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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말씀, 그리고 동행 (민 11:4-9, 출 16장) 


엘림에서 나와 시내산으로 가는 도중 신광야에서. 


홍해를 건넌지 3일만에 불평 불만을 쏟아냈던 그들이 엘림의 축복을 얻고 나서 2달여 후에 다시 불평의 병, 원망의 병에 빠진다. 

신광야 - 불모의 땅 

모세와 아론을 원망 


(출 16: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힘이 들 때에 특징: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 과거는 화려하게...현재는 죽을 치 만큼 고통스럽게. 

뱀이 하와를 유혹하니 쳐다보지도 않던 선악과가 너무도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워 보인다. 

니느웨로 가지 않으니 정 반대 환락도시인 다시스로 향하게 된다. 


이 때부터 매일같이 40년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하늘로 부터 주어진 양식이 바로 만나. 

만나의 뜻- 이게 도대체 뭐냐? 


 하늘로부터 비같이 내린 양식 (출 16:4)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섞은 과자 같았다 (출16:31,민 11:8).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과자를 만들었는데, 그 맛은 기름섞은 과자 맛 같았다 (민 11:8).

매일 먹을 만치만 먹으라. 

안식일엔 거두지 마라. 


한가지 형태를 띠었지만 매우 다양한 맛을 내는 음식. 요리 방법도 가지 가지 

-> 200백만 명이나 되는 서로 다른 민족들의 입맛을 고루 맞추어 주는 하늘의 음식 


잘 알고 있듯이 신약성경은 하늘로부터 내려 온 이 양식을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같은 말씀이지만 사람들의 특성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변화된다. 사도바울도 성숙한 사람에게는 고기로, 약한 사람에게는 야채로, 어린아이와 같은 이들에겐 우유로 만들어 말씀을 가르쳤다고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지나 이 만나마져도 불평을 하게 된다.

만나에게 질렸다고 말한다. 

민수기 11:10절

백성이 각기 장막에서 울었다고 기록한다. 

만나가 싫어서 울었다는 것이다. 


이 음식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하는 불평 

애굽의 음식과 비교한다. 

그런데 이들이 상상하는 애굽의 음식은 너무나도 환상적으로 그린다. 

(출 16: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민수기의 말씀은 더 기가 막히다. 

(민 11:5)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출애굽기- 배불리

민수기 - 값없이 

고기와 떡...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


군대에서의 경험- 이제 사회에서의 음식 차단- 자대 배치 받고 몇달 동안은 매점 (PX)도 가지 못하게 한다. 

그 때 생각나는 음식들... 콜라. 햄버거. 치킨,,,,,

 

광야 생활, 만나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 

애굽적인 생활, 즉 이방인의 삶으로부터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세속적인 욕망으로 가득 찼던 영혼의 자루를 깨끗이 비우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들의 울음을 보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11절 12절에 나온다. 

어찌하여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십니까? 

이 백성을 내가 배었습니까? 내가 그들을 낳았습니까? 어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을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십니까? ㅡ


이들의 부모는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당신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나는 젖먹은 아이를 품듯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날마다 품고 약속한 땅으로 데리고 가시는 하나님의 보호라는 것이다. 


저는 어머니가 목회를 하시는 바람에 주로 외할머니꼐서 해 주는 밥을 먹고 자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군것질을 좋아하던 때라 할머니가 해 주는 밥이 그리 맛이 있질 않았다. 

당뇨도 있어서 싱겁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항상 밥먹으라고 하셨고 나는 마지 못해 억지로 먹거나 아니면 안 먹을 때도 많았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하셔서 문병을 갔을 때 하신 말씀.  

"밥먹었니?" 

거의 죽다살다시피 하셨던 할머니께서 날 보자 마자 하신 말 때문에 울 수 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그리워지는 그 소리, 그 맛... 어릴적 집에서 어머님이나 저와 같이 할머니가 해 주던 밥.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셨던 식사시간.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다." (눅 22장)


금요일에도 나누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죄인들에게,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으로, 직접 밥으로 먹이셨다. 

오병이어의 사건도 그렇고, 최후의 만찬 때도,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손수 고기를 구워 먹이면서 또 말씀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밥, 말씀에 그리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에 불평하듯 우리는 말씀 생활 자체를 피하고 거부한다. 

예배 드리면 되었지, 무슨 말씀을 매일 같이 읽냐고 한다. 기도하고 말씀읽고 신앙생활이 왜 이렇게 까다롭냐고 한다. 

 

주님은 매일 하루 하루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탕자처럼 나의 분깃이 있다면 빨리 달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곳에, 내 마음대로 쓰고 싶어한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살면서 날마다 필요를 공급해 주겠다고 하는데 탕자는 어떻게든 자기의 분깃을 가지고 나가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한다. 애굽에서 누리던 향락, 쾌락....여전히 벗어던지지 못하고 다시 돌아가려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비같이 양식을 내리시면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두라고"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내일 것 까지... 남의 것 까지 거두다가 벌래가 생기고 냄새가 나게 된다.   (출 16:20) 


주기도문: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일상 언어로 이야기 하면 "오늘 먹을 밥을 주세요"하는 기도다. 


오늘 필요한 밥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본적이 있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 때로는 솔직하게 내게 지금 필요한 것, 가지고 싶은 것, 그런 것들을 위하여 기도는 했을 지언정 오늘,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한 적은 없다. 왜? 이미 가지고 있었으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지만 바꿔 말하면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생각하지 않는 순간, 내 시선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순간, 언젠가 부족함이 다가왔다. 그래서 신앙 안에서 항상 긴장하고, 크고 작은 염려거리, 기도거리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그 염려의 거의 모든 것은 바로 "내일 이후"의 염려였다. 

