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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장 11-20절 (뿌리가 말라버린 성전)

 

[막 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주님은 성전에 머물지 못하시고 베다니로 와서 주무신다.

'베다니'는 "가난한 자의 집"이란 뜻으로 예루살렘에서 남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마을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서울 변두리의 달동네 촌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남매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예수님이 그 가난한 마을 베다니에 가셨다. 그것도 최소 열두 명의 제자들과 함께 거하신 것이다.

가난한 집에서 한꺼번에 열세 명을 대접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 예수님은 한 끼라도 부담을 덜어주시려고 아침도 드시지 않고 이른 아침에 예루살렘으로 다시 길을 나선 것이다. 아침을 거른 상태에서 예루살렘까지 3km정도를 걷게 되니 12절에 보니까 예수님이 시장하셨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지나가시다가 무화가 나무를 본 것이다.

 

왜 번거롭게 이렇게 제자들을 모두 데리고 베다니를 왔다갔다 하셔야 했을까?

예루살렘에 거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이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 곳에 주님이 머무실 거처가 없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마자 주님은 성전부터 찾으셨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성전으로 직행하신다.

성전은 주님의 집이요, 주님의 관심은 성전에 있었다. 그런데 성전에 주님이 거할 거처가 없었다.

 

무화과 나무 사건을 둘러쌓고 있는 사건

11절-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베다니로 가시는 사건

무화과 나무 사건 - 12절-14절, 그리고 다시 20절

성전 척결의 사건 - 15-17절

 

무화과 나무 사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전 척결의 사건 사이에 삽입된 별개의 사건인가? 하나의 주제를 가리키는 사건인가?

 

당시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에서 아주 흔한 나무여서 어디를 가든 쉽게 볼 수 있었다. 무화과 나무는 유대 땅에 널려 있었고, 길 거리에 있는 무화과 열매는 누구든 따 먹을 수가 있었다. 시장하신 예수님도 무화과 열매로 식사를 대신하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는 잎사귀만 있고 아무 열매가 없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밥통 뚜껑을 열었는데, 밥이 없는 것과 같았다. 잔뜩 기대를 하고 밥통을 열었는데...그 실망감이란...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11:20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는 잎만 시들해지고 줄기만 마른 것이 아니라 뿌리째. 아예 뿌리째 말라버린 것이다.

 

아니, 아무리 열매가 없어서 실망하셨다고는 하지만,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신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성경은 아직 무화가의 때가 아니라고 까지 설명하고 있다.

 

제자들이 보기에도 이상했던지 베드로가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예수님께 말한다. 마태복음에 보니까 이 구절은 의문문으로 어찌하여 무화과 나무가 말랐나이까?하고 묻는 구절로 나온다. 순식간에 무화나 나무가 말라버린 것이 놀랍기도 하고 또 이상하기도 했던 것이다.

 

어떤 의도로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일까? 예수님은 단순히 육적인 문제, 즉 육신의 배고픔의 문제 때문에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신 것이 아니다. 열매가 없기 때문에 저주하신 것이다. 배가 고파서 저주하신 것이 아니라 열매가 없기 때문에 저주하신 것이다.

 

무화과 나무는 영적으로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나 누구나가 먹을 수 있도록 풍성했던 것이 무화과 나무이다.

그리고 더 가까이는 바로 성전이다. "나다나엘을 제자로 삼으시면서 그에게 하신 말씀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내가 너를 보았다."-> 그곳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곳, 하나님과 교제하는 쉼과 안식처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그 무화과 나무의 모습이 어떤까?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13절)

 

성전은 화려해지고, 성전에서 매일같이 제사가 드려지고, 성전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지만, 허울 좋은 잎사귀 뿐이었던 것이다. 열매없는 형식만 남은 이스라엘의 신앙의 모습이 바로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였던 것이다.

 

[요 15:1-2]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11-12]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열매는 무엇인가?

곧 예수님 안에 붙어 있는 것- 그 분의 사랑 안에 붙어 있는 것. 그 사랑의 열매로 서로 사랑하는 것

그 사랑으로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도 곧 사랑을 이루기 위한 성령의 열매

 

어떻게 ?

 

(막 11:22)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막 11: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5)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갈라디아서 5:16 말씀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제사장과 서기관들, 장사치들, 환전상들이 그렇게 성전 안에서 사리사욕을 탐하고 욕망에 눈이 멀었던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하나님을 예배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그 말씀을 의심했다. 당장이 이익 앞에서 말씀을 버리고 믿음을 버리고 자기 당장 앞의 자기 이익만을 추구했다. 그런 삶의 끝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잎사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무화과 나무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제대로 믿어야 한다.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 믿음의 구체적인 행위가 기도이다.

 

(막 11: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을 믿고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기도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하는 일이다. 기도해서 구하는 것을 다 받아야 한다.

 

기도가 안된다? 왜 기도가 안되는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 주실 준비가 되어 있는데,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의심하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인지 아닌지는 기도하는 삶에 달려 있다.

 

기도는 신앙의 연조와는 무관하다. 10년 20년을 믿어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못한다.

열매를 맺기 위해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빛의 삶을 살아야 하고,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찬양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모든 것은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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