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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꿈, 그리고 성탄 (누가복음 1장 26-38절) 


결혼을 앞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결혼할 남자와 약혼을 한 상태입니다. 

집안끼리 약혼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신랑의 얼굴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그 사람을 상상하며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조금은 설래기도 하면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몇개월만 기다리면 신랑이 혼수 예물을 들고 신부의 집으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마을엔 며칠동안 잔치가 열리면서 이 두사람의 결혼을 온 마을이 축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제가 끝나면 여인은 신랑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큰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이 여인을 방문하여 청천병럭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청천벽력이라는 것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내린다는 뜻입니다. 푸르를 것 같은 여인의 삶에 일대 혼란이 찾아옵니다. 


혼인을 앞둔 여인에게 "네가 아이를 밸 것이라"(31절) 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천사는 이 여인에게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28절) 하고 말합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라니요? 그것도 신랑의 아이도 아닌 한번도 들은 적도 없는 성령으로 아이를 벤다니요...

유대인의 법으로 결혼하지 아니한 여인이 아이를 갖게 되면 곧 처형입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돌을 던져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정혼한 상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마리아 뿐만 아니라 신랑될 사람의 인생도 큰 일 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 벼락입니다. 그런데 그런 소식을 전해주는 천사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28절) 라고 말합니다. 

도저히 은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평안하라구요? 

여러분 같은면 이런 상황에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의 놀람을 보고 천사가 거듭 이야기 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그러면서 그녀에게서 날 자가 누군지를 설명합니다. 

 "그는 큰 자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며 다윗의 왕위를 물려받을 자" (32절)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그녀를 통해 태어날 것을 말씀하시는 것, 신학적 용어로 말하면 예수님의 나심을 알려준다 해서 "수태고지"라고 불리는 사건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만약 이러한 삶의 선택이 여러분에게 주어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마리아라면 여러분은 어떤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이미 예정되어 있는 요셉과의 단란한 가정이 기다리고 있기에 천사의 초대에 모세처럼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택할 만한 자를 택하소서..."하시겠습니까? 마리아와 같이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하시겠습니까? 


  • 마태복음에는 이러한 예수의 나심을 부친인 요셉에게 말하고 있고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 Canon, 모든 것의 척도, 기준. 그런 성경이 예수의 일생을 네개의 복음서에 각각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복음서를 공관복음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쓴 글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것, 같은 사건을 바라보아도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른 해석이 나타납니다. 

누가복음은 신약성경 저자 중 유일한 이방인이었던 의사이자 바울의 동역자였던 누가가 쓴 글입니다. 

누가는 의사이기 때문에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자였습니다. 

그가 관심있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의 내용이지요. 

누가복음 1장 1절은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라고 시작합니다. 다른 복음서보다 누가복음은 이 사실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복음서입니다. 다른 복음서보다 더 자세히 묘사하고 설명합니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려


그러면서 세례요한의 탄생과 예수의 탄생, 사가랴의 반응과 마리아의 반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제사장이요 하나님 앞에 의인이며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없이 행하던 자라고 묘사합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천사장 가브리엘이 친히 잉태를 말하는데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하면서 

천사의 말에 자기의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부정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율법의 선지자로서 나타나는 세례요한의 한계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는 율법적으로 제사장이요 그 모든 규례와 계명을 흠없이 지킨 자였지만 정작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에는 제대로 반응하지 못합니다. 형식은 온전한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신앙생활은 죽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내가 스스로 꾸는 꿈이 아닙니다. 

 내가 꾸는 꿈이 Dream이라면 신앙 안에서의 꿈은 Vision입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꿈입니다.  

 기도할 때, 말씀읽을 때, 전심으로 찬양할 때, 성령을 통해 보여주는 꿈입니다. 

 약속된 꿈이고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꿈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말처럼 평안하게 오지 않습니다

 내가 누려왔고 살아왔던 익숙한 길, 나의 느낌에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버리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나를 맡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그분의 인도함과 보호하심이 내가 나를 의지하고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주가 사는 길입니다. 

내가 보기에 죽을 것 같은 길인데 주 안에서 사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함께 길을 떠날 때 나이가 75세입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을 꿈꿀 수 없는 그런 나이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자기에게 익숙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그분이 지시한 땅으로 떠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고 나올 때의 나이는 80입니다. 200만명이나 되는 백성들을 그것도 뒤에는 애굽 군사들이 쫓아오는데 그 길을 떠납니다. 애굽의 궁궐은 아니지만 미디안 광야에서 아이낳고 결혼하고 단란하게 살고 있는 안식처를 버리고 위험천만한 길로 떠납니다.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복의 일등공신입니다. 가나안 가장 좋은 땅을 달라해도 누가 뭐라할 사람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가지 않는 땅, 또다시 전쟁을 해야지 취할 수 있는 땅, 그 땅을 내게 달라고 합니다. 

 

 내힘으로 할 수 없는 길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떠나는 길입니다. 

 "오직 성령이 내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덮힐 때에 갈 수 있는 땅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시겠습니까? 

