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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라 (느혜미야 4장 1-14절)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역사적인 배경을 좀 알아야 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할 때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올 것이 왔다라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기를 거부하고 벧엘과 단에서 황금송아지에게 절하며 예배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셨다는 것이 대부분 유다 사람들의 이해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리면서 2지파밖에 안되는 작은 지파지만 신앙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신하던 유다마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이스라엘은 불바다가 되고 그렇게 믿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되자 이스라엘 전체는 영적인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70년만에 페르시아왕국을 통해서 바베론이 무너지게 한 다음에 그 페르시아 나라의 임금이었던 고레스 왕을 통해서 붙잡혀 갔던 이스라엘의 포로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가도록, 그것도 바벨론에 의해 탈취해 갔던 모든 성전의 기물들이며 성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자제나 필요한 물품들까지 챙겨주면서 그야말로 금의 환향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한 1차 포로로 귀환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서 바로 성전을 재건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성전 재건에 있어서 영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남왕국 북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그들이 앗수르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이후 그들의 마음에는 똑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기에 이렇게 되었다하면서 회개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고레스 왕이라는 이방왕을 통해서지만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게 되자 남왕국 북왕국 할 것 없이 모든 지파 모든 사람들이 이 재건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분열되었던 왕국이 예루살렘 성전을 통해서 다시금 통일 왕국을 이루고 연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지요. 

그런데 지도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앗수르가 북왕국을 점령한 후에 그들의 식민 정책은 그 땅에 앗수르나 이방 사람들을 북왕국의 중심지였던 사마리아 지방에 보내어 살게 하면서 이스라엘 민족들과 혼인하여 자연스럼게 융합할 수 있도록 정책을 폈는데 그래서 사마리아 지방의 나머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기들의 신앙의 피를 더럽힌 자들이라 하여 아얘 이방인 취급을 하거나 이방인들보다도 못한 짐승 취급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은 예수님 때까지도 계속 이어지게 되지요. 

암튼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으니까 따로 그리심산에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통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지요. 그 때에 사마리아의 지배자가 바로 산발랏과 도비야였습니다. 


이들로 인해 성전 재건이 14년간이나 중단 되었다가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에 의해서 다시 시작되어 성전이 완공되게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남았습니다. 

성전은 완성되었는데 그 공을 가지고 주도권 싸움이 일어납니다. 

성전 재건에 앞장 선 사람들은 바벨론에 잡혀 갔다가 페르시아 왕국 때에 귀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완공되고 보니까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과 다시 귀환한 사람들 사이에게 갈등이 일어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은 다니엘과 같은 준수하고 가문좋은 사람들이 주로 잡혀갔습니다. 잡혀가서 고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좋은 교육과 좋은 환경에서 살게 됩니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남아 있으면서 이런 저런 고생하며 고난을 견딘 사람들 입니다. 이들과 어울어져 화목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은 완공했지만 이들과의 관계가 해결되지 못하니까 귀환한 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면서 그 예루살렘을 황폐한 그대로, 재건하지 않고 남겨 둔 것이지요.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의 완공 후에도 그 예루살렘 땅이 여전히 불타고 황폐한 채로 나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위해 페르시아에서부터 온 사람이 바로 느혜미야 였습니다. 


느혜미야 1장에 보니까 느혜미야의 관심이 누구에게 있었는가?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 즉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온갖 고생을 다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들이 여전히 고생하며 환란을 당하고 그 성은 여전히 불타 있고 황폐한 데서 살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근심하며 금식하게 됩니다. 먼저 돌아가서 성전을 완공했던 사람들은 이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기지 않고, 불편해 하며 피하면서 다른 곳으로 가서 정착하는데 느혜미야는 바벨론에 잡혀갔다가 지금은 어느덧 자리잡고 왕과 독대하며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술관원이 되었는데도 그 남아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 때도 고레스 왕을 통해 모든 것을 지원 받아 와서 그 성전을 지었는데 이번에도 느혜미야는 아닥사스다 왕께 자기를 보내달라고 청원하면서 

(느 2:8)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

라고 요구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기도하는 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가 누릴 수 있는 권세입니다. 


암튼간 이렇게 다시금 예루살렘에 와서 이번엔 예루살렘 성 전체를 재건하는 일에 힘을 씁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또다시 방해하는 세력이 나타나는데 누구입니까? 

(느 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이스라엘 민족이 일어나려 할 때마다 방해하는 자, 산발랏과 도비야, 바로 사탄의 세력들입니다. 

성전재건을 할 때 가장 방해하려 하던 자들이 이제 성벽을 재건하려 하니까 다시금 방해하려 하는 것입니다. 


3장은 이스라엘 민족이 힘을 합쳐 성벽을 재건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각자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여 열심을 냅니다. 

