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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모데전서 6장 17-21절 "복을 복으로 누리는 삶"


신약의 가장 중심된 구원의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면 구약의 가장 중심된 구원의 사건은 바로 출애굽 사건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크게 두 가지의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출애굽, 즉 애굽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구원해 내시는 사건입니다. 

왜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십니까? 그들이 세상의 종되어 살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고, 일하는 것 만큼 삯을 받지 못하였고,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도 누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비참한 현실에 그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을 구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노예의 삶이란 것은 비참한 것입니다. 


출애굽의 과정 중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열가지 재앙과 홍해를 가르는 드라마틱한 기적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출애굽 이후에 이스라엘 민족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의 노예로부터만 해방 되면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풍요로운 삶을 살 줄로만 알았는데 광야 생활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연단의 과정을 만난 것입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까지의 거리는 물리적으로는 넉넉 잡고 한달이면 갈 수 있는 짧은 여정이었지만 세상의 노예로부터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너무도 길고도 지루한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신학적으로는 중생 이후의 성화의 과정입니다. 

그들은 신분적으로, 법적으로는 이미 애굽의 노예, 세상의 노예로부터 벗어났지만 그들의 기질과 습관과 생활 방식은 여전히 노예 때의 모습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 시기에 하나님은 여전히 구름기둥과 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로 함께 하셨지만 40여년의 긴 여정 가운데 날마다 똑같이 보이는 하나님의 기적은 더 이상 기적으로도 보이질 않습니다.  

매일같이 부으시는 하나님의 기적이 지루하고 지겹다가 어느날 물이 부족하기라도 하면 오히려 짜증내고 오히려 애굽이 좋았다고 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죽이시나보다 하며 불평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시선이 여전히 애굽에 머물러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 있었을 때의 것만을 생각하니까 하나님이 부으시는 만나도, 메추라기도 은혜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현재가 고달프면 과거는 언제나 행복했던 것 같고 현재는 지긋지긋하기만 합니다. 

법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들의 고향은 여전히 애굽이요, 세상이요, 물질에 있습니다. 


가나안 이후의 삶은 더욱 가관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경작하지도 아니한 땅을 얻게 되었고, 그들이 심지도 아니한 과실과 열매를 가졌습니다. 

날마다 감사하며, 예배해도 부족한 이 큰 변화에 그들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께 예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더 이상 필요치 않아진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는 애굽으로부터 구해줄 구원자가 필요했고

광야에서는 지긋지긋한 연단의 때를 벗어날 길을 안내해줄 인도자가 필요했지만 

그들의 삶이 풍족해지자 더 이상 구원자도, 인도자도 필요없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스스로 왕된 삶,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자들이 됩니다. 

복을 얻을 자격이 없는 자가 누릴 때의 결과를 사사기서를 비롯하여 이 후의 솔로몬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역사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의 목적은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 하여 애굽의 백성, 바로와 같은 왕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의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는 섬기러, 죽으러 왔는데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끊임없이 높아지려 합니다. 

바리새인들을 꺾고 그들이 그들의 자리에 앉으려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데 제자들은 여전히 세상에서 왕노릇 하는 것을 꿈꿉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성령이 임합니다. 

신약 시대의 가나안 시대가 임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권세가 임하고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고,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치유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소망이 생기고 외식에 쪄들어 있던 외식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된 자들 역시 또 다른 세상을 꿈꿉니다. 

이전의 권세자들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왕이 된 나라를 꿈꿉니다. 

결국 가나안 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금 우상 숭배를 통해 노예 상태가 되어 버리듯이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자들 역시 세상을 꿈꾸다가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주신 바울의 말씀은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은혜를 체험한, 그리고 신앙 안에서 세상의 복을 되찾은 그런 신앙인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이라는 것은 믿고 부자된 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믿고 부자되어서 축복을 누리는 대신에 믿고 부자 되어 오히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이 이젠 필요없다 하고 다시금 돈을 의지하고 결국 세상의 노예가 되는 자들을 위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 마음을 높이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거만하지 말라. 목에 힘주지 말라. 높은 사람 행세치 말라. 
  •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은 불확실한 것에....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기다리는 사람을 오히려 불확실한 것을 붙드는 자 취급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물질을 오히려 불확실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휙 불면 날아갈 것으로 묘사합니다. 

  •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풍족히 주시는...

우리에게 정말 즐거움을 주는 것을 아낌없이 부어주시는 분. 반대로 우리에게 정말 즐거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면 주시지 않을 수도 있는 분. 참 즐거움이 무엇인가?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고 너그러운 자가 되라. 

-> 이것이 이 땅에서 복 주시는 이유. 

그런데 과연 이땅의 복을 추구하는 자들이 이렇게 사는가?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는가? 너그러운가? 


-> 이렇게 사는 것이 다가올 시대를 위한 견고한 기초로서 우리 자신들에게 참 보물을 쌓아두는 것이다. 참 생명의 삶을 소유하는 것이다. 


롯데 신격호, 신동주, 신동빈... 

신동빈이 실세. 

신동주가 자기가 후계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버지를 재판에....


90넘은 아버지를 법정에 데리고 나와서 한 자녀는 아버지가 나에게 주었다. 

한 자녀는 아버지는 정상이 아니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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