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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17-35절 

마지막 만찬 때에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기 1주일 전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환호와 경배를 받으며 입성하는 왕의 입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들의 환호는 며칠이 채 되지 않아 "십자가에 못박으시오!"하는 저주와 조롱의 소리로 뒤바뀝니다.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죄없는 예수를 죽이는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역사의 아이러니한 현장을 보여줍니다. 


흔히들 연예인들 하면 사람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 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가장 되고 싶어하는 직업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팬 레터를 받고, 말 한마디, 옷차림 하나하나까지 관심을 받으며 산다는 것은 설레는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방송이나 신문에서 인터뷰를 합니다.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작 사람들 때문에 꼼짝 달싹 할 수 없는 질병을 앓고 사는 것입니다. 


연예인들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개 사람들을 의식하며 삽니다. 많은 세상의 사람들의 행복의 기준을 남들과 비교하면서, 남들의 시선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기도 합니다. 

남들에게서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 금방 불행해졌다가, 부러운 시선을 받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이내 행복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것, 그들의 기준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언제 바뀔지 모르는 그런 위험 천만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가치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이제 무교절의 첫날입니다. 

요일로 치면 목요일 날입니다. 

이제 하루만 있으면 십자가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자기가 죽을 시간을 기다리는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여러분의 삶에 단 하루의 시간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가족이건, 친구건, 연인이건 아마도 마지막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싶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육신의 가족이 아닌 자기의 영적인 가족,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함께 하십니다.  

 

 삼년 동안 동거동락 하면서 예수의 공생애의 시간을 함께 했던 가족 보다 더 가까웠던 동역자들

 누구보다도 상세히 하늘나라의 이야기와 비밀들을 알려주었던 제자들, 

 그리고 비로서 그들의 입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던 예수님을 알아 주었던 사람들

 

 주님은 그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십니다. 

 그런데 이 만찬을 맞이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예수님의 모습은 전혀 다릅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들어 올 때에 백성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 예수님께서 이번 유월절이 특별한 날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날, 제자들은 서로 자기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다투기도 하고 제자들의 어머니들까지 나서서 은근히 자리를 청탁하기도 했습니다. 

거기다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야라고 여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백성들처럼 제자들도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이스라엘의 제일 큰 명절에 어떤 일을 이루실 지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만찬은 한껏 들떠서 즐기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자신이 앞으로 될 일을 제자들에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 생각에 꽉 막혀 예수의 하는 일을 듣지 못합니다. 

 그리고 더욱 큰 슬픔은 자기가 고난을 당할 때에 제자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떠나갈 것이라는 것 입니다. 

 3년을 함께 했던 누구보다 귀한 제자들이기는 하나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지 못할 때에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곧 떠날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만찬 시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가지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는 이제 너희들이 나를 팔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에게 첫 번째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고 

셋째는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요한 복음 말씀을 통해 보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만찬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세가지 일을 함께 나누어 봅니다.  


1.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21절)  

식사 시간에 갑자기 하시는 이 말씀에 식사 시간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제자가 스승을 판다는 것,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것과 같은 인륜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물론 너희 중에 하나는 가룟유다를 지칭할 것입니다.

왜 그가 예수님을 팝니까? 앞에 15-16절을 보면 단지 은 삼십냥을 위해 예수를 파는 것입니다. 

은삼삽은 노예 한 명의 몸값입니다. 

스승인 예수, 아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노예값에 팔아 넘기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찬 가지 입니다. 대단한 목적을 위해서 신앙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 앞에 닥친 잠깐의 만족을 위해 신앙을 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 앞에 놓인 잠깐의 쾌락을 위해 예수님과의 신뢰를 깨 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시면서 구원코자 하는데 우리는 당장의 작은 어떤 것을 위해 예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릴 때가 얼마나 많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가룟 유다에게만 한 말씀이 아닙니다. 뒷부분에도 나왔지만 가룟유다만 예수를 배반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도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지요. 56절에 보니까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합니다. 


왜 그들이 하나도 남지 않고 도망합니까?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그토록 말씀하셨던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의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왜 유다에게만 나를 팔려는 마음이 있어도 그렇게 하지 말아라. 너 그렇다가 큰일 난다.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씀하십니까? 

설사 누가 그런 마음을 품었더라도 그렇하지 못하도록 서로 권면하고 잘못을 막아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은 뭡니까? 

"나는 아니지요?" 

나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입니다. 


여러분 신앙 생활은 곧 교회 생활 입니다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공동체 생활을 하도록 태어난 것입니다. 

공동체 중 하나에 구멍이 뚫리면 결국 모두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신앙이 위험하고 시험에 들었을 때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곧 교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왜 제자들 앞에서 너희 중 하나가 날 팔리라 하고 말씀하십니까? 

그리고 이 자리에서 왜 예수님은 그토록 서로 사랑할 것을 말씀하십니까? 

신앙은 서로에게 관심 갖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지극히 작은 것을 소중히 하고 섬기고 보호하는 것이 구원받는 사람의 모습이고 양의 모습인 것입니다. 