내일은 뭘 먹지? 언제까지 이걸 해결해야 하는데?. 이제 조금만 지나면 떨어지는데?

한 번도 오늘 필요한 양식을 위해서 기도한 적 없다. 오늘의 양식은 언제나 있었다. 


예수님 살아계신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오늘 먹을꺼리였다. 

예수님 당시에 노동자들의 임금은 하루 일당이었다. 그러나 일당이 너무도 적어서 그들에게는 하루 양식을 다음 날까지 남길만한 여유가 전혀 없었다. 하루 먹고 하루 살아가야 했다. 당장이라도 직장에서 쫓겨나면 그날은 온 가족이 굶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종교 귀족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로마의 식민 통치 하에서 과도한 세금으로 하루를 살아가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특히 남편을 잃은 과부들,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들, 또 몸이 성치 않는 병자들에게 하루 양식은 목숨 그 자체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오늘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 내가 반드시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여하튼, 이제 우리는 대부분,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에 대한 걱정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필요한 양식을 채우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한다.   

향후 5년간 걱정 없을 통장을 만들기 원하고, 노후 대책을 위해 노력하고, 아이들 학교 들어갈 때 필요한 것들, 결혼 할 때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 걱정하고 그리고 기도한다. 

전도 할 때, "영생 보험 드세요... 죽어서 지옥하면 어떡해요? 만약을 위해서 천국 보험 들어놓세요."

신앙생활을 만약을 위해 준비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결과가 무엇인가? 앞날이 창창한 젊은 사람들은 떠나고 나이 든 사람들만이 보험만기를 기다리며 교회에 남는 현상. 

그런데 만나는 오늘 필요한 오늘의 양식이다. 내일의 양식이 아니다. 

신앙 생활은 오늘 주님과 동행하여 영육간에 강건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넘어서 그 이외에 소망하는 것은 "잉여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잉여의 축복에는 만족함이 없다. 계속적으로 채우려고만 합니다. 채워도 채워도 한이 없는 것이 잉여의 공간이다.  

그래서 어느 덧, 우리는 일용한 양식에 대해서도, 더 나아가 그 보다 몇 배, 몇 십 배, 몇 천 배의 잉여의 축복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그 축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더 나아가 탐욕적으로 사는 것이다. 

오히려 일용할 양식이 다 채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근심하고, 염려하고, 불안해 한다. 앞으로 닥칠 일어나지 않을 일들을 상상하며 불면증에 걸리고 신경증에 걸린다. 

내가 가진 것을 누리지도, 만족하지도 못하고 항상 부족하게 여긴다.  


몇 끼를 굶은 사람에게 밥을 주면 허겁지겁 먹습니다. 숟가락으로 먹는 건지, 손으로 먹는 건지, 음식을 씹어 먹는 건지, 그냥 마시는 것인지 모르게 음식을 먹습니다. 배고픈 자가 허겁지겁 먹는 그 모습은 결코 추한 것이 아닙니다. 더 주고 싶고, 채하지만 않았으면 하고 염려하지요?

그런데 그런 식성을 매번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배가 부르고, 머리에 기름도 주륵주륵 흐르는 자가, 마지 몇끼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게걸스럽게 먹는 다면 그 땐 좀 추해 보입니다. 그야말로 식탐에 걸린 사람으로, 돼지처럼, 짐승처럼 보입니다. 

우리의 삶이 어느덧 그런 식탐에 걸린 사람 같아 졌는지도 모릅니다. 배가 부른데도 여전히 게걸스럽게, 배부른데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먹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야생에 뛰어 다니는 동물이 비만에 걸린 것을 본적이 없습니다. 

오직 사람과 같이 사는 동물, 개나 고양이만 사람이 사는 집에서 비만에 걸려 허우적 허우적. 


신앙생활은 날마다 주님이 주시는 밥을 먹는 것이다. 감사히 먹는 것이다. 그 밥이 나의 영혼을 깨끗이 하고, 나를 죄에서부터 멀어지게 하고, 나를 연약함에서부터 강하게 한다. 

우리에게 밥을 주시는 분은 단지 우리를 사랑하는 부모가 아니다.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사망권세를 이기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이다. 


그 분이 지금도 우리에게 매일 같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고 한다. 

매일 같이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뻐하는 자는 결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만나를 처음 내릴 때, 모세는 내가 부모도 아닌데 왜 내가 이 짐을 져야 합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항변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도 똑같이 하나님과 똑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인도한다. 


목자라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나이도 어린 것이 여러분들을 인도하는 목자가 되어서...얼마나 큰 부담인가?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밥, 이 말씀을 어떻게 먹일 수 있을까 토요일마다 긴장하며 간절히 기도한다. 

내가 할머니께서 차려주신 밥을 싫어했듯이, 세상살이에 지치고 때로는 세상의 밥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입맛에 어떻게 하나님이 차려 주신 밥을 먹게 할 수 있을까 너무 큰 짐임과 동시에 가슴벅찬 숙제이다. 


하루 하루에 삶에 힘이 들때, 어떤 걱정거리가 내 영혼을 망가뜨릴 때, 내 영혼에 파도가 쳐서 위태 위태 할 때....

다른 것으로 피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이 차려주신 밥상 앞으로 나아오라.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여러분! 

하나님이 차려준 밥상을 홀대하지 맙시다. 그 밥은 우리를 살립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합니다. 

왜 그맛을 모르냐면 여전히 내 관심이 세상 중에, 탐욕 중에, 욕망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차려주신 밥은 우리의 영을 깨끗이 합니다. 

처음에는 맛이 없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한번 그 맛을 알면 어떤 꿀보다 답니다. 

주님이 날마다 이 성경 안에서 우리의 밥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먹이고자 합니다. 우리를 살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차린 식탁에서 저와 함께, 날마다 귀한 음식을 맛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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