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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가복음 3:20-35


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1. 집에 들어가시니 


회당에서 바닷가로 바닷가에서 또 다시 집으로 

집은 누구의 집인가? 아마도 안드레와 베드로의 집 

눈코들새 없이 바쁜 생활 

무엇을 위하여? 복음과 및 죄가운데, 질병가운데, 상처 가운데 빠져 사는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은 집에 쉬러 들어간다. 그런데 예수님은 집에 들어가서도 겨를이 없었다. 쉴 틈이 없었다. 식사할 틈도 없었다. 


2.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다시라는 말은 끊임없이, 지속적으로의 표현을 우리말로 고친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의 집에서 병을 고치러 수많이 모였던 군중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예수의 도움을 찾아 모이기 시작합니다. 

왜 사람들은 모이기 시작할까요? 

예수를 보면, 예수를 만나면, 예수가 기도하고 만지기 시작하면 변화가 있고, 치유함이 있고, 희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요즘 시대는 사람들을 모으기가 힘든 세상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 모이기 싫어하는 교회는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 모으기 위해서라면 다양한 여러가지를 준비합니다. 연예인도 불러보고 유명한 목사님도 초대합니다. 상품도 주고 식사도 줍니다. 

창립기념 예배 때나 부흥회 때, 우리 교인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있으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홍보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선물을 주지 않아도 몰려 왔습니다막아도 막아지지가 않았습니다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끊임없이 모여들게 하는 것입니까? 

그 당시 그곳에서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 예수님 외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예수님 외에 희망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의 희망이 되시는 예수님 에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요.

희망이 있는 곳에 사람들은 모여듭니다. 그곳에서 무언가 변화가 있고 고침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모여들지 말라해도 모이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고 변화가 없는데 자꾸 오라니까 사람들이 짜증내고 싫증내면서 멀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희망이 있으면 사람들은 모입니다. 

우리가 먼저 변화되어서 예수 믿어서 좋은 소식들이 두루두루 퍼지면 우리를 귀찮게 할 정도로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근본적인 것인 우리 안에 희망이 있는가? 나누어줄 꿈과 비전과 희망이 우리 안에 가득한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예수믿고 치유되고 변화된 사건들이 넘치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사랑이 넘치면 분명 사람이 올 것입니다. 


3.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식사할 겨를이 없었다는 것은 그들의 요구에 일일이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만일 무시 했다면 뭐 특별한 문제가 있었겠습니다귀찮아서 자신이 들어가신 집의 문을 닫으시고잠그셨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그들을 막으셨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습니까?  

누구나가 직장에서는 열심히 일하더라도 집에 가선 쉬고 싶습니다. 누군가 방해 받지 않고 사생활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충전을 해야 다음날 일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식사도 미루고 사람들을 만나십니다. 

그들의 아픔을 그냥 두실 수가 없었습니다안타까웠습니다그래서 그들에게 다가가셨고그들의 아픔을 만지셨습니다그러기 위해서 식사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지요.

지금 자신의 필요보다도 자신 앞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셨습니다자신을 위하여 움직이시는 것 보다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다가가시며 그들을 안으셨습니다. 식사할 겨를이 없다는 것은 그분의 헌신과 열정의 정도를 보여줍니다. 


자신을 위하여 밥 한 끼도 제대로 하실 수 없었던 예수님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셨던 예수님을 보면 부끄러워집니다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멀리하면서도 나를 위하여 살기 때문입니다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내가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다른 사람의 소중한 일을 멀리하면서라도 나의 하찮은 일이 더 우선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먹자고 하는 일이라고 합니다그래서 먹는 것도 포기하고때로는 먹는 것도 뒤로하고 해야 할 중요한 일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우리가 그렇게 내 이익에 몰입하는 순간세상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세상을 위하여 우리의 시간을 내려놓을 때에내가 누리고 있는 것소유한 것들을 내려놓고세상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비로써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바로 바라보겠지요내 할 일 다 하고내가 쓸 것 다 쓰고다른 사람을 돌아본다는 것은 가치 없는 일이겠지요


21-22)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자신의 전부를 드리며 열정으로 헌신하고 있는 예수에게 가장 먼저 상처를 입히는 것은 다름아닌 가장 가까운 친족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예수님은 지금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미쳤습니다. 밥도 잘 못잡수시고 기도하고 가르치고 병자들을 돌보십니다. 평범하지 않게 삽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은 한 술 더 뜹니다. 

뭡니까? 

지금으로 하면 서울에서 온 신학자들은 예수를 귀신들렸다고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 지도자요, 엘리트라고 하는 자들이 지금 예수보고 귀신들렸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아마도 예수에 관한 소문을 계속적으로 퍼뜨렸겠지요. 


아주 상류층의 정치가- 정치 한 답시고 서민들을 찾아다니면서 

                      아니 골방촌- 이런 데서 어떻게 하세요. 이사를 좀 하시지요. 

                      비만세- 맞벌이 부모들에게 자녀들 페스트 푸드 먹이지 말라고 그 방법으로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들. 


서기관- 말씀을 가지고 정죄하고 판단하고 자기들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사람들. 

        남을 정죄하는 데는 익숙한데 정작 자기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뉘우치기는 커녕 예수에 대한 소문만을 내려는 자들. 

        누가 귀신의 앞잡이인가? 그러니까 결국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자, 이제 정리해 봅시다. 예수님은 말씀을 전하며 병자들을 고치시느라 식사하실 새도 없을 정도로 바쁘셨습니다. 그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은 쉴새없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 즉 예수님의 사역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역시 예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의 사역을 오해한 자들, 거기다가 예수의 사역을 부정하는 자들이 그들이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들은 예수가 귀신이 들렸다, 예수가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다 라고 판단했습니다. 판단했을 뿐만 아니라 그 판단을 동네방네 퍼뜨렸죠. 그 소문을 들은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님의 가족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22-23절) 

같은 편끼리 싸우느냐? 강한 자를 먼저 결박하기 위하여 귀신을 먼저 친다. 


성령을 모욕하는 죄. 

예수님은 지금 귀신을 쫓아내고 계십니다.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귀신과 원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 정죄합니다. 예수님이 귀신의 왕이 아니라면,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 정죄하는 서기관은 누구 편입니까? 원수의 원수는 친구입니다. 예수님을 귀신의 왕이라 정죄하는 서기관들이야말로 귀신의 친구, 마귀의 친구라는 겁니다. 귀신에게는, 마귀에게는 결단코 용서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를 돕지 못할 망정 방해하는 저 서기관들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심판의 선언이, 지금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가족 

그들은 예수님의 주변에 모여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자들이다(3:33-35). 극적인 대조법으로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은 밖에 있고(3:31) 메시아적 가족을 구성하는 이들은 집 안에 있다(3:32, 34). 이러한 상황의 설정에서 예수님은 진정한 하나님의 가족에 관한 과격한 선포를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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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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