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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본문: 막 2: 1-12

1장에서 우리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르치시며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을 목격했습니다. 

유사한 장면의 반복인데 그것은 병의 치유와 그것으로 인한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과의 갈등을 다룹니다. 

그리고 나서 4장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에 대한 비유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그리고 나서 파도와 하늘, 폭풍을 잠잠케 하시는 예수님의 권능이 나옵니다.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고, 그리고 다시 더 깊은 복음의 내용을 가르치심. 그리고 더 깊은 광경을 보여주심. 

이것을 통해서 제자들과 반대자들이 점점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의 가르침이 깊어짐에 따라서 무엇이 요구되느냐? 말씀대로 살 것이냐? 말씀을 거부할 것인가가 가르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깊이 요구된다. 다시 말하면 변화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문제가 점점 더 깊이 드러난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한 번의 선택이 아니다. 한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하지만 예수는 예수를 따르는 것을 한번의 선택으로 맡기지 않으셨다. 오히려 거듭 거듭 말씀을 전하시고, 보여주시고, 가르치시면서 정말 날 따를 것인가하고 거듭 물으신다. 회심이 과정을 순간이자 평생인 것이고 결단이자 인내를 요구한다. 


한 생명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의 값을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정하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그럼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세가지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생을 얻은 우리 인간의 생명이 영원함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귀한 것은 힘듭니다. 가치 있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한 생명을 출산하는 것도 힘이 들고, 그 생명을 양육하고 돌보는 것은 더욱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해산의 고통과도 같은 아니, 해산의 고통은 주어진 시간에만 참으면 해결되는 고통이지만 한 생명을 구원하는 고통은 그 영혼이 구원될 때까지 받게 될 고통이므로 더 큰 고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장의 중풍병자이야기는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구한 이야기입니다. 네 사람의 친구들이 한 중풍병자를 주님께로 데려와서 구원받은 내용입니다. 올 때는 상에 실려 왔는데 갈 때는 치유 받고 돌아갔고, 병 뿐만 아니라 죄사함까지 영적으로, 육적으로 다 고침받은 사건이 마가복음 2장의 사건입니다. 본문을 보면서 한 사람을 구원하기까지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어 볼까 합니다. 오늘의 사건은 중풍병자가 낫는 기적은 친구들의 믿음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에 보신 것은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찾으시는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친구들은 그냥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이 친구를 주님께만 데려 온다면 반드시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담임하면서 한 분 한 분 그 분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말씀과 동행하도록 살게 그 분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저의 임무이고 책임이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압니다. 그러나 세상을 움직이고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마음에 움직이시고 감동을 하시는가? 바로 믿음의 사람들에 의해서 움직이시고 감동하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시라면 할 수 있습니다하고 달려드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그들의 믿음을 보고 움직이십니다. 질병을 치료하시고, 때로 파도도 잠잠케 하시며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가장 첫 번째 법칙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 두려움과 질병과 고난과 사탄을 이기는 것도 오직 믿음 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 자신도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힘도 오직 믿음입니다. 


[요일 5:4-요일 5:5]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그러면 우리가 읽은 막 2장의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과 믿음은 함께 갑니다. 희망없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한 친구를 사랑한 네 명의 친구들, 그 중풍병자를 긍휼이 여긴 사람들, 사랑과 믿음이 만나는 곳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믿음을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갈 5: 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하나가 된 믿음입니다. 네 친구들은 한 마음으로 함께 보조를 맞추면서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옵니다. 누군가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 안됩니다. 함께 보조를 맞추어 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하나가 된 믿음은 곧 협력하는 믿음입니다. 혼자 힘 보다는 협력해서 함께 나아갈 때에 큰 일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네 친구들은 중풍걸린 한 사람을 일으키기 위해 한 마음으로 협력합니다. 하나님은 연합하는 사랑, 연합하는 기도를 기뻐 받으십니다. 성령님은 사랑으로 연합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분리하게 합니다. 마귀의 다른 이름은 곧 분리자입니다. 분쟁하게 하여 힘을 분산시킵니다. 힘이 분산되면 무력해집니다. 우리는 우리를 분리하게 만드는 사탄의 역사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작은 힘이라도 뭉치면 힘을 발휘하게 그 속에 사랑이 담기면 엄청난 힘이 나옵니다. 사랑은 나누어진 것도 연합하게 만듭니다. 
  • 또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열정적인 믿음입니다. 친구들은 예수님 계신 곳에 사람들이 많아 들어갈 수 없음을 알고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렸습니다. 열정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를 볼 수 없자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에게 다가갈 수 없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면서 제자들이 예수를 설득할 정도로 부르짖었습니다. 열정이 없으면 이런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이 열정이 중풍병자를 낫게 합니다. 사랑은 바로 열정입니다. 사랑이 있다는 것은 어떤 장애가 있어도 헤쳐나갈 열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에너지 입니다.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변화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사랑으로 연합하여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들의 표정, 그들의 행동을 상상해 보자. 억지로 했을까? 창피해 했을까? 아마도 기쁨이 있었을 것이고 기대에 차 있을 것이고 또한 중풍병자 친구에 대한 긍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아름답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변화시키 전에 사랑하는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다.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또한 곧 희생하는 믿음이다. 사랑은 곧 희생이다. 사랑하는 것 만큼 희생하게 된다. 사랑한다면서도 희생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 아니다. 정욕이고 내 욕심을 채우는 것이다. 사랑은 곧 희생이다. 값을 따지지 않고 희생하는 것이다. 네 친구들을 살펴보자. 그들은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중풍병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그를 인도하기 위해 하던 일을 중지하고 그를 데리고 나옵니다. 중풍병자를 위해 지붕 뜯는 희생을 감수한다. 지붕을 뜯는 다는 것은 나중에 그 수리비까지 감수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고 희생시키셨다.

