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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1-14절


1.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 


왜 비슷한 기사를 마태와 마가는 두 번씩 기록했을까? 

어떤 이들은 이것이 같은 기적의 중복된 표현이라고도 하지만 분명 다른 사건이다. 

6장의 기록이 이스라엘 땅에서 이루어진 기록이라 한다면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 이후로 예수님은 믿음이 부족하거나 예수님을 외면하는 유대인들과 반대로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모하며 갈급해하는 이방인들의 기사를 계속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것을 통해서 자기들만 구원을 받는 다는 선민의식에 쌓인 유대인들의 교만과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의 믿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 무엇입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이 해가 저물 때 까지 말씀을 들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장면이라면 이들은 어떻습니까? 

이미 예수님과 더불어 사흘을 함께 한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는 모리아산까지 나오는 기간,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부활할 때까지...죽은 지 사흘만에...) 내가 죽는 시간, 거듭나는 시간... 

그리고 이들 중에는 멀리서 온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훨씬 더 멀리서 와서 훨씬 더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이방인의 믿음이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깊다는 것입니다. 

북한, 중국, 아프리카, 동남아.... 멀리까지와서 ...


교회 생활 오래 한다고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항상 깨어 있지 않다면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된 자가 나중 되는 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신앙은 항상 "지금, 여기"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서학자들은 오병이어의 다섯개의 빵은 구약의 모세 오경을 가리키고 일곱개의 떡은 계시록에 기록된 일곱 촛대, 즉 일곱 교회를 의미한다고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병이어에서 남은 바구니가 12광주리이고 여기에서 남은 바구니가 일곱 광주리가 남은 것도 유대인의 12지파와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포함한 7교회를 말한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계속적으로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시지만 유대인들의 태도는 점점 더 냉랭해집니다. 

3장에서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가 예수님을 외면하고 6장에서는 고향에서 배척당하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는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돌아갑니다. 

가족에서부터 고향사람들, 그리고 이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이 하나같이 예수님을 떠나갑니다. 


그에 비해 이방인들의 태도는 한결같이 예수님을 간절히 바랍니다. 사모합니다. 깊은 믿음으로 도우심을 구합니다. 

죽음을 무릎쓰고 살기 위해 주님에게 간구하고 달려듭니다. 


신앙 생활을 거듭할 수록 난 유대인처럼 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점점 더 믿음이 사라져가고 있지는 않은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2. 제자들의 믿음 


또 하나 살펴 볼 것은 제자들의 믿음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때는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께 나아와 사람들을 걱정하며 마을에 가서 밥을 먹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간곡히 제자들에게 그의 마음을 보여 주십니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이미 6장에서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폭풍우가 쳐서 죽을 뻔했던 그들 앞에서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주님을 그들은 경험했습니다. 

한차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으로 보았고, 그 분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했고, 작은 소년의 헌신이 얼마나 크게 역사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그 이후에 생명을 살리시고 귀신을 쫓으시고, 말 못하는 자를 말하고 듣게 만드시는 예수님도 경험했습니다. 


이미 같은 일을 겪었을 제자들 중 어느 하나도 "그 때처럼 주님께서 축사해 주세요."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기적을 어쩌다 한 번 일어나는 우연으로 보는 것입니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빌립처럼, 인간적인 계산하지 말고 믿음으로 응답하리라 한 제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이 보여 주어도 그들의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3. 바리새인들


표적을 보여 주세요!!!

메시야 되는 증거를 계속 대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은 오병이어를 못 보고 못 들었을까요? 

예수님의 기적을 하나도 보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계속 계속 보기만을 원합니다. 

그들의 믿음이 식지 않도록,  잊어 먹지 않도록 또 보고 또 보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자기는 하나도 안 변할 테니, 자기는 하나도 믿음이 안자라고 안변하고, 난 가만히 있을테니 계속 당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보여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이 없어서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평했습니까? 

아니요... 하나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만나를 내리시고 물을 공급하시는데 자기들이 원하는 것 하나라도 채워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디있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별 소리들을 다 합니다. 

오천명을 먹이시고 사천명을 먹이셔도 그들은 당장 자기의 필요가 채워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힐난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당신이 날 다 채울 수 있느냐? 하면서 자기의 탐욕과 정욕을 불태웁니다. 


이슬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

신앙에 지름길이 없다. 일확천금을 기대해선 안된다. 

올듯 안 올듯 이슬처럼 내리는 은혜가 가장 값진 것이다. 

소나기를 기대하면 더 큰 자극을 기대한다. 

더 큰 자극을 원하다 보면 말씀을 잃어버리고 현상만을 본다. 

이방인의 예배, 바알의 예배는 인간을 흥분시키는 예배였다. 

흥분되지 않으면, 감정적으로 격동되지 않으면 은혜 못받았다고 한다. 

은혜는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는다. 

흥분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오직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일상에 뿌리 내릴 때에 우리의 삶에 은혜가 가득하고 열매가 열리는 것이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