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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을 향하여 (마태복음 16:16-18)?

[마 16:16-1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러분, 결혼하실 때에 했던 혼인서약문을 기억하십니까??

신랑 누구누구는 신부 누구누구를 맞아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목소리가 작게라도 나올라치면 주례자가 다시 한번 묻습니다. 기쁠때나 괴로울 때나....

모인 사람들 앞에서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는 선언이지요. 특별히 미국문화에서는 반드시 목사가 결혼을 주례하게 하면서 성경책 앞에서 이 선언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신랑신부 사이가 이 날처럼 계속 뜨겁게 지속되면 좋으련만, 시간이 지나면 예외 없이 냉랭한 권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결혼 초 약간의 경이와 신선함을 사랑하는 상대방으로부터 주고 받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지어 상대방이 하는 잠꼬대 패턴까지 익숙해지는 단계까지 접어들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 서로에 대한 갈망의 농도가 처음에 비해서 점점 엷어 진다. 무료함과 권태감이 한 발짝씩 다가오는 것이지요. ?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갈 때 장난감 코너 앞에서 아이들이 움직이질 않습니다. 울며 불며 사달라고 해서 사주는 장난감은 며칠 못되어서 금방 실증을 내어 버리고 버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립니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물과 사람 사이에 수반되는 익숙해짐 또는 오래된 동거는 이처럼 무관심과 싫증을 쉽사리 수반한다. 평생 갈 것 같은 관계도 익숙해짐에 따라 소원해지는 것이 어쩌면 우리 모습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는 어떨까요?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따르며 소통하는 가운데 하나님이란 분을 잘 알게 되고 또 익숙해짐에 따라 그 분에 대한 신선함과 새로움이 덜하여져서 떨어질 수 있을까? 그래서 더 이상 갈망하지 않게 되고 싫증감이 밀려올 수 있을까??

영성가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소원함이 일어날 수 있는가?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해답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그분은 우리의 모습에 따라서 우리에 대한 사랑이나 태도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사 십자가의 고난을 지셨듯이 때로 우리가 넘어져도 여전히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신비는, 새로움은 항상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붙어있으면 지루하지 않습니다. 같은 말씀을 또 보아도, 또 들어도 언제나 새로운 영감을 주고 은혜를 주십니다. 

요동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입니다. 기복이 있고, 우유부단하며, 항상 일어났다 넘어졌다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한결같음입니다. 신실함입니다. 꾸준함입니다. 그런데 변함없으심, 신실함은 하나님이 가지신 속성입니다. 인간은 자꾸만 요동합니다. 변합니다.?어떻게 해야 우리의 신앙이 요동치 않고 굳세게 나아갈 수 있을까요? 


시몬이라는 예수님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따라다녀서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님의 수제자로 일컬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또한 제자들 중에서 성격이 급하기로도 최고였고, 넘어지기도 잘 하였습니다. 칭찬받다가 금방 꾸중듣는 일이 얼마나 잦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는 누구보다 큰 절망 속에서 나머지 제자들을 다 끌고 나가 어영부영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가 실패를 맛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시몬을 가리켜 베드로라 칭하십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알다시피 반석이지요. 튼튼하고 강한 바위라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자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베드로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은 어부였던, 다혈질, 급하다가도, 오르락내리락하는, 우유부단하고, 변화무쌍한 시몬이 변치않는 믿음의 소유자, 하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 가는 여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몬은 어떻게 베드로가 되어가는가? 살펴 보는 것은 우리 또한 어떻게 하여야 슬럼프 없고, 변치 않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는가를 깨달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1. 고백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예수의 이름은 누구인가? 예수이다. (형수의 예) 

그런데 그 스승을 주라고 부른다. 주인이라는 것이다. 예전의 스승과 제자. 소림사와 같이 제자는 스승을 보필하며 그와 같이 살며 그의 삶을 통해서 능력을 전수 받았다. 스승의 말은 절대적. 절대적 순종?왜? 그의 것을 배우기 위해서?

이 는 제자라면 누구든지 섬겨야 하는 자세이다. 아무리 같이 함께 있다고 해도 스승을 주로 삼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껏 자기가 따라다녔던 스승이, 주인이 보통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메시야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구원자라는 것이다. 난 그냥 그 분으로부터 무엇인가 내게 없는 것, 내가 필요한 것만을 배우러 왔는데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내 모든 영혼과 생과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내가 부족한 어떤 것을 채우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 나를 영원토록 책임지시고 구원하시는 분. 내가 죽어서 뿐만 아니라 내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던지 나를 구원하시는 분. 나를 보호하시는 분? 그 고백 위에 시몬이 베드로가 되는 여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1. 고난

그런데 주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서 칭찬받은 시몬이 금방 꾸중을 듣습니다.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듣고 이젠 그리스도로서의 사역, 고난을 당하여 죽고 제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이야기하시는데 베드로가 붙잡고 그리 마옵소서 합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해석되지요. 

