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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5장 1-4절  효를 행하게 하라 


금요일 자정이 다 되어서 갑자기 어머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찾아뵙는 분이 계신데 어머니가 신학생때 처음 사역을 했을 때에 함께 교회에서 사역을 하며 이끌어 주시고 이후에도 멘토로서 영적인 모델로서 존경했던 한 은퇴한 여자교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찾아가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를 않고 분명 인기척은 있는 것 같은데 문을 열어주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문앞에서 30여분이 지나서야 비로서 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집안에서 보행기 같은 바퀴달린 워커를 밀며 허리는 다 굽고, 바짝 마른 상태에서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왜 집에 혼자 계시냐고 물으니 남편은 치매가 심해 요양원에 있고 집에 혼자 있으시면서 사회복지사가 하루에 한 번 두 시간씩 들려 집안을 체크해 주고 가면 하루 종일 집안에서 사회복지사가 차려놓은 음식을 홀로 드시면서 사신지가 거의 1년이 다 되었다는 것이지요. 큰 아들은 장로요, 둘째 아들은 목사이자 교수이신데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도 않고, 남편처럼 요양원 들어가는 것도 내키지 않아 그렇게 살긴 하는데 너무 외롭고 힘들다 하시면서 어머니 손을 붙잡고 우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살아있다할 뿐이지 정말 죽은 것 같은 인생을 살고 계시는 것을 보고서 영국에 있는 형과 저에게 각각 전화를 하셔서 너희들은 엄마가 저렇게 되면 어떡할꺼냐. 부모님들 홀로 살다가 죽게 내팽개칠거냐 심각하게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그분 자녀도 다 목사요 장로인데도 어머니 혼자 저렇게 시체처럼 사시는데 내버려두고 인근에 계시던 그 교수님 동생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아들은 다 소용없어, 난 딸이 있어서 그래도 챙겨줘...."하시는데 어머니도 겁이 나셨는지 저에게 심각하게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 현대 사회의 가정의 위기

비혼식, 종혼식

저와 함께 공부하다가 한국 강남의 유명 대형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시는 분이  학교 졸업식차 이곳에 오셔서 지난주에 식사를 함께 했는데 교회내에 30대 후반, 40대 싱글들이 너무 많아서 청년부에서 활동하기도 뭐하고, 남녀 선교회에 들어가지도 못하여서 청년 + 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는데 만들자 마자 80여명이 모여서 대성황리에 모임을 마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직업도 의사, 변호사, 대기업 사원, 전문 직업인들로 직업도 쟁쟁하고 능력도 되는데도 구속되기 싫고, 자기 원하는대로 살고 싶어서 결혼을 안하고 살기로 작정한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교회가 그것이 현실이 되었으니 그런 시대에 발맞추어 그들에게 맞춤형 모임을 만든 것인데요.  문제는 뭐냐면 그곳에서는 결혼, 결혼 생활에 관련된 말씀은 절대로 전하지 않고, Well-being Life, 철저히 개인에 초점을 맞추고 또래 모임에만 초점을 맞춘 말씀을 중심으로 모인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안하는 대신에 발생되는 문제, 동거문제, 여가 문제등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결혼이 야기하는 많은 짐과 부담이 있습니다. 둘 간의 관계만 가지고 결혼 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부모님이 이제 내 부모가 되어 섬겨야 하고 자녀를 낳으면 자녀에 대한 책임은 한국사회에 있어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자녀 교육비라든지 들어가는 돈이 세계 최고입니다. 


더군다나 사회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많이 발달하여 사회활동의 기회도 많이 있는데 반해서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정에 있어서는 여전히 여성에게 철저히 불리하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더 많은 것을 희생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여권이 신장되면서 점점 자기들의 입지가 줄어듭니다. 

이제 요리학원 등록하는 남편이 점점 많아지고 가사일도 필수입니다. 결혼하면 남녀 모두 쏟아야 하는 에너지가 너무 많습니다. 


혼자 살기도 바쁜 인생, 결혼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고 합니다. 


  • 그런데 결혼을 기피하는 가장 큰 핵심은 자기 중심성, 곧 이기심입니다. 

다른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지만 결국 결론은 이기심입니다. 

자유는 원하는데 책임은 지기 싫습니다. 

희생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 인생이 최고입니다. 자녀보다, 부모보다 자기 인생 중심으로 가는 것입니다. 

특별한 가정,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대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가정의 위기는 곧 교회의 위기로 이어진다는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입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 이웃 중심으로, 타자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이기심으로 가득찬 신앙이 결국 기복신앙입니다. 

철저히 복을 위해서, 자기 유익을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자기 유익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을 위해, 주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결코 십자가 신앙이 나올 수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다음에 인간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제도적으로 만드신 것이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가정이고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교회를 만들기 전에 하나님은 가정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국가나 다른 기관은 인간들이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지만 가정과 교회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고 하나님이 머리 되신 두 제도 입니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는 닮아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교회의 근본을 가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직분을 세울 때에도 가장 강조한 것이 무엇입니까? 가정을 잘 돌보는가? 

건전하고 성실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가? 

