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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마름이 없는 예배 (요 4:13-15) 


인간은 연약하고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기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나가 목마름이 있습니다. 

더 좋은 삶을 향한 목마름, 사랑에 대한 목마름, 행복에 대한 목마름...


물론 어떤 순간에는 "아 참 좋다. 딱 이순간만 같아라!"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그런 상태는 말 그대로 순간입니다.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 인생은 또 목말라지기 시작합니다. 

늘 부족합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 목마름을 채우기 위한 삶을 살아갑니다. 

학교를 다니며 지식을 채우려 하고,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여 사랑을 채우려 합니다. 

오락을 하며 즐거움을 채우기도 하고, 열심히 수고하여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려 합니다. 


문제는 아무리 채워고 또 채워도 만족이 없고 늘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전도서를 가만히 읽어보면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솔로몬의 공허한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를 가지고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왕입니다. 

그는 세상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하늘 아래에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고 살폈다"(전 1:23절)이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2장으로 가면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삶의 갈증을 채우기 위한 모든 노력과 그 결과들을 소개 합니다. 

  • 먼저 그는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도 술과 오락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얻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은 술과 오락을 통해서는 진정한 즐거움을 얻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잠시 잠간의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더 공허하고 허무함만이 남습니다.  
  • 그 다음으로 그는 자기를 위하여 사업을 크게 하였다고 소개합니다. (전 2:4) 집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동산과 과원을 만들어 각종 화목을 심었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고 그 당시 어떤 누구보다 더 많은 가축들, 그리고 금과 은과 보물, 노래하는 남녀들과 천명의 처첩을 거느렸음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금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진 모든 것이 공짜로 거져 얻은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수고로 얻은 몫이라 말합니다. 부정한 축제가 아니라 떳떳하고 정당한 댓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하는 고백은 무엇입니까? 
  • <전 2:18-21> 내가 한 모든 수고를 미워하노니 내가 수고한 모든 결과를 결국은 다 다른사람에게 남겨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뭐라 말합니까? 
  • (전 5:10-16)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 5:11)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전 5:12)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요함 때문에 자지 못하느니라

(전 5:13)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전 5:14)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전 5:15)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전 5:16)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 또 그는 계속적으로 지혜를 탐구했습니다.하늘의 천체나 철학, 당시 첨단의 학문들을 그의 지혜로 섭렵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그가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전 2:12-17절까지 읽어보면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나 당하는 일이 매한가지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당하는 질병을 지혜가 많다고 비껴가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때로는 사기를 당하고 실패도 합니다. 천재지변이 지혜자가고 비켜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혜자라고 그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지도 않습니다. 똑같이 죽으면 잊혀질 이름들입니다. 


우리가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것을 통해 내 안의 갈증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또한 인생의 갈증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으로 그 갈증을 해결하려 하십니까? 

내가 추구하는 삶, 내가 힘쓰고 있는 삶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가 진정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솔로몬이 관찰한 것처럼 살펴보십시오. 

돈을 가장 많이 벌었다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나 권력의 가장 최고에 있다는 현, 전직 대통령들, 그들에게서 행복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사람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살아가는 연예인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왜 마약이나 알콜 중독에 걸리며 혹은 공황장애나 우울증으로 고생을 합니까? 


내가 추구하는 삶의 끝에서 난 과연 만족할 수 있을까? 


난 거기까지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족하고 적당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적당이라는 말 보다 더 무서운 말이 없습니다. 항상 조금만 더....하다가 포기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목적이나 자기 꿈이라도 있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의 목적도 없이 꿈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저 마지 못해 일하고, 마지 못해 살아가며 그래도 죽기 싫어서 바둥바둥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도 그랬습니다. 

솔로몬이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유명인이라면 사마리아 여인은 유대인들이 불경하게 여기며 가지 않는 땅에 살면서 그 마을에서 조차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으며 시선을 피해 해가 쨍쨍인 대낮에 홀로 물을 길으러 우물가로 오는 무명의 여인이었습니다.  

더 나아지라는 보장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 자기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꾸역꾸역 우물가로 오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인생은 고단함의 연속이고 마지 못해 사는 것이며 목적도 없고, 소망도 없는 그저 반복되는 고통의 연속입니다. 

매일 같이 물을 마셔도 또 다시 목말라 지고, 아무리 마셔도 인생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 인생을 만나고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주님이 구원코자 하는 인생이 바로 이런 갈증에 목마른 인생입니다. 