내가 믿는 그리스도는 고난 받는 자가 아니라 영광만 받는 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항상 높고 존귀하고, 강해야 합니다. 그래야 따라다닐겁니다. 세상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추앙받는 당신 곁에서 나도 그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당신이 초라하고 고난 받는 그리스도라면 난 싫습니다. 하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의미는 제자는 무엇입니까? 결국 스승을 닮아가는 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자기 스승이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 십자가를 지기 싫고 고난당하는 신앙 생활은 싫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가 고난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그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 길을 가기 싫다는 소리지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를 책망하시길 ?넌 나를 넘어지게 한다. 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 그러면서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반석이 되기 위해서 넘어야 반드시 거쳐가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고난을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난을 각오하라는 것이지요. 

ex) 모래위의 집과 반석위의 집?.

겉보기는 똑같다. 구조도 같고 생김새도?.평상시는 그 차이를 모른다. 

언제 아는가? 바람이 불고 풍파가 쳤을 때에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넘어지지 않고 모래 위에 세운 집은 넘어진다. 고난이 와서 넘어지는 신앙? 결국 기초가 없다는 것이다. 반석의 신앙은 고난을 이기는 신앙이다. 

ex) 변화산상의 베드로?: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는 현장에서 베드로는 그 곳을 떠나기가 싫다. 은혜의 처소에서만 있고 싶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려가자 하십니다. 산에서 제자들은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지만 예수님의 뜻은 은혜 받은 제자들을 땅으로, 세상으로 데리고 내려오셔서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1. 물 위를 걸으라. 

(마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고난을 걷는 다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반석의 믿음의 특징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지요. 승리를 확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물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보면서 나도 명하여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나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물위로 발을 내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만 바라보고 뛰어내린 용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바람을 보게 됩니다. 휘몰아치는 환경에 압도된 것이지요. 

작정하고 신앙생활 하려고 하는데 뜻하지 않은 시험이 올 때가 있습니다.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예배 빠지지 말아야지 하는데, 급장스런 다급한 일이 생깁니다. 작정하고 헌금생활도 잘하려고 하는데 집안에 재정이 마르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려고 작정했는데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물 위를 걸으려던 믿음에서 

환경으로 치우칩니다. 아직 때가 아닌가보다. 주님은 또 기다리시겠지?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는냐?? 

  •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왜 능력이 없는가? 환경에 눌리기 때문이다. 낙심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만 바라보던 시선이 어느새 바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의 고비는 반드시 온다. 사탄이 주는 것이든 하나님이 보내신 테스트이건, 그것을 이기면 능력이 온다. 지면 계속해서 믿음 없이, 능력 없이 살아가는 것이다. 


  1. 기도 

(마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언제 이 말씀을 하시는가? 마지막 만찬에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가 장담할 때에?.
?내가 정녕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니까 시험은 무어냐면은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것?. 그렇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라?

베드로는 난 결코 주님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뭘 의지합니까? 자신의 마음. 

그런데 그 마음은 육신의 피곤함에 그냥 무너집니다. 

피곤해서 기도 못해?.

 (마 26: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 예수님은 그들의 몸이 피곤하다 하시지 않고 그들의 눈이 피곤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눈은 마음입니다. 정신입니다. 몸은 죽고 피곤해도?정신이 살아있으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니 몸이 죽고 피곤해도 살기 위해서라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육신의 피곤함을 모르셔서 기도하라고 하셨을까? 알지만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반석의 믿음은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이다. 


  1. 사랑 

부활하신 사실도 모른채 낙망하여 다시 고기잡으러 간 제자들을 찾아 오셔서 그들을 먹이시고

-:> 이 때 베드로는 바다로 뛰어 들어 예수를 맞는다. 실패하지 않고 물 속을 뛰어든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 

반석이 되기 위한 마지막 완성은 사랑이다. 우리가 낙심 될 때에?넘어지고자 할 때에?

난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토록 수많은 기도와 찬양속에서 고백했었던 예수님 사랑해요. 예수님 감사해요?그 고백이 고작 이것뿐이었나?.

내가 진짜 예수를 사랑했는가?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가? 


그 사랑을 언제 발견하게 되는가? 넘어져 있는 날 찾아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 그 사랑 앞에 내가 가진 사랑은 과연 얼마인가?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아무리 내 배우자가 미울 때에도 ?저 사람이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알게 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난 정말 그를 사랑하는가? 사랑했는가? 


  1. 마지막 시험. 

요 21:21) 주님 이 사람은 어찌 되겠습니까? 

비교하거나 다른 사람의 신앙, 사명, 사역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나의 사랑, 나의 믿음, 나의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비교는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는 가장 큰 통로?. 비교를 통해서 내 자존감이 사라지고, 미움이 싹트고, 내 존재가치가 무너진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요 21:22)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