 

 38절에 보면 마리아가 고백합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난 주가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고백이 아닙니다. 이 말이 얼마나 대단한 신앙의 고백인지...모세를 보아도, 그리고 바로 앞의 사가랴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 좋다던 그들도 하나님이 비전을 보여 주셨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지 않고 자기 상황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부정합니다. "나는 입이 뻣뻣한 자입니다.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나는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이 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보고 온 열 명의 정탐꾼은 "저 땅이 좋아보이기는 하는데 저들에게 있어서 우리는 메꾸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예수의 부친이던 요셉에게 이루어진 수태고지의 사건을 마태복음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 축소된, 혹은 외면당한 역할, 요셉 

성경 및 초대교회에 있어서 마리아의 중요성은 많이 강조되어 온 반면 요셉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언급되어 오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8절 – 19절) 

  • 요셉은 당시 마리아와 정혼한 상태로 나옵니다. 당시 이스라엘 결혼 문화는 한국의 전통혼례와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남녀 간의 결혼은 주로 그들의 부모나 가족을 통하여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신랑측의 가족이 증인을 데리고 신부측 가족을 방문해서 결혼식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신부측 부모님들이 허락하면 약혼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결혼할 당사자인 남녀는 결혼 전까지 한 번도 상대방의 얼굴을 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약혼을 한 후 결혼까지 남녀는 서로 결혼을 준비하며 상대방을 그리게 됩니다. 
  • 아마도 그 준비기간 동안에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아이라는 것을 요셉은 알고 있었겠지요. 그럴 경우 이스라엘 율법은 파혼은 물론이고 이 일을 동네방네 알려서 파혼의 책임이 있는 여인을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마땅히, 혹은 당연히 유대인 남자로서 해야 하고 또는 해 오던 일이었지요. "당연한 생각" 
  • 요셉도 아마도 그 당연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유대인 남성으로서 당연히 율법대로 그녀의 죄를 드러내고 죄를 도말하게끔 세상에 알려서 자신은 의를 지키고 마리아는 죄를 받도록 하는 생각을 당연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약혼녀 마리아를 보호하고 지켜 주고 싶다고 결심하고 행합니다. 율법을 넘어서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생각을 가집니다. 성경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율법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살리려고 마음 먹고 행동한 요셉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에 부합되고 당연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넘어서는 생각, 사람을 살리려는 생각을 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조차 넘어서지 못한 율법의 문턱을 넘은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20절) 

  • 아마도 요셉은 며칠 밤을 세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생각이 참 많았겠지요. 유대인의 법을 따를까, 잘 모르지만, 혹은 부정하지만 저 여인이 욕먹지 않도록 조용히 일을 처리할까? 생각이 복잡한 요셉은 아마도 그런 생각들로 지쳐서 잠시 잠이 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생각에 지쳐있는 요셉을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듯 하나님은 요셉을 잠들게 하십니다. 왜 잠들게 하십니까? 꿈을 꾸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1) 

  • 내가 무언가 근심이 되어 잠도 못이루고 뒤척이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를 잠들게 하시며 천사를 통해 말씀하여 근심을 바꾸어 기쁨되게 하시는 사건. 복음은 이렇게 어둠 속에 빛으로서 우리에게 오신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 왜 복음입니까? 바로 꿈 같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현실 속에서 논리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꿈 같은 일이 일어났기에 바로 복음입니다. 사람은 꿈을 꿉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현실만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었던 신비한 하나님과의 교제, 그 영혼을 그리워하기 때문에 우리는 꿈을 꾸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꿈을 주십니다.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가 영혼이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영혼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꿈이 담겨져 있는 씨앗이요, 반드시 열매맺게 되어 있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에 왔으되 세상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증거합니다. 

그렇지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하나님의 꿈에 참여하고 그 꿈의 성취를 맛보는 권세를 주셨다고 요한복음 1장에 기록되어 있지요.


이 말씀 대신에 꿈을 넣어 한 번 말을 바꾸어 봅시다. 

하나님이 꿈을 꾸시면 곧 만물이 되고, 생명이 되고, 인간이 됩니다. 

하나님의 꿈은 곧 실현이고 창조입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꿈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꿈을 인간에게도 주어서 인간이 만물에게 명하면 그것이 이름이 되고 순종했는데 죄로 말미암아 말의 권능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꿈을 꾸면 말씀이 되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인간은 꿈을 꾸어도 죄로 말미암아 이루어 지지 않고 말을 하여도 서로가 신뢰하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가 말을 신뢰하지 않으니까 만물도 인간의 말을 듣지를 않지요. 

아무리 꿈을 꾸어도 실현되지 않으니까 이젠 꿈을 꾸는 것 자체를 잊어버립니다. 꿈꾸려고조차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만물을 이루는 근원이 꿈에서부터 시작되어 말씀으로 나타나고 이 말씀이 만물이 되고 육신이 되었는데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 안에서 살아가지만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만물 속에서 갇혀 사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나에게 하나님의 꿈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 온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온 이 하나님의 꿈을 외면하고 삽니다. 그 꿈을 살피지 않고 영접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만물에게 종살이 하듯 삽니다. 

그런데 이 말씀, 하나님의 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비로서 그 꿈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과 똑같은 꿈을 꾸며, 꿈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회는 꿈꾸는 직업입니다. 아니 그리스도인의 삶은 꿈꾸는 삶입니다. 

성탄은 그 꿈이 나에게 오는, 하나님의 꿈이 나에게로 내려오는 설레는 시간입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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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은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8.12.28 06:25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