뭐라하십니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함께 읽읍시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우리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우리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물질이 우리 영혼을 절대로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세상의 권세를 이용해서 자꾸만 우리에게 세상의 것으로 우리 영혼을 채울 수 있다고 유혹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고백처럼, 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 세상의 것으로는 채우고 또 채워도 계속되는 목마름뿐입니다. 우리 영혼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지개를 쫓아다니는 사람들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을 잡고자 수고하고 고단히 또 하루 하루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구원하고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직 하나님 만이 우리 영혼의 갈급함을 채울 수 있는데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 역시 여전히 그러한 목마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구원받은 자들이 여전히 영적, 육적 목마름을 벗어나지 못할까요? 

예수 믿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과 교제하고 그 말씀 안에 거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통해서 여전히 세상의 것, 물질적인 부요, 권력, 명예에 사로잡혀 그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

진정으로 예수가 주는 은혜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통해서 여전히 채울 수 없는 세상에서의 것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초대에 여인이 뭐라고 말합니까?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구원의 초대에 여인의 마음이 움직입니다. 

주님의 초대에 응답하고 반응하는 것...이것이 은혜이고 믿음의 역사입니다. 


소망없이, 변화 없이, 날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고달픈 인생 중에 주님은 새롭게 말씀하십니다. 

하루를 더 살아도 어제와는 다르게, 의미있는 삶, 목적있는 삶, 낭비가 없는 삶, 열매맺는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그 분의 초대가 들려진다면 간구해야 합니다. 

갈망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 안으로 깊이 들어오려고 해야 합니다. 


나에게 그런 물을 주옵소서. 

주님 나에게 목마르지 않는 은혜를 주옵소서. 

누구나가 다 은혜 받을 만한 자격이 있지만 누구나가 다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의 가치를 알고 그 은혜를 간구하고 사모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 거하는 것입니다. 

적당히, 이 정도 까지만.... 하는 마음으로 그 은혜를 알 수 없습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 때 예수님이 뭐라 말씀하십니까? 

"네 남편을 불러 오라." 

그녀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녀가 세상에서 취해왔던 그녀의 땅의 의지처들을, 이제 쓸모없으니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이 너에게 아무런 위안도, 해결도 될 수 없음을 고백하라는 것이지요. 이 구절에서 남편은 이 세상의 우상이요, 이 세상에서 그녀가 의지했지만 위로받지 못했고 그녀의 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던, 오히려 그것을 위해서 그녀 자신이 날마다 수고해서 감당해야 했던 세상의 헛된 가치관들입니다. 


신앙은 내 꿈, 내 욕망을 버리고 주님의 꿈을 품는 것입니다. 

야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주님을 이용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종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자기 야망을 버리고 하나님 주신 사명을 발견하는 사람은 비로서 자기 안에 숨겨진 헛된 욕망들을 버리고 진정한 자기의 모습 안에 숨겨진 비밀을 발견합니다. 

자기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꿈,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이 비전을 보게 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내가 위로받고, 나를 채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녔던 세상의 우상을 버리고 내 삶을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시간.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세밀한 소리를 듣는 순종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왜 타락하게 되었는가? 내 욕심과 야망을 그대로 가지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내 꿈을 바라기에 신앙이 성숙되지 않는 것입니다.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으러 오기 때문에 자꾸만 하나님이 내 비위를 맞춰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Worship" 그야말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열린예배, 구도자 예배란 이름으로 예배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불신자가 되고, 새신자가 되고, 우리 자신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기 보다 성도들의 입맛과 필요를 채우는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목마르지 않는 생명수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적에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에 공급되는 생명입니다. 

우리의 야망, 우리의 우상을 자기고서는 여전히 목마를 수 밖에 없습니다. 


올해 "너희가 주어라."라는 표어 중에 내용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소 주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을 산 제사로 드릴 수 있는 예배.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있고 대화가 있는 예배. 

그리고 순종을 통해서 또 다시 열매맺을 수 있는 교회.... 


세상의 것을 다 가졌던 솔로몬의 고백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을 예배 하였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편)이었습니다. 


주님 안에 생명이 있고 만족이 있고 우리 삶의 갈증을 해결하는 평안이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에게 주님은 그러한 샘물,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약속하셨습니다. 

 

 여전히 목마르십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십시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길이 우리가 드리는 예배 안에 있습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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