  •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존귀하게 만들어 준다. 가치 있게 해 준다. 중풍병자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예수님은 나중에 그의 병이 죄를 통해서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죄를 짊어지고 병에 든 자의 자존감은 그야말로 무너져 있었을 것이다. 자신을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특별히 몸이 아프거나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할 때에 그런 삶의 비참함, 초라함이 지배하게 된다. 중풍병자는 남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어찌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도 고통거리, 골칫거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도, 남에게도 귀찮은 존재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그를 존귀한 자로 만들어 준다.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열정을 바침으로서 아무런 의미 없이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병자에게 나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하고 그들의 열정을 바치는 존귀한 자로 느끼게 끔 해준다. 중풍병자를 존귀하게 해 준 사람은 누구인가? 먼저는 그 친구들이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를 존귀히 대해 주신다. 예수님은 소외된 사람들, 죄인들, 병든 사람들에게 존재 가치를 심어 주신다. 예수님의 관심이 그런 사람들에게 가 있다. 세리와 죄인들, 병든 자를 사랑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이 사람 하나만 오면 교회가 좀 교양있어지고, 수준이 올라가고, 재정이 풍부해지고 그런 사람들을 찾을 것인가?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가는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중풍병자와 같은 병든 자들, 상처 투성이의 사람들, 정말로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데리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싫어 할 수 있어도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시니 우리의 눈도, 관심도 그런 사람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다. 사람들을 전도하기 필요한 마음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 영혼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고, 그들을 존귀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 
  • 그렇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서 존귀한 자임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진짜 천하 보다 귀한 자이고 주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를 질 그런 자가 나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내가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인생의 실패 때문에 내 가치가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구겨졌다고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돈이 좀 찟겨져도 번호만 남아 있으면 그 가치는 그대로 입니다. 오래되어도 새돈이나 가치는 같습니다. 모양과 상관없이 돈은 그 가치를 유지하듯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기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것이다. 우리의 가치는 이미 십자가 상에서 결정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상속자가 되었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된 것이다. 
  •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가치를 실력으로 평가할 지도 모른다. 재산의 유무로 상대할 지도 모른다. 재능과 기술이 있어야 대접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당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기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신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들이다.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자들이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에 우리 자신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외모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커리어 속에 감추어진 그들의 영혼의 가치를 따라 사람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 또한 친구들의 믿음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목적이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중풍병자의 병을 고치는 것이었고 그렇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그를 예수님 앞에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믿음이 무어냐? 분명한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바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그 바라는 것을 위해 불타는 소원을 가지는 것이다. 네 친구들이 바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병들어 죽어 가는 한 생명이 치료 받고 구원받는 것이었다. 그 비전으로 하나가 되었다.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기회를 포착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오신 다는 소식을 듣고 병든 친구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많아서 도저히 예수님께 다가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정확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장애가 있어도, 기회가 사라져도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정확한 목표가 없으면 장애가 주어졌을 때 막혀 버립니다. 주저 앉아 버립니다. 그런데 믿음 안에 정확한 목표가 있을 때는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산을 넘고 파도를 헤치고 길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막 2: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 친구들은 지붕을 뜯어 구멍을 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적극적입니다. 어떤 장애가 와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지붕을 뜯은 것이 아닙니다. 불쌍한 한 영혼, 한 이웃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목적이 분명할 때에 길이 보입니다. 남이 볼 수 없는 길을 목적이 분명한 자들은, 꼭 이 일을 이루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는 중에 길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아니 어느 누가 지붕에 중풍병자를 데리고 올라갈 생각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붕을 뚫을 생각을 하겠습니까? 