2. 내 살과 피를 마셔라. 성찬과 발을 씻기심. 

마지막 만찬에서의 주님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제 은 삼십냥을 가지고 자기에게 입을 맞추며 로마 병정들에게 넘겨줄 유다

죽어도 배반하지 않는다고 했음에도 자기 살겠다고 부인하고 저주하는 베드로. 

로마 병정들의 위협 앞에서 다 뿔뿔히 도망칠 나머지 제자들....

한시간도 기도하지 못하고 피곤해하며 졸기만 하는 그런 제자들. 


제가 만일 예수라면 한 한시간동안은 혼을 내며 잔소리를 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말을 해서라도 그들이 예수님의 말을 잊어버리지 말고, 또한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가르쳐주고 하지 말라고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얘 포기하고 홀로 시간을 보냈을 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 편이 훨씬 편할는지 모릅니다. 

그들을 바라보면 바라 볼 수록 앞으로 그들이 행할 일들이 더욱 괴씸하게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아리랑: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우리 민족의 한이 담긴 노래 


그런데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못한다고 꾸짖거나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건 예수는 주님으로서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내 살과 피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내 살과 피로 너희를 구원했음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그들의 발을 씼겼습니다. 


우리는 세족식을 경험했거나 들어봐서 알지만 스승이 제자의 발을 씻긴 다는 것

그리스도가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는 것. 

이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일입니다. 전대미문이 사건입니다. 

그 어떤 역사적인 기록에서도 스승이 제자를,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의 발을 씻긴 예가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일을 행하셨을까? 

어떻게 그 만찬, 최후의 만찬 시간에 그들의 발을 씻길 마음을 가지셨을까? 


첫째, 발을 씻기시는 예수의 마음은 격려, 수고했다.

미우나 고우나 3년간을 함께 했던 제자들을 손수 씻겨 주신 것입니다. 

발을 씻는 것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하는 것. 

공생애의 일과를 함꼐 했던 제자들의 수고와 피곤함을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발을 씻기시는 예수의 마음은 용서였을 것입니다. 

나같으면 쳐다보고만 있어도 화가 났을 그 순간에 주님은 용서함으로 그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과거의 모든 어리석음 뿐만 아니라 이제 다가올, 그들 마져도 너무나도 후회할 그런 모든 배반과 저주의 일들을 예수는 미리 용서 하신 것입니다. 


셋째,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마음은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선생되어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라"(요 13:14) 라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잘하고 기특한 자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곧 떠나가고 도망칠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 결국 끝까지 그들에게 예수의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방탕한 아들, 맨날 사고만 치는 그런 자녀를 끝까지 용서하고 믿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혼내고 잔소리하고, 꾸짖는데 익숙하지만 가장 엄한 회초리는 

끝까지 믿어주는 것이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난 정말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목회를 하면서도 얼마나 실수투성이인줄 모릅니다.  

은 삼십에 예수를 판 유다처럼 나도 시시 때때로 너무도 하찮은 일에 주님과의 약속을 깨고 내 맘대로 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게 실패한 마음, 죄책감이 가득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려고 하면 염치가 없어서 기도조차 안나올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억지로 마음을 정하고 기도하면 제가 어떤 잘못을 해도 주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한 번도 용서하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아니 용서라기 보다는 그냥 제 마음을 받아주시고 "승구야 난 너를 믿는다"하십니다. 


여러분, 난 회개기도 하는데 하나님께서 안 받아 주셨다하시는 분 있으십니까? 

회개하는데 막 화내셨다 하는 분 있습니까? 

다 용서하셨지요? 

다 받아주셨지요? 

그리고 여전히 실수하고 넘어지는 우리지만 끝까지 믿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더러도 이렇게 격려하고, 용서하고, 믿어주며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 심보가 참 못되서 혼을 내다 보면 잘못한 줄 알아도 인정하지 못하고 성질 부릴 때가 많습니다. 

잘못한 줄 몰라서 안고치는 것이 아니라 심보가 못나서 성질내고 않고치는 것입니다.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어다." 

호되게도 아니게 하나님의 가인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런데 한낱 가인이 하나님이 따끔한 지적에 회개하지 않고 살인을 합니다.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 

가인에게와 마찬가지로 주님은 유다의 마음 속에 있는 죄를 지적하십니다. 

유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두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 지적에 누구도 회개하거나 고치지 않습니다. 


그 땐 넘어졌어도 그러나 제자들은 그 어느 떄 보다도 생생하게 예수님의 행하신 일들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살과 피로 우리가 죄에서 부터 구원받았음을 깨닫게 하신 것이고 

발을 씻김으로 

죄인인 우리를 격려하시고 용서하시고 그리고 믿어 주셨다는 것을 삶으로 체험한 것입니다. 


그 은혜를 받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살라고 하십니다. 


서로 격려 합시다. 꼭 잘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고 못해도 수고 했다고 격려합시다. 

그리고 용서합시다. 

설사 먼저 회개하지 않아도 먼저 용서하면 됩니다. 

그리고 믿어줍시다. 끝까지 믿어 줍시다. 


그렇게 주님의 살과 피로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