 내가 짊어 질수 없는 여러 가지 일들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가정하면서 걱정하지 말고, 그 걱정 되는 모든 것들을 낱낱이, 소상히 기도의 제목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거나 초조해합니다. 조그마한 문제도 자꾸 묵상하고 생각하고 확대해석하면 어느새 문제가 눈덩이같이 커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 …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b)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문제와 염려의 자료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어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말 ‘문제화’시키지 말고, 오히려 ‘기도 제목화’시켜서 그것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서 고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놓고도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염려하거나’, 아니면 ‘기도하거나’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기도 대신 염려합니다. 문제를 염려로 바꿉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염려 대신 기도합니다. 염려를 기도 제목으로 바꿉니다. 내가 염려하는지, 아니면 기도하는지를 보면 내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염려하는 것을 기도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실컷 염려하면서 한숨쉬듯 '주여......'하면 그게 기도인줄 압니다. 


아뢰라는 것은 상세히 고하라는 것입니다. 막연히 힘들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하나님 다 아시지요가 아니라 자기의 힘든 것, 자기의 걱정꺼리등을 낱낱히 고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7)

본문을 자세히 관찰해보십시오. 바울은 기도하고 나면 문제가 즉시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ex) 김홍신 - 인생사용 설명서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복잡해서 늘 마음이 불안하고 머리가 아픕니다. -> 세상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픈가? 자네 마음이 복잡해서 머리가 아픈가? 


우리를 정작 힘들게 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내 생각이 복잡해지고 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단순함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할 것과 주님이 하실 일들을 분별하고 내가 해야 할 것은 최선을 다 하되 주님이 하실 것은 그 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은 결국 나에게 유익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나를 보호하신다. 

내가 해야 하는 오직 하나는 내 시선을 주님 앞에 고정하고 파도 속에서 요동하지 않는 것. 주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것. 


‘지킨다’는 말은 본래 군대용어입니다. 마치 로마의 군대의 수비대가 성을 빽빽이 싸고 보초를 서며 지키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평강이 위로부터 내려와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싸며 확실하게 지켜주신다는 겁니다. 더 이상 염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더 이상 불안과 두려움이 틈타지 못하도록, 그렇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평강은‘모든 지각에 뛰어난 것’이라고 바울은 표현합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만들어 내거나 고안해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헤아림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일시적이고 표면적이고 불완전하지만, 하나님의 평강은 영원하며 본질적이요 완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있지 않기 때문에 염려가 생긴다고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내 마음에 염려가 생겨났다는 것은 내가 주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면 됩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꾸면 됩니다. 기도하면 우리가 다시 ‘주 안에’ 복귀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문제의 해결은 그 다음입니다. 아니 사실 주 안에 복귀하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 문제들로 인해서 우리 마음의 기쁨과 평화를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하기로 작정하십시오. 기도하되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또한 여러분의 기도와 간구에 감사를 동반하는 믿음을 보이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주 안에 살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돌보신다는 말은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시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Posted by 소리벼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