Ex) 삭게오: 세리장 삭게오가 그렇잖아도 남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며 살아가던 그가 뽕나무에 올라가 예수님 바라볼 생각을 했겠습니까? 주님을 만나겠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으니까 남들이 쉬 생각지 못하는 일들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닙니까? 

  •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적을 성취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일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작한 일을 끝맺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1. 장애물 때문입니다. 첫 번째 장애물은 무리? (나도 남들처럼?) 우리 속에는 무리에서 벗어나 특별한 길을 가고자 하는 잠재의식 속에 동시에 무리 속에 속하고자 하는 의식? 무리들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습성이 있다. 네 친구들이 먼저 한 일은 무리들 가운데 길을 내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심은 항상 무리에 있지 않고 무리를 뚫고 나오는 한 영혼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남을 도울 때도 마찬가지다. 남을 돕다가 수군수군하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비난을 감수할 수도 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체면이라는 장애도 극복을 해야 한다. 네 친구들은 일찌감치 교양 있는 것을 포기하고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뚫었다. 극성맞아 보이는 것을 감수했다. 아마도 나중에 사람들이 다 간 후에도 지붕을 고쳐주고 돈을 물어주었을 것이다. 
  2. 더 큰 장애물은 자기 자신 안에 있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길과 체면을 생각하고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렇게 해도 아무런 일도 안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외부적인 장애물보다 더욱 큰 장애물은 언제나 내 안에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입니다. 이럴 때 넘어지거나 좌절하지 않고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다시금 목표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냥 돌아가면 똑같이 변화없이 절망 속에서 살아갈 중풍병자를 위해 그래도 조그마한 희망만 있어도 그를 위해 끝까지 가 보는 것입니다. 가장 큰 위기는 목표를 잃었을 때에 옵니다.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 눈에 목표가 보이지 않고 장애물만 보일 때 입니다. 장애물은 장애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에서 목표를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장애물 앞에서 목표를 잃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를 만나야만 친구가 나을 것이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넘어서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지붕 밑에 있는 예수님을 향해 지붕을 뚫고 친구를 내려 보냅니다. 

우리가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전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를 가까이 하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믿음은 다름아닌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장애물 속에서 기회를, 장애물 속에서 비전을, 장애물 속에서도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합니다. 믿음의 눈은 모든 것을 초월하게 만들어 줍니다. 
  • 예수님은 이러한 친구들의 믿음을 보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막 2: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 예수님은 믿음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기적은 은혜의 사건입니다. 중풍병자에게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를 데리고 온 친구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 우리는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우리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많은 기적들은 기적을 경험했던 당사자들의 믿음보다 그들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믿음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 가나 혼인 잔치에서의 기적은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과 종들의 순종이었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이 나은 것은 아버지의 믿음이 아들의 병을 낫게 한 것이었습니다. 나사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던 마르다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 믿음을 키우십시오. 약한 믿음에서 강한 믿음으로 키우고 믿음을 강하게 하십시오. 말씀으로, 기도로 믿음은 자라납니다. 믿음은 점점 강해집니다. 중풍병자의 병나은 기적을 보고 가장 기뻐한 것은 물론 중풍병자였겠지만 그 친구들의 마음은 어떻했겠습니까? 힘들게 발 맞추어 지붕까지 친구를 올리고 지붕을 뚫고 지붕아래까지 친구를 예수님 앞에 인도한 그 친구들의 마음도 역시나 감격에 겨워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이 사건으로 더욱 강해지고 또한 하나되었을 것입니다. 
  • 우리 주위에는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패와 절망 속에서 스스로 예수 앞에 나올 수 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자존심 때문에 주님이 필요없는 것 같지만 결국은 너무 상처에 곯아 스스로 예수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처럼, 그것이 부모의 모태예서부터건, 태어나서 부터건,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부터건 예수 앞에 그들을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 그들을 예수 앞 까지 안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장애가 있고, 사람들의 시선이 있고, 내 자존심이 있고, 데리고 나와도 아무런 일이 안 나타나면 어떡하냐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도 있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그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모든 장애물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뜻밖에 생각지 않은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 중풍병자를 데리고 나온 자들은 무명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이름 조차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그들을 아시고 그들 때문에 친구를 구원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몰라주어도 예수님 앞에 기억된 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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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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