한 아내의 남편으로, 아내로서, 자녀로서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구성원들 사이에 다툼이나 증오는 없는가? 서로가 사랑하며 존경하는가? 


  • 디모데서는 목회서신입니다. 선배목회자인 바울이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목회의 실제적인 철학과 신학과 실천을 편지에 담아 지도하는 성경이 디모데서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누구도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고 명하면서도 동시에 교회의 어른들을 부모님 모시듯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아버지에게 권하듯 권하고 어머니에게 하듯이 공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에게는 형제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 성도에게는 자매에게 대하듯 온전히 깨끗함으로 하라...흑심 품지 말고 정결하게 자매로서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자녀에게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라는 것은 그것이 참된 예배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사를 잘드리고 예물을 많이 드려도 자기 부모에게 효를 행하지 않는 자는 참된 예배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처음 조선 땅에 들어왔을 때에 유교문화에 젖어 있던 우리 조상들은 기독교를 효를 배격하는, 위 아래도 없는 그런 류의 종교로서 인식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제사를 드리지 않고 무덤에 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평민과 양반이 같이 예배를 드리고 형제라고 했기 때문에 위의 계층일수록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영어에는 높임말이나 공손한 말 등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서양 문화 자체를 불신하고 배격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계명을 주었을 때에 제 일부터 사계명 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계명이라면 오계명부터 십계명은 사람들 사이의 계명인데 사람들 사이의 계명 중 가장 첫 계명이 바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가장 첫 계명으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 2-3절에서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까지 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약속있는 첫 계명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레위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경외함과 효가 어떻게 연관이 되는 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레 19:2)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레 19:3)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그 거룩한 삶의 방법이 나오는 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즉 부모 공경이 곧 거룩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부모 공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기 위해서는 먼저 나부터 부모에 대한 바른 감정, 바른 관계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할 때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기에는 “경외(敬畏)”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부모를 경외하라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룩한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어릴적은 부모가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녀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효라는 것이 실제적으로 필요있지 못합니다. 

정작 효가 정작 필요한 때가 언제입니까? 

자녀가 나이가 들어서 부모보다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많이 강해 졌을 때에 정작 부모를 경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행하실 때 열두 제자를 비롯한 수많은 무리가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지막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는 이스라엘 전체가 떠들썩 할 정도로 온 무리가 진동을 했습니다. 

그들이 왜 주님을 따랐습니까? 

자기 유익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면 한 자리 할 것 같고 성공할 것 같고 부스러기 은혜라도 얻을 것 같기에 주님을 따랐습니다. 


복음서는 주님의 십자가 현장에서 그렇게 이기적으로 자기를 위해 주님을 따른 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현장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주를 떠나고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 때에 주님과 함께 했던 자들은 누구입니까? 

구레네 시몬 (맡겨진 책임을 다한 자, 억지로 지워진 무거운 짐을 진자), 아리마대 요셉 (세상적인 욕심 다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로 작심한 자), 그리고 여인들...(사랑하기에, 다른 이유 없이...) 

진짜 신앙은 어느 때 나타나는가? 

아무 힘 없는 과부를 공경하는 것처럼 

나에게 아무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볼 때에 참 믿음, 참 경건, 참 사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신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에게 효를 행하게 하라는 말씀을 계명으로 주신 것은 이것이 저절로 되지 않기 떄문입니다. 교육해야 하고 훈련하지 않으면 효라는 것이 우러나지 못합니다. 



우리 윗 세대, 우리 세대가 잘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식에게 베풀 줄은 알았지만 공경하도록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저부터 그랬습니다. 

그저 부모보다 잘 나도록, 밖에 나가서도 당당할 수 있도록 부모가 희생할 줄은 알았어도 부모를 공경하게끔 가르치는데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부모에게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남들보다 못해주면 비난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녀가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부모가 교육시키지 못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효를 행하게 하라고 구태여 강조해서 말한 것은 그렇지 않으면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큰 가정 입니다. 작은 가정 하나 하나가 세워지면서 교회가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가정의 종교입니다. 

효의 종교입니다. 

왜내하면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공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가 자기 부모를 공경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위기가 오면 교회에도 반드시 위기가 옵니다. 

그런데 교회의 위기는 다들 인식하는데 교회가, 성도가 가정의 위기가 곧 신앙의 위기, 교회의 위기라는 것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가정 회복의 시작은 부모 공경에서 부터 입니다. 우리 먼저 부모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고 자녀에게는 부모에게 효도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가르쳐야 합니다. 


어제 아들은 다 소용없어 딸이 있어야 해...하셨던 말씀을 제 아내와 나누면서 있을 때 부리자. 아이들 자꾸부리자....했습니다. 

딸은 아끼고 아들은 부리자 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어른들을 공경하는 데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시작됩니다. 

어른을 우습게 보면 결국 하나님도 무시하고 판단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재판하게 됩니다. 

안도와주면 무기력한 하나님이라고 치부해 버립니다. 


교회는 큰 가정입니다. 효도를 행하고 효도를 가르치는 교회가 됩시다. 


Posted by 사용자 소리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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