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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32-52절 (내가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8장 말미에 베드로에 의해 고백되어진 예수 그리스도 :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이 아들이십니다.

 

가리사랴 빌립보- 세상의 최고의 권세 앞에서 선포된 예수님의 본질.

내가 가는 길은 세상이 가는 길과 다르고 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다르다. 황제의 신전 앞에 서있는 예수와 및 제자들의 모습

 

-> 내가 가야 될 길은 죽음의 길이다.

1. 첫번째 죽음과 부활

인자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1절)

 

-> 예수를 붙들고 항변 (32절)

->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33절)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 두번째 죽음과 부활 (막 10:30-32)

제자들의 반응 :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영적 반응)

육적반응: 누가 크냐? -> 여전히 세상의 원리, 황제의 원리.

 

3. 세 번째 죽음과 부활의 선포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표현

: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33-34절)

첫번째 - 베드로의 항변

두 번째-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왜 묻지 않는가? 관심이 없기 때문에...그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한 그 일은 내가 싫어하므로....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듣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는 복음은 이미 우상숭배이다. 샤머니즘이다.

세 번째는 제자들이 아무 반응이 없다. 그냥 으례 하는 이야기로 취급하는 것이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것- 반응이 없는 것

아픔이 있어도 반응하지 못하는 병,

불에 디어도, 살이 썩어도 반응하지 않는 병- 문등병. 죄악의 병, 저주의 병

 

말씀하시는데 반응하지 못하는 병은 죽음의 병이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다.

주님은 점점 더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데 죽음을 향해 가는데, 제자들은 처음엔 항변하다가, 묻기를 두려워하다가, 급기야 반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육적 반응은 어떠한가?

처음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 주님을 위해 또한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을 짓고 그 밑에서 함께 동거하며 살고자 했다.

두 번째 제자들은 누가 크냐를 두고 다투었다.

오늘 세번째 제자들은 은밀히 주를 찾아와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주기를 간청한다. 마가복음에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라고 나와있고 마태복음에는 그들의 어머니가 은밀히 와서 청탁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죽으러 가는데 이들은 계속해서 살고자 하고 계속해서 높아지고만 하고 그것도 점점 더 은밀해져가며 부정한 방법으로 거래를 하려고 한다. (세상의 방법으로 높아지려 하는 것)

 

  • 저의 영광 중에서 우편에, 좌편에 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다름아닌 십자가 상의 강도이다.

하나님이 영광이 가장 드러난 순간,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순간이다.

그 순간 우편에, 좌편에 함께 했던 자들은 불행하게도 두 명의 사형수였다.

그들은 자기 죄를 자기가 짊어지고 죽음으로 가는 자들이었다. 그 중 한사람은 예수께 자리를 의탁함으로 구원을 받는다.

어떤 자리? 자기의 영혼의 자리를 의탁함으로...그런데 지금의 제자들은 영혼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육적인 자리만을 탐한다.

 

더 불행하게도 그토록 큰 자리를 원하던 제자들은 예수의 가장 영광의 순간, 도망하고 배반하고 저주하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 이 청탁을 듣고 또 다른 열명의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화를 내었다.

왜 화를 내었을까?

요한과 야고보가 불의를 저절렀기 때문일까? 자기들보다 앞서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가 실패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부정한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 자기들보다 앞서간 것이 화가 난 것이다. 그러지 못한 자기 들에게 화가 난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었으면..." 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부르시며 다시 세상의 모습과 하늘나라의 모습의 차이를 설명한다.

 

(막 10: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이방인의 통치자들은 너희를 주관하고 명령하고 통치한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잘보이려고 알짱 거리고 아부하고 또 끊임없이 청탁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그렇게 하지 말아라. 그저 어린아이를 섬기듯이 사람들, 연약한 자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라.

 

내가 너희를 섬김같이 너희도 섬겨라.

 

46-52: 이해 못하고 자꾸 어리석은 길로 가는 제자들과 달리 그 마침은 항상 뜻밖의 이방인의 구원의 이야기라 마무리 합니다.

맹인거지 - 바디메요...그 이름은 존경받는 자

 

눈은 보이지 않지만 "다윗의 자손 예수여" 하면서 예수가 곧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메시야라는 고백을 한다.

그리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한다.

 

큰 자 되게 해 달라고 하지 않는다.

우편에 좌편에 세워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메시야를 아는 사람들의 고백,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가 해 보았던 가장 오래된 기도 중의 하나 예수 기도 (Jesus Prayer)는 이렇게 기도한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Jesus, Son of God, Have Mercy on Me."

 

이렇게 소리 지르는 바디메오에게 제자들은 꾸짖고 잠잠하게 하신다.

이미 어린아이들이 달려드는 것을 꾸짖은 적이 있던 제자들이다.

예수님을 향해 이처럼 달려드는 자들을 왜 꾸짖을까?

자신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예수와 함께 있으면서도 더 높은 자리, 더 가까운 자리를 요구하는데 그저 자기 영혼의 구원을 위해 소리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부르짖는 소리에 예수가 멈춘다. "머물러 서서"

예수를 멈추게 하는 소리는 무엇인가? 바디메오의 부르짖는 기도였다. 더욱 소리지르는 그의 간절함이었다.

예수를 멈출 수 있는 기도를 해 본 경험이 있는가?

한나처럼 간절히 기도해 보았는가? 그 메어지는 가슴과 구원을 향한 열망을 드러내 보았는가?

 

"그가 너를 부르신다"는 소리에 바디메오의 행동은 어떠한가?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자신을 숨기고 있던 감추고 있던 모든 겉옷을 벗어던지고, 죄악을 회개하고, 드러내고, 예수께 나아온다.

죽은 나사로를 막고 있던 돌을 굴려 옮겨 놓듯, 칭칭감긴 붕대를 풀어재끼듯, 자신을 감추어 놓았던 겉옷을 벗어내놓고 예수께 뛰어 일어난다.

 

그의 간절한 소원은 무엇인가? 보기를 원한 것이다.

 

진리를 알기 원한 것이다.

 

눈을 떠도 장님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제자들의 모습이 장님처럼 여겨지지 않는가?

누구보다 예수 가까이에 있으며 그가 하신 말씀을 듣지만 애써 외면하고 자신이 듣고자 하는 것만 듣고, 보고자 하는 것만 본 제자들....

 

우리도 보게 되어 예수의 길을 따라야 한다.

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른다면 오히려 무서운 이단자가 된다.

따르면서도 예수를 놓치는 자. 열심은 있는데 허탄데 그 열심을 쓰는 자.

불행한 신앙인이다.

 

참 진리를 보고 예수를 따르는 자. 그는 참 자유한 자이고 참 행복한 자이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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