느헤미야 4장 6절에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이렇게 나타납니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백성들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기 때문에 마침내 우리는 성벽을 절반이나 쌓아 올렸다.”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럴 때 들어닥치는 세력이 있습니다. 바로 산발랏과 도비야 입니다. 

1절)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고 비웃으며, 3절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사람들은 먼저 유대인들을 비방했고, 조롱했고, 그리고 협박하고 위협했습니다. “너희가 성벽을 계속 쌓으면 우리는 너희를 죽일 것이다.” 산발랏과 도비야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좋아할 사탄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희들이 해 봐야 얼마나 하냐 하면서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결심이 강해 끊질기게 지속되면 이제는 위협하고 협박합니다. 

우리의 삶은 영적인 전쟁: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고소하고 우리를 무너뜨리려 한다. 낙심은 그들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느헤미야는 주저앉지 않습니다. 

[느 4:4-느 4:5]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우리 인간의 말에도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난 믿음이 좋아서 남이 뭐라해도 끄덕안해...여러분 남이 뭐라해도 끄덕 안할 사람 없습니다. 그것도 자신을 모르는 영적 교만이고 영적 무지입니다. 

남이 비웃고 공격하면 우리는 흔들립니다. 무너집니다. 

우리는 말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영향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오직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만이 사람의 말에서 하나님의 말로 그 영향력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난 괜찮다보다 더 무서운 영적 패배가 없습니다. 영적 교만은 곧 패배입니다. 

안좋은 말을 들으면 외면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말의 공격에 기도로서 대적합니다. 


기도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느 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말의 공격에 느헤미야는 기도로서 이기고 더욱 열심을 냅니다. 

그러자 사단이 여기서 멈추어 서지 않습니다. 더욱 힘을 합쳐 이들을 공격합니다. 

[느 4:7-느 4:8]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이제 다른 세력들과 더욱 힘을 합쳐 이제 말로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 공격합니다. 마음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위협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느헤미야의 해법은 무엇입니까? 또 다시 기도입니다. 

(느 4: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 것은 기도가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끊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도 지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모든 세력을 동원해서 이들이 성벽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가장 먼저 유다 사람들의 감정을 칩니다. 

(느 4: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주인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은 사탄의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성령의 역사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어떤 감정을 주었나? 피곤함을 주었다. 낙심을 주었다. 

"흙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힘이 다 빠졌다....우린 못한다..." 


(느 4: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두려움을 주었다. 상황을 통해서 역사한다. 최악의 상황을 만들게 한다. 


(느 4: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 세속적, 물질적 그리스도인들... 

왜 고난받느냐? 왜 그렇게 융통성 없이 신앙생활 하느냐? 광신도냐?...

자기들은 이성적인 양, 중도적인 양... 두 마음을 가지지 말라. 

신앙은 융통성 없이 하는 것이다. 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큰 위협을 주고 절망을 주었던 사람들은 산발랏과 도비야보다도 원수들 가까이 사는 유다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그들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라고 부정적이고 낙심케 하는 비관적이고 세상적인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데, 그래봐야 네가 별수 있어? 우리는 어차피 돈 앞에 장사없고, 세상을 벗어나 살 수 없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면 세상에서 왕따가 되고 만다는 신앙인들 앞에서 가장 큰 낙심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느 4:13-느 4:14]

(느 4: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느 4: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1) 종족에 따라 재배치: 영적으로 무장된 지지 그룹을 만들라. 중보자를 만들라. 낙심한 사람들은 그들을 뒷받침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2) 주를 기억하라: 과거에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 현재에 나와 함께 동행하고 나를 보호하시는 하나님. 미래에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고 우리에게 행하실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라. 

   기억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자신의 신앙을 재헌신 하는 것이다. 그 분의 영적인 능력 안에, 그 분의 주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힘들 때에 항상 자기를 점검 하는 것 

세 가지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예배의 회복, 성전의 재건. 

그런데도 여전히 고통 스럽다. 마음에 평강이 없다? 

이웃과의 관계- 깨어진 관계가 없는가? 성벽의 재건은 관계의 재건이다. 삶의 재건이다. 일상의 재건이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관계를 내어 버려 두지 않으신다. 해결하시기를 원하신다.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관계, 남은 자와 돌아온 자와의 관계... 그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니까 그 사이에서 항상 산발랏과 도비야가 공격하는 것이다. 

나와의 관계 - 내 감정을 다스리고 있는가? 두 마음을 품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 안에서 자유한가? 


낙심은 우리의 선택이다. 우리는 포기할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위대한 신앙인들은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에도 낙심하는 것을 거부했다. 피곤하고 실망될 때에도, 실패하고 두려울 때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위대한 신앙인이란 단지 엄청난 인내심을 가진 보통사람이다. 자기 자기를 지키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