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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장 1-8절  가장 중요한 유언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그리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의 임재 앞에서, 난 네게 명한다. 


그냥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장차 산자와 죽은 자는 무엇입니까? 

물론 예수님 재림 하실 때에 살아있는 자와 이미 죽은 자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산자와 죽은 자라는 의미는 알곡과 쭉정이를 나타내듯이 참 구원 받을 자와 죽은 자, 즉 심판 받을 자를 가리킵니다. 


앞으로 우리 모두를 심판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네게 명한다라는 말이니까 얼마나 엄숙하고 무거운 말씀입니까? 


그 명령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Preach the Word!" 

 바로 the Word, 대문자로 쓰여있는 그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작게는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라는 뜻도 있지만 크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믿지 않는 자, 연약한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무엇이었습니까? 

[마 28:19-마 28: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막 16:15-막 16:16]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Go into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

Whoever believes and is baptized will be sav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will be condemned.)


먼저는 무엇입니까? 믿는 자는 세상으로 다시 나가라, 그리고 좋은 소식, 구원의 소식, 너희들이 만족하고 누리고 행복해하는 그것은 참 된 만족, 참된 행복이 아니다. 영원한 행복은 오직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그 안에서 영원한 충만함을 누리는 것임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거짓 자유, 거짓 행복에서 벗어나 참된 행복, 참된 자유를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결국 심판을 당할 것이요,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be prepared in season and out of season:


이 말씀의 해석이 중요합니다. 영어로는 그 시기나 혹은 시기를 벗어나 있을 때에도 항상 준비되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때가 좋든지 나쁘든지 항상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 시기를 벗어나 있을 때'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누구의 시기냐가 해석의 초점입니다. 

 

내가 복음을 증거하는 대상이 아직 때가 차지 않았을 때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혹은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내가 말씀을 전하고 싶던지 그렇지 않던지" 자기 감정에 얽메이지 아니하고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를 너무 기다립니다. 

아직 그 사람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을 습관처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는 데 변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또 만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해 내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증거하면 무슨 열매가 있을까 스스로 차단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받는 자가 믿음으로 응답할 때에 일어납니다. 


우리의 순종은 통로입니다. 그런데 그 순종을 통해 전달되는 것은 결국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성령의 역사는 받는 자가 믿음으로 반응할 때에 역사됩니다. 


사실 목사도 주일날 설교할 때, 정말 올라가기 부담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아직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 성도들이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단상에 올라갈 때는 그 모든 부담을 이기고, 걱정을 내려놓고 지극히 순종하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복음은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도록 하셨습니다. 

교회가 크고, 프로그램이 좋고, 방법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메섹 도성에서 바울을 만났을 때에 예수는 구원의 도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아나니아에게 가라고 했습니다. 아나니아의 입술을 통해 그리스도의 도를 배우고 받아들이고 영접했습니다. 


고넬료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에도 천사가 나타나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천사가 나타나 한 말을 "베드로를 불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천사가 나타나도 복음은 베드로가 전했습니다. 예수께서 바울을 만났어도 복음은 아나니아가 전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로 복음은 전해졌습니다. 

사람의 입술을 통해 영접한 예수가 모여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는 데에도, 영접한 데에도 성령의 역사가 임해 이들을 하나의 신앙으로 붙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냥 복음을 전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르치고, 때로는 훈계하며, 또 격려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차갑게 한 것이 아니라 great patient and careful instruction (위대한 인내와 세심한, 주의깊은 가르침으로 전하고 꾸짖고 가르치고 격려하라고 하셨습니다. 


인내없이 가르치지 말고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 자체가 고난이요, 십자가입니다. 인내가 필요하고 주의가 필요합니다. 올바른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으로 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절입니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건전한 교리를 참지 않으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자기들의 간지러운 귀가 듣기를 원하는 것을 말하는 수많은 스승들에게로 모여들 것이다." 


자기들의 간지러운 귀가 무엇입니까? 듣기를 좋아하는, 자기 만족을 주는, 칭찬만 하는, 꾸짖지 아니하는, 괜찮다고 하는, 그정도면 잘한다고 하는.....그런 스승에게로 모여들 것이다. 


그러한 자들은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신화에게로 돌아설 것이다. 

신화가 무엇입니까? 

이러이러하니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 

내가 이렇게 했더니 그가 이렇게 배부르게 하셨다. 

 

 결국은 자기 의로 말미암는 자기 자랑의 신화, 자기 만족의 신화, 자기 칭찬의 신화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5절: 그러나, 너 디모데야, 모든 환경에 있어서 너의 머리를 유지하고, 모든 고난을 참으라. 오직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사역의 모든 임무를 다하라....

 

 다른 방법이나 꾀를 생각하지 않고... 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 꾀입니다. 잔머리 입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이루려 하는 생각입니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네가 가진 진리를 계속 유지하고, 그로 말미암는 고난을 참으라. 네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라. 

 

 6절, 7절, 8절....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가이 가까왔도다.

 

 전제- DRINK OFFERING 

 전제는 DRINK OFFERING으로 포도주가 부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지기를 원하나 아버지의 뜻대로 한 것처럼 이는 "피의 순교"를 말합니다.

 

 그는 이미 입박한 순교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순교를 앞둔 그에게는 미련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환경적으로 볼 때에 

 그가 개척한 교회들이 벌써부터 흔들리고 무너지고, 그가 세운 사람들이 세상으로 떠나고 자기를 비웃고, 환난 가운데 죽어가는 것이지만 그가 미련을 두지 않은 것은 자기의 업적을 바라보거나, 환경을 바라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태도를 하나님 앞에 아끼지 않고 드렸기 때문입니다. 

 

주 앞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열매나 업적으로 그 자신의 삶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주 앞에 그 자신의 태도를 보고 미련을 남기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관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것을 확신 가운데 바라보는 자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자기 삶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받을 상급만을 바라보는 신앙, 

바울은 그러한 삶으로 엄숙하게 디모데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로고스 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밤 여러분이 만일 하늘나라로 가게 되신다면 여러분, 어떤 미련을 남기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전해야 할 대상자가 만일 오늘 밤 세상을 떠난다면 얼마나 많은 후회와 미련이 남겠습니까? 


주님은 세상으로 나가라. 복음, 하나님의 말씀,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미련 없이, 변명없이 전했던 바울은 비록 세상적으로는 고난 가운데 최후를 맞이하고 있어도 지금 하나님 앞에 미련없이  그 분을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한 행복한 삶으로, 거룩한 삶으로 디모데를, 그리고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거룩한 초대에 초대된 자들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Posted by 소리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